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5년 아짧평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 그 어떤 세기의 사랑보다 아름다운 두 분의 사랑.

쭈니-1 2015. 3. 6. 11:51

 

 

감독 : 진모영

주연 : 조병만, 강계열

개봉 : 2014년 11월 27일

관람 : 2015년 3월 5일

등급 : 전체 관람가

 

 

가끔 예상 밖의 흥행작이 나를 놀라게 한다.

 

2002년 우리 극장가는 이정향 감독의 영화 [집으로...]의 흥행 돌풍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지금은 당당한 스타 배우가 되었지만 당시만해도 아역 배우에 불과했던 유승호와 연기 경력이 전혀 없는 김을분 할머니가 주연을 맡은 [집으로...]는 손자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을 담은 잔잔한 영화였습니다. 개봉 전만해도 흥행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영화였는데 개봉하자마자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등 상상 이상의 흥행을 일궈냈었습니다.

2009년에는 이충렬 감독의 [워낭소리]가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최원균 할아버지와 30년간 할아버지와 함께 밭을 일구었던 황소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무려 293만명의 관객이 극장을 찾았던 [워낭소리]는 다큐멘터리 영화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저도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극장으로 보러 갔을 정도였습니다.

2014년에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76년째 부부로 살으셨던 조병만 할아버지와 강계열 할머니의 사랑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흥행성적은 무려 480만명. 그야말로 신드룸이라해도 과언이 아닌 어마어마한 성적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상 밖의 흥행 성적을 낸 세 영화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배우가 아닌 실제 할아버지, 할머니를 캐스팅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시골에 계신, 혹은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 일으켰다는 점입니다.

 

 

 

박스오피스에 민감한 내가 이 영화를 못 본 이유

 

제 영화적 취향은 다분이 상업적입니다. 그렇기에 잔잔한 드라마인 [집으로...]와 다큐멘터리 영화인 [워낭소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솔직히 제 취향의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집으로...]와 [워낭소리]를 극장에서 봤습니다. [집으로...]의 경우는 친구와 오랜만에 극장을 찾았다가 보게 되었고, [워낭소리]는 부모님을 모시고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를 고르다가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결국 극장에서 보지 못했습니다. 이 영화가 개봉한 11월에는 제 취향의 영화가 아닌만큼 관람 목록에서 제외되었고, 흥행 돌풍을 일으켰던 1월에는 다른 기대작들을 푹풍 관람하느라 미뤄뒀으며, 상영 막바지에 도달했던 2월에는 극장 출입을 스스로 자제했었기에 이 영화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핑계일 뿐이었습니다. 지난 1월 31일, 어머니와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어머니께서는 "이모들은 모두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보았는데, 나만 그 영화를 못봤다."라며 제게 섭섭해하셨습니다.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전, [워낭소리]를 함께 본 이후 어머니와 함께 극장을 찾지 않았던 저는 또 이렇게 불효자식이 된 것입니다. 결국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제 여동생이 어머니와 함께 보고 왔다고 합니다.

 

   

 

나는 왜 어머니와 이 영화를 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극장 상영이 종료되고 Hoppin에 다운로드 서비스가 시작되자마자 저는 이 영화를 다운로드받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목요일, 감기몸살에 걸린 구피를 재워두고 혼자 거실에서 이 영화를 보며 어머니에 대한 죄송함을 느껴야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후 어머니께서도 혼자 외로우셨을텐데... 저는 왜 어머니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갈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89세 강계열 할머니와 98세 조병만 할아버지의 사랑을 나래이션 없이 조용히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당연히 영화적 설정 또한 없습니다. 두 분의 일상을 카메라는 말 없이 뒤쫓기만합니다.

낙엽을 쓸다가 서로에게 낙엽을 던지며 장난을 치시기도 하고, 눈을 치우다가 눈싸움을 하거나 눈사람을 만들기도 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은 젊은 우리들의 사랑과 하나도 다르지 않고 순수했습니다. 밤늦게 화장실을 가시는 할머니가 무서우실까봐 화장실 앞에서 지켜서서 노래를 부르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했습니다. 

 

 

 

두 분의 눈물은 자식들 때문이었습니다.

 

영화의 초반에는 노령의 나에도 불구하고 소년, 소녀 감성으로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시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에서 저는 미소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중반으로 흘러가며 영화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눈물을 잡아냅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할머니의 눈물은 모두 자식들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열두명의 자녀을 낳으셨지만, 가난으로, 그리고 전쟁 때문에 여섯 자녀를 잃어야 했던 강계열 할머니께서 시장에서 예쁜 내복을 사시고는 조병만 할아버지께 "먼저 저승에 가시면 저승에 있는 우리 자식들에게 내복을 전해주세요."라고 부탁하는 장면에서는 영화를 보는 제 눈시울도 뜨겁게 만들었습니다. 가난 때문에 따뜻한 내복 하나 못 사준것이 마음에 평생 마음에 걸리셨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부모님의 마음이 아닐까요?

할머니의 생신 잔치에 모인 자녀들이 결국은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장면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는 또다시 눈물을 보이십니다. 두 분이 함께 있을 때는 그 누구보다 천진난만하게 웃으시며 행복해하시던 할아버지, 할머니. 그 분들의 눈물을 결국 자식들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 어떤 세기의 사랑보다 아름다운 두 분의 사랑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영화 후반에서 할아버지께서 편찮으시다면서 점점 분위기를 눈물 바다로 만드렁 놓습니다. 병원에서조차 포기한 할아버지의 노환. 할머니는 조용히 할아버지께서 저승에 갈 날을 준비하십니다. 그렇게 76년동안 함께 동거동락했던 두 분의 사랑은 조병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며 끝을 맺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비록 할아버지께서는 돌아가셨지만, 두 분의 사랑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할머니께서도 언젠가 할아버지의 곁으로 가실 날을 조용히 준비하셨고, 두 분의 사랑은 또 다른 세상에서 영원히 이뤄지실 것입니다.

세상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떠들석한 세기의 사랑이 있습니다. 하지만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보면서 두 분의 사랑이 그 어떤 세기의 사랑보다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나도 구피와 두 분만큼 아름다운 사랑을 평생 나누고 싶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영화가 끝나고나니 구피와 더불어 어머니 생각도 간절했습니다. 조병만 할아버지의 손을 꼭 붙잡으시고, "앞으로 잘 할께요."라며 회한의 눈물을 흘리셨던 두 분의 자녀들의 모습을 보며, 저도 어머니께 지금보다 더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