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5년 영화이야기

[위플래쉬] - 압도적이라는 감탄사 외에는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쭈니-1 2015. 3. 17. 15:13

 

 

감독 : 다미엔 차젤레

주연 : 마일즈 텔러, J.K. 시몬스

개봉 : 2015년 3월 12일

관람 : 2015년 3월 13일

등급 : 15세 관람가

 

 

2015년 아카데미에서 남우조연상 수상작

 

지난 3월 11일 2015년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촬영상을 수상작인 [버드맨]을 재미있게 본 이후 올해 아카데미가 선택한 영화에 대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더우기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사랑에 대한 모든 것], 각색상을 수상한 [이미테이션 게임], 미술상, 의상상, 분장상, 음악상을 수상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시각효과상을 수상한 [인터스텔라]까지 올해 아카데미 수상작을 저는 모두 재미있게 봤으니 아직 보지 못한 수상작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제가 아직 보지 못한 2015년 아카데미 수상작은 줄리안 무어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긴 [스틸 앨리스]와 패트리샤 아케트가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보이후드], 그리고 J.K. 시몬스가 남우조연상을 거머쥔 [위플래쉬]와 주제가상 수상작인 [셀마]입니다. 그 중 지난 주에 개봉한 [위플래쉬]를 보고 왔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소문대로 1시간 45분동안 영화에 압도되었습니다.

[위플래쉬]는 최고의 드러머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음악대학에 입학한 앤드류(마일즈 텔러)가 학교내 최고의 실력자이자, 최악의 폭군으로 악명이 높은 플렛처(J.K. 시몬스) 교수의 밴드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플렛처 교수는 폭언과 학대로 학생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교육방식을 가지고 있는데, 그러한 플렛처 교수로 인하여 앤드류는 점점 최고에 대한 집착과 광기에 휩싸이게 됩니다.

 

우선 [위플래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J.K. 시몬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J.K. 시몬스는 올해 아카데미에서 [폭스캐처]의 마크 러팔로, [버드맨]의 에드워드 노튼, [더 저지]의 로버트 듀발, [보이후드]의 에단 호크라는 쟁쟁한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남우조연상 트로피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배우의 인지도만 놓고 본다면 J.K. 시몬스가 다른 후보들과 비교해서 가장 떨어집니다. 그는 1994년 데뷔한 20년차 중견배우이지만 우리에겐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악덕 편집장 J. 조나 제임슨으로 얼굴을 알렸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J.K. 시몬스의 수상에 이견을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는 이미 [위플래쉬]로 골든글로브, 영국아카데미, 미국 배우조합상에 이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까지 수상하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4대 비평가상인 전미 비평가협회상, 뉴욕 비평가협회상, LA 비평가협회상, 시카고 비평가협회상을 휩쓰는 등 30여개의 영화비평가상을 포함하여 40여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세계 영화상을 평정해 버렸습니다.  

실제 저는 [위플래쉬]를 보기 전에는 [버드맨]의 에드워드 노튼의 수상이 불발된 것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막상 [위플래쉬]를 보고나니 왜 J.K. 시몬스가 탔어야만 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이 영화를 보시면 저처럼 J.K. 시몬스의 이름을 가슴 깊숙이 새기게 될 듯...

 

 

누가 재즈를 취향타는 음악이라 했던가.

 

[위플래쉬]는 여러모로 압도적인 영화입니다. 제가 가장 먼저 언급한 J.K. 시몬스의 연기가 그 중에서 가장 압도적이었으며, 그 다음으로는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이 압도적입니다. 솔직히 저는 음악에 대해서는 문외한입니다.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 중에서 영화 음악도 굉장히 큰 몫을 차지하지만, 저는 몇몇 음악영화와 뮤지컬을 제외하고는 영화의 스토리와 캐릭터에 집중하느라 음악을 놓치고는 합니다.

하지만 [위플래쉬]는 다릅니다. 아무리 음악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더라도 [위플래쉬]를 보다보면 영화 속에 울려퍼지는 음악 소리에 압도되고 맙니다. 특히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음악의 장르가 결코 일반적인 음악 장르라고 할 수 없는 재즈임을 감안한다면 저를 압도한 음악의 힘은 더욱 크게 느끼집니다.

[위플래쉬]에서 재즈 밴드의 드러머인 앤드류는 여자친구인 니콜(멜리사 비노이스트)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재즈가 조금 취향을 타는 음악이긴 하지." 네, 맞습니다. 누군가가 재즈를 좋아한다고하면 그 사람은 굉장히 고급스러워 보이고, 전문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는 다시 말해 재즈는 저와 같은 평범한 일반인이 즐기기엔 난해한 음악처럼 느껴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위플래쉬]를 보다면 '재즈가 이렇게 매력적인 음악이었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재즈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는 영화를 보는 저를 완전히 사로잡았습니다. 

 

[위플래쉬]에서 재즈 음악이 가져다주는 압도적인 힘은 그저 단순하게 '음악이 좋다.'수준이 아닙니다. 재즈 음악을 통해 앤드류의 광기가 느껴졌고, 이는 곧바로 영화에 대한 극단적인 몰입감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실제 저는 앤드류가 빠른 속도로 드럼을 연주할 때 나도 모르게 두 손을 꼭 쥐며 힘을 줬습니다. 마치 제가 온 힘을 다해서 드럼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고, 앤드류의 연주가 끝나고나면 온 몸에 힘이 '탁' 하고 풀릴 정도였습니다.

이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재즈 음악인 '위플래쉬', '카라반'과 같은 재즈 명곡의 힘이기도 하지만, 영화에서 모든 곡을 직접 연주했다는 마일즈 텔러의 노력 덕분이기도 합니다. 실제 감독인 다미엔 차젤레는 고등학교 때 재즈 밴드에서 드러머로 활동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주연인 마일즈 텔러는 15살때부터 드럼을 연주한 경력의 소유자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이들이 만들어내는 압도적인 재즈의 향연은 날것 그대로의 거친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비록 [위플래쉬]에서 마일즈 텔러는 J.K. 시몬스의 광기 어린 열연에 밀리기는 했지만, 영화 마지막 10분의 미친 듯한 드럼 연주는 온 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위플래쉬]의 압도적인 힘은 이렇게 J.K 시몬스의 압도적인 연기와, 마일즈 텔러의 압도적인 드럼 연주, 그리고 재즈 명곡의 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앤드류의 변화에 집중하라.

 

이렇게 [위플래쉬]는 광기의 음악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위플래쉬]가 처음부터 관객을 광기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영화는 아닙니다. 이 영화의 광기는 아주 서서히 끓어 오릅니다. 그러한 과정은 앤드류를 통해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처음 앤드류는 순둥이처럼 보입니다. 그는 대학생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폴 라이저)와 함께 극장을 찾습니다. (웅이야! 본받아라.) 

극장에서도 앤드류의 순둥이적 기질을 엿볼 수있습니다. 앤드류의 아버지는 팝콘에 초코볼을 넣어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앤드류는 초코볼을 싫어합니다. 이 사실을 안 앤드류의 아버지는 왜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냐고 묻자, 앤드류는 초코볼을 피해서 팝콘을 먹으면 된다고 말합니다. 극장 매표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니콜에게 처음 데이트 신청을 하는 장면에서도 순진한 앤드류의 매력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앤드류는 플렛처 교수의 밴드에 들어가고, 보조 드러머에서 주 드러머의 자리를 꿰차면서 점차 최고에 대한 집착을 하게 됩니다. 친척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미식축구 선수인 사촌들을 멸시하는 발언을 한다거나, 니콜에게 최고의 드러머가 되려는 내게 넌 방해만 된다며 이별을 선언하는 장면에서는 앤드류의 집착과 그로 인한 광기가 서서히 드러납니다.

 

결국 밴드의 주 드러머 자리를 놓고 세명의 드러머가 플랫처 교수의 지도 아래 경쟁을 펼치는 장면에서 앤드류의 광기는 폭발 직전까지 몰립니다. 극한의 서바이벌, 그 속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는 앤드류의 집착은 플렛처에 의해 광기로 변환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폭발직전까지 갔던 앤드류의 광기는 중요한 경연대회를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드디어 폭발합니다.

피를 흘리면서도 밴드의 드러머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려는 앤드류. 그는 "이건 내가 내 힘으로 차지한 자리야."라며 플렛처에게 맞섭니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광기는 결국 그를 파멸로 이끕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위플래쉬]의 가장 압도적인 장면은 앤드류가 플렛처를 넘어서는 장면입니다. 아마 플렛처가 지향했던 이 세상 모든 천재 연주가들은 자신의 한계와 광기를 넘어서며 최고의 자리에 올랐을 것입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앤드류는 바로 그러한 경지에 올라선 것입니다.

그러한 앤드류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쾌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마어마합니다. 자신을 경멸하던 플렛처마저 감복시키는 앤드류의 연주는 재즈를 모르는 제 머리카락이 쭈뼜하게 곤두설 정도입니다. 그저 압도적이라는 표현 외에는 달리 그 어떤 말이 생각나지 않네요.

 

 

과연 누구를 위한 천재인가?

 

[위플래쉬]가 끝나고 나서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지막 엔딩크레딧의 음악을 끝까지 감상했습니다. 엔딩크레딧 이후 히든 영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엔딩크레딧을 지켜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그리고 극장 밖을 나서면서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J.K 시몬스의 광기에 찬 연기와 마일즈 텔러의 광기어린 연주만이 머릿 속을 가득 메워버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영화의 압도적인 힘이 서서히 지워질 때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플랫처의 교육방식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플렛처는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면 잘 했어'야."라며 적당주의에 빠진 현대인의 매너리즘을 비판합니다. 분명 그의 교육방식은 비인간적입니다. 하지만 앤드류가 모든 한계를 뛰어 넘어 최고의 연주를 하게끔 이끈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과연 플렛처가 지향하는 천재는 누굴 위한 천재일까요? 플렛처는 앤드류에게 재즈계의 황제인 찰리 파커가 '버드'라고 불리게 된 사연을 두번이나 설명합니다. 찰리 파커의 성공은 드러머가 날린 심벌즈 덕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날의 치욕을 기억한 찰리 파커는 치열하게 연습했고, 그 덕분에 결국 재즈의 전설이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플렛처는 만약 그날 드러머가 찰리 파커에게 '그만하면 잘 했어.'라고 격려를 했다면 지금의 '버드'는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찰리 파커는 재즈의 황제이며 전설이었지만, 불행한 인생을 살다가 마약과 병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35살의 나이에 요절했습니다. 과연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못하다면 재즈의 전설이라는 명성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앤드류의 주장처럼 90살까지 무난하게 사는 것보다 요절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회자되는 인생이 정말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플렛처는 제2의 찰리 파커를 찾겠다는 생각으로 학생들을 혹독하게 몰아칩니다. 그로인하여 플렛처의 기준에 미달되는 학생은 극단적인 인간적 모욕을 느끼고 좌절하게 됩니다. 결국 1명의 천재를 찾기 위해 100명의 범재를 좌절하게 하는 것이 플렛처의 방식인 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천재를 찾는다고해도 그 천재 또한 플렛처의 혹독한 교육으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려야 합니다. 영화 중반 최고의 연주자가 되었지만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플렛처의 제자처럼 말입니다.

얼핏 플렛처의 교욱 방식은 조금 비인간적이지만 학생들에게 스스로 한계를 뛰어넘어 천재로 발돋음하게 하는 좋은 교육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한명의 천재를 위해 수 많은 범재의 꿈을 좌절시키고, 한명의 천재라고 할지라도 불행에 빠뜨리는 교육방식은 제가 보기엔 나쁜 교육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플렛처를 굴복시킨 앤드류의 마지막 연주가 더욱 통쾌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천재가 가지고 있는 재능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후세를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천재의 그림을 보고, 천재의 음악을 듣고, 천재의 글을 읽으며 행복해한다.

하지만 정작 천재의 삶은 불행한 경우가 많다.

과연 여러분은 불행한 천재가 되겠는가?

아니면 평범하지만 행복한 사람이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