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5년 아짧평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 나는 뽀르뚜가와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

쭈니-1 2015. 2. 7. 23:51

 

 

감독 : 마르코스 번스테인

주연 : 후아오기 기에메 아빌라, 호세 드 아브레우

개봉 : 2014년 5월 29일

관람 : 2015년 2월 5일

등급 : 12세 관람가

 

 

병원에서의 네번째 영화

 

병원에서의 네번째 날 오전에 제가 선택한 영화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입니다. 사실 이 영화는 웅이와 함께 보려고 다운로드 받아놓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구피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웅이와 함께 보는 것에 대해서 반대했었습니다. 저는 "동화를 원작으로한 영화인데..."라며 구피의 반대를 이해하지 못했었지만, 구피는 단호했습니다. "이 영화는 아직 웅이한테 보여주면 안돼."

구피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웅이에게 보여주지 못하게한 사연은 이러합니다. 결혼전 브라질의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했던 구피는 그곳에서 아는 분이 브라질의 소설인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번역하는 것을 지켜봤다고 합니다. J. M. 데 바스콘셀로스가 쓴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브라질 빈민가 소년인 제제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뽀르뚜가와의 우정을 통해 자신의 꿈을 펼쳐 나가는 내용입니다.

구피에 따르면 원작 소설은 브라질 빈민가의 상황을 상당히 적나라하게 묘사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국내에서는 어린이용으로 번역되었고, 따라서 원작 소설의 빈민가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순화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국내 번역된 어린이 동화와는 달리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원작에 충실한 브라질 영화라는 점에서 구피는 아직 이 영화를 웅이에게 보여주면 안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웅이에게 보여줄 수 없는 12세 관람가 영화!

 

웅이와 함께 보려고 다운로드 받았다가 웅이와 함께 볼 수가 없으니 결국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제 스마트폰 속에 오랫동안 고이 잠이 들어 있을 수 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병원에서 5일간 보내며 그동안 미뤄왔던 영화들을 대방출하면서 이 영화도 선택되었습니다.

사실 영화에 대한 큰 기대는 없었습니다. 웅이가 아니었다면 애초부터 관심을 가졌을 영화는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영화를 보다보니 나도 모르게 영화 속에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제를 연기한 아역 배우 후아오 기에메 아빌라의 연기가 귀여웠고, 제제와 뽀르뚜가(호세 드 아브레우)의 나이를 초월한 우정 또한 좋았습니다.

뽀르뚜가의 죽음이 너무 갑작스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뽀르뚜가와의 우정을 통해 한층 성숙해지는 제제의 이야기는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이 어떻게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구피가 우려했던 브라질 빈민가의 모습과 제제 아버지의 가정 폭력 등이 영화 속에도 표현되기는 하지만 웅이가 보면 안될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습니다.

 

 

 

개구쟁이 소년 제제와 그의 가족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주인공인 제제는 하루가 멀다하고 말썽을 부리는 소년입니다. 제제의 아버지는 실직자이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돈을 벌러 다니느라 몸이 불편합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가족들 또한 제제의 말썽을 좋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제제의 형은 "네 속엔 악마가 있어."라며 철없는 동생을 나무라고, 아버지 또한 제제에게 "왜 남들처럼 조용히 지내지 못하니?"라며 툭하면 때립니다.

하지만 제제에겐 남다른 상상력이 있습니다. 상상속의 동물원을 지어놓고, 그 곳에서 자신만의 상상을 하는 제제. 그러한 제제를 뽀르뚜가만은 이해합니다. 뽀르뚜가는 제제에게 "나에게 매일 멋진 이야기를 들려주렴"이라며 제제를 응원합니다.

영화를 보며 저는 제제의 아버지가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생활력을 잃은 가장인 그는 무기력하기만 할 뿐입니다. 그런 그는 제제의 말썽을 자신에 대한 반항으로 밖에 받아들이지 못한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여유가 없는 이는 자신의 주변 사람을 똑바로 바라볼 능력 또한 잃습니다. 그가 제제를 때리고, 제제에게 잔인한 독설을 퍼부을 때마다 그가 불쌍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아이들을 어른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자!

 

어쩌면 어른의 입장에서 본다면 제제는 못말리는 말썽꾸러기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지만 뽀르뚜가는 제제의 진면목을 알아본 것입니다. 제제의 상상력과 그 상상력이 빚어낼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현실에 지친 어른들이 보기엔 별것 아닌 어린 아이의 상상력이지만, 뽀르뚜가 덕분에 제제는 자신의 상상력을 펴고 작가로써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죠.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보고나니 이건 어린 아이들을 위한 성장 영화가 아닌, 어른이 봐야할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끔 우리 어른들은 어린 아이들을 자신의 기준 속에 가둬놓고 판단하려합니다. 그리고는 '이것 해라, 저것 해라'라며 자신의 뜻대로 아이들을 이끌으려고 하죠.

하지만 만약 제제가 그의 아버지가 원하는대로 남들과 같은 아이였다면 아버지와 같은 빈민가의 노동자로 살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내 아이에게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원한다면 내 기준이 아닌, 아이의 기준으로 바라보고, 아이의 능력을 개발해줘야할 것입니다. 그것이 쉽지 않으니 문제죠. 영화를 보고나서 나도 뽀르뚜가처럼 아이의 잠재력을 선입견없이 바라볼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