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5년 영화이야기

[버드맨] - 모든 것은 타인의 판단이 아닌 그 자체로 빛난다.

쭈니-1 2015. 3. 12. 16:24

 

 

감독 :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주연 : 마이클 키튼, 에드워드 노튼, 엠마 스톤, 나오미 왓츠, 자흐 갈리피아나키스

개봉 : 2015년 3월 5일

관람 : 2015년 3월 11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제87회 아카데미의 최종 승자는 바로 이 영화

 

우리나라 시간으로 지난 2월 23일 오전 10시에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렸었습니다. 사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미국내 영화제에 불과하지만 미국 영화계가 세계 영화 시장을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생각한다면 미국내 영화제라고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 노릇입니다. 저 역시 해마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어떤 영화가 어떤 상을 수상했는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요즘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선택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듯합니다. 예전에는 미국이 세계 상업영화의 중심지인 만큼 미국 아카데미의 선택 또한 스케일이 크고 재미있는 영화에 작품상을 수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브레이브 하트], [잉글리쉬 페이션트], [타이타닉], [글라디에이터],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스케일보다는 작지만 메시지가 있는 영화를 우선시하기 시작했습니다. [크래쉬],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슬럼독 밀리어네어], [허트 로커], [아티스트], [아르고], [노예 12년] 등이 최근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들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예전에는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은 국내 흥행에도 성공하는 경우가 많지만, 요즘은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을 극장에서 보려면 고생을 감수해야합니다. 상영하는 극장도 별로 없고, 있더라도 시간대를 맞추는 것이 쉽지 않으니까요.

 

올해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인 [버드맨]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화의 국내 개봉일인 지난 3월 5일, 저는 [순수의 시대], [헬머니] 등 기대할만한 우리나라 영화들을 제쳐두고 [버드맨]을 기대작 1순위로 점찍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저와의 시간대가 맞지않아 막상 영화는 [버드맨]보다 [순수의 시대]를 먼저 봐야 했습니다.

어떻게하면 [버드맨]을 볼 수 있을까? 이리저리 상영극장과 상영 시간대를 맞춰봤지만,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더군요. 생각해보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도 그랬고, [아티스트]도 그랬었습니다. 2010년 수상작인 [허트 로커]는 결국 극장에서조차 보지 못했을 정도입니다. (2000년 이후 제가 극장에서 보지 못한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은 [글라디에이터]와 [허트 로커]가 유이합니다.)

암튼 어거지로 시간을 만들어서 결국 [버드맨]을 보고 왔습니다. [버드맨]은 최근의 미국 아카데미의 취향에 맞게 스케일과 영화적 재미보다는 메시지를 우선시하는 영화입니다. 사실 영화의 내용은 한물간 할리우드 퇴물 배우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브로드웨이 연극에 도전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저는 강렬한 음악과 마치 전체 영화를 거대한 롱테이크로 찍은 듯한 촬영기법, 그리고 배우들의 명연기에 압도되어 시간가는줄 모르고 영화에 몰입했습니다.  

 

 

마이클 키튼의 캐스팅은 신의 한수이다.

 

사실 저는 [버드맨]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하기 전부터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버드맨]을 기대하고 있었던 이유는 슈퍼 히어로 영화에 대한 제 무한대의 애정과 마이클 키튼이 주연을 맡았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물론 압니다. 이 영화의 제목이 '버드맨'이지만, 이 영화는 '버드맨'의 영웅적인 활약을 그린 슈퍼 히어로 영화가 아님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버드맨]을 기대한 것은 마이클 키튼 때문입니다.

요즘 전세계 극장가는 슈퍼 히어로 영화가 대세입니다.  특히 마블과 DC의 슈퍼 히어로 영화들은 이제는 하나의 거대한 문화현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슈퍼 히어로 영화의 시작은 어디에서부터일까요? 멀게 내다보면 1978년 리처드 도너 감독의 [슈퍼맨]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1987년 [슈퍼맨 4 : 최강의 적]의 흥행 실패로 인하여 슈퍼 히어로 영화의 맹맥은 다시 끊어져 버렸습니다. 그랬던 것을 다시 살려낸 것이 1989년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입니다.

[배트맨]은 1989년에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중에서 최고의 흥행기록을 수립한 영화입니다.  당시에는 그 누구도 이 그로테스크한 슈퍼 히어로 영화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인디아나 존스 : 최후의 성전], [리쎌웨폰 2], [백 투 더 퓨쳐 2], [고스트 버스터즈 2]등 최강의 속편 영화를 가볍게 제칠 줄은 예상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배트맨]의 주인공이 바로 마이클 키튼입니다. 당시에는 마이클 키튼에게 '배트맨' 슈트를 입힌 팀 버튼 감독의 선택을 두고 논란이 많았습니다. [배트맨] 이전까지만해도 마이클 키튼은 [비틀쥬스]의 코믹한 이미지가 강했으니까요. 하지만 [배트맨]의 흥행 성공으로 마이클 키튼은 1992년 [배트맨 2]에 출연하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합니다.

그러나 1995년 세번째 '배트맨' 영화인 [배트맨 포에버]에서 감독이 팀 버튼에서 조엘 슈마허로 바뀌자 마이클 키튼 역시 '배트맨' 슈트를 당시 최고의 섹시 스타였던 발 킬머에게 물러줘야 했습니다. 이후 '배트맨'은 조지 클루니를 거쳐 크리스찬 베일, 그리고 최근에는 벤 애플렉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역대 '배트맨'을 연기한 배우들을 한줄로 세워둔다고 한다면 마이클 키튼만 동떨어져 보일 정도로 '배트맨'은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는 잘생긴 배우들의 전유물이 되었습니다.

[버드맨]에서 마이클 키튼의 캐스팅이 신의 한수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버드맨]에서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은 과거 슈퍼 히어로 영화 '버드맨'을 통해 톱스타의 자리에 올랐던 배우입니다. 하지만 1992년을 마지막으로 '버드맨' 시리즈에서 하차하며 그 역시 잊혀진 배우로 전락합니다. ([배트맨 2]의 개봉 시기가 1992년이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이렇게 [버드맨]에 리건 톰슨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마이클 키튼을 캐스팅함으로써 관객에게 리건 톰슨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 밖에 없게끔 만든 것입니다.

 

 

그는 '버드맨'인가? 리건 톰슨인가?

 

누구나 자신이 가장 화려했던 때를 기억하고 그리워합니다. 리건 톰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화려했던 전성기는 '버드맨'이라는 영화를 찍으며 배우로써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던 20여년 전입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잊혀진 배우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은 아직도 그를 보면 '우와! 버드맨이다'를 외칠 뿐입니다. 배우로써 리건 톰슨을 기억해주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한 그가 엄청난 모험을 준비합니다. 레어먼드 카버의 소설을 스스로 각색하여 브로드웨이 연극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제작, 연출, 주연을 맡는 것이죠. 모두가 그를 '버드맨'으로만 기억하는 있지만 그는 이 연극을 통해 배우로써의 자기 자신을 되찾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뜻대로 잘 될리가 없습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었기에 엄청난 심리적 압박에 시달리는 리건 톰슨은 자신의 또다른 자아인 '버드맨'의 빈정거림과 통제가 불가능한 브로드웨이 흥행보증수표 마이크의 돌출행동, 게다가 자신의 매니저를 맡고 있는 딸 샘(엠마 스톤)과의 관계까지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 당혹스러워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연극의 프리뷰는 여러 돌발 상황들로 인하여 엉망진창이 되고, 초연도 하기 전에 깐깐한 비평가는 "나는 당신의 연극을 박살낼거예요."라며 선전포고합니다.

 

[버드맨]은 시종일관 리건 톰슨의 불안한 내면을 잡아냅니다. 그러다가 결국 영화 후반에 비평가의 선전포고로 인하여 그의 불안한 내면은 폭발하고 마는 것입니다. 영화 내내 목소리로만 존재했던 '버드맨'이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내고, 리건 톰슨 또한 '버드맨'이 되어 브로드웨이 거리를 날아다니기도 합니다. 영화 후반 거대한 로봇 새의 등장 장면에서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스펙타클한 슈퍼 히어로 영화를 만들어도 잘 만들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듭니다.

[버드맨]의 놀라운 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마치 마이클 키튼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정교하게 짜여진 이 영화는 자신의 최고 전성기였던 '버드맨'과 배우라는 자기의 자아를 되찾고 싶어하는 리건 톰슨의 치열한 내적 전쟁을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관객에게 선보입니다. 결코 심각하지도 않고, 결코 어렵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너무 가볍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리건 톰슨의 내적 전쟁을 쫓아가다보면 최고의 클라이맥스를 맞이하게 됩니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의 초연에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사건들은 리건 톰슨에게 더이상 '버드맨'이 아닌 배우로써의 명성을 안겨줍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끝이 아닙니다.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한 열린 결말을 관객에게 던져주며 영화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저를 멍하게 만들었으니까요.

 

 

나는 누구인가?

 

[버드맨]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참 대단한 영화입니다. 저는 그 중에서 리건 톰슨의 불안한 내면을 뒤쫓으며 보여주는 카메라 기법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대부분의 평범한 관객이 그러하듯이 저 또한 스토리, 캐릭터를 쫓아가며 영화를 봅니다. 그래서 초반에는 이 영화가 롱테이크로 이어졌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버드맨]은 하나의 긴 롱테이크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카메라는 헬드 카메라로 리건 톰슨을 졸졸 쫓아다니다가 리건 톰슨이 다른 캐릭터를 스쳐 지나가면 마치 배우들끼리 바통을 이어받는 듯이 그 캐릭터를 또다시 뒤쫓는 형식입니다. 카메라가 처음 끊기는 순간은 영화 후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의 초연 장면이 끝나고 리건 톰슨이 쓰러진 순간 뿐입니다.

물론 이 영화가 정말로 하나의 롱테이크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끊김없는 한번의 촬영으로 영화를 찍었을텐데, 그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마치 하나의 롱테이크로 느끼질 정도로 정교한 카메라 기법은 지금까지 제가 봐왔던 그 어떤 영화들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버드맨]은 촬영상을 수상했습니다.) 마이클 키튼을 비롯한 에드워드 노튼, 나오미 왓츠, 엠마 스톤 등의 연기도 정말 좋았습니다. 겉멋을 포기하고 캐릭터 안에 녹아든 그들의 연기는 제가 [버드맨]에 흠뻑 빠질 수 있었던 또다른 요인이 되었습니다.

 

[버드맨]에서 리건 톰슨이 연출, 주연한 연극의 제목은 '사랑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랑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입니다.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현대인의 일상을 스냅사진처럼 포착하고 현미경처럼 해부하여 미국 중산층의 기이하고 진실된 모습을 그리는 작품이라고 하네요. (왠지 굉장히 지루할 듯... ^^;)  하지만 연극 속의 주인공이 자신은 왜 항상 사랑을 구걸해야하냐며 권총으로 자살하는 마지막 장면은 묘하게 리건 톰슨의 심정과 맞물려 있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과연 여러분은 이 당찬 질문에 대답할 수 있나요? '나'라는 존재는 무엇 하나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나'는 제가 살아온 세월과 제가 만나온 사람과, 제가 했던 그리고 하고 있는 일들로 이루어진 복잡한 존재이니까요. 하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는 단순명쾌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의 단면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리건 톰슨의 분장실에는 '모든 것은 타인의 판단이 아닌 그 자체로 빛난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리건 톰슨은 타인의 판단에 매달립니다. 그렇기에 '버드맨'이라는 또다른 자아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연극이 실패할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20여년 전의 슈퍼 히어로 '버드맨'도, 한물간 영화 배우이자 현재의 브로드웨이 배우도, 그리고 샘의 부족한 아버지도, 모두 리건 톰슨입니다. 어쩌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리건 톰슨의 깨달음이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환하게 웃는 샘의 마지막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번 미국 아카데미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내 모습의 어느 한 단면으로 '나'를 정의할 수는 없다.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영화 초반 샘의 김치 비하 발언 하나만으로 이 영화를 판단할 수는 없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