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5년 영화이야기

[7번째 아들] -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닌, 인간과 마녀의 사랑에 집중했어야 했다.

쭈니-1 2015. 2. 17. 10:17

 

 

감독 : 세르게이 보드로프

주연 : 벤 반스, 제프 브리지스, 줄라안 무어, 알리시아 바칸데르

개봉 : 2015년 2월 11일

관람 : 2015년 2월 15일

등급 : 12세 관람가

 

 

내 최후의 보루는 웅이이다.

 

아픈 구피를 위해 2월 한달간 극장 출입을 자제하겠다고 스스로 다짐은 했지만, 보고 싶은 기대작이 새롭게 개봉할 때마다 제 다짐은 마구 흔들립니다. 게다가 구피는 자꾸 저를 시험에 들게 합니다. "나는 괜찮으니 오늘 영화보고 와!"라는 구피의 한마디는 제 굳은 다짐을 무너지기 일보직전까지 몰고 갑니다.

그러나 저는 꿋꿋하게 "아픈 너를 혼자 두고 어떻게 영화를 보러 가니. 난 괜찮아."라며 아직까지는 유혹에 빠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이렇게 나답지 않게 유혹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웅이 덕분입니다. 비록 혼자 영화를 보러 가지는 못하지만 주말이면 웅이 핑계를 대고 웅이와 함께 영화를 보러 다닌 것입니다.

2월 첫째주 주말에는 [주피터 어센딩]을 봤고, 2월 둘째주 주말에는 [7번째 아들]을 보고 왔습니다. 구피는 "[7번째 아들]은 나도 보고 싶었던 영화인데..."라며 절규했지만, 저는 "웅이의 봄 방학 기념으로 영화를 보여주고 올께."라며 서둘러 웅이와 함께 극장으로 향한 것이죠. 이렇게 웅이 핑계라도 될 수 있으니 영화에 대한 제 갈증은 버틸만한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요즘들어서 저는 웅이와 함께 볼 수 있는 12세 관람가 등급의 영화가 개봉하지 않나? 기다리고 있답니다. 그래서 가벼운 스파이 액션처럼 보였던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을 때 실망해야 했습니다.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가 12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면 설날 연휴에 웅이와 보러 갈 수 있었을텐데...

그렇기에 웅이와 함께 보기에 딱 적당한 [7번째 아들]이 개봉해줘서 얼마나 반가운지 모릅니다. 이 영화는 12세 관람가 등급의 영화라는 점 외에도 저희 가족이 기대할만한 요소가 많은 영화입니다. 우선 장르가 판타지이고, 웅이가 (사실은 저도) 좋아하는 드래곤과 각종 괴물들도 나옵니다. 웅이와 재미있게 봤던 [나니아 연대기 : 캐스피언 왕자]와 [나니아 연대기 : 새벽출정호의 항해]의 벤 반스를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저희 가족에겐 기대요소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7번째 아들]은 북미 개봉에서도 흥행에 참패했고, 국내 개봉에서도 조용히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저와 웅이는 영화를 보고나서 퇴마사가된 톰(벤 반스)의 본격적인 활약이 펼쳐질 2편을 기대해지만, 아무래도 2편은 나오기 힘들 것 같네요.

 

 

마녀와 인간의 전쟁, 아니 사랑

 

[7번째 아들]은 어둠의 힘을 지닌 마녀와 퇴마사의 전쟁을 담은 영화입니다. 사실 마녀라는 존재는 중세를 배경으로한 판타지 영화에서 악의 존재로 자주 등장합니다. 하지만 [7번째 아들]에서 마녀는 그저 단순한 악의 존재가 아닌 좀 더 복잡미묘한 존재입니다.

그러한 복잡미묘한 마녀의 존재는 [7번째 아들]의 악의 근원인 멀킨(줄리안 무어)에게서부터 시작합니다. 사실 그녀가 처음부터 어둠의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멀킨은 그레고리(제프 브리지스)와 사랑하는 관계였지만, 그레고리가 멀킨을 배신하고 인간 여성과 결혼을 하자 질투심으로 인하여 그레고리의 아내를 죽이고 어둠의 존재가 된 것입니다.

멀킨 뿐만이 아닙니다. 멀킨의 동생 역시 인간 남자와의 사이에서 앨리스(알리시아 바칸데르)를 낳았고 앨리스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을 바칠 정도로 끔찍히 아낍니다. 주인공인 톰의 어머니(올리비아 윌리암스)도 인간과 결혼한 마녀입니다. 이쯤되면 [7번째 아들]의 마녀는 무조건적인 악의 존재가 아닌 마녀라는 이유로 인간과의 사랑을 이루지 못한 슬픈 존재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마녀라는 존재에 대한 [7번째 아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마녀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톰과 앨리스의 사랑으로 연결됩니다. 톰은 마녀와 싸워야 하는 퇴마사이고, 앨리스는 퇴마사와 맞서 싸워야 하는 멀킨의 수하이지만, 그러한 역설적인 관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7번째 아들]이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그러한 점입니다. 이 영화는 마치 어둠의 존재들을 불러 모아 인간 세상을 멸망시키려 하는 대마녀 멀킨과 그러한 멀킨의 음모를 막아야 하는 퇴마사 그레고리, 톰의 대결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겉모습과는 달리 영화의 내면에는 마녀와 인간의 사랑이라는 키워드가 숨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영화 후반부에서 멀킨의 부하들과 그레고리와 톰의 끝장 대결은 어쩌면 싱겁게 보이기도 합니다. 선과 악, 인간과 마녀의 대결이 아닌, 사랑에 상처입은 멀킨의 복수심과 그러한 눈먼 복수심에 맞서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한 이들의 전투이기 때문입니다. [7번째 아들]이 판타지 영화이면서도 [반지의 제왕 3부작]과 같은 스펙타클한 전투씬을 보여주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영화의 재미는 판타지 특유의 스펙타클이 아니다.

 

[반지의 제왕 3부작]이 절대악인 사우론을 내세웠고, [해리 포터 시리즈]는 볼드모트라는 절대악을 내세웠습니다. 이렇듯 흥행 신화를 이룬 판타지 영화들이 절대악을 내세우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판타지 영화에서 어마어마한 절대악의 위력은 곧바로 영화의 스펙타클한 재미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절대악을 무찌르지 않으면 세상이 멸망할 수 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은 절대악과 맞서 싸우는 진영에게도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맞서 싸울 수 밖에 없는 절박감을 안겨줍니다. 그러한 절박감이 판타지 영화의 스펙타클을 이루는 요소인 셈입니다.

하지만 [7번째 아들]은 멀킨을 절대악이 아닌 그레고리에 대한 사랑에 상처입은 가련한 존재로 그렸습니다. 그렇기에 100년에 한번 뜬다는 붉은 달의 힘으로 부활한 멀킨과 악의 군단은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발휘하기보다는 그레고리에 대한 멀킨의 개인적 복수로 정조준이 되어 있습니다. 한 예로 멀킨과 악의 군단은 인간 세상을 공격하지만 그 공격의 범위는 고작 그레고리가 주둔하던 마을 하나에 그쳤습니다. 이렇게 멀킨의 공격 자체가 스케일이 작은데 영화에서 판타지 특유의 스케일을 느낄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결국 [7번째 아들]은 절대악에 맞서 싸우는 스펙타클한 판타지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최고의 암살자라는 라두(디몬 하운스), 날렵한 표범의 형상을 하고 있는 사리킨, 그리고 곰의 힘을 가진 우라그 등 개성 강한 악의 군단과 보가트라는 무시무시한 괴물을 내세우기는 하지만, 이 역시도 영화의 재미로 연결되지 못합니다.

이런 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저와 웅이는 [7번째 아들]을 재미있게 봤지만, 그와는 별도로 이 영화가 속편 제작이 무산될 가능성이 클 정도로 흥행에 실패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스펙타클한 재미를 갖춘 판타지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7번째 아들]은 그러한 재미를 안겨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개성 강한 악의 군단과 각종 괴물들 마저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싱겁게 소모되는 가운데 [7번째 아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재미라도 구축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제대로 구축되지 못했습니다. [7번째 아들]만의 독특한 재미는 바로 그레고리와 멀킨으로 대변되는 인간과 마녀 간의 엇갈린 사랑입니다. 세르게이 보드로프 감독은 액션 활극과 같은 장면들을 포기하더라도 멀킨과 그레고리의 관계를 좀더 심도깊게 그렸어야 했습니다.

 

 

인간을 사랑한 마녀의 슬픈 운명

 

분명 멀킨은 줄리안 무어라는 출중한 연기력을 가진 배우로 인하여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무리 줄리안 무어의 연기력이 카리스마가 넘치더라도 영화에서 멀킨의 비중을 줄여 버리니 멀킨은 매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7번째 아들]은 영화의 타이틀롤인 '7번째 아들의 아들'이라는 톰의 캐릭터를 완성하기 위해 멀킨의 캐릭터를 등한시합니다. 그러나 만약 이 영화가 좀더 멀킨과 그레고리의 사랑과 증오의 관계를 심도깊게 그렸다면 그에 대비되는 톰과 앨리스의 관계 또한 빛을 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찌되었건 이 영화는 인간과 마녀의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닌, 인간과 마녀의 사랑을 담은 영화이니까요.

멀킨은 절대악이 되기엔 부족한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7번째 아들]이 멀킨의 복잡미묘한 캐릭터를 영화 속에 잘 표현된 것도 아닙니다. 그로인하여 멀킨은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캐릭터가 되었고, 멀킨이 어정쩡한 캐릭터가 되니 그녀의 부하인 악의 군단 또한 비실비실해져 버렸습니다. 그것이 [7번째 아들]에서 스케일을 포기한 것보다 더 아쉬운 점입니다.  

 

[7번째 아들]을 보며 저는 그것이 아쉬웠습니다. 멀킨의 캐릭터만 잘 살려냈다면 분명 [반지의 제왕 3부작], [해리 포터 시리즈]와는 차별화된 좀 더 독특한 판타지 영화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멀킨이라는 선도, 그렇다고 절대악도 아닌 캐릭터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이 영화는 톰에 집중하느라 멀킨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맙니다.

분명 톰은 이 영화의 주인공입니다. 하지만 [7번째 아들]에서 톰의 역할은 그레고리에게 퇴마사로써 수련을 받는 풋내기에 불과합니다. [7번째 아들]이 결국 톰의 성장담을 담은 영화라고는 하지만, 그렇게 톰에게 집착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이 영화를 시리즈로 만들 생각이었다면 1편은 그레고리와 멀킨에게 집중하고, 이 둘의 애증의 관계를 통해 톰과 앨리스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지혜로움을 배우는 것으로 진행했어야 했습니다.

결국 [7번째 아들] 역시 시리즈로 시작되었지만, 결코 2편은 없는 또 다른 판타지 영화가 되어버렸습니다. [황금 나침반]이 그러했고, [에라곤], [라스트 에어벤더]도 그러했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캐릭터를 좀 더 세밀하게 완성했다면, 그래서 1편에 그치지 않고 시리즈로 만들어졌다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다양한 재미를 안겨줄 수 있는 영화였는데... 제 개인적으로 아쉽기만 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퇴마사로써 톰의 성장담이 아닌

멀킨과 그레고리의 엇갈린 사랑이 더 궁금했다.

멀킨 캐릭터의 완성도만 좀 더 높였다면

충분히 인간과 마녀의 사랑에 대한 독특한 판타지 영화가 되었을텐데...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