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마이클 스피어리그, 피터 스피어리그
주연 : 에단 호크, 사라 스누크, 노아 테일러
개봉 : 2015년 1월 7일
관람 : 2015년 2월 11일
등급 : 15세 관람가
타임 스릴러를 극장에서 못보다니...
지난 1월 둘째주, 무려 네편의 기대작들이 새롭게 개봉했었습니다. 그 주인공은 [패딩턴], [워킹걸], [언브로큰], [타임 패러독스]입니다. 사실 제 개인 취향에 따른다면 타임 스릴러인 [타임 패러독스]가 기대작 1순위가 되었을 것이며, 안젤리나 졸리가 연출한 아카데미용 영화 [언브로큰]이 그 뒤를 따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 선택은 가볍게 볼 수 있는 [패딩턴]과 [워킹걸]이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신월동 사무소 화재 사건으로 인하여 몸과 마음이 지쳐 있는 상태였고, 그렇기에 복잡한 영화보다는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영화를 선호했던 것이죠. 그러나 아무리 당시 상황이 그랬다고해도 제 영화 취향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패딩턴]과 [워킹걸]을 일찌감치 보았지만 [언브로큰]과 [타임 패러독스]를 못 본 것이 자꾸 마음에 걸렸었으니까요.
결국 [언브로큰]은 개봉 2주만에 겨우 볼 수 있었지만, 국내 흥행에 참패한 [타임 패러독스]는 극장에서 놓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타임 패러독스]의 다운로드 서비스가 일찍 오픈되어 극장에서 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늦게라도 이렇게 풀었답니다. (이후 스포가 가득하니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읽지 마시길 추천합니다.)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타임 패러독스]는 개봉 전부터 이 영화의 대단한 반전이 입소문을 탔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대단한 반전이라는 것이 한개도 아닌 무려 세개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타임 패러독스]를 보기에 앞서서 영화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차단했고, 영화를 보면서는 최대한 집중력을 발휘하여 영화 속의 반전을 알아맞추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첫번째 반전은 쉽게 맞췄고, 세번째 반전은 영화를 보기 전에 이미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단지 두번째 반전만 맞추지 못했습니다. 이 정도면 [타임 패러독스]에게 판정승은 거둔 셈입니다. 하지만 [타임 패러독스]의 진정한 묘미는 반전에 있지 않습니다. 영화가 끝나고나서 불현듯 찾아오는 여운이야말로 [타임 패러독스]의 진정한 재미입니다.
[타임 패러독스]를 보고나서 찾아오는 여운은 바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질문에서 비롯됩니다. 그 어떤 현자라도 딱 부러지는 정답을 내놓을 수 없는 이 난해한 질문을 [타임 패러독스]는 1시간 30분동안 풀어 놓고 있습니다. 물론 [타임 패러독스]를 보고나서도 질문에 대한 해답은 찾지 못합니다. 그것이 바로 여운의 정체입니다.
자! 이 영화의 반전을 풀어보도록 할까?
우선 [타임 패러독스]의 전체적인 내용은 이러합니다. 뉴욕을 초토화시킨 테러범 일명 피즐 폭파범을 잡기 위해 범죄 예방 본부는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템포럴(에단 호크) 요원을 투입합니다. 하지만 피즐 폭파범을 잡기 위한 템포럴 요원의 모든 노력은 실패하고, 급기야 템포럴 요원은 얼굴에 화상을 입어 이식 수술을 하게 됩니다.
자! 여기에서 한가지 단서가 나옵니다. 템포럴 요원의 얼굴이 바뀌었다는 것이죠. 이러한 설정이 아무런 의미없이 나올리가 없습니다. 템포럴 요원의 얼굴이 바뀌어야만하는 그 어떤 이유가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하기로 하고...
잦은 시간 여행으로 인하여 신체적, 정신적 손상이 우려되는 템포럴 요원은 은퇴를 위해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그는 임무를 위해 1970년 11월 뉴욕 Bar의 바텐더로 위장 취업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존이라는 이름의 한 사나이를 만납니다. 존은 제인(사라 스누크)이라는 이름의 기구한 운명을 지닌 한 여성의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 영화의 반전은 시작됩니다.
첫번째 반전
사실 저는 사라의 이야기가 뜬금이 없었습니다. [타임 패러독스]의 초반만 보더라도 이 영화는 템포럴 요원과 피즐 폭파범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느닷없이 어린 시절 고아원에 버려운 여성 제인의 기구한 삶에 대한 이야기라니... 게다가 그녀의 이야기는 영화의 거의 절반 가량을 차지합니다. 저는 '이 영화 왜 이래?'라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실 존과 제인은 동일 인물입니다. 그것은 존이 이야기를 시작할때부터 밝혀진 사실입니다. 양성체였던 제인은 의문의 남자와 만나 임신을 하고, 아기를 낳는 과정에서 난소에 심각한 손상을 입고 존이라는 이름의 남자로 거듭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존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던 템포럴 요원은 존에게 한가지 제안을 합니다. "당신 인생을 망친 자를 눈 앞에 데려다 놓는다면 절대 걸리지 않는다고 보장한다면죽이겠습니까?" 그리고 존과 함께 의문의 남자와 제인이 처음 만났던 1963년 클리블렌드 대학으로 시간여행을 합니다.
자! 이쯤으면 여러분들도 첫번째 반전을 눈치채셨을 것이라 믿습니다. 제인이 만난 의문의 남자는 바로 존입니다. 제인이 양성체로 설정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감안한다면 충분히 추론 가능한 설정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의문점이 남습니다. 마지막 임무를 수행한다던 템포럴 요원은 왜 존과 제인을 만나도록 하는 것일까요?
템포럴 요원의 마지막 임무
마지막 반전을 맞췄더라도 그 반전이 의미하는 바를 모른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제인이 만난 자신의 인생을 망친 의문의 남자가 바로 남성으로 전환한 자기 자신, 즉 존이라는 사실을 눈치챘으면서도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알아내기 위해 영화에 더욱 집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알아낸 것입니다. 템포럴 요원의 마지막 임무는 은퇴하는 자신의 자리에 새로운 요원을 발탁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문제는 첫번째 반전의 의미에 집중하느라 두번째 반전을 놓쳤다는 점입니다. 두번째 반전은 존과 템포럴 요원이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제인과 존 사이의 아기를 유괴하여 고아원 앞에 내버려둔 것이 바로 템포럴 요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조금 의외였습니다. 왜 그래야만 했던 것일까요?
그 순간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절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떠올랐습니다. [타임 패러독스]에서도 몇번 언급한 적이 있는 이 수수께끼는 바로 제인과 존 그리고 템포럴 요원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제인과 존 그리고 둘 사이에 태어난 아기는 모두 동일 인물로써 그들의 인생은 닭과 달걀처럼 무한 반복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한 반복되어 재생산되는 템포럴 요원
그 순간 영화 속에서 간간히 그 모습을 드러냈던 로버트슨(노아 테일러)이 중요한 캐릭터로 부각됩니다. 범죄 예방국의 책임자인 로버트슨은 제인 - 존- 템포럴 요원으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를 계속 유지시킴으로써 템포럴 요원이 은퇴를 해도 또 다른 템포럴 요원을 범죄 예방국에서 이용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연결고리가 끊기지 않는 이상 제인은 존을 만날 것이고, 존과의 관계로 아기를 낳을 것이며, 아기는 다시 제인으로 성장할 것이기 때문에 범죄 예방국의 템포럴 요원은 무한 반복되어 재생산 될 것입니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템포럴 요원이 얼굴에 화상을 입고 이식 수술을 하는 설정이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이 두번째 반전을 위해서였습니다. 누가 봐도 존과 템포럴 요원의 얼굴이 서로 달랐기에 얼굴 이식 수술이라는 무리수가 뒤따를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존을 범죄 예방국으로 끌어들인 템포럴 요원은 비로서 은퇴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잊고 있었던 피즐 폭파범의 존재가 드러납니다. 이는 세번째 반전인데... 사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예상했던 템포럴 요원과 피즐 폭파범이 동일 인물이라는 반전이 영화의 대미를 장식합니다.
의외로 친절했던 영화
사실 [타임 패러독스]를 보기 전에 잔뜩 긴장을 하며 집중력을 바짝 세웠었는데... 의외로 [타임 패러독스]는 꽤 친절한 영화였습니다. 영화 속에 여러 친절한 단서들을 뿌려 놓았기 때문에 반전이 느닷없게 느껴지지 않도록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템포럴 요원이 피즐 폭파범이 되는 것 역시 그러합니다. 영화에서 여러차례 시간 여행을 자주 하면 정신적인 문제가 뒤따른다는 경고가 뒤따랐고, 존은 자신의 기구한 인생 때문인지 피즐 폭파범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기도 합니다. 결국 은퇴한 템포럴 요원은 피즐 폭파범이 자기 자신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되고, 피즐 폭파범을 사살함으로써 정신 착란을 일으켜 스스로가 제 2의 피즐 폭파범이 되는 것입니다. 제인 - 존 - 템포럴 요원 - 피즐 폭파범으로 이어진 연결고리가 닭과 달걀처럼 무한적으로 반복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로버트슨은 템포럴 요원이 피즐 폭파범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를 막지 않은 것일까요? 그것은 피즐 폭파범으로 인하여 범죄 예방국이 중요한 위치로 발돋음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둠이 있어야 빛이 돋보이듯이 범죄 예방국은 피즐 폭파범의 존재 덕분에 정부의 지원금을 받으며 중요한 기관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이죠.
시간이 갈수록 여운은 짙어진다.
솔직히 [타임 패러독스]는 반전에 집중하면서 본다면 실망스러운 영화일 수도 있습니다. 반전이 소문만큼 대단하지는 않았고, 어찌 생각해보면 억지스럽게 느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와 나와 미래의 내가 관계를 가져서 과거의 나를 낳는다니... 언뜻 받아들이기 힘든 설정이니까요.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서 시간이 흐르니 영화를 볼 때는 못 느꼈던 여운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존은 제인을 두고 '극도로 신세 망친 여인'이라고 칭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녀의 신세는 자기 자신에 의한 것입니다. 결국 그녀는 남 탓을 하면서 세상에 대한 증오를 드러내지만, 그녀를 원치않는 임신을 시킨 것도, 그녀의 아기를 유괴한 것도 모두 자기 자신의 자유 의지에 의한 것입니다.
범죄 예방국은 조직의 이익을 위해 제인을 무한 반복되는 지옥도로 끌어들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선택한 것은 제인입니다. 존이 제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면 템포럴 요원의 연결 고리를 끊겼겠지만 존과 제인은 행복하게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템포럴 요원이 제인의 아기를 유괴하지 않았다면 제인 은 미혼모이긴 하지만 사랑하는 딸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타임 패러독스]는 제인의 무한 반복되는 지옥도 속에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흥미로운 수수께끼를 관객에게 던졌고, 이 모든 것은 결국 내 자신의 책임이라며 따끔한 일침을 가합니다. 그것이 이 영화에 대한 여운의 정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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