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홍석재
주연 : 변요한, 이주승, 류준열, 하윤경
개봉 : 2015년 3월 12일
관람 : 2015년 3월 13일
등급 : 15세 관람가
나는 '악플포비아'이다.
2004년 포털 사이트인 NAVER에서 영화 장르매니아를 선발한 적이 있습니다. NAVER 영화 장르매니아에 선발되면 NAVER 영화에 최소한 한달에 두편정도는 영화 리뷰를 써야 했습니다. 그 대신 NAVER의 영화 시사회에 맘껏 참가할 수 있는 혜택이 주어졌기에 저는 당연히 응모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활발한 영화 개인홈페이지 활동 덕분에 NAVER 영화 장르매니아에 선발되었고 거의 2년동안 활동을 했었습니다.
몇몇 지인들만 찾는 제 개인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다가 불특정 다수가 찾는 NAVER라는 거대 포털 사이트에 공식적으로 글을 올리는 것은 확실히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제 글을 읽었고, 수 많은 사람들이 제 글에 댓글을 달았습니다. 그 중에는 제 글을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는 댓글도 있었지만, 영화에 대한 생각이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악플을 다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처음엔 신이 났습니다. 제 글에 많은 댓글이 달리니 제가 마치 유명인사라도 된것처럼 뿌듯했습니다. 하지만 악플을 읽을 때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짜증이 났습니다. 그 악플에 대응하는 댓글이라도 달으면 악플러는 더욱 신이 나서 제게 달려 들었고, 그것은 제게 또다른 스트레스가 되어 버렸습니다. 차라리 제 개인 홈페이지라면 악플을 삭제라도 할텐데 NAVER에서는 그럴 수도 없기에, 악플러와의 싸움으로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적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지금도 저는 제 블로그에 열심히 글을 올립니다. 아무래도 블로그는 개인 공간이기 때문에 악플은 거의 없습니다. 가끔 악플이 달려도 악플을 삭제한 후, 해당 악플러는 차단하면 그 뿐입니다. 그것이 악플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해결 방법임을 그 동안의 경험으로 깨달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지금도 제 블로그에만 글을 올릴 뿐, 거대 포털 사이트에 글을 올리지 않습니다. NAVER 영화 장르 매니아를 하면서 당했던 악플의 기억이 저를 이렇게 소심하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물론 제 글에 무조건 칭찬과 격려만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와 생각이 다르다면 얼마든지 의견을 주고 받는 건전한 토론은 저 역시 환영합니다. 하지만 악플러들은 남의 의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저 자신의 생각만 주장하며 무턱대고 욕설과 인신 공격을 해댑니다. 그런 분들과 건전한 토론이 될리가 없습니다.
같은 이유로 저는 SNS를 하지 않습니다. 물론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가입이 되었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 자동으로 트위터와 페이스북에도 글을 올리도록 설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제게 SNS는 저와 블로그의 연결고리일 뿐, 그 이상의 기능은 하지 않습니다. 다른 분들은 SNS에 자신의 일상과 생각을 적곤 하는데, 악플포비아(공포증) 증상이 심한 저는 그러한 SNS 활용은 지금까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어쩌면 시대에 뒤떨어진 구식 인간일지도...
내가 [소셜포비아]에 호기심이 생긴 이유
지난 3월 12일 개봉한 영화 중에서 저는 [채피]만 기대작으로 선정했을 뿐, 다른 영화들은 '시간이 된다면 극장에서 보겠다.'라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개봉당일 [채피]를 일찌감치 본 저는 다음 날인 3월 13일에 드디어 영화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과연 어떤 영화를 볼까?' 고민하는 그 순간부터 제 머릿속은 여러 영화들이 '나를 봐주세요.'라며 아우성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수많은 영화 중에서 결국 제 선택을 받은 영화는 [소셜포비아]였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홍석재라는 신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변요한, 이주승, 류준열, 하윤경 등 역시 신인급 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저예산 스릴러 영화입니다. 같은 스릴러 영화라면 김상경, 김성균, 박성웅이라는 믿음직한 중견 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살인의뢰]가 더 보고 싶을 법도 한데 이상하게 제 마음은 [살인의뢰]보다 [소셜포비아]에 향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소셜포비아]의 소재가 제게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소셜포비아]는 자살한 군인에게 SNS로 악플을 쓴 닉네임 레나(하윤경)에게 공식 사과를 받기 위한 현피('현실'의 앞 글자인 '현'과 PK(Player Kill)의 앞글자인 'P'의 합성어로 게임, 메신져 등과 같이 웹상에서 벌어지는 일이 실제로 살인, 싸움으로 이어지는 것을 나타내는 신조어) 원정대의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인기 BJ 양게(류준열)의 주도로 이루어진 여덟명의 현피 원정대가 레나의 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레나는 목을 매고 자살한 이후였다는 점입니다. 레나의 자살로 비난의 화살은 레나에서 현피 원정대로 향합니다. 얼떨결에 친구인 용민(이주승)을 따라 현피 원정대에 참가한 경찰 지망생 지웅(변요한)은 레나의 자살 사건으로 경찰 공무원의 꿈이 좌절될까봐 불안해합니다.
[소셜포비아]의 주인공은 지웅과 용민입니다. 경찰 지망생은 이 두 사람은 레나가 자살한 것이 아닌 현피 원정대가 오기 전, 누군가에 의해 타살되었다는 의심을 하게 되고, 현피 원정대 멤버들과 함께 자체적으로 사건을 수사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레나의 자살 사건은 또 다른 파장을 일으키게 됩니다.
어쩌면 [소셜포비아]는 전형적인 스릴러 영화의 스토리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의문 가득한 사건, 함정에 빠진 주인공, 그리고 주인공 스스로 함정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상황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영화의 후반부까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셜포비아]가 뻔한 스릴러 영화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는 이 영화가 SNS가 가지고 있는 맹점들을 정확하게 짚고 있기 때문입니다.
꼭 타살이어야한다.
[소셜포비아]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레나의 자살 사건에 대한 지웅과 용민의 의심입니다. 그들은 '레나의 죽음은 자살이 아닌 타살은 아닐까?'라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그러한 그들의 의심은 스릴러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설정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한 의문점들을 통해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스릴러 영화속 주인공들의 미덕이니까요.
처음엔 지웅과 용민의 의심도 평범한 스릴러 영화의 주인공들과 같아 보였습니다. 레나의 자살 현장에서 세탁기가 돌아가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레나의 아파트 현관문이 열려 있었다는 점, 레나의 아파트는 2층처럼 보이지만 뒷 베란다로 통한다면 범인이 현피 원정대가 오기 전 쉽게 몸을 피할 수 있었다는 점 등 영화는 레나가 자살이 아닌 타살임을 암시하는 장치들을 관객에게 지속적으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들의 의심은 다른 스릴러 영화의 주인공들과 다릅니다. 그것은 레나의 타살에 대한 단순한 의심이 아닌 바람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중인 지웅과 용민은 레나가 자신들로 인하여 자살했다는 기록이 남겨지면 경찰 공무원 시험에서 불이익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간절히 레나가 자신들 때문에 자살한 것이 아닌 누군가에 의한 타살이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다른 현피 원정대 멤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대로라면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이 뻔한 그들의 입장에서 레나는 자살이 아닌 타살이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현피 원정대의 바람은 '레나의 죽음은 자살이 아닌 타살이 아닐까?'라는 의심에서 벗어나 '레나의 죽음은 타살이다.'라는 정답을 아예 구해놓고, 그 정답에 증거들을 끼워 맞추는 식입니다. 증거를 통해 결론을 도달하는 것이 아닌, 결론을 정해놓고 증거들을 끼어 맞추는 그들의 수사가 제대로 진행될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조차 현피 원정대의 수사에 대한 헛점을 눈치채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지웅이고, 지웅의 입장에서 영화를 본다면 관객 또한 지웅과 마찬가지로 '레나의 죽음은 타살이다.'라는 정답을 미리 정해 놓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소셜포비아]의 가장 흥미로운 점입니다. 관객을 피해자인 레나의 편이 아닌, 가해자인 지웅의 편에 서게끔 만든 후, 결론을 정해놓고 하는 엉터리 수사에 공감하게끔 홍석재 감독은 이끌고 있기 떄문입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용민입니다. 지나치게 '레나의 죽음은 타살이다.'라는 정답에 집착하는 용민의 모습은 마지막 반전을 조금은 싱겁게 만듭니다. 지웅이 용민에게 "넌 왜 그렇게 레나의 죽음에 집착하냐?"라고 물을 정도로 용민의 행동이 너무 수상해 보였던 것입니다. 용민의 캐릭터만 조금만 더 자중시켰다면 [소셜포비아]의 반전 또한 충격적이었을텐데... 약간은 아쉬웠습니다.
우리 모두 가해자가 될수도, 피해자가 될수도 있다.
[소셜포비아]의 스릴러 영화적 재미에 점수를 매긴다면 100점 만점을 줄 수는 없지만, 최소한 합격점은 주고 싶습니다. 마지막 반전을 너무 쉽게 들켜버리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제가 스스로 레나의 타살을 믿게 만들고, 현피 원정대의 정답을 정해 놓고 벌이는 엉터리 수사에 공감하게끔 하는 것은 홍석재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 덕분이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소셜포비아]의 전정한 재미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SNS의 맹점에 대한 이 영화의 통찰력입니다. 처음 [소셜포비아]에서 가해자는 레나라는 닉네임을 쓰는 악플러 하영입니다. 지웅, 용민을 필두로한 현피 원정대는 못된 악플러를 혼내주기 위한 정의의 사도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하지만 하영의 죽음으로 입장이 뒤바뀝니다. 가해자는 현피 원정대가 되고, 피해자는 하영이 되는 것이죠. 결국 하영의 죽음은 타살이라는 현피 원정대의 주장은 진실의 추구가 아닌 가해자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에 불과합니다.
그러면서 [소셜포비아]는 하영의 과거를 보여줍니다. 학교에서 남의 작품에 독설을 내뿜어대지만, 자신이 욕을 먹는 것에 대해서는 극도의 공포심을 가지고 있는 하영. 그녀 또한 우리와 똑같은 보통의 사람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하영도, 지웅도, 용민도, 모두 SNS라는 괴물에 의한 피해자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모두 가해자가 될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공간이 바로 인터넷입니다. 저는 영화를 보고 제 개인적인 관점에서 영화의 재미 유무를 판가름하고 글을 씁니다. 하지만 그러한 제 글로 인하여 피땀흘려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상처를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저는 가해자가 되는 것이죠.
그런데 누군가 그러한 제 글을 읽고 악플을 단다면 저는 피해자가 됩니다. 제가 그 악플을 악플로 대처하며 공격한다면 저는 또다시 가해자가 되고, 애초의 가해자는 피해자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무서운 상황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공간에서는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알지도 못하는 타인에게 폭력을 당할수도 잇고, 폭력을 휘두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을 것이며,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순식간에 벌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소셜포비아]에서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모두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사회를 떠들썩하게했던 하영의 자살 사건은 곧 잊혀질 것이고, 지웅도, 용민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렇게 삶을 살아 갈 것입니다. 하지만 겉보기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씻어낼 수 없는 깊은 상처가 남을 것입니다. 제가 지금도 포털 사이트에 글을 남기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소셜포비아]는 SNS에 의한 마음 속 깊은 곳의 상처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SNS 시대에 꼭 필요한 스릴러 영화입니다.
그 누구도 폭력의 피해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폭력의 가해자를 희망하는 사람 또한 없다.
하지만 SNS에서는 나도 모르는 사이 폭력의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그러한 SNS의 섬뜩함을 알게된다면 여러분도 '소셜포비아'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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