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5년 영화이야기

[쎄시봉] - 나 그대에게 촉촉한 감성을 모두 드리리

쭈니-1 2015. 2. 17. 15:44

 

 

감독 : 김현석

주연 : 정우, 한효주, 진구, 강하늘, 조복래, 김윤석, 김희애, 장현성

개봉 : 2015년 2월 5일

관람 : 2015년 2월 16일

등급 : 15세 관람가

 

 

안보고는 베길 수가 없었다.

 

2월 한달동안 극장 가는 것을 자제하기로 결심하면서 저는 한가지 계획을 세웠습니다. 만약 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면 꼭 극장에서 봐야 영화적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스펙타클한 SF, 판타지, 액션 영화를 먼저 보고, 다운로드로 봐도 크게 상관이 없는 코미디, 멜로 영화는 후순위로 미루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그 계획의 결과 [주피터 어센딩], [7번째 아들]을 극장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이 두 영화는 SF, 판타지 영화이면서 웅이와 함께 볼 수 있는 12세 관람가 등급의 영화이기에 제 계획에 딱 알맞은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영화 기대작인 [내 심장을 쏴라], [쎄시봉]은 아쉽지만 다운로드로 볼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혼자 극장에 갈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자 갑자기 고민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제 계획대로라면 당연히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를 봐야합니다. 이 영화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영화라 설연휴에 웅이와 함께 볼 수도 없습니다. 게다가 극장에서 봐야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스파이 액션 영화이며, [조선명탐정 : 사라진 놉의 딸]과 함께 흥행에도 성공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정도면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는 우선순위 영화로 딱 알맞은 셈입니다.

 

하지만 제 마음은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가 아닌 자꾸 [쎄시봉]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쎄시봉]은 스케일이 큰 영화는 아니기에 극장이 아닌 다운로드로 봐도 무방한 영화입니다. 게다가 설연휴 대목을 노리며 야심차게 개봉했지만, 개봉 2주차에 흥행 성적이 급락하며 일찌감치 흥행 실패작 판정을 받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성적으로 따진다면 당연히 [쎄시봉]이 아닌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를 봐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인터넷 연예 기사에서 [쎄시봉]의 흥행 실패 원인을 분석하며 '영화가 재미없기 때문에...'라는 놀랍도록 직설적인 평을 읽은 이후 제 몹쓸 호기심이 또 다시 발동하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영화가 얼마나 엉망이기에...'

영화 관계자들은 [쎄시봉]이 개봉하기 전부터 대부분 흥행을 점쳤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TV에서부터 불어닥치기 시작한 과거 문화에 대한 향수를 [쎄시봉]은 고스란히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케이블 드라마인 <응답하라 1994>를 통해 90년대 문화의 향수를 일으킨 주역인 정우가 [쎄시봉]의 주연을 맡았으니 이 영화의 흥행은 떼논 당상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영화의 약점을 잡을 심산으로 영화를 보다.

 

저는 영화를 재미있게 보기 위해 극장을 찾습니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면서도 영화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찾으려 애쓰고, 그 장점을 토대로 스스로 영화를 재미있게 보려고 노력을 하려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끔은 '영화가 얼마나 엉망이길래'라는 호기심으로 영화를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영화의 흥행 실패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영화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찾으려 애씁니다.

사실 [쎄시봉]이 그러한 경우입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저는 나름대로 [쎄시봉]의 흥행 실패 원인에 대해서 생각해봤습니다. 제가 예상한 흥행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쎄시봉'이라는 매력적인 과거 문화의 향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오근태(정우)와 민자영(한효주)의 사랑이라는 멜로라는 손쉬운 장르 영화의 장치에 매달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으니 당연히 영화 초반에 '쎄시봉'에서 조영남이 <딜라일라>를 부르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하여 윤형주(강하늘)와 송창식(조복래)의 노래 경연 장면은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70년대 음악의 감미로움은 중년 아저씨인 제 마음을 움직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주인공인 오근태와 민자영의 사랑이 본격적으로 부각되자 '그래, 드디어 시작되었구나.'라며 두 눈을 부릅뜨고 단점 찾기에 나선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저는 [쎄시봉]에 대한 차가운 시선을 거두고 있었습니다. 물론 인정합니다. 제가 중년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멜로 영화를 유난히 좋아한다는 사실을... 하지만 [쎄시봉]의 단점 찾기로 시작된 제 영화 감상이 어느 순간부터 근태와 자영의 사랑 이야기에 흠뻑 빠져 버렸다는 것은 그만큼 이 영화의 스토리 전개가 탄탄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근태와 자영의 사랑 이야기에 딴지를 걸자면 저 역시 한도 끝도 없이 걸 수 있습니다. 우선 젊은 시절 근태와 자영의 사랑 이야기는 그다지 특색이 없습니다. 통금시간, 미니스커트 단속 등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풍경을 이용한 몇몇 에피소드만 [쎄시봉]이 70년대를 배경으로한 멜로 영화라는 정체성을 알려줄 뿐입니다.

게다가 자영이 근태를 떠나야만 하는 사정이 생략되어 있어서 이 두 사람의 슬픈 사랑에 대한 감정이입을 어렵게 만듭니다. 그녀는 왜 사랑하는 근태를 떠나 사랑하지 않는 남자의 품에 안겨야 했을까요? 김현석 감독은 [쎄시봉]을 철저하게 근태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맞춤으로써 반대급부에 자리잡은 자영의 캐릭터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한편의 잘 짜여진 뮤직 드라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근태와 자영의 사랑 이야기에 흠뻑 빠져 버렸습니다. 특히 2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후 미국에서 우연히 마주친 중년의 근태(김윤석)와 자영(김희애)의 사연은 제 코끝을 찡하게 만들었습니다. 근태는 왜 20년이라는 세월동안 죄인처럼 모습을 감추고 살아야 했는지... 비행기 탑승 게이트에서 결국 주저앉아 흐느껴 우는 근태의 모습에서 저는 '도대체 영화가 얼마나 엉망이길래'라는 삐뚤어진 마음이 사르르 녹아 버렸습니다.

사실 근태와 자영의 사랑은 하나 하나 짚어 보면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는 그저 엇갈린 사랑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평범해 보이는 사랑 이야기에 특별함을 불어 넣은 것은 바로 음악입니다. 왜 이 영화가 '쎄시봉'을 소재로 선택해야 했는지, 근태와 자영의 사랑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70년대 포크송이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쎄시봉]에서 흘러나오는 윤형주(강하늘), 송창식(조복래), 이장희(진구)의 노래들은 근태와 자영의 사랑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서 이런 식입니다. '쎄시봉' 친구들과 놀라간 해변에서 흘러나오는 윤형주의 <조개 껍질 묶어>, 송창식이 자영에게 차였을 때 흘러나오는 <담배가게 아가씨>, 근태와 자영의 사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을 때 흘러나오는 이장희의 <그건 너>는 노래의 가사와 영화 속의 상황이 교묘하게 맞아 떨어집니다.

 

그렇기에 [쎄시봉]은 한편의 잘 짜여진 뮤직 드라마같습니다. '쎄시봉' 멤버들의 노래와 근태와 자영의 사랑 이야기를 무리 없이 엮어낸 김현석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순간입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와 <웨딩 케이크>의 음악이 흘러나올 때가 가장 가슴 아팠습니다.

이장희가 작사, 작곡한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는 자영을 향한 근태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대변합니다. "넌 날 위해 뭘 해줄 수 있어?"라는 자영의 물음에 근태는 대답대신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불러줍니다.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자신의 가진 것을 모두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근태의 마음이 이 서정적인 노래와 함께 잘 어우러진 것입니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가 근태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대변하는 노래라면, 번안가요인 <웨딩 케이크>는 근태를 두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야 하는 자영의 마음을 대변하는 노래입니다. 사실 코니 프란시스가 부른 원곡은 평범한 주부의 일상을 노래한 곡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윤형주와 송창식이 결성한 트윈 폴리오의 <웨딩 케이크> 가사는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야 하는 여자의 슬픈 심경을 노래합니다. 

이제 밤도 깊어 고요한데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잠 못 이루고 깨어나서 창문을 열고 내어다 보니 사람은 간 곳이 없고 외로이 남아 있는 저 웨딩 케익. 그 누가 두고 갔나 나는 아네. 서글픈 나의 사랑이여. 이 밤이 지나가면 나는 가네. 원치 않는 사람에게로.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가네. 그대 아닌 사람에게로. 이 밤이 지나가면 나는 가네. 사랑치 않는 사람에게로. 마지막 단 한 번만 그대 모습 보게 하여 주오. 사랑아. 아픈 내 마음도 모르는 채 멀리서 들려오는 무정한 새벽 종소리. 행여나 아쉬움에 그리움에 그대 모습 보일까. 창 밖을 내어다 봐도 이미 사라져 버린 그 모습. 어디서나 찾을 수 없어. 남겨진 웨딩 케익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 흘리네. 남겨진 웨딩 케익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 흘리네.

 

 

배우들의 연기는 갑이다.

 

영화의 마지막 엔딩 크레딧에서 <웨딩 케이크>가 흘러 나올때 저는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물론 김현석 감독이 왜 자영이 근태를 두고 그러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설명하지 않는 바람에 끝까지 자영의 선택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은 이제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저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와 같은 사랑을 안고 사는 중년의 근태와 자영의 모습만으로도 제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으니까요.

만약 [쎄시봉]이 '쎄시봉'을 소재로 하지 않은 사랑 이야기라면 이 영화 속의 근태와 자영의 사랑은 그저 흔한 70년대 신파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쎄시봉'의 주옥같은 노래들을 그들의 사랑에 끼워 넣음으로써 감동적인 뮤직 드라마 한편을 본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쎄시봉]을 만족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입니다. 특히 이장희를 연기한 진구는 이 영화의 화자이면서 결코 도드라지지 않고 '쎄시봉'과 근태의 사랑을 주변에서 바라보는 관찰자 역할에 충실합니다. [쎄시봉]에 출연하는 젊은 배우 중에서 가장 출중한 연기력을 지닌 진구였기에 가능한 매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외모에서부터 송창식, 윤형주, 조영남과 빼다 박은 조복래, 강하늘, 김인권의 연기도 너무 좋았습니다. 특히 특별출연인 김인권은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매력을 영화 속에서 완벽하게 표현해냈습니다. 그러한 배우들의 명연기가 있었기에 [쎄시봉]은 70년대 주옥같은 노래와 근태와 자영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버무러진 것입니다.

'도대체 영화가 얼마나 엉망이길래'라는 마음으로 극장에 들어갔던 것과는 달리 [쎄시봉]이 끝나고나서는 영화에 대한 여운을 가슴 한 가득 안고 나왔습니다. 입가에서는 연신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와 <웨딩 케이크>가 맴돌았고, 중년의 근태에 흐느껴 우는 장면이 자꾸만 떠올라 내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가 왜 흥행에 실패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겠다는 몹쓸 호기심은 사라지고, 역시 영화는 저를 행복하게 한다는 사실만을 다시금 깨달았답니다.

그날 밤 집에서 정우, 한효주, 김윤석, 김희애가 부른 [쎄시봉]의 OST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몇번이고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김희애가 부른 <웨딩 케이크>도 듣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찾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OST를 따로 구매라도 해야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쎄시봉]은 영화에 대한 갈증에 목말라하고 있는 제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준 고마운 영화입니다.

 

어쩌면 [쎄시봉]이 왜 흥행이 실패했는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그건 전문가들이 분석할 숙제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내게 [쎄시봉]은 70년대 포크송의 감미로운 선율

가슴 아픈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해준 영화라는 사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