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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 우리 모두 행복해지는 주문... 비비디 바비디 부

쭈니-1 2015. 3. 23. 17:41

 

 

감독 : 케네스 브래너

주연 : 릴리 제임스, 리처드 매든, 케이트 블란쳇, 헬레나 본햄 카터

개봉 : 2015년 3월 19일

관람 : 2015년 3월 21일

등급 : 전체 관람가

 

 

효자는 피곤하다. 

 

지난 설날, 제주도에서 일을 하시는 막내 삼촌께서 저희 어머니께 "언제 한번 제주도로 놀라오세요."라고 한마디 하신 것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곧바로 셋째 작은 어머니의 "60 평생동안 제주도 한번 못가봤네."라는 한탄이 이어졌고, 이에 저희 어머니께서는 "그럼 3월에 나하고 제주도로 놀라가세."라고 맞받아 치셨습니다. 

맥주로 얼큰하게 취한 저는 얼떨결에 "제가 제주도에 보내드릴께요."라고 선언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구피 몰래 모아두었던 제 비상금은 어머니의 제주도 왕복 비행기값과 제주도에서의 2박3일 펜션비로 홀라당 날아갔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제가 저지른 일이니 제 용돈으로 수습을 하는 수 밖에요. (저와 더불어 부모님을 제주도로 보내드려야 했던 사촌동생도 비상금을 홀라당 날려보내야 했다는 슬픈 사연이... ^^) 

지난 토요일 아침, 제주도로 여행을 가시는 어머니와 셋째 삼촌, 셋째 작은어머니를 바래다 드리고 왔습니다.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려니 피곤했지만, 기왕 효자 노릇을 하기로 마음 먹었으니 그 정도 서비스는 해드려야죠. 저 때문에 덩달아 주말 아침 늦잠을 포기한 웅이와 함께 김포공항에서 아침 식사도 사드리고, 비행기 티켓팅도 해드리고, "잘 다녀오세요."라며 손도 흔들어 줬답니다. (월요일 밤에도 김포공항으로 마중나가야합니다.)

 

평소과 같은 토요일이라면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있을 시간. 하지만 기왕 일찍 일어났으니 다시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죠. 그리하여 토요일 아침부터 웅이와 영화도 보고, 외식도 하고, 토이 저러스에서 장난감도 실컷 구경하며 하루를 알차게 보냈습니다.   

사실 그날은 웅이와 광란의 하루를 보낼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구피가 직원 결혼식 때문에 저희 집과는 서울 반대편에 위치한 곳으로 머나먼 여정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결혼식 후에는 친구들과 놀다 들어오겠다고 선언했으니 저와 웅이는 속으로 "나이스"를 외쳤죠. 제 계획은 웅이와 극장에서 [신데렐라]와 [추억의 마니]를 연달아 보고, 비싼 외식도 하고, 구피 몰래 웅이가 원하는 레고 장난감도 구입한 후, 집에 들어와 웅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과 후라이드 치킨을 동시에 먹으며 맘껏 놀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소심한 저와 웅이는 구피의 잔소리가 두려워 [추억의 마니]는 포기하고 [신데렐라]만 봤으며, 비싼 외식 대신 집 근처에서 감자탕을 먹는 조촐한 외식으로 계획을 변경했습니다. 게다가 토이 저러스에서는 결국 아이쇼핑(eye shopping)밖에 하지 못했고 대신 메가박스에서 '숀더쉽 콤보'를 구매하여 못말리는 어린양 '숀더쉽' 인형을 득템하는 것에 만족했답니다. 그래도 집에 돌아와서는 효자 아들인 웅이가 제게 낮잠 잘 시간을 허용한 덕분에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난 휴유증을 단번에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효자 노릇은 피곤하지만, 효자 아들 덕분에 저는 이렇게 행복합니다. 

 

 

효녀도 피곤하다.

 

지난 토요일의 늦은 점심 시간, 배가 고플대로 고파하고 있는 웅이에게 "우리 뭐 사먹을까?"라고 물으니 웅이는 "감자탕 먹으러 가요."라며 제가 좋아하는 음식을 지목해줬습니다. 그때 저는 속으로 깊은 감동을 느꼈답니다. 웅이의 입맛에는 감자탕이 맛있을리가 없지만, 저를 위해서 굳이 감자탕을 선택한 것이죠. 효자가 별거 있나요? 이렇게 작은 일로 부모님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효자죠.

웅이가 내 마음 속의 효자라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효자, 효녀는 당연히 심청이를 떠올릴 수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간 심청이는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로 몸을 날렸습니다. 이렇게 심청이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효녀라면 서양의 대표 효녀는 '신데렐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녀는 부모님을 위해 정성을 다했고, 부모님의 돌아가신 후에는 못된 계모와 의붓 언니들을 위해 불평 한마디 없이 온갖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으니까요.

<신데렐라>는 민담으로 전해 내려오는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여자를 뜻하는 상드리용(Cendrillon)의 이야기를 프랑스의 동화작가 샤를 페로가 1697년 그의 동화집에 수록하면서 처음 출판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다른 언어들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주인공의 이름이 바뀌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 의미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며, 흔히 알려져 있는 영어명 '신데렐라'(Cinderella)도 '재를 뒤집어 쓰다'는 뜻으로 항상 부엌 아궁이 앞에서 일을 하는 데서 붙여진 별명이라고 하네요.

 

<신데렐라>는 1950년 디즈니의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며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됩니다. 지난 주에 개봉한 영화 [신데렐라]는 이미 자사의 고전 애니메이션을 새롭게 해석한 영화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는 디즈니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 [말레피센트]에 이어 야심차게 준비한 신작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앞서 개봉한 영화들이 원작 애니메이션을 새롭게 해석하며 새로운 영화적 재미를 선사했지만 [신데렐라]는 원작을 거의 그대로 따르는 것에 그쳤다는 점입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앨리스(미아 와시코우스키)가 이상한 나라에서 모험을 한 후 십여년이 흐른 이후의 이야기이고,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은 [오즈의 마법사] 이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말레피센트]는 아예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악당 '말레피센트'(안젤리나 졸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녀의 사연을 담아내기까지 했으니까요.

이들 영화와는 달리 [신데렐라]는 원작 애니메이션의 이전 이야기도, 이후 이야기도 아니며, 못된 계모의 사연을 담아낸 영화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토르 : 천둥의 신]을 세익스피어풍의 비극과 코믹한 분위기로 잘 버무렸던 케네스 브래너가 연출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과연 케네스 브래너가 창조한 '신데렐라' 이야기는 기존의 이야기와 무엇이 다를까요?    

 

 

달라진 것은 없다. 단지 살을 좀 붙였을 뿐.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신데렐라]는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 애니메이션에서 거의 달라진 부분이 없습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관객 입장에서는 달라진 것이 없다고 느끼게끔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이 뜻하는 것은 굉장히 의미심장합니다. 사실 꼼꼼히 체크해보면 케네스 브래너 감독은 영화를 통해 원작 동화의 상당 부분에 살을 많이 붙였습니다. 제가 느끼지 못했을 뿐입니다.

케네스 브래너 감독이 원작 동화의 상당 부분에 살을 많이 붙였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신데렐라]가 원작과 거의 똑같다고 느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영화에서 새롭게 덧붙여진 부분이 '신데렐라'의 새로운 이야기를 위해서가 아닌, 원작에서 부족한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케네스 브래너 감독은 원작의 기본적인 뼈대는 거의 손대지 않고, 그 대신 뼈대를 튼튼하게 하는데 심혈을 기울인 것입니다.

그 결과 왕자(리처드 매든)의 캐릭터가 상당 부분 강화되었습니다. 사실 동화에서 왕자는 캐릭터 자체가 불필요했습니다. 단지 잘 생긴 왕자라는 신분이 중요했던 것이죠. 그러한 까닭에 남성에게 의탁하여 안정된 삶을 꾀하려는 여성의 심리상태를 두고 '신데렐라 콤플렉스'라는 심리 용어가 나오기도 한 것입니다. 결국 왕자를 향한 '신데렐라'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닌 신분 상승 욕구로 이해할 수도 있는 셈입니다. '신데렐라' 입장에서는 대단한 굴욕인 셈입니다.

 

그렇기에 왕자의 캐릭터를 강화한 케네스 브래너 감독의 선택은 옳았습니다. [신데렐라]는 엘라( 릴리 제임스)와 왕자(리처드 매든)가 이미 무도회 이전에 만났고, 첫 눈에 사랑에 빠졌다고 설명합니다. 왕국을 위해서 강대국의 공주와 정략결혼을 해야 하는 왕자는 엘라를 찾기 위해 왕실의 무도회에 평민들도 참가하게끔 만듭니다. 

이렇게 엘라와 왕자가 무도회 이전에 이미 만나 첫 눈에 사랑에 빠졌다는 아주 작은 설정 하나만으로 [신데렐라]의 이야기는 더욱 탄탄해졌습니다. 왕실의 무도회에 평민이 초대된 이유가 설명이 되었고, 유리 구두 한짝을 가지고 신부감을 찾겠다고 나선 왕자의 이상한 행동도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엘라 또한 왕자이기 때문에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가 왕자였을 뿐입니다. 이러한 설정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엘라와 왕자의 사랑을 관객에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신데렐라]의 진정한 사랑은 '신데렐라 컴플렉스'의 또다른 이름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동화에서 주인공인 '신데렐라' 다음으로 중요한 계모(케이트 블란쳇)의 캐릭터도 강화되었습니다. 그녀는 그냥 못된 계모가 아닌, 예쁘지만 멍청한 두 딸을 위해 재혼을 선택할 정도로 다분히 현실적인 캐릭터였을 뿐입니다. 하지만 재혼한 남자의 죽음으로 또다시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고, 이번엔 두번째 남편의 딸(신데렐라)까지 떠안게 되었으니 어찌보면 참 불운한 여인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케네스 브래너 감독은 그렇다고 [말레피센트]처럼 계모를 위한 변명은 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계모를 위한 영화가 아닌 '신데렐라'를 위한 영화임을 그는 잊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 행복해지는 주문... 비비디 바비디 부

 

엘라와 왕자의 사랑 부분이 강화되었고, 계모의 캐릭터도 좀 더 살이 붙여졌습니다. 사실 이 정도가지고는 관객 입장에서는 원작과 비교해서 달라진 부분을 느끼기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케네스 브래너 감독의 입장에서는 원작을 거의 손대지 않고, 원작의 이야기를 강화하는, 쉬워보이지만 가장 어려운 작업을 해낸 것입니다. 

특히 요정대모(헬레나 봄햄 카터)가 엘라에게 마법을 걸며 부르는 노래인 ''Bibbidi-Bobbidi-Boo'가 애니메이션 [신데렐라]를 그대로 재현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물론 마부는 말에서 오리로, 시중은 개에서 도마뱀으로 변경되긴 했지만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만으로도 원작 애니메이션의 추억을 간직한 관객들에겐 좋은 선물이 됩니다. 

동화를 원작으로한 영화답게 마지막 결말도 착하게 변경시킨 부분도 좋았습니다. 사실 원작 동화는 유리 구두에 발을 맞추기 위해 의붓 언니들의 발을 자르는 잔혹 동화의 면도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며 케네스 브래너 감독이 새로운 이야기를 위해 [신데렐라]에 잔혹 동화적인 측면을 갑자기 삽입할까봐 걱정했는데, 오히려 엘라는 계모와 의붓 언니들을 의연하게 용서하더군요. 엘라의 용서에 무너지는 계모의 모습이 저는 개인적으로 더욱 통쾌했습니다.

 

동화의 강점은 권선징악이라는 교훈과 동심을 어루만지는 행복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데렐라]는 그러한 동화의 강점을 아주 정확히 가지고 있습니다. 친절한 마음과 용기를 잃지 않은 엘라가 결국 왕자와의 진정한 사랑으로 보상을 받게 되고, 엘라에게 못되게 굴었던 계모와 의붓 언니들은 너무 과하지 않게 적당한 벌을 받는 것으로 끝을 맺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신데렐라]를 보는 내내 저는 한 권의 아름다운 동화책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아름다운 그림과 흥겹고 감미로운 음악이 곁들여진 동화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그동안 잊고 있었던 동심의 행복감에 빠져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어린이에서 청소년의 길목에 접어들 웅이도 이러한 아름다운 동심의 행복감을 조금이라도 더 오랫동안 만끽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히든 영상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웅이와 함께 마지막까지 남아 엔딩 크레딧을 모두 보고, "모두 어디로 간가지?"라는 요정 대모의 한마디까지 듣고나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극장을 나서면서 제 입가에서는 계속 '비비디 바비디 부'라는 주문이 흘러나왔습니다. 우리 모두 동화 속의 세계처럼 아름답고 행복해지도록... 비비디 바비디 부~~~ 

 

어떤 분들은 [신데렐라]가 [겨울왕국 열기]의 2시간짜리 쿠키영상이라 비꼰다.

물론 나도 [겨울왕국 열기]가 재미있었다. [겨울왕국 2]가 너무 기대될 정도로...

하지만 몇분짜리 [겨울왕국 열기] 때문에

2시간짜리 [신데렐라]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비극아닌가?

그러한 비극을 맛본 이들도 행복해질 수 있기를... 비비디 바비디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