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김상만
주연 : 유지태, 차예련, 이세야 유스케
개봉 : 2014년 12월 31일
관람 : 2015년 3월 18일
등급 : 12세 관람가
2014년 마지막 기대작을 보다.
2014년 연말, 저는 불운했습니다. 한참 연말 분위기에 젖어 있어야 할 12월 27일에 일어난 갑작스러운 신월동 사무실 화재 사건으로 휴일도 없이 화재 현장을 휘저으며 수습에 나서야 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신월동 사무실 화재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2014년 마지막날 개봉한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를 저는 결코 극장에서 놓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불운한 것은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 역시 불운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영화는 2014년 12월 31일 개봉했지만 개봉 첫날부터 200여개가 채 되지 않는 스크린에서 상영해야 했습니다. 당시에는 [국제시장]이 천만 관객을 향해 쾌속질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는 물론 같은 날 개봉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도 극장에서 제대로 상영하지 못한채 밀려나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관객의 입소문을 타며 30만 관객을 돌파하며 마무리가 되었지만,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5만 관객을 동원한 후 쓸쓸히 극장에서 퇴장을 해야 했습니다.
2014년 연말의 불운을 떨쳐 버리자.
Hoppin에서 매달 8천원을 결재하여 영화 빅5 이용권으로 영화를 보는 저는 빅5로 볼 수 있는 2편의 프리미엄 영화중에서 한편을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에 할애했습니다. (남은 한편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게 투자했습니다.) Hoppin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대부분의 최신작이 프리미엄 영화임을 감안한다면 제겐 꽤 신중한 선택이었습니다.
제가 다른 쟁쟁한 영화들을 제쳐두고 극장에서 사망선고를 받은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를 선택한 이유는 2014년 연말의 불운을 이제는 잊기 위한 나만의 의식이었습니다. 사실 아직 신월동 사무실 화재사건은 마무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화재가 일어난지 2개월이 지나 3개월이 다 되어 가지만 보험회사의 보상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보험회사의 보상이 자꾸 미뤄질때마다 저는 2014년 연말의 악몽이 자꾸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러한 2014년 연말의 불운을 상징하는 영화가 제겐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인 셈입니다. 결국 저는 그토록 미뤄두었던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를 봄으로써 2014년 연말의 불운이 함께 사라지길 기원했습니다. (보험회사의 보상은 다음 주초에 마무리될 것이라는 연락을 방금 받았답니다.)
배재철... 그는 누구인가?
이렇게 제겐 2014년 연말 불운의 상징이기도한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는 불운의 성악가 배재철의 실화를 바탕으로한 영화입니다. 유럽 유수의 콩쿠르에게 트로피를 거머쥐며 스타 테너로 주목받기 시작한 그는 더 타임즈로부터 '100년에 한번 나올만한 목소리'라는 극찬을 받게 됩니다. 이 기세를 몰아 배재철은 동양인에게는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던 독일 자르브뤼켄 국립극장과 전속 계약을 맺으며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한 '리리코 스핀토'는 최고의 오페라 가수에게 내려지는 찬사입니다. '리리코'는 섬세하고 시적인 표현을 뜻하며 '스핀토'는 관객의 심장을 관통하는 목소리를 뜻합니다. 다시말해 '리리코 스핀토'는 서정적인 섬세함과 심장을 관통하는 힘있는 목소리를 함께 지닌 테너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찬사인 셈입니다.
하지만 신이 내려준 목소리인 배재철의 재능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2005년 <돈 카를로> 공연 도중 목에 이상이 왔고, 결국 갑상선 암이라는 치명적인 진단을 받게 됩니다. 게다가 수술 중 성대 신경이 끊어지면서 비록 목숨은 건졌으나 더이상 노래할 수 없는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가 배재철의 인간 승리를 이야기하는 방법
2008년 KBS에서 방송된 배재철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김상만 감독은 그의 인간승리 드라마를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그가 가장 먼저 도움을 청한 인물은 바로 유지태입니다. 이미 유지태는 김상만의 감독 데뷔작인 [심야의 FM]을 통해 자신의 연기 인생 처음으로 악역 도전에 성공했던 전력이 있기에 두 사람의 낯설은 도전은 처음이 아닌 셈입니다.
김상만 감독은 배재철의 인간 승리 드라마를 영화화하면서 그저 묵묵하게 그의 이야기를 쫓아갑니다. 최고의 자리에서 최악의 상황으로 떨어진 테너 가수. 그의 곁을 지키는 아름다운 아내 윤희(차예련)와 그의 재기를 돕는 든든한 일본인 친구 사와다(이세야 유스케). 너무 전형적일 수도 있고, 조금은 뻔할 수 밖에 없는 이들의 이야기에서 김상만 감독은 나름의 영화적 장치를 삽입합니다.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의 영화적 재미를 위해 김상만 감독이 삽입한 영화적 장치는 사와다의 부하 직원인 미사키와 배재철의 성공에 질투를 했고, 그의 좌절을 비꼬는 영화의 유일한 악역 멜리나입니다. 미사키가 톡톡 튀는 캐릭터로 영화의 활기를 넣어준다면, 멜리나는 전형적인 악역으로 배재철의 인간승리 드라마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줍니다.
가장 중요한 음악은?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에서 가장 중점을 둬야할 부분은 바로 음악입니다. 물론 이 영화가 음악 영화는 아니지만 배재철이 테너 가수임을 감안한다면 음악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영화 초반 배재철이 <투란도트> 무대에서 '공주는 잠 못 들고'를 부르는 장면은 중요합니다. 배재철의 가장 화려한 전성기를 보여줘야 하는 부분이고, 오페라를 모르는 관객들에게도 배재철의 역량에 감동을 안겨줘야 하니까요.
하지만 솔직히 오프닝의 그 장면보다는 배재철이 일본 무대에서의 장면이 더 압도적이었습니다. 제가 음향 시시템이 잘 갖춰진 극장이 아닌, 집 거실에서 한밤중에 영화를 봐야하는 바람에 음량을 약하게 하고 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래서 음악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합니다.)
그 외에도 수술대 위에서 의사의 지시로 노래를 하는 장면이라던가, 재기 무대에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진솔하게 노래를 부르는 장면 등,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는 음악으로 감동을 받아야하는 부분이 많았지만, 아무래도 집에서 영화를 봤던 제 입장에서는 음악으로인한 감동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불운에 굴하지 않고 희망을 찾는 배재철의 인간승리 드라마는 충분히 감동적이었습니다. 아직도 그는 활발하게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니, 언제 꼭 그의 노래를 직접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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