감독 : 그레이엄 애나블, 안소니 스타치
더빙 : 아이작 햄스터드 라이트, 엘르 패닝, 사이먼 페그, 벤 킹슬리
개봉 : 2014년 11월 6일
관람 : 2015년 3월 27일
등급 : 전체 관람가
금요일밤, 웅이와의 영화 여행
불타는 금요일 밤, 직장인이라면 일주일동안 금요일 밤이 오기만을 기다릴 것입니다. 저 역시 그러했습니다. 금요일 밤을 위해 일찍 퇴근해서 집안도 청소하고 구피, 웅이와 신나게 놀 준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구피는 야근을 해야해서 늦게 온다고 문자 하나 달랑 보냈고, 웅이는 엄마도 없으니 오늘밤은 외가댁에 가서 자겠다고 선언합니다. 저는 금요일 밤을 혼자 외롭게 보낼 위기에 처한 것이죠.
그래서 야근하는 구피는 어쩔 수 없더라도, 웅이라도 붙잡아야 겠다는 생각에 웅이에게 은밀한(?) 제안을 했습니다. "어휴! 아쉽네. 오늘 네가 여기에서 잔다면 밤 늦게까지 [박스트롤]보며 재미있게 놀려고 했는데..." 밤 늦게까지 영화를 보자는 제 유혹에 웅이는 곧바로 "오늘 여기서 잘께요."라고 외할머니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가볍게 웅이 유혹 성공.
그리하여 금요일 밤, 웅이와 저는 구피를 기다리며 [박스트롤]을 봤답니다. [박스트롤]이 거의 끝나갈 때쯤 파김치 상태가 된 구피도 합류했습니다. 비록 제가 기대했던 불타는 금요일은 아니었지만, 온가족이 영화와 함께 했던 소소하지만 행복한 금요일 밤이었습니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명가 라이카 스튜디오
저는 나이 마흔이 넘은 중년이지만 아직도 애니메이션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애니메이션의 강점이라고 한다면 상상력의 한계가 없다는 것과 다양성에 있습니다. 예전에는 애니메이션하면 셀 애니메이션만 떠올렸지만, 요즘은 3D 애니메이션이 대세입니다. 게다가 실루엣 애니메이션, 클레이 애니메이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등 새로운 애니메이션 장르들이 저를 즐겁게 해주고 있습니다.
[박스트롤]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입니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란, 촬영 대상의 움직임을 연속으로 촬영하는 것과 달리 움직임을 한 프레임씩 변화를 주면서 촬영한 후 이 이미지들을 연속적으로 영사하여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애니메이션 기법입니다. 말그래도 수작업 애니메이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 우리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팀 버튼 감독의 [크리스마스의 악몽]에서 부터입니다. 이후 그는 [유령신부], [프랑켄위니]도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완성하며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에 대한 사랑을 과시했습니다.
할리우드에서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만 전문적으로 만드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도 있습니다. 바로 라이카(Laika) 스튜디오입니다. 라이카 스튜디오는 팀 버튼 감독의 [유령신부]를 시작으로 [코렐라인 : 비밀의 문], [파라노만]까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곳입니다. [박스트롤]은 라이카 스튜디오의 네번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입니다.
약간은 으시시한 분위기는 라이카 스튜디어의 전매특허
[유령신부], [코렐라인 : 비밀의 문], [파라노만]. 지금까지 라이카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쭈욱 나열해보면 한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애니메이션과는 어울리지 않는 으시시한 분위기의 영화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유령신부]는 결혼이 두려운 소심한 신랑 빅터(조니 뎁)가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우연히 땅 위로 튀어나온 손가락 뼈의 반지를 끼웠다가 유령신부(헬레나 본햄 카터)에 의해 지하 세계로 끌려가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코렐라인 : 비밀의 문]은 새로운 집에 이사온 코렐라인(다코타 패닝)이 우연히 숨겨진 작은 문을 발견하게 되고, 그 문을 통해 가게된 다른 세계에서 무시무시한 비밀을 알게된다는 내용입니다. [파라노만]은 유령을 보는 소년 노만(코디 스밋 맥피)이 좀비의 습격에서 마을을 지킨다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라이카 스튜디오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유령, 마녀, 좀비 등 주로 공포 영화에 등장하던 것들을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의 소재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박스트롤] 역시 박스를 뒤집어쓴 괴물 트롤이 어린 아기를 납치하는 장면으로 시작함으써 공포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애니메이션입니다.
어두운 배경을 지녔지만 신나는 모험 이야기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박스트롤]을 겁낼 필요는 없습니다. 라이카 스튜디어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 항상 그러하듯이 [박스트롤] 역시 공포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영화이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정작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괴물들이 아닌 이기적이고 욕심많은 우리 인간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박스트롤]은 어린 아기를 유괴하는 '박스트롤'의 모습으로 시작도비니다. 이러한 [박스트롤]의 오프닝이 지나고나면 '박스트롤'에게서 키워진 인간 소년 에그(아이작 햄스터드 라이트)와 '박스트롤'의 훈훈한 우정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박스트롤]에서도 악당은 '박스트롤'이 아닌 '박스트롤'을 박멸하겠다고 나선 아치발드 스내처(벤 킹슬리)와 빨간모자 일당들입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곳은 스내처가 '박스트롤'을 박멸함으로써 받기로한 댓가가 돈이 아닌 권력이라는 점입니다. 치즈 마을의 지도층임을 상징하는 하얀 모자를 얻기 위해 스내처는 죽기살기로 '박스트롤'을 잡습니다. 하지만 치즈 마을의 지도자인 포틀리 라인드(자레드 해리스)는 노동 계층인 스내처에게 하얀 모자를 주는 것을 내켜하지 않습니다.
[박스트롤]은 권력에 집착하는 어리석은 스내처와 포틀리 라인드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괴물이 '박스트롤'인지, 아니면 어리석은 어른인지 관객에게 묻습니다. 특히 스내처는 치즈 알레르기가 있으면서도 권력의 상징인 치즈에 집착합니다. 그러한 스내처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굉장히 의미심장합니다.
우리 모두 괴물은 되지 말자.
[박스트롤]은 '박스트롤'을 구하려는 에그와 위니, '박스트롤'을 박멸하려는 스내처의 대결 모드입니다. 그 와중에 죽은 줄 알았던 에그의 아버지인 허버트 크럽쇼(사이먼 페그)가 살아있음이 밝혀지고, 스내처의 감춰진 음모가 드러나며 영화는 더욱 풍성한 재미를 자랑합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스내처의 음모가 꽤 치밀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스내처는 '박스트롤'이 어린 아기를 납치하여 잡아먹는다는 괴담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의 공포심을 조장하고,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괴물 '박스트롤'에게 잡혀간 크럽쇼의 아기 이야기를 공연하며 마을 사람들을 선동합니다. 그럼으로써 치즈 마을의 여론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치밀한 그는 결국 파멸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를 파멸로 몰아넣는 것은 에그도, 위니도, '박스트롤'도 아닙니다. 바로 치즈입니다.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권력의 상징 치즈가 오히려 그를 파멸시켰다는 결말은 영화를 보는 저를 섬뜩하게 만들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위니와 에그는 인간 괴물 스내처의 이야기를 공연합니다. 그렇게 스내처는 마을의 영웅에서 괴물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돈, 명예, 권력에 대한 과한 집착. 그것은 스내처 뿐만 아니라 우리 어른들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고나서 나는 스내처처럼 괴물은 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박스트롤]은 어린 웅이보다는 어른인 저를 위한 성인 동화 애니메이션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P.S. 영화가 끝났다고해서 서둘러 정지 버튼을 누르지 마세요. 엔딩크레딧 중간에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한 제작진의 피땀어린 노력이 물씬 풍기는 히든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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