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5년 영화이야기

[기술자들] - 어쩌다가 '김우빈만을 위한 영화'가 되었을까?

쭈니-1 2015. 1. 8. 18:22

 

 

감독 : 김홍선

주연 : 김우빈, 김영철, 고창석, 이현우, 조윤희, 임주환

개봉 : 2014년 12월 24일

관람 : 2015년 1월 6일

등급 : 15세 관람가

 

 

김우빈을 위한 영화?

 

지난 일요일 [상의원]을 보고나니 이젠 2014년에 개봉한 영화중 아직 보지 못한 기대작은 [기술자들]과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 중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는 집근처 극장에서 거의 상영하지 않아 현실적으로는 극장이 아닌 다운로드로 보게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영화는 [기술자들]뿐인 셈입니다.

사실 [기술자들]은 제가 좋아하는 유쾌한 범죄 스릴러 영화로 개봉 전부터 꽤 기대했던 영화입니다. 김우빈, 이현우, 조윤희, 임주환이라는 젊은 배우들의 케미도 기대되었고, [공모자들]을 통해 충격적이고 잔인한 반전스릴러를 완성했던 김홍선 감독의 연출력도 믿음직했습니다. 특히 요즘 제가 그토록 원했던 밝은 분위기의 영화라는 것이 [기술자들]을 결코 놓치고 싶지 않게끔 만들었습니다.

[기술자들]은 그러한 제 기대감에 부흥하듯, 개봉 첫주 [국제시장]에 이어 박스오피스 2위를 기록했고, 개봉 2주차에는 누적관객 224만명을 동원하며 안정적인 흥행 레이스를 펼치고 있습니다. [기술자들]과 같은 날 개봉한 [상의원]이 개봉 2주동안 누적관객 76만명 밖에 동원하지 못했고, 2012년 개봉해서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은 [공모자들] 또한 누적관객은 164만명에 불과함을 감안한다면 [기술자들]의 흥행 성적은 분명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잔뜩 기대를 안고 [기술자들]을 보기 위해 극장으로 달려가기엔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영화를 본 분들의 영화평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특히 많은 분들이 [기술자들]을 '김우빈만을 위한 영화'라고 비아냥거렸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제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기술자들]에 대한 기대감을 약간 낮추고 평일 밤, 영화를 보고왔습니다.

[기술자들]과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를 꼽으라면 단연 1편의 성공으로 3편까지 제작된 [오션스 일레븐]과 천만 영화 [도둑들]을 들 수가 있습니다. [오션스 일레븐]은 조지 클루니를 필두로 맷 데이먼, 브래드 피트, 앤디 가르시아, 줄리아 로버츠 등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는 영화이며, [도둑들]도 김윤석, 이정재, 김혜수, 전지현, 김수현, 김해숙, 그리고 홍콩 스타 임달화를 캐스팅하며 호화로운 캐스팅을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영화는 '누구만을 위한 영화'라는 비아냥을 듣지 않았습니다. 

[기술자들]은 앞서 언급했듯이 김우빈 외에도 이현우, 조윤희, 임주환 등 젊은 배우들과 김영철이라는 카리스마가 넘치는 중견 배우, 그리고 고창석이라는 믿음직한 조연 배우가 두루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우빈만을 위한 영화'라는 비아냥을 듣는다는 것은 영화 자체에 그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부터 저는 [기술자들]이 '김우빈만을 위한 영화'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야기하려합니다. (이후 글에는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혁만 아는 진짜 작전

 

[기술자들]은 영화의 시작부터 김우빈을 돋보이게 만듭니다. 어느 경비가 삼엄한 건물에서 지혁(김우빈)은 여유롭게 금고를 열고 있고, 지혁의 동료인 구인(고창석)은 안절부절하고 있습니다. 지혁은 경비에 걸려도 결코 당황하지 않고 여유롭게 경비를 따돌리고, 건물을 빠져 나갑니다. 김홍선 감독은 그러한 오프닝을 통해 [기술자들]이 김우빈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관객에게 확실히 보여줍니다.

물론 범죄 스릴러 영화에서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다른 장르의 영화들과 비교해서 굉장히 중요한 작업입니다. 왜냐하면 주인공의 직업은 범죄자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주인공의 매력이 돋보이지 않는다면 관객들은 범죄자인 주인공에게 등을 돌릴 것이며, 그렇게 된다면 범죄 스릴러 영화의 재미는 망쳐진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기술자들]이 모든 포커스를 지나치게 지혁에게만 집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영화는 하나의 캐릭터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수 많은 캐릭터들이 영화의 스토리 라인을 이루고 있는데, [기술자들]은 지혁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다른 캐릭터들을 모두 들러리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러한 점은 비단 영화의 오프닝 뿐만이 아닙니다. 영화 전체가 그러합니다. 지혁의 동료인 구인, 그리고 새롭게 지혁의 팀에 합류하는 종배(이현우)와 영화의 유일한 홍일점 은하(조윤희) 역시 그저 지혁을 위한 들러리에 불과합니다.

 

[기술자들]은 범죄 스릴러의 하위 장르에 속하는 케이퍼 무비입니다. 케이퍼 무비는 도둑들의 활약을 담은 범죄 스릴러 영화를 일컫습니다. 케이퍼 무비의 스토리 전개는 주로 '계획-실행-도주 이후의 상황'으로 진행된다고 합니다. [기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화에서 계획은 인천 세관에 보관된 정치인 비자금 1,500억을 훔치는 것입니다. 조사장(김영철)은 이 계획을 위해 지혁 일당을 끌어 들입니다.

이 영화의 실행은 지혁과 조사장 일행이 인천 세관의 경비를 뚫고 1,500억을 훔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도주 이후의 상황에서 서로간의 물고 물리는 배신이 담겨져 있습니다. 어찌보면 [기술자들]은 케이퍼 무비의 기본 공식을 충실히 따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지혁만이 알고 있는 또 다른 계획이 있습니다. 지혁에겐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던 오원장(신구)을 죽인 조사장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죠.

이렇듯 [기술자들]에는 눈에 보이는 계획과 지혁만이 알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계획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렇기에 인천 세관에 보관된 돈을 훔치는 것은 속임수에 불과합니다. 그 계획 자체가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지혁을 제외한 영화 속의 캐릭터들은 눈에 보이는 계획에 의해 움직일 뿐입니다. 뒤에서 진짜 계획을 숨기고 있는 지혁이 돋보일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조사장은 물론, 지혁이 설계한 가짜 계획에 놀아난 영화 속의 모든 캐릭터들이 지혁의 들러리일 수 밖에 없는 것은 이러한 가짜 계획 탓입니다.

 

 

그들은 왜 지혁에게 충성할까?

 

어쩌면 제게 이러한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입니다. 지혁만이 알고 있는 숨겨진 계획 덕분에 영화의 반전이 완성된 것은 아니냐고... 당연합니다. 이미 [공모자들]에서 섬뜩한 반전을 선보였던 김홍선 감독이기에, 지혁의 숨겨진 계획은 [기술자들]의 마지막 반전을 위한 회심의 카드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혁의 숨겨진 계획이 치밀했을 경우입니다. 

사실 영화의 오프닝에서부터 지혁의 계획은 치밀하지 못했습니다. 경비한 삼엄한 빌딩에서 지혁이 빠져 나오는 장면은 치밀하다기 보다는 지혁의 매력을 강조한 장면이고, 조사장에 대한 복수를 위한 지혁의 모든 계획은 약간의 억지가 섞여 있습니다. 게다가 마지막 반전이라는 것도 조금만 신경써서 영화를 본다면 금방 눈치챌 수 있는 수준의 것들입니다.

[기술자들]에서 가장 중요한 반전의 키포인트는 바로 종배의 배신입니다. 영화는 종배라는 캐릭터를 소개하면서부터 그가 배신의 아이콘임을 계속 강조합니다. 이는 종배가 지혁을 배신할 것임을 관객에게 지속적으로 각인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종배와 지혁의 첫만남을 담은 클럽씬을 눈여겨본다면 종배의 배신 또한 지혁이 세운 계획의 일부임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종배에게 "넌 배신자의 얼굴이야. 그래서 합격이야."라며 아주 직설적으로 마지막 반전에 대한 힌트를 주는 지혁. [공모자들]에서 마지막 반전을 꽁꽁 숨겼던 김홍선 감독이 왜 [기술자들]에서는 이렇게 친절하게 마지막 반전의 힌트를 제공한 것일까요?

 

제가 보기에 김홍선 감독은 수 많은 여성팬을 몰고 다니는 김우빈이라는 스타를 캐스팅했다는 생각에 범죄 스릴러 영화의 재미를 구축하는 것에는 안일하게 대처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애초에 김홍선 감독이 반전을 완벽하게 감출줄 모르는 감독이라면 감독의 연출력 부족을 의심했겠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김홍선 감독조차 흠뻑 빠져 범죄 스릴러 영화의 재미를 망각하게만든 김우빈의 매력에 영화 속의 캐릭터들 역시 빠져서 허우적거립니다. 배신의 아이콘이라는 종배는 위험을 무릅쓰고 지혁의 계획에 따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지혁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건달 털보(조달환)도 지혁을 위해 목숨을 거는 위험한 선택을 합니다. 이건 뭐 '지혁 홀릭'이라고 해야할까요? 만약 이들 중에 단 한사람이라도 지혁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거나 배신을 했다면 지혁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을 것입니다. 지혁의 숨겨진 계획이 결코 치밀해 보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제게 [기술자들]이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렇듯 이 영화가 너무 과도하게 지혁에게 기대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김우빈은 굉장히 매력적인 배우입니다. 이미 [친구 2]에서 결코 유오성에 뒤지지 않는 카리스마를 보여준 그는 [기술자들]을 통해 충분히 원톱 주연으로써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입니다. 하지만 [기술자들]은 원맨쇼보다는 캐릭터간의 상호 호흡이 중요한 범죄 스릴러 영화이기에 김우빈의 원맨쇼는 영화의 재미와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인맥으로 만든 캐스팅의 어색함.

 

영화를 보기전 [기술자들]을 두고 '김우빈만을 위한 영화'라는 평가에 반신반의했던 저는 [기술자들]을 본 후에는 그러한 평가에 공감하고 말았습니다. [기술자들]에는 김우빈을 제외한 많은 배우들이 출연하지만 그들은 단지 구색을 맞추기 위한 들러리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베테랑 연기자 김영철은 [달콤한 인생]의 강사장을 재현한 악역 연기를 할 뿐이었고, 씬 스틸러 고창석은 항상 하던대로 약간의 코믹함을 가미한 귀여운 조연 연기에만 몰두합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김수현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놀라운 매력을 선보였던 이현우마저 캐릭터의 매력을 제대로 펼칠 기회를 박탈당한채 김우빈의 활약에 가려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들은 조금 나은 편입니다. [기술자들]의 김우빈 원맨쇼로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것은 제가 보기엔 조윤희입니다. [공모자들]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펼쳤던 조윤희는 [기술자들]에서 인텔리한 여성으로 연기 변신을 하며 새로운 매력을 선보일 기회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김우빈의 원맨쇼가 펼쳐지는 동안 조윤희가 연기한 캐릭터인 은하는 그저 악당에게 붙잡혀 영웅이 구해주기만을 기다리는 뻔한 여성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김홍선 감독은 [공모자들]에서 함께 했던 배우들을 [기술자들]에 대거 출연시켰습니다. 조윤희 뿐만 아니라 조달환, 신승환도 [공모자들]에 이어 [기술자들]에 출연한 배우들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최다니엘, 임창정도 우정 출연을 함으로써 김홍선 감독은 자신의 인맥을 과시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그 누구도 인상적이지 못했습니다. 조윤희가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그녀가 목욕을 하는 장면 뿐이었고, 거친 형사로 출연한 신승환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마냥 그저 어색해보였습니다. 최다니엘과 임창정의 우정 출연도 [기술자들]의 김홍선 감독의 전작이 [공모자들]임을 환기시키는 역할만 할 뿐입니다.

[기술자들]은 영화의 마지막 순간까지 김우빈이 폼잡는 장면으로 끝을 냅니다. 김우빈을 좀 더 멋지게 포장하기 위해 해외 로케까지 감행한 김홍선 감독의 몸부림이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진정 김홍선 감독은 김우빈만 돋보이게하면 멋진 범죄 스릴러 영화가 탄생할 것이라 생각한 것일까요? 저는 김우빈을 보기 위해서가 아닌, 치밀하게 통쾌한 범죄 스릴러 영화를 보러 간 것입니다. 그렇기에 영화가 끝나고 그저 김우빈만 기억에 남는 [기술자들]가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범죄 스릴러의 진짜 재미는 바로 팀웍이다.

원맨쇼는 범죄 스릴러 영화와 어울리지 않는다.

김홍선 감독이 그러한 사실을 몰랐을까?

아니면 김우빈의 매력에 눈이 멀어 알고도 모른척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