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가베 이바네즈
주연 : 안토니오 반데라스, 로버트 포스터
더빙 : 멜라니 그리피스, 하비에르 바르뎀
개봉 : 2014년 10월 23일
관람 : 2015년 3월 6일
등급 : 15세 관람가
또 인공지능 로봇 이야기이다.
최근들어서 인공지능에 대한 소재의 영화를 자주 접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1월에 극장에서 봤던 [엑스 마니카]를 비롯하여, 며칠 전에는 인공지능 부문의 선구자인 앨런 튜닝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을 봤고, 오는 3월 12일에는 인간보다 순수한 인공지능 로봇과 인간의 전쟁을 소재로한 [채피]가 개봉합니다.
이렇게 인공지능 영화가 갑자기 2015년 SF 영화의 새로운 화두가 되자 갑자기 보고 싶은 영화가 한편 더 생겨나 버렸습니다. 바로 [오토마타]라는 스페인의 SF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2014년 10월에 국내개봉했지만, 소규모 극장상영으로 인하여 1,738명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고, 결국 다운로드 시장으로 직행하였습니다.
저는 저예산 B급 SF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SF 장르의 영화적 재미는 정교한 시각효과와 거대한 스펙타클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가끔 독특한 상상력으로 제 마음을 사로 잡는 B급 SF 영화가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 B급 SF 영화는 흥행작의 조잡한 아류작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보기에 [오토마타]는 인공지능을 소재로한 B급 SF 영화로 보였고, 그렇기에 개봉 전에는 제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한때 세계 최고의 섹시남이었던 안토니오 반데라스
하지만 제가 [오토마타]에 대한 기대감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특히 이 영화가 한때 할리우드를 호령했던 최고의 섹시남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주연을 맡은 영화라는 점은 뒤늦게라도 [오토마타]를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었습니다.
물론 요즘의 안토니오 반데라스는 제가 알던 전성기 시절의 그가 아닙니다. 최근 그의 출연작인 [익스펜더블 3]만 하더라도 거구의 액션 배우들 틈에서 유난히 왜소해보이는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안쓰러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제 [오토마타]가 시작하자마자 저와 구피의 입에서 동시에 터져아온 한마디는 "말도 안돼.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저렇게 늙어버렸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오토마타]에서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맡은 잭 바칸이라는 캐릭터는 보험 조사관으로 삶에 대한 의욕도, 희망도 없는 인물입니다. 어찌보면 [오토마타]는 윌 스미스 주연의 영화 [아이, 로봇]을 연상시키는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지만, [아이, 로봇]의 윌 스미스와는 달리 [오토마타]의 안토니오 반데라스는 그저 삶에 지친 중년의 남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2044년의 지구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서기 2044년 태양 폭풍의 증가로 지표면은 방사능 사막으로 변했고 인구 99.7%가 감소해 2천1백만 명이 되었다. 공중장애로 인해 지상 통신 시스템이 마비됐고 인간의 기술은 퇴보할 수밖에 없었다.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록(ROC)사는 '오토마타 필그림 7000'을 개발했다. 그들은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벽과 인공구름을 만들도록 설계된 로봇이다. 수백만 대의 로봇이 두 가지 보안규정을 통해 인간의 명령에 따르고 있다. 첫째 로봇은 어떠한 생명도 해치지 않는다. 둘째 로봇은 자신이나 다른 로봇을 개조하지 않는다. 이 규정들은 오토마타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로봇은 개조될 수 없다.
[오토마타]의 시작에 나오는 영화속 세계관의 해설입니다. 여기에서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태양 폭풍의 증가라는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우주적 자연재해로부터 인간을 구하기 위해 개발된 '오토마타'. 그런데 인간은 '오토마타'에게 '로봇은 스스로 개조할 수 없다.'라는 보안 규정을 둠으로써 오히려 '오토마타'를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영화의 시작은 마약에 찌든 어느 경찰이 빈민가에서 스스로를 수리하고 있는 로봇을 발견하고 사살하면서 시작됩니다. 이는 '오토마타'의 보안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잭 바칸은 어떤 인간 수리공이 '오토마타'를 개조하고 있다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토마타'를 개조한 인간 수리공을 찾아 나서며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이합니다.
잭 바칸은 왜 바다를 그리워하는가?
[오토마타]는 스스로 개조할 수 없다는 보안규정을 가진 '오토마타'가 자기 스스로를 개조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영화는 시작됩니다. 그런데 한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주인공인 잭 바칸의 행동입니다. 그는 자신의 상사(로버트 포스터)에게 다른 지사로 전근을 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런데 그가 가고 싶은 곳은 바닷가입니다.
영화에서는 여러번 잭 바칸의 어린시절의 짧은 추억을 통해 그가 바닷가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지구가 사막화된 현상황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인 도시를 떠나 아직 있는지도 모르는 바닷가로 가려는 그의 행동은 대책이 없어 보입니다.
더 큰 문제는 그는 혼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곧 출산을 앞둔 아내가 있는 잭 바칸은 아내에게 도시를 떠나 바닷가로 가서 살자고 말합니다. 당연히 그의 아내도, 그의 상사도 바닷가에 집착하는 잭 바칸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잭 바칸은 바닷가로 전근을 가기 위해 스스로 '오토마타'를 개조한 수리공을 찾겠다며 위험을 무릅씁니다. 도대체 왜 그는 바다가 집착하는 것일까요?
이제 지구에서 인간의 수명은 다한 것이다.
진화론에 의하면 지구에서 처음으로 생명체가 생겨난 것은 바다라고 합니다. 바다에서 생겨난 생명체가 육지로 올라오면서 여러 동물들로 진화되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진화론에 입각한다면 인간의 고향은 바로 바다입니다. 우리는 바다에서 살 수 없지만, 힘들고 지칠 때, 바다에서 마음의 휴식을 얻는 것도 어쩌면 바다가 인간의 고향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잭 바칸은 사막화된 지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도시에서 억지로 살아가지만 그는 멸망의 길을 걷고 있는 도시에서는 더 이상의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가 무의식적으로 바다를 그리워하고, 무작정 가족과 바다로 가고 싶어하는 것은 어쩌면 그의 마지막 부질없는 희망이며, 죽음을 앞둔 사람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무의식적인 행동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문제는 지구에서의 인류 멸망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오토마타'의 도움이 없다면 사막화된 지구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토마타'가 지구를 차지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어쩌면 말입니다. '로봇은 스스로 개조할 수 없다'라는 보안규정으 없었다면 인간을 뛰어넘는 무한의 지식을 가진 '오토마타' 덕분에 지구는 다시 인간이 살 수 있는 곳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이기심은 공멸의 길이었다.
어차피 '로봇은 어떠한 생명체도 해치지 않는다'는 첫번째 보안규정 때문에 '오토마타'가 인간을 공격할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로봇과 지구를 나눠가지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토마타'가 인간보다 똑똑해지는 것을 막으려 했고, 그것이 인류 멸망의 길이라고해도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입니다. 어차피 사막화된 지구에서도 그들은 근근히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잭, 죽음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당신의 삶은 시간의 일부분일 뿐이죠. 왜 두려워하십니까? 인간의 때가 다 된 거겠죠. 지구에 영원히 사는 생명체는 없습니다. 저를 보십시오. 인간은 그 안에 존재하게 될 겁니다.
잭 바칸은 스스로 개조하기 시작한 최초의 '오토마타'(하비에르 바르뎀)와 이러한 대화를 나눕니다. 맞습니다. 지구에 영원히 사는 생명체는 없습니다. 공룡이 멸망했듯이 언젠가 인류도 멸망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고, 로봇과의 공존의 길도 스스로 거부했습니다. 지구는 온전히 인간의 것이라는 이기심 때문에...
저예산 SF 영화답게... 정교한 시각적 효과는 기대하지 말자.
사실 [오토마타]는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급 SF 영화와 비교한다면 시각적 효과면에서는 어린이 장난에 불과한 저예산 SF 영화일 뿐입니다. 영화의 대부분도 황폐한 사막에서 진행되고, 인공지능 로봇인 '오토마타'도 SF 영화답지않게 지금 현재의 로봇의 외형에서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평범한 비주얼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사막화된 지구에서 인류를 구해야하는 '오토마타'를 두려워하며 스스로 구원의 길을 포기하는 인간의 이기적인 모습과,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스스로 개조할 수 없다는 보안 규정 탓에 마치 인간의 노예처럼 비루한 일만을 하는 '오토마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영화입니다.
누군가 제게 "[오토마타]는 재미있나요?"라고 묻는다면 "차라리 [아이, 로봇]을 한번 더 보세요."라고 대답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뒤돌아서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토마타]는 한번쯤 볼만한 영화이기는 합니다."라고 작은 목소리로 자신없이 속삭이겠죠. [오토마타]는 그렇게 인상적인 SF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전혀 의미없는 B급 SF 영화 또한 아닌, 제겐 작은 여운을 안겨줬던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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