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5년 영화이야기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 아직 그의 그림자를 펼쳐보이지도 않았다.

쭈니-1 2015. 3. 4. 13:37

 

 

감독 : 샘 테일러 존슨

주연 : 다코타 존슨, 제이미 도넌

개봉 : 2015년 2월 25일

관람 : 2015년 3월 2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두번의 실패끝에 드디어 관람 완료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와 [이미테이션 게임]을 보면서 마음에 계속 걸렸던 것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였습니다. 지난 2월 13일 북미개봉 당시 8천5백만 달러라는 괴물같은 흥행기록을 수립했고, 전세계 박스오피스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만은 개봉 첫주 고작 16만명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치며 조기종영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주부들의 포르노'라는 별칭을 얻은 원작소설의 영화화한 작품인만큼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개봉 전부터 적나라한 섹스 묘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저 역시 일찌감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기대하고 있었지만, 야한 영화라는 선입견 때문에 혼자 이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은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두번이나 예매했다가, 취소하기를 반복한 끝에 드디어 월요일 밤을 D-DAY로 잡았습니다. 아무래도 월요일 밤에는 극장가가 한산할 것이라 예상한 것이죠. 그러한 제 예상은 정확히 맞았습니다. 물론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국내 흥행이 미지근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찌되었건 저는 한산한 극장에서 편안하게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기대한 것은 야한 영화이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단순히 야한 장면을 기대했다면 집에서 포르노를 보는 것이 훨씬 나을 테니까요. 저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그 무엇이 전세계 여성팬들을 열광하게 했는지 궁금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영화는 순진한 여대생이 매력적인 재벌남을 만나 가학적인 섹스에 빠진다는 너무나도 평범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기에 영화를 보지 않고서는 제 궁금증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궁금증을 안고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봤기에 저는 최대한 여주인공인 아나스타샤(다코타 존슨)에 감정을 이입해서 영화를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영화를 보고나니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가지고 있는 매력 포인트와 단점들이 눈에 보이더군요.

일단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야한 영화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원작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샘 테일러 존슨 감독은 최대한 영화의 수위를 낮추었고, 그 결과 아나스타샤와 크리스찬(제이미 도넌)의 가학적인 섹스씬은 소문만큼 충격적이지 않습니다. 1986년 영화인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나인 하프 위크] 정도의 수준이라 생각하시면 될 것입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관람하는데 있어서 야한 영화에 대한 기대를 덜어낸다면 여러분은 그레이를 만날 준비가 되어있는 셈입니다.

 

 

그레이씨를 만날 준비가 되었나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재미있게 관람하려면 모든 초점을 크리스찬 그레이에게 맞춰야 합니다. 영화는 대학 졸업반인 아나스타샤가 친구 대신 매력적인 억만장자 크리스찬을 인터뷰하면서 시작합니다. 젊은 나이에 엄청난 부를 일궈낸 크리스찬. 아나스타샤는 그를 인터뷰하며 실수를 연발하지만, 크리스찬은 그러한 아나스타샤의 실수마저 부드럽게 감싸안으며 단번에 그녀를 사로 잡습니다.

솔직히 아나스타샤는 캐릭터 자제가 굉장히 평면적입니다. 대학 졸업반이 될때까지 섹스 경험이 전혀 없는 그녀는 대부분의 로맨스 영화 속 주인공 캐릭터가 그러하듯이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사랑 신봉자이기도 합니다. 그와는 달리 크리스찬은 굉장히 복잡한 캐릭터입니다. 20대의 나이에 억만장자가 된 매력적인 사업가라는 외면적인 모습과는 달리 어린 시절의 상처를 안고 있기도 합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아나스타샤를 평범한 캐릭터로 설정함으로써 관객이 그녀에게 감정이입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합니다. 그렇게 아나스타샤에게 감정을 이입하고나면 그녀의 입장이 되어 크리스찬의 매력에 빠져들고, 이 의문투성이인 남자를 이해하기 위해 거의 2시간의 러닝타임을 할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영화가 남성 관객보다는 여성 관객에게 더 큰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입니다. 여성 관객은 동성인 아나스타샤에게 감정을 쉽게 이입할 수 있지만, 남성 관객은 이성인 아나스타샤에 대한 감정이입이 쉽게 이뤄지지 않으니까요.

 

그렇기에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크리스찬의 매력입니다. 만약 크리스찬이 매력적이지 않다면 아무리 아나스타샤에게 감정을 이입하는데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크리스찬을 이해하기 위해 2시간의 러닝타임을 투자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샘 테일러 존슨 감독은 연기 경력이 거의 없다시피한 신인 배우 제이미 도넌을 캐스팅하며 과감하게 모험을 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샘 테일러 존슨 감독의 모험은 어느정도 성공을 거뒀다고 생각합니다. 제이미 도넌은 캘빈 클라인의 속옷 모델이었다는 경력답게 탄탄한 몸과 마초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나스타샤 앞에서는 부드러운 매력을 선보이기도 하고, 모성애를 불러 일으키는 나약한 표정을 짓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크리스찬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매력입니다.

만약 크리스찬의 매력에 빠져들지 않는다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게 영화적 재미를 느끼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특히 그는 가학적인 성취향을 가지고 있기에 아나스타샤에게 감정이입을 한 관객 입장에서는 자칫 잘못하면 변태남에 의한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의 가학적인 성취향도 감싸 안아줄 수 있을만한 치명적인 크리스찬의 매력이 그렇기에 필수적입니다.

 

 

크리스찬 그레이를 위한 2시간

 

샘 테일러 존슨 감독 또한 그러한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2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은 모두 크리스찬을 위해 투자됩니다. 헬기 정도는 쉽게 하늘 위로 띄울 수 있을만큼 억만장자다운 스케일이 큰 매력에서부터 섹스 경험이 없는 아나스타샤를 리드하는 카리스마까지. 특히 어린 시절의 상처가 드러나는 장면은 그가 왜 가학적인 성취향을 가지게 되었는지 설명하기 위한 필수 코스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이 문제입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2시간이 조금 넘는 러닝타임동안 크리스찬의 매력을 표현하기 위해 모두 투자되었지만, 가장 중요한 그의 어린 시절 상처에 대해서는 약간의 언급 외에는 거의 건드리지 않습니다. 아나스타샤에게 감정이입을 했고, 아나스타샤 입장에서 크리스찬의 매력에 빠져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 영화적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면 바로 설명이 부족한 크리스찬의 과거때문입니다.

크리스찬 그레이의 매력을 잡아내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의 가학적 성취향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의 불행했던 과거는 필수입니다. 그는 마약중독자인 창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고, 그가 4살 때 어머니가 죽음으로써 위탁 가정에 맡겨집니다. 그리고 15살 때 양어머니의 친구와 섹스를 하며 가학적 섹스를 배우게 됩니다. 

 

크리스찬의 그러한 과거가 있기에 아나스타샤는 그의 가학적 성취향을 이해하고, 그가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사랑관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크리스찬의 과거를 거의 생략하다시피합니다. 물론 2편을 위한 포섭일 수도 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크리스찬의 과거를 어느 정도는 관객에게 설명했어야 했습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북미에서 개봉 첫주 8천5백만 달러의 흥행을 기록했지만 2주차에는 무려 73.9%의 드롭율을 기록하며 2천2백만 달러로 주말 흥행수입이 급감했습니다. 3주차에는 주말동안 1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는데 그치며 순위도 1위에서 4위까지 떨어졌습니다. 어떤 분들은 영화가 기대보다 야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제가 보기엔 그보다는 영화가 크리스찬의 매력을 절반밖에 잡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이미 속편 제작이 확정되었습니다. 아무리 개봉 2주차부터 흥행성적이 급락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이 영화의 흥행 성적은 속편을 만드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속편이 만들어진다면 그때 크리스찬의 과거를 자세히 설명할까요? 부디 그러길 바랍니다.

 

 

50가지 그림자 중에서 어느 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크리스찬의 가학적 섹스로 인하여 상처를 입은 아나스타샤가 크리스찬의 곁을 떠나며 끝을 맺습니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입니다. 이 영화에서 보여줬던 크리스찬의 매력은 딱 거기까지였으니까요. 아나스타샤에게 채찍질을 하는 크리스찬을 이해하고 감싸안기엔 크리스찬의 매력이 아직은 부족해 보입니다.

왜 이런 가학적인 섹스를 하냐는 아나스타샤의 물음에 크리스찬은 "내 50가지 그림자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어."라는 대답을 합니다. 그렇기에 이제 남은 것은 크리스찬의 50가지 그림자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입니다. 속편의 성공 여부는 크리스찬의 50가지 그림자가 밝혀지는 그 순간 크리스찬에게 모성애를 느끼며 부드럽게 안아줄수 있는지 여부가 될 것입니다.

비록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크리스찬의 매력을 완벽하게 담아내지 못했지만, 이 영화에 대한 판단은 속편을 봐야지만 내릴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에서 보여주지 않은 크리스찬의 그림자들이 얼마나 관객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인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보며 극장 밖으로 나서는 제 머릿 속에는 이제 속편에 대한 궁금증이 가득 자리잡아 버렸습니다.

 

크리스찬 그레이가 가지고 있는 50가지 그림자는 무엇일까?

이 영화는 그의 그림자를 펼쳐 보이지도 않았지만,

2편에서는 그가 가학적인 섹스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줄 것이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