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5년 영화이야기

[패딩턴] - 말하는 곰은 어른도 성장시킨다.

쭈니-1 2015. 1. 13. 12:51

 

 

감독 : 폴 킹

주연 : 벤 위쇼(더빙), 니콜 키드먼, 휴 보네빌, 샐리 호킨스

개봉 : 2015년 1월 7일

관람 : 2015년 1월 11일

등급 : 전체 관람가

 

 

말하는 곰 '패딩턴'이 전해주는 행복

 

어쩌다보니 2015년에 본 영화들이 모두 한결같이 한국영화들 뿐입니다. 2015년의 첫 영화인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에서부터 시작하여 [상의원], [기술자들], 그리고 최근에 본 [워킹걸]까지... 그 중에서 김우빈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과했던 범죄 스릴러 [기술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제게 어느정도는 만족감을 안겨줬습니다. 이렇게 2015년이 시작하자마자 한국영화들로 마음의 위안을 삼았으니 이젠 외국영화 차례입니다.

2015년에 극장에서 본 첫번째 외국영화의 주인공은 [패딩턴]이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에 이어 웅이와 2015년에 극장에서 함께 본 두번째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과 마찬가지로, [패딩턴]도 유쾌발랄한 가족 영화로 제게 행복바이러스를 잔뜩 안겨준 해피한 영화입니다.

[개를 훔치는 완볃한 방법]과 [패딩턴]은 공통점이 참 많은 영화입니다. 우선 영화의 장르가 가족 코미디입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동물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에서는 노부인(김혜자)의 애완견 월리가 영화의 중요한 키포인트이고, [패딩턴]에서는 아예 곰이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한바탕 소동으로 인하여 어린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 역시 성장을 겪게된다는 점입니다. 자! 그렇다면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에 이은 올겨울 힐링 가족 영화 [패딩턴]의 영화 이야기를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패딩턴]은 영국의 한 탐험가가 페루의 정글을 탐험하다가 아주 특별한 곰과 만나 우정을 쌓게되는 흑백 필름으로 시작합니다. 정글을 떠나며 영국에 오면 따뜻하게 맞이해주겠다는 탐험가의 말을 믿고 영국 여행을 꿈꾸는 곰 커플 파스투조(마이클 갬본)와 루시(이멜다 스턴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들의 영국 여행은 요원하기만합니다. 그저 말썽꾸러기 조카 '패딩턴'(벤 위쇼)과 정글에서의 행복한 나날을 보낼 뿐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정글에 무시무시한 폭풍우가 몰아닥치고, 그로인하여 파스투조는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합니다. 가장인 파스투조의 죽음으로 정글에서 살아가는 것이 막막해진 루시는 '패딩턴'을 영국으로 떠나보냅니다. 영국에 가면 자신을 가족처럼 따뜻하게 맞이해줄 사람들이 기다릴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에 무작정 영국까지 나홀로 여행을 떠난 '패딩턴'. 하지만 막상 런던의 바쁜 도시인들은 '패딩턴'을 그저 못본척 지나가기만 합니다. 동화 삽화가인 매리(샐리 호킨스)를 제외하고는...

[패딩턴]의 초반은 영락없이 시골 촌놈의 도시생활 적응기에 의한 소동극입니다. 시골 촌놈이 사람이 아닌 말하는 곰이라는 설정만 다를 뿐입니다. 도시 생활이 처음인 '패딩턴'은 목욕을 하다가 집을 물바다로 만들어 버리는 등 의도치않은 온갖 말썽을 부립니다. 그리고 그로인하여 헨리(휴 보네빌)와 대립하게 됩니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에서 '패딩턴'과의 모험을 통해 가장 많은 성장을 겪는 것은 다름아닌 헨리입니다. 헨리는 과연 어떤 성장을 겪게 될까요?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헨리가 소심한 중년이 된 이유

 

영화를 보다보면 주인공이 아닌 캐릭터에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패딩턴]이 바로 그러합니다. 사실 제가 말하는 귀여운 곰 '패딩턴'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냉정히 생각한다면 [패딩턴]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말하는 곰이라는 판타지적 설정 덕분에 이 순진한 캐릭터가 웃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헨리는 아닙니다.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헨리가 이해가 되었습니다. 위험평가사라는 독특한 직업을 가진 헨리는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태세입니다. 그는 기차역에서 '패딩턴'을 처음 발견했을 때에도 가족들에게 "전방에 위험요소 발견"이라며 경고를 주기도 합니다. 동정심이 많은 매리가 아니었다면 헨리의 가족과 '패딩턴'의 인연은 결코 이뤄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패딩턴'을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는 매리에게 "이건 전부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한 수법이야."라며 투덜거리고, '패딩턴'을 집에 데려온 후에는 바로 보험회사에 전화해서 주택보험 특약을 추가하는 철두철미함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헨리의 소심한 성격은 당연히 가족들의 불만이 됩니다. 특히 말썽꾸러기 막내아들 조나단은 "아빠는 재미없어."라며 투덜거립니다. 그러나 헨리는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우리 아이들의 안전이 최우선이야."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저 역시도 그러한 헨리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가정부 버드(줄리 월터스) 할머니의 말에 의하면 헨리가 처음부터 그렇게 소심했던 것은 아닙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콧수염을 휘날리며 매리를 태우고 산부인과 병원으로 향하는 헨리의 모습을 두고 버드 할머니는 "내가 처음 만난 너희 아버지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단다."라고 회상합니다. 그랬던 그가 첫째딸인 주디를 낳고는 가족의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소심한 가장이 된 것이죠.

하지만 문제는 그가 아무리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도 가족들이 그러한 헨리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점입니다. 중2병에 걸린 주디는 항상 헤드폰을 끼고 다니며 부모와의 대화를 아예 차단시킵니다. 우주비행사를 꿈꾸는 조나단은 아빠는 재미없다며 헨리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좋은 아빠가 된다는 것은 가족들을 위해 묵묵히 가장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패딩턴'과 진정한 성장을 겪는 것은 어린 아이들인 주디와 조나단이 아닙니다. 바로 헨리입니다. '패딩턴'을 가장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그는 처음엔 '패딩턴'을 빨리 집에서 내보내기 위해 '패딩턴'이 이야기하는 영국인 탐험가를 찾기에 나섰고, 나중에는 '패딩턴'을 진정으로 아끼는 가족들을 위해 목숨을 거는 모험을 감행합니다. 그렇게 그는 가족들에게 인정받는 멋진 아빠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어드벤쳐 영화로써 손색이 없는 재미

 

제가 [패딩턴]을 보는 동안 헨리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그의 입장에서 영화에 푹 빠져 있는 동안 웅이는 말하는 귀여운 곰 '패딩턴'에 푹 빠져서 '패딩턴'의 모험을 재미있게 즐기고 있었습니다. 특히 웅이는 영화가 끝난 후 "밀리센트(니콜 키드먼)의 정체가 충격적이었어요."라고 말하더군요. 네, 그렇습니다. 주인공의 모험이 돋보이려면 주인공을 위협하는 악당이 중요한 법이죠. 그렇기에 밀리센트는 최고의 악당이라고 할만합니다.

영화를 보기 전, 저는 밀리센트가 단순한 악당 박제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말하는 곰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패딩턴'을 박제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그런 악당말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단순한 박제사라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패딩턴'은 말하는 곰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만약 박제를 한다면 그러한 '패딩턴'의 특징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패딩턴'을 서커스단에 팔아서 돈을 벌으려는 목적이라면 모를까 박제를 한다는 것은 '패딩턴'의 특징을 이해하지 못하는 빈약한 설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보니 그러한 제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습니다. 밀리센트가 '패딩턴'의 박제에 대한 강박을 갖는 이유가 설명되면서 자연스럽게 밀리센트의 이해하지 못할 행위가 이해가 되었던 것입니다. 악당 캐릭터 밀리센트까지 꼼꼼히 챙긴 폴 킹 감독의 역량이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패딩턴]에 출연하는 배우 중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배우인 니콜 키드먼이 밀리센트를 연기했다는 점도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사실 밀리센트가 캐릭터적 매력을 가진 것은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서입니다. 영화의 후반부에 그녀가 악당이된 사연이 소개되기 전까지 밀리센트는 별 매력이 없는 그냥 악당 박제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밀리센트를 니콜 키드먼은 그녀만의 카리스마를 통해서 매력적으로 탈바꿈시킵니다. 비록 여성의 몸이지만, 그 어떤 액션 히어로 못지 않은 과격한 작전도 무리없이 소화해내고, 헨리의 이웃집 남자인 커리(피터 카팔디)를 유혹해서 '패딩턴'을 납치하는데 이용하는 팜므파탈적인 면모로 선보입니다. 니콜 키드먼이 무표정한 얼굴로 가족 코미디와는 어울리지 않는 악녀를 연기할 때의 묘한 쾌감은 밀리센트의 캐릭터적 매력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가끔 가족 코미디 영화는 어린이 관객의 눈높이에 맞춰져 스스로 성인 관객에 소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패딩턴]은 말하는 곰이라는 다분히 어린이 관객을 겨냥한 캐릭터를 내세웠으면서도 결코 어른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데 있어서 지루함을 느끼게나 유치함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이는 [패딩턴]이 최적의 가족영화가 되는 이유가 됩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소심한 아빠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조나단의 최고의 친구가 된 헨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 스스로 재미없는 아빠가 되었던 헨리는 '패딩턴'과의 모험을 통해 멋진 아빠로 성장을 겪은 것입니다. 헨리와 감정이입을 했던 저는 그러한 헨리의 모습이 뿌듯했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 헨리처럼 웅이에게 최고의 친구가 되어줘야 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쩔 수 없는 소심한 아빠인가 봅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팝콘을 사달라는 웅이에게 아침에 햄버거를 먹었으니 팝콘은 안된다고 딱 잘라 말했고, 영화를 보고나서도 웅이가 세상에서 아이스크림을 가장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웅이가 감기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결국 아이스크림을 사주지 않았습니다.

점심식사를 하러 가서는 웅이의 변에 약간의 피가 묻어났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웅이가 좋아하는 고기를 사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야채가 잔뜩 들어간 비빔밥을 맛없게 먹는 웅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제가 웅이의 건강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소심한 헨리와 같은 아빠라는 사실만 깨달았습니다. 저희 집에도 말하는 곰이 찾아와야 저와 웅이가 최고의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저 역시도 헨리와 같은 최고의 아빠로써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려봅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집 냉장고에 붙어있는 보드판에 '패딩턴'을 그렸다.

헨리에게 '패딩턴'이 찾아왔듯, 내게도 '패딩턴'이 찾아와주길 바라며...

최고의 남편, 최고의 아빠... 그것은 모든 남성들이 원하는 마지막 성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