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권종관
주연 : 정우성, 임수정, 차태현, 손태영, 염정아, 여진구, 신민아, 이기우
개봉 : 2005년 10월 20일
관람 : 2005년 10월 21일
등급 : 12세 이상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을 재미있게 본 저로써는 우연하게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형식을 띈 우리 멜로 영화 [새드무비]의 개봉 소식을 들었을때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불안 요소 또한 컸습니다. 이미 한 신문에서는 '배우들은 울고 있지만 관객들은 울지 않더라'고 [새드무비]의 리뷰를 쓰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남이 재미없다고해서 보고 싶은 영화를 포기할 제가 아니기에 [새드무비]를 탐탁치않게 생각하는 구피를 꼬시고 꼬셔 결국 영화를 보고야 말았답니다.
일단 [새드무비]에 대한 제 첫 느낌은 예쁘다는 겁니다. 정우성, 임수정, 차태현 등등 이 영화의 주연 배우들은 한편의 영화를 책임질 스타 파워를 지니고 있을뿐만 아니라 멜로 영화를 더욱 멜로 영화답게 만들만큼의 능력을 충분히 지니고 있는 배우들입니다. 특히 정우성과 임수정 커플은 그냥 그들의 이야기로 한편의 영화를 만들었다면 더욱 애달픈 멜로 영화가 만들어졌을것만 같은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거기에 권종관 감독은 마치 한편의 어여쁜 뮤직 비디오를 보는것만 같은 영상을 만들어냈습니다. 멜로 영화의 기본 장소인 놀이공원, 그리고 멜로 영화의 기본 장면인 비오는 씬이 밥먹듯이 나오고, 거기에 장필순의 그 촉촉한 느낌의 노래가 어울러져 '정말 예쁘다'라는 생각이 들게끔 만듭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입니다. 제가 기대했던 눈물은 없었습니다. 붕어빵엔 붕어가 없습니다. 단지 붕어 모양을한 풀빵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새드무비]는 마치 붕어빵같습니다. 눈물은 없고 단지 눈물을 닮은 배우들의 연기만이 있을 뿐입니다.
죽는다고 관객을 울리는 것은 아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기대를 모은 커플은 단연코 정우성과 임수정입니다. 정우성은 이미 [내 머리속의 지우개]를 통해 멜로 영화에서도 그의 터프한 이미지가 충분히 먹혀 들어간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임수정은 [장화, 홍련]을 통해 혜성과 같이 등장하여 문근영과 함께 장래가 가장 촉망되는 여배우로 기대를 모으더니만 [...ing]와 걸작 TV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거쳐 [새드무비]에 이르렀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저는 정우성과 임수정이 단독 주연을 맡은 멜로 영화가 개봉했더라도 주저없이 당장 극장으로 달려가고 싶을 정도로 이 두 커플의 에피소드를 가장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요? [새드무비]의 에피소드중에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에피소드 역시 정우성과 임수정의 사랑 이야기였습니다.
처음엔 이들의 에피소드가 별 문제없이 보였습니다. 정우성은 [내 머리속의 지우개]처럼 터프하면서도 멜로 영화의 주인공다운 부드러운 면모를 드러내고, 임수정은 그 범상치않은 연기력을 멜로 영화에서조차 어김없이 발휘합니다. 터프하면서도 사랑하는 수정의 앞에선 어리숙한 소방관 진우의 모습은 영화를 보기전부터 눈물을 준비한 제게 오히려 웃음을 안겨줬습니다. 저는 차라리 그들의 이야기가 이런 식으로 풋풋한 로맨틱 코미디가 되어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영화의 제목이 [새드무비]였던 탓인지 권종관 감독은 이들 커플에게 무리한 슬픔을 안겨줍니다. 물론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속이 뻔히 보일 방법을 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영화 [편지]를 연상시키는 진우의 비디오 장면은 당연히 관객의 입장에서 눈물을 흘려야할텐데 제 눈엔 전혀 눈물이 고이지 않았습니다. 주인공의 죽음이 이처럼 슬프지 않았던 적이 있었는지...
슬픔이 현실적일때 눈물은 더욱 값지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너무 뻔히 보이는 눈물 코드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너무 판타지적이라는 겁니다. 죽음을 앞둔 소방관이 CCTV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못다한 사랑을 표현하는 장면이라던가, 영업이 끝난 놀이공원이 한 커플을 위해 한꺼번에 불을 켜는 장면들, 물론 이러한 장면들은 어느정도 판타지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멜로 영화에서 자주 써먹는 장면이기도 하지만 예전에 비해 너무 영리해진 관객들을 울리기엔 너무 비현실적인 장면들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에피소드는 차태현과 손태영이 연기한 하석과 숙현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가난한 연인들인 하석과 숙현, 숙현은 3년째 백수인 하석의 사랑에 점차 지쳐가고 결국 이별을 결심합니다.
하석과 숙현의 에피소드를 보며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의 창후(임창정)과 선애(서영희)의 에피소드가 생각났습니다. 창후와 선애 역시 가난한 연인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에피소드엔 어느정도 현실적인 공감이 제겐 있었습니다. 지하철에서 물건을 파는 아저씨들을 보며 저들은 어떤 사연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저로써는(실제로 제가 아는 후배 역시 결혼후 취업이 안되 지하철에서 물건을 팔다가 결국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아내와 이혼하고 말았답니다.) 창후와 선애의 에피소드는 가슴에 와닿는 아픔이었습니다.
그에비해 하석과 숙현의 에피소드는 전혀 현실적이지 못합니다. 이별대행업이라니... 차라리 톡톡 튀는 로맨틱 코미디에서의 설정이라면 웃고 즐길 수 있겠지만 슬픔이라는 어쩌면 현실적인 아픔을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비현실적인 이런 설정들은 이 영화의 슬픔을 반감시키고 맙니다. 차태현이라는 배우를 좋아하지만 그의 진정한 멜로 영화를 보려면 아무래도 [파랑 주의보]까지 기디려야할것 같습니다.
도대체 어디에서 눈물을 흘려야하는거지?
[새드무비]의 4가지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이해가 안되는 에피소드를 꼽으라면 단연코 신민아와 이기우가 연기한 수은과 상규의 에피소드입니다. 이 둘의 에피소드는 [새드무비]라는 영화의 제목과는 어울리지 않게 전혀 눈물이 흐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다른 에피소드들은 어디에서 눈물을 흘리라는 친절한 설명이라도 있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흐르지 않는게 문제입니다만...) 수은과 상규의 에피소드는 어느 부분이 권종관 감독이 준비한 눈물을 흘려야하는 장면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권종관 감독은 이 에피소드의 눈물을 '희망의 눈물'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화재로인해 얼굴에 화상을 입은 청각장애우 수은은 자신의 컴플렉스로인해 자기자신을 드러내지 못한채 상규를 짝사랑합니다. 결국 동료들의 도움으로 상규와 마주앉게된 그녀는 결국 용기를 내서 자신의 얼굴을 그에게 보여줍니다. 비록 상규는 유학을 위해 수은의 곁을 떠나지만 그녀는 상규와의 사랑을 통해 자신의 컴플렉스를 극복할 용기를 얻은 겁니다.
권종관 감독의 의도대로라면 이 부분에서 관객들은 눈물을 흘려야합니다. 그리고 그 눈물은 이 영화의 그 어떤 눈물보다도 값진 그런 눈물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결코 저는 눈물을 흘릴수 없었습니다. 수은이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는 그 장면에서 수은의 희망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것이 감정이 매마른 제 탓일 수도 있지만 캐릭터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권종관 감독의 탓도 있습니다.
더 슬플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그나마 이 영화의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슬펐던 에피소드를 꼽으라면 염정아와 아역배우 여진구가 연기한 주영과 휘찬의 에피소드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남겨두고 죽어야하는 어머니의 슬픔이라는 것은 아무리 이 영화가 엉망이라고해도 충분히 제 눈의 눈가를 촉촉하게 적실만 했습니다. 특히 병원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어마를 울부짓는 휘찬의 모습은 이 영화에서 가장 슬픈 장면중에 하나입니다.
솔직히 저는 젊은 배우들의 사랑과 그에따른 슬픈 이별을 다룬 영화에서 너무 뻔한 어머니와 어린 아들의 사랑과 이별을 다뤘다는 점에서 이 에피소드가 가장 재미없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다른 에피소드들은 그저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처럼 느껴졌지만 이 에피소드만큼은 제가 그토록 흘리고 싶었던 눈물을 아주 조금이라도 흘리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약합니다. 이 영화가 제대로 슬픔 코드를 잡았더라면 휘찬이 엄마를 떠나보내는 장면에서 더욱 많은 관객들이 훌쩍거리며 울어야 했습니다. 요즘 시청률 1위를 기록중인 TV 드라마 [장밋빛 인생]을 보더라도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의 절규는 그저 눈가에 눈물이 맺힐 정도로 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영과 휘찬의 에피소드는 그저 눈가에 눈물이 맺힐 정도일 뿐입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아마 최진실이 연기한 맹순이라는 캐릭터와 염정아가 연기한 주영이라는 캐릭터를 비교해보면 쉽게 답이 나올것 같습니다.
결국 4가지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뜯어봐도 이 영화는 하나도 안슬픕니다. 그것은 제가 이 영화를 보기전에 가졌던 기대감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것이며, 슬프지 않다는 이유만으로도 이 영화는 올 가을 최악의 멜로 영화가 되어버렸습니다. 차라리 제목을 [새드무비]라고 지어놓고 대놓고 관객들을 울리겠다고 선언이라도 하지 말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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