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진가신
주연 : 견자단, 금성무, 탕웨이, 왕우
개봉 : 2011년 11월 17일
관람 : 2015년 2월 4일
등급 : 15세 관람가
병원에서의 세번째 영화
[러시안 소설]과 [경주]로 연달아 두번이나 제 취향과는 정반대인 독립, 저예산, 예술 영화를 보고나니 머릿속이 띵했습니다. 물론 구피의 병간호를 해야 했기에 영화를 한번에 집중해서 쭈욱 본 것이 아닌, 여러번에 나눠 보기를 반복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감독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영화를 연달아 두번이나 본다는 것은 여간 곤욕스러운 경험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세번째 영화만큼은 재미 위주의 영화를 봐야 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무협]입니다. [무협]은 [금지옥엽], [첨밀밀], [퍼햅스 러브], [명장] 등을 연출했던 진가신 감독의 영화입니다. 게다가 요즘 중국영화의 대세라고 할 수 있는 견자단과 금성무, 그리고 제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탕웨이가 주연을 맡은 무협 액션 영화이기에 최소한 감독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불상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실제 [무협]은 그러한 제 기대에 부흥했습니다. 2011년에 개봉한 이 영화를 왜 이제서야 봤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무협]은 캐릭터에서부터 시작하여 액션, 스토리 등 모든 것이 제 마음에 쏙 들었던 영화였습니다.
초반을 이끄는 바이쥬의 매력
[무협]은 중국 청나라 말기, 서남부의 한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평화롭던 마을에 흉악한 2인조 강도가 상점을 덮치고, 현장에 있었던 종이 기술자 진시(견자단)는 우연히 2인조 강도를 막아냅니다. 사건 현장에 파견된 수사관 바이쥬(금성무), 그는 진시가 우연히 2인조 강도를 죽인 것이 아닌 고도의 살인 기술이 동원되었음을 눈치채고 진시의 정체를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무협]의 초반 재미는 바로 진시와 바이쥬의 팽팽한 기싸움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진시와 그것을 밝히려하는 바이쥬. 특히 바이쥬가 사건 현장에 남아 있는 흔적들로 사건을 재구성하는 장면은 뛰어난 영상미마저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바이쥬의 캐릭터입니다. 바이쥬는 오래전 양부모의 물건을 도둑질한 소년을 잡은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법보다는 인정을 믿고 소년을 돌려보냈고, 앙심을 품은 소년이 음식에 독을 타는 바람에 소년의 양부모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바이쥬 또한 목숨을 잃을뻔했었습니다. 그러한 기억으로 인하여 바이쥬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법의 집행에 집착합니다.
법이 우선인가? 인정이 우선인가?
사실 영화를 보면서 바이쥬의 행동이 과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진시는 아유(탕웨이)와 두 아이의 아버지로써 행복한 삶을 살고있었고 바이쥬는 그러한 진시의 행복을 깨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비록 진시가 고도의 살인 기술로 2인조 강도를 죽였다고해도 어차피 정당방위였고, 또한 흉악범을 죽인만큼 영웅으로 칭송받아야 마땅한 것입니다. 하지만 바이쥬의 눈엔 추악한 과거를 감추고 있는 진시 또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흉악범과 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진시의 정체를 밝혀내고 법 집행을 위해 도성에 가는 바이쥬. 그러한 바이쥬에게 지름길을 안다며 한적한 숲속으로 안내하는 진시. 이 장면은 [무협]의 중반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입니다. 바이쥬는 진시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생각에 잔뜩 긴장하지만, 정작 진시는 바이쥬에게 도성으로 가는 진짜 지름길을 안내했을 뿐입니다.
영화적 긴장감이 물씬 풍기는 이 장면에서 바이쥬가 집착하는 법의 집행과 진시가 바라는 과거를 잊고 새출발하려는 의지가 팽팽하게 맞섭니다. 과연 바이쥬의 선택이 옳은 것일까요? 아니면 진시의 의지가 옳은 것일까요? [무협]은 관객에게 진지한 질문을 던집니다.
영화의 후반부는 진시의 매력으로...
영화의 초반은 바이쥬가 이끌어 나갑니다. 정의로움으로 똘똘 뭉친 바이쥬는 과거의 기억 때문에 법 집행에 대한 집착이 과도하지만, 부정부패가 만연했던 청나라 말기가 영화적 배경임을 감안한다면 그에 청렴결백함에 쉽게 돌을 던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중반으로 흘러가면서 조금씩 진시의 존재감을 키워 나갑니다. 그리고 후반부에 가서는 진시의 매력으로 영화적 재미를 바꿔버립니다. 진시의 어두운 과거가 드러나자 진시의 아버지가 이끄는 72파 조직이 진시를 찾아 마을을 급습한 것입니다.
72파 조직의 교주인 아버지(왕우)와 마주한 진시의 결연한 모습, 그는 절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선언하지만 그의 아버지 또한 쉽게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부터 아버지와 아들의 결투가 펼쳐집니다. [무협]이 중국 액션영화로의 영화적 재미를 갖추기 시작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후반부에 이르러서부터입니다.
무협영화로 이렇게 진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단 말인가?
제가 [무협]에 만족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요소들입니다. [무협]은 영화의 초, 중반에 이중적인 캐릭터의 매력으로 영화를 이끌어 나갑니다. 어두운 과거를 지우고 싶은 진시와, 법 집행에 대한 집착때문에 장인까지 자살에 이르게 했던 바이쥬. 이 두 캐릭터는 주인공임과 동시에 멋진 영웅이 아니며, 또 서로 충돌하고 협동하면서 영화적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과거 외팔이 시리즈로 인기를 끌었던 왕우와 견자단이 무술 연기 대결을 통한 무협영화의 재미도 완성해 놓습니다. 물론 이 둘의 싸움이 조금 뜬금없이 끝나기는 하지만, 왕우와 견자단이 만들어내는 액션과 아버지와 아들의 감정 충돌은 충분히 박수받을만큼 멋졌습니다.
게다가 법과 사람 중 무엇이 우선인가를 묻는 진지한 질문도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무협영화에서 그러 진지한 질문을 할줄이야... 2011년에 개봉한 영화를 이제서야 봤을 정도로 [무협]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영화적 재미를 얻으니 병원에서의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린 기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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