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5년 영화이야기

[언브로큰] - 견딜 수 있으면 해낼 수 있다.

쭈니-1 2015. 1. 22. 12:56

 

 

감독 : 안젤리나 졸리

주연 : 잭 오코넬, 돔놀 글리슨, 미야비

개봉 : 2015년 1월 7일

관람 : 2015년 1월 19일

등급 : 15세 관람가

 

 

[언브로큰] VS [아메리칸 스나이퍼]

 

지난 1월 14일에 개봉한 기대작인 [박물관이 살아있다 : 비밀의 무덤], [허삼관], [오늘의 연애]를 계획대로 모두 극장에서 보고나니 슬슬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애초에 극장에서의 관람을 포기했던 영화들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그때 제 레이더망에 딱 걸린 영화가 바로 [언브로큰]과 [아메리칸 스나이퍼]입니다.

사실 이 두 영화는 제 취향의 영화는 아닙니다. [언브로큰]은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의 포로가 된 한 남자의 인간 승리를 다루고 있는 전쟁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화는 전쟁터의 저격수로 명성을 떨친 한 남자와 그의 가족 이야기입니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전쟁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영화 장르가 바로 공포영화와 전쟁영화입니다. 그렇기에 이 두 영화는 제 기대작 순위에서 뒤로 밀린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렇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감독이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언브로큰]은 우리에게 할리우드의 여전사로 익숙한 안젤리나 졸리가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 관객 앞에 선 영화이며,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할리우드의 살아있는 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입니다.

 

게다가 이 두 영화의 북미 흥행 성적도 상당히 양호했습니다. [언브로큰]은 2014년 12월 25일 개봉이후 현재까지 1억9백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올렸습니다. 안젤리나 졸리로써는 2011년 [피와 꿀의 땅에서]에 이은 두번째 연출작 [언브로큰]으로 드디어 1억달러 감독 명단에 오른 것입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더 대단합니다.  2014년 12월 25일에 개봉한 이후 지난 주말에 확대개봉한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놀랍게도 주말동안 8천9백만 달러, MLK연휴 기간동안에만 1억7백만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흥행은 이제 시작되었으니 앞으로 이 영화가 벌어들일 흥행 수입은 더욱 굉장할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이렇게 [언브로큰]과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는 것은 영화적 재미가 충분히 보장되어 있음을 뜻합니다. 제가 이 두 영화에 마음이 흔들리는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월요일, 바쁜 일과를 끝마치고 저는 [언브로큰]과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언브로큰]을 선택했습니다. 아무래도 루이 잠페리니라는 실존 인물의 믿기 힘든 놀라운 인간 승리 드라마가 스나이퍼의 인간적 고뇌보다는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저는 월요일 밤 10시에 [언브로큰]을 보겠다며 혼자 집을 나섰습니다.

 

 

루이 잠페리니의 믿기 어려운 고난의 나날

 

제가 싫어하는 전쟁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저를 월요일 늦은 밤에 극장으로 이끈 루이 잠페리니의 삶을 먼저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루이 잠페리니는 이탈리아계 미국 이민자로 어린 시절에는 온갖 말썽만 피우던 문제아였습니다. 그랬던 그를 형이 육상선수로써의 재능을 발견해 훈련시켰고, 결국 그는 19세의 나이로 당시 최연소 올림픽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1936년 베를린 올림픽 5,000m 육상 종목에 출전하게 됩니다.

어쩌면 그러한 사실만으로도 감동스러운 영화 한편을 뚝딱하고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문제아였던 소년이 온갖 편견을 이겨내고 육상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은 물론, 5,000m 육상의 마지막 한바퀴에서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미국의 올림픽 영웅으로 떠오른다는 극적인 인간승리 드라마는 멋진 스포츠영화가 될 수 있는 모든 요건을 갖춘 셈입니다. 

하지만 루이 잠페리니의 놀라운 삶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공군에 입대하여 수 많은 전투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러다 전투기 고장으로 태평양 한가운데로 추락하여 무려 47일간이나 표류하게 됩니다. 2013년 저희 가족의 첫 영화였던 [라이프 오브 파이]가 떠오르는 대목인데, [라이프 오브 파이]와는 달리 실화라는 점에서 더욱 극적입니다. 특히 루이 잠페리니와 두명의 동료가 표류를 하며 상어떼와 맞서 싸우고, 거친 폭풍우도 견뎌내는 장면 또한 감동적인 영화의 모든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놀라기는 아직 이릅니다.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구명보트에 몸을 실은채 47일간이나 표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운데 그의 놀라운 이야기는 그 이후에도 계속됩니다.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그들을 구출한 이가 하필 적국인 일본이었고, 루이 잠페리니는 일본군의 포로가 되어 850일간이나 고난의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언브로큰]을 보면서 저는 첩첩산중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났습니다. 하나의 산을 넘었더니 더 높은 산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 끝도 보이지 않게 계속 이어지는 루이 잠페리니의 고난의 일정과 잘 어울립니다. 루이 잠페리니는 전투기 고장에서 겨우 살아남았더니 태평양의 망망대해가 기다리고 있고, 망망대해에서 어떻게든 버텼더니 이번엔 일본군의 폭력이 그를 괴롭힙니다. 만약 내가 루이 잠페리니라면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하잖아!'라며 하늘을 향해 욕이라도 실컷 해야할 듯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는 참고 견딥니다. 어린 시절 그를 육상선수의 길로 인도했던 형이 "견딜 수 있으면 해낼 수 있다."라는 조언을 가슴에 깊이 새기고 그는 어떻게든 견뎌냅니다. 모두들 포기하고 쓰러져도 그는 두 눈을 부릅뜨고 이 상황을 견뎌 냄으로써 결국 해낸 것입니다. [언브로큰]은 바로 루이 잠페리니라는 실존 인물의 놀라운 실화를 고스란히 영화로 옮겨 놓았습니다.  

 

 

2시간 동안 고문을 받은 기분이다.

 

안젤리나 졸리 감독은 [언브로큰]을 연출하며 상업영화로써의 영화적 재미를 쏘욱 빼고 루이 잠페리니의 고난을 사실적으로 그리는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로인하여 [언브로큰]을 보는 저는 2시간 2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루이 잠페리니가 겪었던 고난들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이는 굉장히 괴로운 경험입니다. 지난 2014년 3월에 [노예 12년]을 관람하며 마치 2시간동 내 자신이 노예가 된 느낌을 받았던 것과 비슷한 경험이었습니다. [언브로큰]을 보며 저는 루이(잭 오코넬)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조금만 더 버티면돼.'라고 스스로를 위안했습니다. 루이에게 조금만 더 버티면 되는 시간은 전쟁 포로로 있었던 850일이라는 시간이었지만, 제게 있어서 조금만 더 버티면 되는 시간은 2시간 20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2시간 20분이라는 시간이 너무나도 느리게 가는 것입니다.

포로 수용소에서 태평양의 망망대해에서 표류를 할때 유일한 버팀목이 되어준 친구 필(돔놀 글리슨)과 헤어질 때도 조금만 더 버티면 될 줄 알았습니다. 수용소 소장인 와타나베(미야비)에게 이유없는 폭력을 당할 때에도 조금만 더 버티면 될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고난의 나날은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보는 제가 지쳐버릴 정도로...

 

와타나베가 진급을 하였다며 수용소를 떠날 때, 저는 '드디어 끝났구나.'라고 생각햇습니다. 하지만 연합군의 동경 폭격으로 새로운 수용소로 옮긴 루이가 그곳에서 다시 와타나베와 마주치자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이 나왔습니다.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거예요?'라며 하늘을 보고 외치고 싶을 정도로...

저는 고작 2시간 20분을 버티는 것이 이렇게 힘이 들었는데 루이 잠페리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낫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견뎌냅니다. 어쩌면 루이에 대한 와타나베의 폭력이 그러한 이유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분명 자신은 포로 수용소의 소장이고, 루이는 전쟁 포로입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승자는 와타나베이고, 패자는 루이입니다.

하지만 전쟁 영웅이 되고 싶었지만 고작 포로수용소의 소장으로 후방에 처박혀 있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와타나베와는 달리, 루이는 전쟁 포로이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강한 정신력과 눈빛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와타나베는 루이에게 폭력을 가하면서도 친구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와타나베는 루이의 정신력이 부러웠을 것이며, 그러한 부러움은 질투로, 질투는 폭력으로 연결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더 대단한 것은 용서의 삶이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2차 세계대전은 연합군의 승리로 끝이 날 것이며, 일본은 히로시마 원폭으로 항복을 하게 될 것임을...  실제 루이 잠페리니가 2014년까지 생존해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서 저는 영화의 말미에 와타나베에 대한 루이의 복수를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야만 영화가 끝나고나서도 속이 시원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결코 그러한 속시원한 장면은 [언브로큰]에 없었습니다.

그 대신 자막을 통해 종전 이후 와타나베는 전범으로 도망자 신세가 되었지만, 일본과의 화해를 바라는 미국이 일본의 전범을 대규모 사면해주는 과정에서 그도 사면되었다고 소개합니다. 그러한 자막을 보는 순간 저는 화가 났습니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부족한 지금 현재의 일본을 생각하니 더욱 화가 나더군요. 

하지만 그러한 저와는 달리 루이 잠페리니는 그들을 모두 용서했다고 합니다. 종전 이후 자신을 학대하던 일본군을 용서했고(하지만 와타나베는 결코 루이 잠페리니를 만나주지 않았다는...) 80세의 나이가 되어서 꿈에도 그리던 올림픽 무대를 섰을 때에도 그 무대는 일본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힘든 나날을 보냈는데, 일본과 일본군을 용서한 그가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언브로큰]이 의미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점입니다. 루이 잠페리니의 삶은 그 자체가 여러 편의 감동적인 영화가 될 수 있을 정도로 드라마틱합니다. 하지만 이는 가공된 이야기가 아닌 얼마전까지 살아있던 실존 인물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대단한 힘이 발휘됩니다. 그러나 더 대단한 것은 그러한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용서의 삶을 산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실제 그의 모습이 영화의 화면속에 비춰질 때, 저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존경을 표하고 싶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와는 별도로 영화 자체는 정말 고문같았습니다. 2시간 20분이 너무 길게만 느껴졌고, 영화 속의 루이가 겪는 일들이 마치 내가 겪는 것처럼 아프고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마지막 복수의 쾌감마저 없었으니 루이 잠페리니처럼 성인군자가 아닌 저로써는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영화를 본 후 집으로 향하며 '견딜 수 있다면 해낼 수 있다'는 가르침은 가슴 깊이 새겨졌습니다. 우리의 삶은 때로 힘든 고난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고난 또한 언젠가는 지나가겠죠. 그러한 고난의 시간에 무릎을 꿇지 않고 견뎌낸다면 언젠가는 고난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요? 루이 잠페리니의 모습을 보며 그러한 교훈을 얻은 것만으로도 [언브로큰]은 충분히 2시간 20분의 고난을 견뎌낼 값어치가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내가 루이 잠페리니였다면...

과연 나는 그처럼 견뎌낼 수 있었을까?

위대한 사람은 위대한 일을 해냈기 때문이 아닌,

고난의 세월을 견뎌내고 결국 위대한 일을 이루었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