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5년 영화이야기

[허삼관] - 아무리 찌질해도 그는 역시 아버지더라!

쭈니-1 2015. 1. 15. 17:33

 

 

감독 : 하정우

주연 : 하정우, 하지원, 남다름, 민무제,  전혜진

개봉 : 2015년 1월 14일

관람 : 2015년 1월 14일

등급 : 12세 관람가

 

 

올해 생일은 조용히 보내기로...

 

지난 1월 12일이 구피의 음력 생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인 1월 14일이 제 양력 생일입니다. 어차피 결혼 후 생일파티를 시끌벅적하게 한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가족들과 미역국을 함께 먹고, 케잌으로 생일 분위기를 내며 보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그런 것도 없이 조용히 보내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2월에 구피의 수술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구피의 생일날에는 구피가 먹고 싶다는 매운 닭발과 오돌뼈에 밥을 비벼서 주먹밥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구피는 아이스크림과, 저는 맥주와 함께 매운 닭발과 오돌뼈를 먹으며 구피의 생일을 조용히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 찾아온 제 생일. 저는 구피에게 "내 생일날 [오늘의 연애]를 같이 보러가면 안될까?"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구피는 "안돼, 힘들어!"라며 딱 잘라 말하더군요.

뭐 영화를 혼자 보러가는 것이 이제 제겐 낯설은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는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를 혼자 보러가는 것에는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 생일날 개봉한 [오늘의 연애]만큼은 구피와 함께 보고 싶었는데... 그것조차 여의치 않네요. 물론 수술을 앞둔 구피의 몸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아 극장에 가는 것이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속좁은 저는 은근 섭섭했습니다.

 

결국 저는 제 생일날 또다시 혼자 극장을 찾았습니다. 케잌을 사놓고 미역국을 먹으며 생일파티하는 것을 바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제 생일날 영화 한편 보지 않고 넘어간다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저 혼자 봐야 했던 영화인만큼 애초에 기대했던 [오늘의 연애] 대신 [허삼관]이 제 42번째 생일의 영화로 선택되었습니다.

그런데 [허삼관]을 보다보니 영화 속 허삼관(하정우)의 모습이 꼭 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진 것은 없지만 든든한 아들 삼형제와 착한 아내 허옥란(하지원) 덕분에 나름 행복한 하루를 살던 삼관. 하지만 그에게 위기가 찾아왔으니 자신을 유독 잘 따르는 첫째 아들 일락(남다름)이 옥란이 결혼전 사귀었던 하소용(민무제)의 아들로 밝혀진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부터 삼관은 찌질함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결혼 전, 하룻밤의 실수로 일락을 임신한 옥란과 아무런 잘못도 없는 일락에게하는 뒷끝작렬 행동들은 아무리 주인공이라 할지라도 참 한심해보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제가 그러고 있었던 것이죠. 구피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극장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속좁게 혼자 섭섭해했던 저는, [허삼관]을 혼자 보며 마음 속 깊이 반성하게 되었답니다.

 

 

50년대와 60년대를 관통하는 우리 시대의 아버지

 

[허삼관]은 중국의 세계적 소설가 위화의 대표작인 <허삼관 매혈기>를 원작으로한 영화입니다. <허삼관 매혈기>는 중국의 문화혁명을 배경으로 자신의 피를 팔아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허삼관이라는 남자의 이야기를 해학적으로 그려낸 소설이라고 합니다.

하정우 감독은 <허삼관 매혈기>를 영화화하며 배경을 우리나라의 50, 60년대로 설정합니다. 그 결과 [허삼관]은 한국전쟁이 끝이 나고 폐허로 변해버린 한반도에서 어떻게든 버텨내야 했던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의 이야기가 됩니다. 이쯤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을 것입니다. 바로 최근에 천만 관객의 대업을 달성한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입니다. [국제시장]과 [허삼관]은 격동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우리들의 아버지를 그렸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적 배경은 비슷하지만 아버지의 모습은 정반대입니다. [국제시장]의 아버지인 덕수(황정민)는 묵묵히 가족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했었습니다. 자신의 꿈을 희생하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던 덕수의 모습은 천만 관객이라는 흥행 성적이 말해주듯 많은 관객들에게 감동을 안겨줬습니다. 그에 반에 [허삼관]의 아버지인 삼관은 속좁은 찌질이 아버지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감동보다는 웃음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삼관의 찌질함이 그 정도가 심하다는 점입니다. 사실 11년동안 애지중지 키운 첫째 아들 일락이 철천지 원수같은 소용의 아들이었음을 밝혀졌을 때 삼관의 기분은 이해가 됩니다. 게다가 수 많은 마을 사람들 앞에서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그가 옥란에게 화를 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그렇기에 초반 삼관의 행동은 찌질했지만 나름 귀여웠습니다. 삼관이 가부장적인 60년대 아버지임을 감안한다면 폭력이 아닌 소심한 복수로 일관하는 삼관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진 것입습니다. [허삼관]은 코미디 영화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코미디는 거의 삼관이 혼자 책임집니다. 그런만큼 옥란을 향해 결코 밉지 않은 복수를  하는 삼관의 모습은 코미디적인 요소가 되었고, 그것은 곧바로 영화적 재미가 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삼관의 소심한 복수가 점점 도를 넘어서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옥란에게뿐만 아니라 일락에게도 속좁은 행동으로 일관하는 삼관의 모습은 더이상 귀엽지가 않았습니다. 삼관이 찌질하게 굴어도 끝까지 삼관을 쫓아다니며 "아버지, 저를 용서해주시면 안되요?"라고 울먹이는 일락의 모습은 [허삼관]의 코미디적 요소마저 없애버리며 삼관에 대한 제 분노를 부채질했습니다.

 

 

일락 때문에 삼관을 보며 웃을 수가 없다.

 

삼관이 옥란에게 하는 소심한 복수는 웃고 넘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복수라는 것도 어차피 어느정도의 선을 넘어가지 않아 충분히 코미디적 요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삼관이 일락에게 하는 행동들은 아닙니다. 이제 고작 11살인 일락. 게다가 일락은 아무런 잘못도 없습니다. 그런 어린 일락에게 상처를 주는 삼관의 모습은 영화를 보는 제게 분노를 느끼게 했습니다.

특히 만두 사건은 해도 해도 너무했습니다. 원작에서는 어떻게 그려졌는지 모르지만, [허삼관]에서는 다른 그 어떤 에피소드보다 저를 더욱 가슴 아프게 만든 것이 만두 사건입니다. 보릿고개로 인하여 굶주린 아이들. 어린 삼락과 이락은 만두가 먹고 싶다고 보챕니다. 이에 삼관은 자신의 피를 팔아서 아이들에게 만두를 사주려합니다. 하지만 신이난 일락에게는 할아버지(주진모) 댁에 가서 고구마를 얻어먹고 오라고 보내버립니다.

어쩌면 삼관이 자신을 용서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히려 신이 나서 "어머니, 저는 만두보다 고구마가 좋아요."라며 할아버지에게 달려가는 일락. 그러한 일락의 모습은 저를 가슴아프게 했습니다. 일락도 만두가 먹고 싶었을텐데...  아무리 찌질하다고해도 어린 일락에게 이런 못쓸 짓을 하는 삼관을 보며 더이상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일락은 얼마나 만두가 먹고 싶었을까요? 비록 그는 의젓한 맏아들이지만 아직 11살에 불과한 어린 아이에 불과합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삼관을 따랐고, 삼관을 존경했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이 삼관이 아닌 소용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일락은 오히려 삼관보다 더 큰 충격을 당합니다. 하지만 일락은 그러한 충격보다는 자신을 미워하는 삼관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그토록 존경했던 아버지 삼관에게 미움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죄책감을 느끼는 일락. 그는 예전처럼 삼관의 아들로 살 수만 있다면 그 무엇이라도 할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렇기에 만두를 먹지 말고 고구마를 먹으라는 아버지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렇게한다면 삼관이 자신을 용서해줄지도 모른다는 순진한 생각에 말입니다.

하지만 어린 그는 결국 만두가 먹고 싶다는 충동을 떨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건의 원흉인 소용에게 만두를 사달라고 조릅니다. 그러나 친아버지인 소용마저 그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고작 만두만 사주면 되는데...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도, 자신을 키워준 아버지도 일락을 외면한 것입니다. 밤 늦도록 집에 가지 못하고 거리를 방황하다가  옥란의 품에서 흐느껴 우는 일락의 모습은 그렇기에 [허삼관]을 통털어 가장 가슴아픈 찡한 장면이었습니다.

 

 

삼관의 매혈기

 

[허삼관]의 문제는 바로 그것입니다. 삼관의 찌질한 복수는 끝까지 웃음을 줘야 했고, 영화의 마지막 일락을 위해 피를 파는 삼관의 모습에 감동을 느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삼관의 찌질한 복수는 초반에만 웃음을 줄 뿐, 그 복수가 일락을 향하는 순간부터 웃음대신 분노를 느끼게 했습니다. 감동 또한 삼관의 희생이 아닌, 어린 일락의 모습에 의합니다. 웃음코드와 감동코드가 잘못된 표적을 향해 날아간 셈입니다.

[허삼관]은 그러거나 말거나 영화의 후반부에 일락의 병원비를 위해 피를 파는 삼관의 희생으로 영화의 대미를 장식합니다. 사실 [허삼관]은 원작의 제목 그대로 삼관이 피를 파는 이야기입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삼관은 옥란과의 결혼 자금을 구하기 위해 처음 자신의 피를 팝니다. 그 이후 아이들의 말썽으로 옥란의 물건들이 이웃집 심씨(정만식)에게 저당잡히자 그것들을 찾아오기 위해 또다시 피를 팝니다.

보릿고개로 자식들이 굶주리자 [허삼관]은 삼관이 세번째 피를 파는 장면을 내보냅니다. 이때까지만해도 삼관의 피를 파는 행위는 코믹하게 그려졌습니다. 첫번째 피를 파는 장면에서 방씨(성동일)과 근룡(김성균)을 내세워 코믹하게 연출했고, 두번째와 세번째 피를 파는 장면은 삼관의 찌질한 복수의 일환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일락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네번째 피를 파는 장면에서는 갑자기 피를 파는 행위에 비장함이 묻어납니다. 첫번째 피를 파는 장면에서 코믹함을 주도했던 근룡이 네번째 피를 파는 장면에서 예전과는 다른 비참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도 그러한 비장함을 돋보이게 하려는 장치입니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설정의 전환은 삼관의 희생에 의한 감동을 반감시킵니다. 그렇기에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피를 팔면서 서울로 향하는 삼관의 모습에 아버지의 희생에 대한 감동을 느껴야 하는데, 저는 오히려 답답함을 느껴습니다. 일단 마련된 돈이라도 빨리 서울의 병원에 가져가 입원 수속이라도 밟아야 하는데, 병원비 전부를 모으기 위해 시간을 끄는 삼관의 모습에서 '이러다가 일락이 잘못되면 어쩌나?'라는 조급함을 느낀 것입니다.

만약 삼관의 찌질함에 대한 수위를 조금만 조절했다면 [허삼관]은 삼관에 의해 충분히 코믹하고 감동적인 가족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삼관의 찌질함이 도를 넘어서며 저는 삼관이 아닌 일락의 편에 서게 되었고, 그로인하여 영화의 코믹코드, 감동코드가 저와 어긋나 버렸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정우 감독의 첫번째 영화인 [롤로코스터]보다 [허삼관]이 훨씬 좋았지만, 하정우 감독은 세번째 영화에서 좀 더 분발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영화입니다.

 

어쩌면 삼관은 감동적인 아버지이기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아버지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찌질하고 현실적인 아버지라도

가족을 위해서 피를 팔 수 있는 그는 역시 우리들의 아버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