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5년 영화이야기

[워킹걸] - 섹스코미디계의 잔다르크

쭈니-1 2015. 1. 11. 00:08

 

 

감독 : 정범식

주연 : 조여정, 클라라, 김태우

개봉 : 2015년 1월 7일

관람 : 2015년 1월 7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최근들어서 이렇게 박장대소로 웃어본 적이 있었던가?

 

오는 2월, 구피가 큰 수술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미 지난 12월에 예견된 일이고, 의사의 말로는 위험한 수술은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전신마취를 해야하는 수술이고, 수술 후에는 최소 몇주 이상을 입원을 해야하는 만큼 구피는 물론 저 역시도 회사에 장기 휴가를 신청한 상태입니다.

1월 7일은 수술에 앞서 각종 검사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구피는 병원에 혼자 가도 된다고 했지만, 저는 추운 날씨에 구피 혼자 병원을 보낼 수는 없어서 회사에 오후 시간만 휴가를 신청했습니다. 오전에 밀린 회사 업무를 서둘러 마무리하고, 12시에 퇴근을 했습니다. 하지만 구피의 병원 예약 시간은 오후 4시 30분. 구피 또한 3시 30분에 회사에서 조퇴를 한다고 하니 제겐 시간이 많이 남았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히 저는 남은 시간을 이용해서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제가 봐야할 1순위 영화는 1월 1일에 개봉한 [테이큰 3]입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예매하려고하니 살해당한 아내로 인하여 누명을 쓴 전직 특수요원 브라이언 밀스(리암 니슨)의 액션을 담은 [테이큰 3]를 보는 것이 꺼려졌습니다. 어찌되었건 구피의 수술을 위한 검사를 하는 날이었으니 [테이큰 3]의 설정이 약간은 불편하게 느껴진 것입니다. 그때 제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워킹걸]입니다.

 

사실 [워킹걸]을 예매하는데 있어서도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워킹걸]은 조여정과 클라라가 주연을 맡은 가벼운 코미디 영화입니다. 회사의 신월동 사무실 화재 사건과 구피의 수술 등 요즘 제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사건들을 잠시라도 잊으려면 가벼운 코미디 영화가 안성맞춤입니다. 그렇기에 [워킹걸]이 제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하지만 [워킹걸]은 섹스코미디 영화입니다. 평일 낮, 양복을 차려 입은 40대 중년 남성 혼자 보기엔 낯뜨거운 영화인 것입니다. 혼자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서 남의 시선 따위는 신경쓰지 말자고 스스로 몇번이나 다짐하지만, 이렇게 19금 영화를 혼자 보러 갈때에는 남의 시선이 신경쓰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테이큰 3]보다는 [워킹걸]을 선택했지만, 상영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을 나가는 순간까지 저는 계속해서 주위의 시선을 신경써야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서 저는 [워킹걸]을 선택하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영화를 보며 이렇게 속시원하게 웃은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너무 웃어서 배가 아플 정도였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구피와 병원에 가서도 [워킹걸]의 장면들이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혼자 '킥킥'거렸을 정도였습니다. 한동안 제 주변에 복잡한 일이 많았는데 [워킹걸] 덕분에 그러한 복잡한 일들을 잠시동안이라도 말끔히 잊을 수 있었습니다.

 

 

부부간의 섹스 이야기는 고리타분하다?

 

[워킹걸]은 남편과의 섹스보다 업무성과가 좋을 때 쾌감을 느끼는 워커홀릭 보희(조여정)와 섹스에 관심이 없는 아내 때문에 욕구불만에 시달리는 강성(김태우)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침대에서 은밀하게 보희에게 들이대는 강성. 하지만 보희는 "귀찮아, 그것 좀 치워줄래?"라며 강성을 머쓱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오프닝 장면을 통해 [워킹걸]은 관객에게 확실히 선언을 합니다. 이제부터 부부간의 섹스를 적나라하게 이야기할 것이라고... 솔직히 저는 조여정과 클라라의 섹시함을 강조한 가벼운 섹스코미디를 기대하며 [워킹걸]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제게 [워킹걸]은 처음부터 맞벌이를 하는 부부라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부간의 섹스 문제를 보여준 것입니다. 저 역시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구피와 맞벌이 부부로 생활을 하고 있기에 [워킹걸]의 오프닝 장면에 공감하며 웃음을 터트릴 수 있었습니다.

부부간의 섹스... 솔직히 이것은 참 다루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자칫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대부분 섹스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20대 청춘의 열정적인 섹스, 혹은 불륜과 같은 금지된 섹스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것이 훨씬 자극적이니까요. 그런데 [워킹걸]은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부간의 섹스 이야기를 꺼내든 것입니다. 그렇기에 [워킹걸]은 영화의 자극적인 재미보다는 공감에 촛점이 맞춰집니다.

 

제가 [워킹걸]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은 바로 이러한 공감입니다. 분명 [워킹걸]은 충분히 자극적인 재미를 영화 속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강성의 직업이 대학교수임을 이용하여 젊고 아름다운 제자가 욕구불만에 시달리는 강성을 유혹하는 뻔한 설정을 펼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랬다면 20대 여대생의 노출과 스승과 제자간의 금지된 섹스라는 자극적인 재미를 선보일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워킹걸]은 그러한 자극적인 재미를 과감하게 포기합니다. 그 대신 보희와 강성이 지니고 있는 부부 문제를 현실적으로 풀어 넣습니다. 물론 이 영화의 장르가 섹스코미디인만큼 현실적인 부부간의 섹스문제에만 매달릴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섹시한 섹스샵의 오너 난희(클라라)와 각종 섹스보조기구들입니다.

여기에서 한가지 재미있는 설정은 섹스보조기구를 사용해본 보희의 반응과 섹스보조기구에 대한 강성의 태도입니다. 사실 부부간의 섹스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하지만 오랜 결혼 생활로 식어버린 부부간의 섹스를 도와주는 섹스보조기구에 대해서는 대부분 부정적입니다. 저 역시도 섹스샵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고, 그러한 섹스보조기구를 사용하면 변태라고 생각하는 보수적인 대한민국의 남성입니다. [워킹걸]은 바로 그러한 편견을 겨냥하여 자극적인 설정없이도 충분히 자극적인 섹스코미디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섹스에 대한 편견이 만들어낸 코미디

 

제가 [워킹걸]에 실컷 웃으면서도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영화 속의 강성이 딱 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강성은 보희와의 식어버린 섹스에 불만을 터트리며 집을 나가기도 했지만, 막상 보희가 섹스보조기구를 통해 오르가즘에 눈을 뜨고 강성과의 섹스를 즐기기 시작하자 오히려 보희에게 이별을 선언합니다. 물론 그 사이에는 어린 딸의 알러지 사건이 있었지만, 과연 그것이 보희를 떠나야하는 심각한 문제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결국 섹스에 대한 보수적인 강성의 인식이 문제였던 셈입니다.

그러한 섹스에 대한 보수적인 남성에 의한 사정은 난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가 섹스샵을 운영하고 있다는 소문이 고향에 돌자 난희의 아버지는 난희를 집에서 쫓아내버립니다. 난희가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남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니지만, 단지 섹스샵을 운영한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녀는 집안에서 호적을 파버려야 하는 창피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보희와 난희은 그러한 사람들의 편견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밉니다. 그녀들은 음지에 내몰린 섹스샵을 카페분위기로 탈바꿈시켜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방문을 유도하고, 기업박람회에 참가 신청을 함으로써 섹스가 창피한 것이 아닌 당당한 것임을 선언합니다. 영화의 제목인 '워킹걸'은 보희와 난희의 섹스샵 운영 또한 정당한 직업임을 뜻하는 의미심장한 제목인 것입니다.

 

이러한 편견에 대한 [워킹걸]의 과감한 도전은 영화의 분위기에도 물씬 풍겨납니다. 영화 초반 보희가 다니는 장난감 회사의 풍경은 동심이 가득한 기상천외한 장면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동심의 공간에 섹스보조기구가 난입하면서 웃음을 유발시킵니다. [워킹걸]의 영화 분위기는 그런 식입니다.

지금까지 섹스코미디는 화장실코미디와 철떡궁합이었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섹스코미디인 [아메리칸 파이]도 그렇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섹스코미디인 [색즉시공]도 그러했습니다. 그만큼 섹스코미디는 은밀하고 음성적이며 부끄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졌었습니다. 하지만 [워킹걸]은 아닙니다. 영화의 분위기는 화사합니다. 서로 너무나도 달랐던 보희와 난희가 세상의 편견에 맞서 서로를 이해하며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을 통해 전형적인 페미니즘 영화의 구성도 보입니다.

물론 보희와 난희가 사회적 편견을 딛고 성공하는 과정이 너무 허술하게 그려진 면이 있긴 하지만, [워킹걸]이 애초에 편견에 맞선 심각한 사회성 드라마가 아닌 가벼운 코미디 영화임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웃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입니다. 오히려 저는 영화의 마지막에 일도 가정도 포기하지 않는 보희의 당찬 모습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이제 내게 조여정은 믿고보는 여배우가 되었다.

 

[워킹걸]은 내용적으로도 제게 만족을 줬지만, 역시 이 영화의 진짜 재미는 절대 웃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코믹한 부분입니다. 특히 저는 조여정의 코믹 연기에 몇번이고 박장대소를 터트렸습니다. 사실 조여정은 [방자전], [후궁 : 제왕의 첩]을 통해 이미 파격적인 노출을 감행한 배우입니다. 하지만 노출로 인하여 인지도를 끌어올린 조여정인만큼 그에 대한 한계도 분명했습니다. 

조여정도 그러한 한계를 알고 있었기에 [후궁 : 제왕의 첩] 다음으로 선택한 것은 TV 드라마인 <해운대의 연인들>이었습니다. <해운대의 연인>에서 조여정은 상큼발랄한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으로 변신을 시도했습니다. 영화 [인간중독]에서는 노출은 신인배우 임지연에게 양보하고 조여정은 그다지 임팩트가 크지 않은 이숙진이라는 캐릭터를 선택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노출 배우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조여정의 노력입니다.

그러나 <해운대의 연인>은 부진한 시청률을 기록했고, [인간중독]역시 영화의 화제성과는 달리 흥행 성적은 미지근했습니다. 하지만 [워킹걸]은 아닙니다. 만약 이 영화가 흥행에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제게 조여정은 믿고보는 여배우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워킹걸]의 영화적 재미의 80%이상은 조여정의 코믹 연기에 의한 것입니다.

 

영화의 시작부터 남달랐던 조여정의 코믹 연기는 보희가 난희와 섹스샵을 동업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터집니다. 특히 제가 가장 많이 웃었던 장면은 음악 소리가 나오면 진동하는 팬티를 입고 딸의 축구 경기장에 가는 장면입니다. 경기장의 음악 소리 때문에 어쩔줄 모르는 보희의 몸부림을 보며 저는 2014년의 모든 나쁜 일들을 한꺼번에 날려버릴 만큼 정말 속시원한 박장대소를 터트렸습니다.

보희가 처음으로 난희의 섹스보조기구를 이용하는 토끼 인형씬, 강성과 각종 체위로 섹스를 하는 장면, 기업박람회에서 섹스보조기구를 소개하는 모습 등, 조여정이 [워킹걸]에서 선보인 연기는 노출이 없으면서도 섹스했고, 코믹했으며, 멋져 보였습니다. [워킹걸]의 장르가 섹스코미디인만큼 조여정은 이 영화를 통해 노출 배우라는 벽을 깨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연기력만큼은 분명 인정을 받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보희가 돋보일 수 있었던 것은 보희 주변의 조연 캐릭터도 한 몫을 합니다. 특히 강성을 연기한 김태우는 그의 새로운 모습을 본 것 같아 좋았고, 요즘 뜨고 있는 씬스틸러 라미란과 보희의 어머니를 연기한 김보연 등의 코믹한 연기도 보희라는 캐릭터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클라라의 직업이 배우임을 인지했다.

 

마지막으로 제가 언급하고 싶은 것은 바로 클라라입니다. 솔직히 저는 그녀가 배우인줄 몰랐습니다. 케이블 드라마 <응급남녀>에 출연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클라라는 연기보다는 섹시한 옷을 입고 했던 화제의 프로야구 시구가 더 인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도 그러한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첫 주연작인 [워킹걸]을 연기 인생을 걸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클라라의 열정은 제작 발표회에서 정범식 감독의 말 실수로 이어졌고, 그로인하여 [워킹걸]은 한동안 정범식 감독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클라라를 성희롱했다는 논란으로 번진 것입니다. 지금도 포털 사이트에서 [워킹걸]의 네티즌 리뷰를 보면 정범식 감독에 대한 욕설과 영화를 보지 않겠다는 선언, 그리고 평점 테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것들이 클라라에겐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클라라 입장에서는 연기인생을 걸었을 첫 영화 주연작이 영화 외적인 논란에 휩싸여 자신의 열정을 평가받을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솔직히 클라라의 연기는 조여정의 연기에는 밀리는 감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 클라라라는 배우의 이름을 깊이 각인시켰습니다. 비록 영화 외적인 논란으로 [워킹걸]이 흥행이 실패해도 앞으로 클라라의 연기는 기대해볼만한 가치가 있을 것같습니다.

 

영화에서 난희가 보희에게 '섹스계의 잔다르크같다'라고 말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내게 [워킹걸]은 '섹스코미디계의 잔다르크'였다.

비록 영화를 보러 가는 길에는 남의 눈치를 보며 창피했지만...

나는 결코 이 영화가 안겨준 속시원한 웃음을 잊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