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데이빗 레이치, 채드 스타헬스키
주연 : 키아누 리브스, 알피 알렌, 윌렘 대포
개봉 : 2015년 1월 21일
관람 : 2015년 3월 26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스트레스가 폭발직전까지 갔던 날
가끔가다가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하여 폭발직전까지 몰리는 날이 있습니다. 물건을 집어던지고 싶고, 소리도 지르고 싶고, 다른 이에게 괜히 짜증도 내고 싶지만, 이성을 가진 성인이라면 그러한 것들을 참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린 노래방에 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부르고, 술을 취하도록 마시며 스트레스를 억누르기도 합니다.
지난 목요일이 제겐 그런 날이었습니다. 퇴근 시간 막바지에 터진 일로 인하여 스트레스가 폭발직전까지 몰렸었습니다. 하지만 속으로 소리를 지르고, 제 머리카락을 쥐어 뜯으며 억지로 스트레스를 참아냈습니다. 결국 야근으로 일을 마무리하고나니 영화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제 스트레스 해소용 영화로 선택된 것은 [스무살].
그러나 퇴근한 구피가 매운 치킨이 먹고 싶다며 저를 유혹하네요. 하긴 웃기는 영화를 보는 것도 스트레스 해소에 직방이지만, 구피와 함께 매운 치킨에 맥주 한잔을 기울이는 것도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좋은 방법이죠. 그래서 영화 예매는 취소하고 치맥을 즐기며 극장이 아닌 거실에서 영화를 봤습니다. 그날 제가 선택한 영화는 [존 윅]. 스트레스가 폭발직전까지 몰렸던 제 상황에 딱 맞는 아주 적절한 영화였습니다.
그깟 강아지라고?
[존 윅]은 전설적인 킬러였지만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결혼하며 평범한 삶을 살던 존 윅(키아누 리브스)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존 윅의 평범한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아내인 헬렌(브리짓 모나한)이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슬픔에 빠진 그에게 헬렌이 죽기 전에 보낸 강아지 한마리가 배달됩니다. 편지와 함께... "존, 직접 곁에 있어주지 못해 미안해. 하지만 누군가는 있어야지. 사랑할 대상이... 얘부터 시작해. 자동차는 열외니까... 사랑해. 여보. 내 병 때문에 오래 불행했는데 난 이제 평화를 찾았으니 당신도 찾아봐. 다시 만날 날까지 안녕. 당신의 절친... 헬렌"
강아지로 인해 다시금 평화를 찾는 듯 보였던 존 윅에게 마피아 두목 비고의 애송이 아들 요제프(알피 알렌)가 존 윅의 차를 훔치고, 강아지를 죽이면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비고는 존 윅에게 전화를 걸어 이성적으로 해결하자며 설득합니다. 어쩌면 존 윅은 비고에게 요제프가 훔쳤던 차보다 훨씬 좋은 차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요제프가 죽였던 강아지보다 훨씬 혈통이 좋은 강아지를 선물로 받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존 윅은 이성적인 해결보다는 비고 조직과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참 흥미로운 출발합니다. 만약 요제프가 존 윅의 아내를 죽였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제프는 '고작 강아지였어.'라고 항변합니다. 이성적으로 차를 훔치고, 강아지를 죽였다고 거대한 비고의 조직과의 목숨을 건 전쟁을 선포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존 윅의 스트레스는 요제프로 인하여 폭발하였고, 한번 폭발한 스트레스는 멈출줄 모릅니다.
그들이 스트레스와 맞서는 방법
[존 윅]이 비슷한 스토리 라인을 가진 다른 액션영화와 다른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영화는 초반부터 아내를 잃은 존 윅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내를 잃은 슬픔과 스트레스를 속으로 삼켜야 했던 존 윅은 넓은 공터에서 차를 거칠게 몰며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해소합니다. 그런 그를 요제프가 건드린 것입니다. 이걸 한문장으로 표현하자면 "너, 잘 걸렸다"입니다.
그렇기에 존 윅의 액션은 복수라는 미명아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한바탕 소동이 됩니다. 존 윅의 집을 찾은 킬러들은 모조리 죽이고, 비고의 비밀 아지트를 아작내고, 결국 요제프가 숨은 곳을 찾아가 그를 죽이고 나서야 존 윅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한바탕 소동은 끝이 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존 윅으로 인하여 스트레스 폭발 직전까지 몰린 또다른 인물 비고가 있기 때문입니다.
비고는 자신이 살기 위해 존 윅에게 아들인 요제프가 숨어 있는 곳을 말해줍니다. 아무리 비정한 마피아 두목이라 할지라도 아들의 죽음에 의연할 수는 없습니다. 존 윅이 스트레스 폭발로 요제프를 향한 복수를 시작했듯이, 비고 역시 복수를 준비합니다. 하지만 그의 복수 대상은 존 윅이 아닌 마커스(윌렘 대포)입니다. 마치 윗사람에게 엄청 깨진 팀장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팀원들에게 짜증을 부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처럼 존 윅과 비고의 스트레스 해소방법은 달리 보면 일반인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는 그들의 세계
[존 윅]의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을 놓고 보면 상당히 간결합니다. 너무 익숙한 이야기라서 실망감이 들기까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북미 개봉당시 꽤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영화에 대한 신선함에 대해 점수를 매기는 로튼 토마토 지수가 무려 86%입니다. 익숙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존 윅] 자체는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죽은 아내가 남겨준 개를 위한 복수라니... 존 윅의 복수 자체가 새롭고, 존 윅에게 목숨을 구걸하며 아들을 팔아넘겨놓고는 마커스에게 화풀이를 하는 비고의 모습도 결코 익숙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킬러들의 세계에 대한 규칙을 위반한 여성 킬러 퍼킨스(아드리안 팔리키)라던가, 그녀가 킬러들의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그녀를 처단하는 킬러 조직의 모습 등... [존 윅]에는 무조건적인 킬러 액션만 담겨지지 않았습니다.
단, 거침없이 복수하는 존 윅과는 달리 존 윅을 생포하고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대고, 존 윅을 처치할때도 단 한방에 끝낼 수 있는 총이 아닌 목조르기를 시도하는 비고의 모습은 조금 생뚱맞았습니다. 왜 항상 악당들은 그렇게 말이 많고 주저하는 걸까요? 그래서 주인공에게 빠져나갈 빌미를 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 윅]을 보고나니 회사에서 있었던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기분이었습니다. 한바탕 복수극을 펼친 끝에 존 윅이 새로운 강아지를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은 제겐 굉장히 짜릿했습니다. 현실에서 저는 존 윅처럼 총을 들고 복수를 하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영화로 대리만족을 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죠. 그것이 소시민이 스트레스에 맞서 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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