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문제용
주연 : 이민기, 여진구, 유오성, 박두식
개봉 : 2015년 1월 28일
관람 : 2015년 2월 25일
등급 : 15세 관람가
언제나 마지막 날이 힘든 법이다.
2월 3일 구피의 수술로 인하여 시작된 제 결심은 이러했습니다. 2월 한달간 집에서 요양을 하는 구피를 위해 극장 출입도 자제하고, 회사에서 왠만하면 야근하지 않고 집에 칼퇴근하여 구피의 저녁 식사를 챙겨주겠다는... 구피가 오랜 요양을 끝내고 회사에 다시 출근하기로 한 날이 2월 26일이니 그 전날인 25일이 제 결심의 마지막 날인 셈입니다.
하지만 나름 잘 지켰던 제 결심이 마지막날인 25일에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갑자기 일 폭탄이 떨어져서 야근을 피할 수 없게 되었고, 갑작스러운 일 폭탄 때문에 스트레스가 극도로 치솟는 바람에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영화 관람이 너무나도 간절했기 때문입니다.
하루종일 화장실가는 것도 참아가며 죽어라 일한 덕분에 저녁 8시쯤 일 폭탄을 어느정도 마무리했습니다. 이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극장에서 신나는 영화 한편만 보고나면 또 이렇게 직장인의 비애를 처절하게 경함한 하루를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제 선택은 극장이 아닌 구피가 기다리는 집이었습니다.
극장은 아니더라도 내겐 영화가 필요해.
일 끝내고 곧장 극장으로 달려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었지만, 그냥 꾹 참고 집에 갔습니다. 집에선 구피가 아픈 몸을 이끌고 야근으로 지친 저를 위해 스파게티를 해놓았더군요. 역시 극장이 아닌 집으로 가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배 터지게 스파게티를 먹은 후, 회사에서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해서 제가 선택한 영화는 지난 1월에 놓쳤던 기대작 [내 심장을 쏴라]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코미디 영화임과 동시에 영화의 마지막엔 짜릿함과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나니 [내 심장을 쏴라]는 제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영화였습니다. 정신병원이라는 영화의 배경, 영화 포스터의 분위기, 그리고 코믹 연기에 도가 튼 조연 배우들의 면면만 본다면 분명 유쾌하게 웃다가 마지막에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영화처럼 보였지만, [내 심장을 쏴라]는 결코 코미디와는 거리가 먼 영화였습니다.
제 2의 [7번방의 선물]을 기대한 것은 나뿐인가?
앞서 언급했듯이 저는 [내 심장을 쏴라]를 보며 실컷 웃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마지막의 찡한 감동을 느끼길 기대했습니다. 결국 제가 [내 심장을 쏴라]에 기대한 것은 정확히 [7번방의 선물]에서 느꼈던 영화적 재미인 셈입니다.
이 두 영화는 비슷한 점이 많이 보입니다. 우선 정신병원과 감옥이라는 갇힌 공간을 활용하고 있으며, 주인공도 순수함을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7번방의 선물]에서 용구(류승룡)의 감방 동료로 출연한 김정태, 김기천이 [내 심장을 쏴라]에서 주인공인 수명(여진구), 승민(이민기)의 병실 동료로 나오는 점도 유사합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내 심장을 쏴라]는 정신병동의 다양한 환자 캐릭터가 나오지만 웃기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밀로스 포먼 감독의 문제작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를 연상시킬만큼 너무 무겁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게 적당히 정신병원의 인권 유린 현장을 보여줍니다.
서로 다른 승민과 수명의 캐릭터에 주목
아마도 [내 심장을 쏴라]가 흥행에 실패한 부분도 바로 이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저처럼 많은 분들이 이 영화에 [7번방의 선물]을 기대했을테니까요. 하지만 [내 심장을 쏴라]는 코미디적 기대감을 덜어버린다면 재미있게 볼만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우선 저는 승민과 수명이라는 캐릭터가 재미있었습니다. 이 두 캐릭터는 너무나도 상반되어 있습니다. 수명은 세상으로부터 도망을 치기 위해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승민은 세상으로부터 나가기 위해 정신병원을 탈출하려합니다.
상반된 캐릭터인 승민과 수명. 하지만 이 두 캐릭터의 사정이 설명되면서 승민과 수명은 서로가 같은 아픔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고 서로를 의지하게 됩니다. 그렇게 승민이 그토록 원했던 세상에 나가는 순간,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려 했던 수명의 병도 치유되는 것이죠.
미처서 갇힌 자와 갇혀서 미친 자.
물론 [내 심장을 쏴라]는 영화적 완성도의 헛점도 많이 보이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전개가 승민의 병원 탈출과 다시 붙잡히는 것을 반복하며 저를 지루하게 만들기도 했고, 정작 승민과 수명의 병원 탈출은 너무 싱겁게 그려져 있습니다.
병원 간호사인 최기훈(유오성)의 캐릭터가 불분명하며, 악역을 도맡아한 점박이(박두식)의 캐릭터도 너무 단선적입니다. 특히 가장 아쉬웠던 것은 정신 병원 내의 여러 환자 캐릭터들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은채 마구 소모되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끝나고 나면 뭔가 여운이 남습니다. 최기훈에게 "정신병원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습니다. 미쳐서 갇힌 자와 갇혀서 미친자... 선생님은 승민이 미쳐서 갇힌 환자로 보이십니까?"라는 대사라던가, 승민이 수명에게 "이제 빼앗기지마. 네 시간은 네 거야."라고 충고하는 장면 등. [내 심장을 쏴라]는 자유를 향해 저 하늘 너머로 사라지는 승민의 모습을 보며 비록 기대했던 웃음을 얻지 못했지만, 기대하지 못했던 여운을 얻은 것에 만족해야 했던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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