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로베르트 슈벤트케
주연 : 쉐일린 우들리, 테오 제임스, 케이트 윈슬렛, 나오미 왓츠, 안셀 엘고트
개봉 : 2015년 3월 25일
관람 : 2015년 3월 27일
등급 : 15세 관람가
중학생들의 단체관람이 무서웠다.
지난 목요일, [스물]을 예매했으나 갑작스로운 구피의 치맥 유혹으로 예매를 취소해야만 했던 저는 다음 날인 금요일에는 [스물]을 꼭 보겠다는 일념으로 일찌감치 영화를 예매해놓았습니다. 그러나 업무를 일찍 마치고 도착한 극장에서 저는 다시한번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극장 안은 학교에서 단체관람을 온 중학생들로 인하여 시끌벅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스물]을 보겠다고 극장을 찾은 그날은 하필 극장 근처 중학교의 단체 관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극장 직원들에게 "저 학생들은 어떤 영화를 단체 관람하나요?"라고 물었습니다. 대답은 역시나 "네, 고객님, [스물] 단체 관람 고객님들입니다." 였습니다. 그 순간 김우빈이 등장하는 장면마다 터져나오는 여중학생들의 환호성 소리가 귀에 아른거렸습니다. 도저히 저는 시끌벅적한 중학생들 틈에서 [스물]을 볼 자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재빨리 [인서전트]로 영화 티켓을 교환했습니다. 그러나 극장 직원의 절망적인 한마디가 저를 다시한번 좌절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고객님, 오늘 단체 관람은 [스물]과 [인서전트], 동시에 진행됩니다." 알고보니 단체 관람을 온 중학교는 남녀공학으로 여학생들은 대부분 [스물]을, 남학생들은 대부분 [인서전트]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더이상 저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어렵게 시간을 내서 찾은 극장에서 단체 관람을 온 중학생들이 무섭다고 영화 보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단체 관람을 온 중학생들 틈에서 [스물]과 [인서전트] 중에서 어느 영화를 볼 것인지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여중학생들의 환호가 귀에 어른거리는 [스물]보다는 [인서전트]가 조금은 나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또다시 [스물]은 포기하고 [인서전트]를 보고 왔습니다.
예상보다 극장 안은 조용했습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까지만해도 남중학생들의 욕설이 시끌벅적하게 들렸지만 (친구를 부를 때도 욕, 대답할 때도 욕... 나도 중학교때 그랬었나, 혼자 심각히 옛 기억을 더듬었습니다.) 막상 영화가 시작하니 화장실을 가는 몇몇 학생들은 제외하고는 걱정했던 것보다 조용했습니다. (젊으면 소변도 빨리 마렵나 봅니다.)
그 대신 제 뒤에 앉아서 혼자 영화를 보시던 할아버지 관객께서 계속 가래섞인 기침을 하셔서 영화를 보는 내내 제 신경을 건드렸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일부러 그러시는 것도 아닌데... 암튼 한동안 조용히 영화를 감상하다가 이렇게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영화를 보니 영화에 집중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인서전트]를 꽤 재미있게 봤습니다.
[다이버전트] 복습
[인서전트]는 2014년 4월에 개봉했던 [다이버전트]의 속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이버전트]를 보지 않고 [인서전트]를 본다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실 수가 없을 것입니다. 저는 1년 전에 [다이버전트]를 봤지만, 워낙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인서전트]를 보기 전에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해준 [다이버전트]로 복습을 했답니다.
간단하게 [다이버전트]의 복습을 요약하자면... [다이버전트]의 배경은 가까운 미래입니다. 인류의 잦은 전쟁과 자연재해로 도시는 폐허가 되었고, 살아남은 극소수의 사람들은 높은 장벽을 세워 세상과 단절한 후 그들만의 새로운 문명을 이어나갑니다. 그곳에서 인류는 다섯개의 분파로 나눠어 자신이 속한 분파의 행동규범을 절대적으로 따르며 철저하게 통제된 삶을 살아갑니다.
다섯개 분파란 이타심을 가지고 남을 위한 봉사와 희생을 하는 애브니게이션, 용맹스러운 마음과 남다른 육체적 능력으로 사회의 안전을 책임지는 돈트리스, 뛰어난 두뇌와 지식 탐구로 사회를 발전시켜 나가는 에러다이트, 그리고 농사를 지으며 식량을 제공하는 평화의 분파 애머티와 천성적으로 거짓말을 못하는 정직함을 타고났기에 청렴한 일을 하기에 적합한 켄더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다섯개의 분파로 나눌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 어떤 분파에도 속하지 못하는 무분파가 생겨났고, 모든 분파에 속하는 동시에 그 어떤 분파에도 속하지 않는 '다이버전트'도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다이버전트'는 사회 혼란을 야기시키는 금기시된 존재입니다. 에러다이트의 수장인 제닌(케이트 윈슬렛)은 '다이버전트'가 다섯개 분파로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그들의 문명을 무너뜨릴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다이버전트]의 주인공인 트리스(쉐일린 우들리)는 애브니게이션 부모 밑에서 자라났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성인이 된후 고리타분한 애브니게이션보다는 활동적인 돈트리스를 지원하게 됩니다. 그녀는 사실 '다이버전트'로 자신의 정체를 속이고 돈트리스로 생활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돈트리스에서 포(테오 제임스)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한편 제닌은 신입 돈트리스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약물을 개발하여 그들을 이용하여 애브니게이션을 공격합니다. 제닌의 공격으로 부모를 잃은 트리스는 일단 제닌의 음모를 막아내지만, 결국 포와 함께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인서전트]는 도망자 신세가 된 트리스와 포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들의 트라우마는 부모이다.
[인서전트]에서 트리스는 자신을 구하려다가 죽음을 당한 어머니(애슐리 쥬드)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합니다. 그녀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이 자신 탓이라 생각하며 괴로워하면서도 제닌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 오릅니다. 그런 그녀에게 평화의 분파인 에머티의 수장 요한나(옥타비아 스펜서)는 자신을 먼저 용서해야만 평화를 찾을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트리스의 연인이자 든든한 조력자인 포 역시 부모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포의 아버지인 마커스(레이 스티븐슨)는 애브니게이션의 수장이지만, 폭력적인 성격 탓에 포에게 잦은 폭력을 행사했던 것입니다. 마커스에 대한 포의 트라우마 극복이 [다이버전트]에서의 이야기라면 [인서전트]에서는 포의 트라우마가 좀 더 확장됩니다. 그것은 죽은 것으로 알려진 포의 어머니 에블린(나오미 왓츠)에 대한 문제입니다.
마커스의 폭력으로 인하여 집을 나가 무분파가 된 에블린. 포는 어머니가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에 평생 그에 대한 원망을 안고 살았던 것입니다. [인서전트]는 이렇게 부모에 대한 각자 다른 트라우마를 가진 트리스와 포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며 제닌에게 맞서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인서전트]가 굉장히 뻔하게 진행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1편의 제목인 '다이버전트(divergent)'는 '관습 등에서 일탈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목은 다섯개의 분파에 모두 속하는 동시에 어느 분파에도 속하지 않는 트리스를 일컫는 것입니다. [다이버전트]는 트리스를 통해 개성을 억누르고 획일화된 인간만을 찍어내는 현대 사회의 문제를 은류적으로 비유합니다.
2편의 제목인 '인서전트(insurgent)'는 '반란을 일으킨 사람'을 뜻합니다. 이는 [다이버전트]에서 제닌에게 부모를 잃은 트리스가 사람들을 모아 반란을 일으키며 제닌과 맞서는 스토리 전개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헝거게임]처럼 말입니다. [인서전트]는 중반까지만해도 그러한 제 예상 그대로 영화가 진행되었습니다. 포의 어머니 에블린이 무분파의 수장이라는 설정과 포에게 함께 제닌과 맞서 싸우자고 제안을 하는 장면은 [인서전트]의 결말을 예상할 수 있게끔 만듭니다.
하지만 [인서전트]는 후반부에서부터 전혀 새로운 전개로 저를 놀라게 합니다. 제닌이 트리스의 부모 집에서 그들 세계의 비밀을 품고 있는 상자를 찾아내고, 이 상자를 열수 있는 것은 다섯 분파의 능력을 모두 가진 '다이버전트' 트리스 뿐이라는 약간은 작위적인 설정에서부터 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영화의 미덕은 [얼리전트]에 대한 궁금증이다. (결말 포함)
저는 분명 [인서전트]가 트리스와 제닌의 대결 구도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인서전트]가 [헝거게임]과 비슷한 구도로 진행될 것이라 예상한 것입니다. 하지만 [인서전트]가 끝나고나면 너무나도 당연할 것 같은 제 예상이 보기 좋게 깨지며 그저 멍한 기분을 느끼게 만듭니다. 이 영화는 [헝거게임]으로 시작되었지만 마지막 부분은 [메이즈 러너]로 끝나 나버린 것입니다.
[메이즈 러너]는 아무런 이유도 알지 못한채 거대한 미로에 갇힌 아이들이 미로를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가는 내용을 담은 SF영화입니다. [인서전트]를 본 후 [메이즈 러너]가 생각난 이유는 트리스로 인하여 비밀의 상자가 열리며, 다섯개 분파로 나뉜 그들 세상의 비밀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인류 문명은 멸망한 것이 아니고, 그들 역시 마지막 인류가 아니었습니다. 트리스가 상자를 열자 그들의 세상을 창조한 선지자는 이제 당신들은 준비가 되었으니 벽을 넘어 세상으로 나오라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그들 세상의 벽은 그들을 지키는 안전장치였습니다. 벽의 밖에는 멸망한 인류 문명의 폐허만이 남아 있기에, 벽 안에서 있는 것은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선지자의 메시지를 통해 벽은 안전장치가 아닌 그들을 다른 인간 문명과 갈라놓는 고립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입니다.
제닌은 '다이버전트'에게서 그들 세상을 지키려했고, 비밀의 상자가 열리면 그 해답을 알려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비밀의 상자는 '다이버전트'가 그들 세상을 무너뜨리는 골칫거리가 아닌, 그들을 고립에서부터 풀어줄 수있는 해답이라고 말합니다. 제닌으로써도, 그리고 트리스를 배신하고 제닌의 편에 선 트리스의 오빠 케일럽(안셀 엘고트)로써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말인 셈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까요? 에블린에게 제닌은 죽었고, 사람들은 다섯개 분파에 얽매이지 않고 모두 함께 벽을 향해 걸어갑니다. 그들은 벽을 넘을 것입니다. 그런데 벽 밖에는 무엇이 기다리며 벽 밖의 세상은 그들을 반갑게 맞이해줄까요? [메이즈 러너]에서 미로를 가까스로 넘었지만 미로 밖에는 더 큰 위협이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듯이 [인서전트] 역시 벽 너머의 세상은 제닌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위협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제닌이 죽기 전에 경고했듯이...
3편의 제목은 '얼리전트(allegiant)'입니다. 이 제목의 의미는 '충성을 다하는'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1편인 '다이버전트', 2편인 '인서전트'까지만해도 제목만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예상이 되었는데, 도저히 '얼리전트'라는 제목만으로는 트리스를 기다리는 벽 너머의 위협이 무엇인지 예상이 안됩니다. 사실 [인서전트]는 너무 쉽게 제닌이 무분파에게 제압되는 등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얼리전트]를 궁금하게 만들었다는 점만으로도 시리즈의 중간 역할에 충실한 영화였습니다.
우리는 두려움이라는 벽을 세워두고 스스로 그 벽에 자신을 가둔다.
하지만 과연 그 벽을 넘어선다면 우리는 기다리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과연 트리스와 포는 두려움의 벽을 넘어 과연 무엇과 맞서게 될까?
1년후, 개봉될 [얼리전트 파트 1]이 너무나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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