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플렉스 할그렌
주연 : 로버트 구스타프슨, 이와 위클란더, 데이비드 위버그, 미아 스케링거
개봉 : 2014년 6월 18일
관람 : 2015년 2월 12일
등급 : 15세 관람가
간 큰 할배가 왔다.
2014년 6월 셋째주에 개봉한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라는 이상한 제목의 영화는 애초부터 제 기대작은 아니었습니다. 낯선 스웨덴 국적의 영화이며, 영화의 내용도 이게 도대체 무슨 영화인지 전혀 분간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영화에 대한 입소문이 좋았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코미디 영화라는 이웃 분들의 추천도 있었기에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어느사이 보고 싶은 영화가 되었습니다. 호시탐탐 이 영화를 보려고 기다렸다가 결국 지난 목요일 새롭게 개봉하는 신작 영화를 극장에서 못보는 아쉬움을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보는 것으로 대신하였습니다.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20세기 역사의 중요한 순간에 우연히 개입했던 알란 칼슨(로버트 구스타프슨)이 양로원에서 맞이한 100세 생일에 창문을 넘어 도망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코미디 영화입니다. 소소하게 웃을 수 있는 영화이며, 잔잔한 웃음 뒤에는 20세기 인류의 역사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과 인생에 대한 속깊은 철학이 담겨져 있기도 합니다.
알란... 그는 왜 창문을 넘었나?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자신의 애완견을 물어 죽인 여우에 대한 폭탄 복수의 결과 양로원에 갇히게된 알란이 자신의 100세 생일날 창문을 넘어 도망치면서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창문을 넘게 되었을까요?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 가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으면서 말이죠.
처음 알란에게 창문을 넘도록 충동질한 것은 폭약을 가지고 노는 어느 소년의 모습이었습니다. 어쩌면 알란은 그 소년에게서 자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젊은 시절 그랬던 것처럼 100세 생일인 그날도 그냥 마음이 내키는대로 행동을 했고, 그것이 따분한 양로원에서 도망치는 결과가 된 것이죠.
알란은 그런 식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가 연달아 돌아가시고, 고아가 된 알란은 "너무 걱정하지마. 아빠는 생각만 많아서 사는 게 힘들었잖니. 괜히 고민해봤자 도움 안돼.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거고, 세상은 살아가게 돼있어."라는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을 인생의 철학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그냥 흘러가는대로 사는 인생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스토리 라인은 두갈래로 진행됩니다. 하나는 우연히 갱단의 검은 돈을 손에 넣은 알란이 갱단에게 쫓기는 와중에도 줄리어스(이와 위클란더), 베니(데이비드 위버그), 구닐라(미아 스케링거)를 만나며 의도치 않은 신나는 모험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다른 하나는알란에 의해 회상되는 젊은 시절의 알란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여 저항군과 함께 싸웠고, 우연히 파시스트 프랑코의 목숨을 구해주며 그의 친구가 되기도합니다. 미국 원자폭탄 프로젝트인 맨해튼 프로젝트의 치명적인 결함을 우연히 해결해서 제2차 세계대전을 종결시키고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정치 멘토로 활약했고, 소련으로 납치되어 스탈린을 만나고, 소련의 강제수용소에서 아인슈타인의 바보 동생을 만나 우연히 탈출을 했으며, 미국 CIA요원으로 발탁되어 미국와 소련의 이중 스파이가 되기도 합니다.
급기야 베를린 장벽 붕괴에 우연히 일조하는 알란의 모습은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최고 재미입니다. 알란은 어머니의 유언 그대로 그냥 돼는대로 살았고, 우연에 우연이 겹치며 그의 인생은 20세기의 파란만장한 역사에서 한페이지를 장식한 것입니다.
그의 인생은 과연 우연일 뿐일까?
하지만 우리가 한가지 생각해봐야 할 것은 과연 알란이 20세기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이유가 순전히 우연 때문일까? 라는 점입니다. 사실은 아닙니다. 물론 우연처럼 보이지만 알란의 파란만장한 인생은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릅니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폭탄 제조에 남다른 관심을 가짐으로써 시작된 필연인 셈입니다.
20세기, 알란이 관여한 인류의 역사를 보면 전쟁의 역사라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스페인 내전에서부터 시작해서 제2차세계대전, 그리고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 등. 지구촌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였던 그렇기에 전쟁에서 손쉽게 승리할 수 있는 폭탄의 제조는 강대국의 필수였습니다. 폭탄 제조에 대한 알란의 재능은 그러한 20세기였기에 독재자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20세기 인류의 역사에 대한 풍자입니다. 그냥 될대로 살았던 알란처럼... 20세기 전쟁에 대한 인류의 역사는 인류 발전이라는 목표를 가진 투쟁의 역사가 아닌, 그냥 아무 생각없이 무조건 치고 받고 싸웠던 광기의 역사였음을 이 영화는 알란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은 살아가게 돼있어.
알란의 과거가 20세기 광기의 역사에 대한 냉소적인 비판이라면 100세가 되어 도망친 알란의 모험은 인생에 대한 속깊은 철학이 담겨져 있습니다. 한가지를 배우면 또다른 것이 궁금해서 평생 학생으로 지내고 있는 베니처럼 어쩌면 우리 현대인들은 너무 생각이 많은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현대인들에게 알란은 조언합니다. "소중한 순간이 오면 따지지 말고 누릴 것. 우리에게 내일이 있으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사실 영화의 초반엔 알란이라는 캐릭터가 불편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이미 폭탄 실험 중 실수로 이웃 식료품 가게 주인을 죽였으며, 100세가 된 이후에도 줄리어스와 함께 돈가방을 쫓는 갱단을 죽이는 살인 행각을 벌여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광기 가득한 전쟁의 역사에서 살아왔던 알란임을 감안한다면 어쩌면 그가 갱단의 죽음에 별 것아니라는 듯이 반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알란의 캐릭터를 너그럽게 바라본다면 어느덧 발리의 해변가에서 여유롭게 일광욕을 누리는 알란의 모습에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깨닫게 되겠죠. 세상은 살아가게 돼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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