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5년 영화이야기

[빅 히어로] - 우리에겐 힐링이 필요해

쭈니-1 2015. 1. 26. 16:02

 

 

감독 : 돈 홀, 크리스 윌리엄스

더빙 : 라이언 포터, 다니엘 헤니, 스콧 애짓

개봉 : 2015년 1월 21일

관람 : 2015년 1월 24일

등급 : 전체 관람가

 

 

웅이의 겨울방학 마지막 영화

 

웅이의 꿀맛같은 겨울방학이 어제(1월 25일)로 끝이 났습니다. 솔직히 지난해 12월 27일, 예상하지 못했던 신월동 사무실 화재 사건으로 겨울방학동안 웅이와 많이 놀아주지는 못했습니다. 그 대신 웅이에게 영화만큼은 질릴만큼 보여줬답니다. 

[숲속으로], [마다가스카의 펭귄],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패딩턴], [박물관이 살아있다 : 비밀의 무덤]이 겨울방학동안 웅이와 함께 본 영화입니다. 그리고 이제 웅이의 겨울방학 마지막 영화로 [빅 히어로]를 지난 주말에 보고 왔습니다. 그것도 굳이 자막버전을 보기 위해 집에서 먼 동대문까지 가서 말입니다.

[빅 히어로]는 마블이 디즈니에 합병된 이후 처음으로 공개된 마블을 원작으로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입니다. 이미 지난 겨울 [겨울왕국]으로 우리나라에서 애니메이션 사상 첫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경이로운 흥행을 기록했던 디즈니의 입장에서는 [빅 히어로]가 제2의 [겨울왕국]이 되길 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디즈니의 바람에는 약간 모자라지만 그래도 [빅 히어로]는 개봉 첫 주 66만명을 기록하며 [강남 1970]에 이은 주말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했습니다.

 

사실 제 입장에서도 [빅 히어로]는 1월 최고의 기대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영화였습니다. 1992년 극장에서 [인어공주]를 본 이후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언제나 제게 기대작 1순위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제가 열광하고 있는 마블의 슈퍼 히어로가 추가되었으니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는 셈입니다.

비록 웅이를 내세웠지만, [빅 히어로]를 보러 가는 제 마음도 설레였습니다. 제가 집 근처 멀티플렉스에서 상영하는 더빙 버전이 아닌, 굳이 아침 일찍 일어나 동대문까지 이동하면서까지 자막 버전을 고집한 이유도 제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더빙 버전을 상영하는 극장에는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 관객들이 많아 영화를 제대로 관람하는데 어려움이 있거든요.

이렇게 큰 기대를 안고 본 [빅 히어로]는 제게 기대이상의 재미를 안겨줬습니다. 기대가 큰 만큼 그러한 기대감을 채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는데, [빅 히어로]는 제 기대감을 채우고도 넘칠만큼 벅찬 재미를 안겨준 것입니다. 이제 [빅 히어로]를 보며 느낀 제 벅찬 재미를 부족한 글로 표현해보겠습니다.

 

 

힐링이 필요한 나를 위한 영화

 

제가 [빅 히어로]에 '벅찬 재미'라고 표현을 할 정도로 만족했던 이유는 이 영화가 제 마음을 어루만져줬기 때문입니다. 작년 12월 27일 일어난 저희 회사의 신월동 사무실 화재사건에서부터 시작해서 오는 2월 3일 구피의 수술까지... 제 2015년 연초는 복잡한 사건의 연속입니다. 

게다가 [빅 히어로]를 보기 이틀 전에는 회사 회식 도중 벌어진 분란으로 인하여 관리부인 제가 온갖 욕을 다 얻어 먹고, 분란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해야 했습니다. 결국 저는 지난 금요일에 거의 2년간 끊었던 소주를 혼자 한병이나 비워버렸습니다. 다른 그 어느 때보다 영화를 많이 보며 스트레스를 근근히 해소하고 있지만, 지금이라도 당장 건드리면 폭발할 정도로 저는 지쳐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화 속의 베이맥스(스콧 애짓)가 저를 부드럽게 안아준 것입니다. 마치 '괜찮아. 모든 문제는 잘 해결될거야.'라고 속삭여주듯이... 솔직히 [빅 히어로]를 보기 전에만해도 베이맥스의 단순한 외형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막상 영화를 보다보니 그런 단순한 베이맥스에게 내 자신이 힐링을 받고 있었습니다.

 

[빅 히어로]는 베이맥스로 인하여 마음의 상처를 치료받는 히로(라이언 포터)를 통해 영화를 보는 제 마음도 자연스럽게 치료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히로는 베이맥스를 이용해서 복수를 꿈꾸지만, 베이맥스는 복수보다는 히로의 마음을 치료하는데에만 관심을 기울입니다.

사실 영화를 보며 히로가 느꼈을 상실감, 슬픔, 분노를 저 역시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히로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잃었고, 유일한 친구이자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던 형, 테디(다니엘 헤니)마저 사고로 죽었습니다. 테디가 죽었다는 상실감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증에 빠진 히로. 그런데 테디를 죽게한 사고가 단순한 사고가 아닌 누군가의 음모였음을 알게 됩니다. 히로의 상실감, 슬픔은 그 순간부터 분노로 변합니다.

어쩌면 저는 이 부분에서부터 히로의 멋진 복수를 기대했는지도 모릅니다. 귀여운 치료용 로봇 베이맥스에게 멋진 전투용 갑옷을 입힌만큼, 공격형으로 업그레이드된 베이맥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가면맨을 무찌르고 영웅으로 거듭나는 장면을 기대한 것입니다. 하지만 복수를 한다고해서 테디를 잃은 히로의 마음의 상처가 치료될 수 있을까요?

 

 

베이맥스의 진정한 업그레이드.

 

[빅 히어로]에서 우리가 한가지 주목해야할 것은 히로가 테디의 복수를 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베이맥스의 행동들입니다. 히로는 복수를 위해 베이맥스를 업그레이드시킵니다. 하지만 베이맥스는 이 모든 업그레이드를 히로의 치료로 받아들입니다.

정체 불명의 가면맨을 찾기 위해 베이맥스에게 날개를 달아준 히로. 처음엔 베이맥스도 "치료용 로봇이 왜 날아야하는지 모르겠어."라며 의문을 품습니다. 하지만 실컷 하늘을 날고나서 즐거워하는 히로를 보며 "왜 내게 날개가 필요한지 이제 알겠어."라고 말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상처를 치료하는 것은 치료용 로봇인 베이맥스에겐 어쩌면 쉬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은 노련한 의사들조차 어려운 일입니다. 인간이 아닌 로봇에 불과한 베이맥스는 이렇게 히로가 안고 있는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면서 진정한 업그레이드가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빅 히어로]의 놀라운 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 영화의 1시간 48분이라는 러닝타임은 도시를 위기에 빠뜨리는 정체불명의 가면맨에 대항하는 히로의 영웅담으로 채워진 듯이 보입니다. 여기까지는 보통의 슈퍼 히어로 영화와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건 히로의 영웅담이 아닌, 히로의 치료 이야기가 됩니다. [빅 히어로]는 치밀한 스토리 전개를 통해 복수를 힐링으로 바꿔놓은 것입니다.

 

히로를 도와 가면맨과 맞서 싸우는 테디의 대학동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베이맥스는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친구가 필요하다며 테디의 대학동기들에게 연락을 취합니다. 히로는 필요없다고 거절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히로가 안고 있는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데 큰 역할을 해냅니다.

이러한 친구의 존재는 [빅 히어로]에서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사실 최근의 슈퍼 히어로 영화들의 트랜드는 단일 슈퍼 히어로의 활약이 아닌 슈퍼 히어로 집단의 활약입니다. 2012년 최고의 흥행 영화로 이름을 당당하게 올린 [어벤져스]로부터 시작된 이러한 유행은 2014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로 이어졌고, 마블의 경쟁사 DC도 개봉을 앞두고 있는 [배트맨 V 슈퍼맨 : 돈 오브 저스티스]를 통해 이러한 유행에 합류할 것입니다.

[빅 히어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화는 히로와 베이맥스의 활약에 국한시키지 않고, 테디의 대학동기들인 고고(제이미 정), 와사비(데이몬 웨이언스 주니어), 허니 레몬(제네시스 로드리게스), 그리고 괴팍한 백만장자 2세 프레드(T.J. 밀러)를 통해 각기 개성이 다른 슈퍼 히어로 집단을 완성해낸 것입니다. 그것도 히로의 마음의 상처 치료와 맞닿은 친구라는 테마를 이용해서 말입니다.

 

 

당신은 복수를 선택할 것인가? 힐링을 선택할 것인가?

 

[빅 히어로]의 힐링이라는 테마는 가면맨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더욱 확고해집니다. 테디에 대한 복수 때문에 잠시 폭주하는 히로. 하지만 히로 역시 깨닫습니다. 복수를 한다고해서 죽은 테디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렇기에 [빅 히어로]의 클라이맥스는 복수에 성공한 히로의 활약에 대한 쾌감 대신 베이맥스와 친구들로 인하여 상처를 딛고 한층 더 성숙한 히로의 모습에 의한 감동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더이상 히로는 상실감에 빠져 무기력한 존재도 아니며, 분노로 인하여 이성을 잃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히로는 힐링을 통해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웅이와 영화의 제목인 '빅 히어로'에 대한 토론을 벌였습니다. 웅이는 '빅 히어로'는 베이맥스 뿐이라는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웅이에게 있어서 '빅 히어로'의 '빅'은 눈에 보이는 크기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런 웅이에게 제 생각을 말해줬습니다. 비록 히로와 그의 친구들은 왜소하지만, 복수가 아닌 용서를 선택할 정도로 마음만큼은 그 누구보다 거대하다고... 그렇기에 그들이야 말로 진정한 '빅 히어로'라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복수를 선택한 가면맨의 초라한 모습과는 달리, 용서를 선택한 히로와 친구들의 모습에서 저는 진정한 거대함을 보았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힐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를 본 후 웅이와 동대문의 디자인 플라자를 거닐었습니다. 날씨도 포근했고, 햇살도 따뜻했습니다. 제 곁에서 끊임없이 "아빠~"하며 재잘거리는 웅이의 목소리도 제 마음을 감싸 안아줬습니다. 히로에게 베이맥스가 있다면 제겐 웅이가 있습니다. 그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제게 힐링을 안겨주는 웅이가 있기에 오늘도 저는 스트레스를 이겨내며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것이겠죠.

[빅 히어로]는 그런 영화입니다. 마블의 원작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나는 액션 활극을 기대했지만, 이 영화는 그러한 액션 활극보다는 가슴 따뜻한 힐링을 안겨주는 영화입니다. 디즈니라고 한다면 '착한 영화'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빅 히어로]는 착함을 뛰어 넘어 요즘 제게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안겨준 영화입니다. 이것이 바로 디즈니의 힘이며, 힐링의 마법일 것입니다.

 

P.S. 영화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마세요. 기나긴 엔딩크레딧이 끝나고나면 마블원작의 영화답게 [빅 히어로]는 멋진 히든 영상을 보여줍니다. 부디 놓치지 마시길...

 

요즘 나는 영화를 통해 힐링을 얻는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바로 [빅 히어로]가 있다.

내게 큰 힐링을 안겨준 [빅 히어로].

그렇기에 그들은 내게 '거대한 영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