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5년 영화이야기

[빅 아이즈] -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무언가를 창작해본 사람들을 위한 영화

쭈니-1 2015. 1. 29. 16:05

 

 

감독 : 팀 버튼

주연 : 에이미 아담스, 크리스토프 왈츠, 대니 휴스턴

개봉 : 2015년 1월 28일

관람 : 2015년 1월 28일

등급 : 12세 관람가

 

 

내 분신을 빼앗겼을 때의 분노

 

몇년전 아주 우연히 제가 쓴 영화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닉네임으로 포털 사이트에 게시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 제 글을 복사한 후 자신이 직접 쓴 것처럼 꾸민 것이죠. 당시 얼마나 화가 나던지... 당장 글이 게시된 포털 사이트에 메일을 보내서 글을 삭제해달라고 요청을 했고, 며칠이 지난 후에야 겨우 해당글을 삭제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 홈페이지의 유행을 타고 2002년쯤 영화를 주제로한 개인 홈페이지를 시작했던 저는 2009년 개인 홈페이지를 폐쇄하고 Daum 블로그로 자리를 옮겼지만, 영화에 대한 제 글은 14년째 계속 연재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도 모르게 제가 쓴 글에 대한 애착이 생겨 버렸습니다. 물론 제 글이 영화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춘 다른 분들의 글과 비교해서 한참 모자라지만, 제 글은 어느 사이 제겐 분신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애착은 분명 제게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웅이의 경우만해도 웅이가 직접 창작한 캐릭터인 모자룡에 대한 애착이 상당히 강합니다. 그렇기에 학교 친구들이 모자룡을 자꾸 표절한다며 걱정을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2014년 4월, 구피가 웅이의 모자룡을 저작권 등록하여 영원히 웅이의 것임을 공식적으로 인증해 주기도 했습니다.

 

제가 갑자기 제 글을 도둑맞았던 몇년전의 불쾌한 기억을 다시금 꺼내든 것은 [빅 아이즈]를 보고 왔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가 극장에서 [빅 아이즈]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팀 버튼 감독의 영화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독창적인 영화 세계가 마가렛 킨과 월터 킨이라는 실존 인물의 삶과 만나면 어떻게 변형될런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제 기대와는 달리 [빅 아이즈]는 팀 버튼 감독의 독창적인 영화 세계와는 그다지 상관관계가 보이지 않는 영화였습니다. 그 대신 남편에게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창작물인 '빅 아이즈'를 빼앗긴 마가렛(에이미 아담스)의 사정에 깊은 공감이 되었습니다. 팀 버튼 감독은 자신의 독창적인 영화 세계를 잠시 포기한 대신 마가렛이 어쩌다가 '빅 아이즈'를 월터(크리스토프 왈츠)에게 빼앗겼고, 어떻게 되찾았는지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들여다 보았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팀 버튼 감독은 마가렛과 월터의 실제 사진을 관객에게 보여줍니다. 그 순간 에이미 아담스와 크리스토프 왈츠의 싱크로율에 놀랬고, 자신의 분신인 '빅 아이즈'를 되찾은 마가렛의 편안한 모습에 찡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빅 아이즈]는 프로이건, 아마추어이건,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무언가를 창작해본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영화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남자들의 천국이었던 1950~60년대 미국

 

팀 버튼 감독은 유명인의 가십을 다루는 컬럼니스트 딕 놀란(대니 휴스턴)의 나래이션을 통해 마가렛 킨과 월터 킨의 놀라운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딕의 나래이션이 '1950년대는 남자들의 천국'이라는 전제로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어린 딸과 함께 가출을 시도한 마가렛을 두고 '여성들의 가출이 유행하기 훨씬 이전에 그녀는 이미 남편을 두고 가출을 했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마가렛이 자신의 분신인 '빅 아이즈'를 월터에게 빼앗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는데 굉장히 중요합니다. 흔히들 1950년대부터 60년대 초반 아이젠하워 시대의 미국을 '풍요한 사회'라고 불렀습니다. 뉴딜 정책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소득분배의 평등화가 이뤄졌고, 그러한 소득의 재분배는 사회 계급의 간격을 줄여놓았습니다. 그에 따라 미국은 동질화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었고, 이는 다수의 생활 방식에 따라야 한다는 의식이 미국인 사이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1963년을 배경으로한 [헬프]를 보면 '풍요한 사회' 미국의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남편이 벌어다준 돈으로 우아한 중산층 삶을 사는 백인 여성들. 하지만 그녀들의 실상은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하고 남편의 삶에 얽매여 있습니다. 마가렛은 바로 그러한 '풍요한 사회'에 과감하게 경제적 독입을 외치며 남편과의 이혼을 선언한 것입니다. 

 

아무리 '풍요한 사회'라고 하지만 남성이 아닌 여성 혼자만의 힘으로 어린 딸을 키우면서 혼자 독립된 생활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웠던 시절입니다. 사람들은 이혼녀인 마가렛을 색안경끼고 쳐다보고, 전남편은 경제능력을 이유로 딸의 양육권을 빼앗으려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마가렛이 화가로써 명성을 얻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그저 가구점에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근근히 버틸 뿐입니다.

마가렛의 상황이 이렇게 절박할 때 월터가 '짠'하고 등장합니다. 뛰어난 언변가인 그는 단숨에 마가렛의 마음을 사로 잡았고, 마가렛은 월터와의 결혼을 통해 경제적 문제 해결은 물론 딸의 양육권까지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불평등한 관계는 마가렛에게 월터에 대한 마음의 빚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월터가 아무리 불합리적인 행동을 해도 마가렛의 입장에서는 '월터가 내게 해준 것이 있는데...'라며 꺾일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재능이 있어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그러한 재능을 맘껏 펼칠 수 없었던 1950년대. 마가렛은 그렇게 자신의 분신을 월터에게 빼앗길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한 요즘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팀 버튼 감독은 영화의 시작에서부터 '당시는 남자들의 천국이었다.'라는 나래이션을 통해 1950년대 시대적 상황을 관객에게 주입을 시킨 것입니다.

 

 

돈은 포기하기 힘든 마약이었다.

 

여성이라는 굴레로 인하여 화가로써 성공하기 힘들었던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월터에 대한 마음의 빚 때문에 마가렛은 자신의 분신 '빅 아이즈'를 월터에게 넘기는데 합의하고 맙니다. 하지만 마가렛과 월터의 거짓말이 10년이 넘도록 이어진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바로 거짓말을 통해 이뤄진 경제적 풍요입니다. 

마케팅 능력만큼은 타고난 천재였던 월터는 '빅 아이즈'를 통해 커다란 사회적 성공을 이룹니다. 유명 인사들에게 '빅 아이즈'를 선물하는 등 잦은 언론 노출로 '빅 아이즈'의 인지도를 높여 놓았고, 그림 뿐만 아니라 복사된 대량의 포스터를 판매함으로써 당시 미술업계에선 파격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대중화의 대혁신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 덕분에 마가렛은 호화스러운 대저택에서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가 있었던 것이죠.

'빅 아이즈'가 월터의 작품이 아닌 마가렛의 작품임이 밝혀질 위기에 처할 때마다 월터는 마가렛을 협박합니다. 이 모든 진실이 밝혀지면 그동안 우리가 누려왔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돈을 다시 되돌려줘야 한다고... 가난해도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며 어린 딸과 함께 사는 삶에 만족했던 마가렛은 경제적 풍요를 누림으로써 그것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다른 소중한 것들을 포기하기에 이릅니다.

 

호화로운 대저택에서 오랜 친구인 디앤을 초대한 마가렛. 하지만 그녀의 표정에서는 행복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녀는 돈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했습니다. 분신인 '빅 아이즈'를 포기했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도 더이상 좋아서가 아닌 월터의 돈벌이를 위한 기계적인 행동에 불과합니다. 딸에게도 거짓말을 해야 했던 그녀는 더이상 행복을 위해 가출한 용감한 여성이 아니었습니다.

참 어리석죠? 하지만 그것이 바로 돈의 힘입니다. 저 또한 Daum 블로그를 시작하고나서 돈의 유혹을 끊임없이 받았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영화가 좋고 영화를 보고나서 영화에 대한 제 느낌을 글로 쓰는 것이 좋아서 시작했던 영화 블로그였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돈의 유혹에 빠져들어서 업체에서 요구한 글을 써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업체의 제안이 많을 때에는 글을 써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지금 뭘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돈을 벌려고 영화 블로그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래서 지금은 업체의 제안을 대부분 거부하고 있습니다.

[빅 아이즈]를 보며 저는 월터의 돈벌이를 위해 무의미하게 '빅 아이즈'를 그리는 마가렛이 느꼈을 압박감과 스트레스가 이해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법원에서 '빅 아이즈'를 그릴 때 그녀의 당당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분명 '빅 아이즈'를 그리는 같은 행위였지만, 거짓과 돈의 굴레에서 벗어난 그녀의 표정은  즐거워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이것 또한 팀 버튼의 영화이다.

 

아무런 즐거움 없이 그저 기계적으로 그리는 마가렛의 '빅 아이즈'는 미술 평론가에게 혹평을 받습니다. 물론 월터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빅 아이즈'가 돈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월터에겐 모두가 똑같은 '빅 아이즈'일 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그리는 '빅 아이즈'와 강요에 의해서 억지로 그리는 '빅 아이즈'는 분명 다릅니다. 그러한 차이가 결국 마가렛을 깨닫게 만드는 것입니다.

[빅 아이즈]는 그저 담담하게 마가렛의 사연을 뒤쫓습니다. 싱글맘인 그녀가 월터와 결혼하고, 그에게 자신의 분신인 '빅 아이즈'를 빼앗기는 사연은 에이미 아담스와 크리스토프 왈츠의 명연기 덕분에 영화적 재미를 안겨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존의 팀 버튼 감독의 영화 스타일을 생각한다면 분명 [빅 아이즈]는 너무 잔잔하고 평범한 영화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빅 아이즈]에서 팀 버튼 감독의 색깔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스트레스와 강박에 휩싸인 마가렛이 마트의 사람들과 자신의 모습에서 '빅 아이즈'의 환상을 보는 장면들은 섬뜩하면서도 아름답고, 기괴하면서도 동화같습니다. 팀 버튼 감독의 영화 세계와 어울리는 명장면입니다.

 

영화 후반부, '빅 아이즈'의 진짜 주인을 찾는 하와이에서의 재판 장면은 블랙코미디의 요소가 다분했습니다. 변호사 없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변호하려는 월터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크리스토프 왈츠의 명연기 덕분에 돋보이는 명장면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가렛에게 '빅 아이즈'를 빼앗는 월터가 얄밉다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그를 결코 미워할 수 없게 만듭니다.

어쩌면 [빅 아이즈]가 너무 잔잔한 영화처럼 느껴진 이유도 그러한 월터의 캐릭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월터를 악역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그는 분명 돈만 밝히는 속물이긴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들이 월터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월터와는 다른 행동을 했을 것이라고 장담하긴 쉽지 않습니다. 단지 보통의 사람들은 마가렛처럼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 상황에 압박감을 느끼지만, 월터는 그러한 상황을 즐기고 있다라는 사실만 다를 뿐입니다.

월터가 확실한 악역이 되지 못함으로써 영화의 긴장감은 자연스럽게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빅 아이즈]는 마가렛의 사연에 진중하게 집중할 수 있는 기폼있는 실화 드라마가 된 것입니다. [빅 아이즈]는 [에드 우드]에 이은 팀 버튼 감독의 실존 인물을 토대로한 두번째 영화입니다. [에드 우드]를 보면서도 느꼈지만, 실존 인물을 토대로한 팀 버튼의 영화는 자극성보다는 객관성을 유지하려 노력합니다. 그러한 객관성 덕분에 [빅 아이즈]는 팀 버튼의 색깔이 조금은 덜 묻어났어도 제겐 충분히 공감이 되는 영화였습니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무언가를 창작해본 사람이라면...

그 창작물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겼을 때의 분노, 슬픔, 무기력증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빅 아이즈]를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충분히 공감하며 즐길 수 있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