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4년 영화이야기

[국제시장] - 한번도 당신의 인생을 살아보지 못한 우리들의 아버지

쭈니-1 2014. 12. 22. 13:38

 

 

감독 : 윤제균

주연 : 황정민, 김윤진, 오달수, 정진영, 장영남

개봉 : 2014년 12월 17일

관람 : 2014년 12월 19일

등급 : 12세 관람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추억

 

이제 막 영화의 매력에 흠뻑 빠지기 시작했던 1995년. 저는 박광수 감독의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봤습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1960년대 의류제조업체 노동자로 일하면서 열악한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1970년 11월 13일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한 우리나라 노동운동을 상징하는 전태일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분명 잘 만든 영화였지만, 20대 초반의 제겐 그다지 큰 감동을 안겨주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전태일이 노동운동을 했던 1960년대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기에 머나먼 옛날 이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제게 있어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그저 조금은 지루한 위인전 같은 영화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 착각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보고난 후 며칠 뒤, 저는 어머니와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시고 영화 광고판을 뚫어져라 쳐다보시는겁니다. 어머니께서 보시던 영화 광고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전태일 오빠 이야기가 영화로 나왔구나."라며 나즈막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웃으며 "에이, 엄마가 전태일이 누군지 어떻게 알아?"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당연히 알지. 내가 일하던 옆 공장에서 일하던 오빠인데..."

 

어머니께서는 가시던 길을 재촉하며 전태일이 분신하던 그날의 일을 제게 이야기해주셨습니다. 공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큰일났다고 나와보라고 외쳐서 나가보니 전태일이 온 몸에 불을 지르며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었다고... 그날의 일을 회상하시던 어머니의 눈가는 어느새 촉촉히 젖어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머나먼 옛날 이야기가 아닌 우리들의 아버지, 어머니가 겪었던  이야기라는 사실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서 열악한 근무 환경 속에서 일을 하던 청계천 평화시장의 의류 제조공장 여공들이 바로 제 어머니였던 것입니다. 어머니께서는 "전태일 오빠 덕분에 근무 환경이 많이 좋아졌지."라며 고마워하셨습니다. 그러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나니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제게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국제시장]을 보고 왔습니다. [국제시장]은 1950년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격변의 시대를 살아야만 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나이가 어린 관객들은 [국제시장]을 보며 '옛날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라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불과 60년 전의 일입니다. [국제시장]은 우리들의 아버지, 우리들의 할아버지가 겪었던 이야기입니다. 그분들이 이렇게 어려운 시절을 버텼냈기에 우리 역시 존재하는 것입니다.

 

 

영화를 보며 이렇게 많은 눈물을 흘린 적이 없다.

 

저는 [국제시장]을 보며 저희 아버지,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4남 4녀중 장남으로 태어나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며 평생 재봉틀 앞에 앉아 일을 하셨습니다. 분명 아버지께서도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하고 싶었던 일을 꿈꾼다는 것 자체가 사치였습니다. 결국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닌 할 수 있었던 일을 하며 동생들 뒷바라지를 해야 하셨습니다. 영락없이 [국제시장]의 덕수(황정민)의 모습 그대로이십니다.

저희 어머니는 다섯살의 나이로 흥남철수 당시 고향을 떠나 남으로 내려오셨습니다. 다섯살의 기억은 잊을만도 한데, 어머니께서는 흥남철수 당시는 똑똑히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짐이 많으면 사람을 태울 수 없다며 피난민의 짐을 모두 바다에 버렸던 기억, 군함에서 밥을 해야 하는데 물을 구하지 못해서 바닷물로 밥을 해먹었던 기억까지... 그러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나니 [국제시장]의 흥남철수 장면이 더욱 가슴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그 중에서 제가 안경을 벗고 옷소매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야 했던 장면은 단연 이산가족찾기 장면입니다. 1983년 6월 30일부터 11월 14일까지 전국에 생방송되었던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을 저는 똑똑히 기억합니다. 당시 제 나이는 11살이었습니다. TV에서 만화영화가 아닌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을 방영한다고 불평할만도 했지만, 저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TV앞에 앉아 함께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얌전한 몸매에 빛나는 눈, 고운 마음씨는 달덩이 같이 이 세상 끝까지 가겠노라고, 나하고 강가에서 맹서를 하던 이 여인을 누가 모르시나요.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부드런 정열에 화사한 입, 한번 마음주면 변함이 없어. 꿈따라 임따라 가겠노라고, 내 품에 안기어서 맹서를 하던 이 여인을 누가 모르시나요.

[국제시장]에서 패티김의 노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가 흘러 나올 때(원곡은 곽순옥의 노래라고 합니다.) 제 눈가에는 자동적으로 눈물이 맺혔습니다. 참 신기한 일이죠? 제가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을 시청하며 아버지, 어머니와 눈물을 흘렸던 것이 벌써 30년전의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노래만 들어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고, 덕수가 흥남철수 당시 헤어졌던 아버지(정진영)와 동생을 찾기 위해 방송에 나와 울먹이는 장면에서는 체면이고 뭐고 전부 집어치우고 안경을 벗어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야 했습니다. 30년전처럼...

지금까지 영화를 보며 가장 많이 울었던 영화는 강우석 감독, 이미연 주연의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였습니다. 영화 속에서 은주(이미연)의 영구차가 학교 운동장을 한바퀴도는 장면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던지... 하지만 당시 저는 한참 감수성이 예민하던 열일곱 소년이었습니다. 감수성이 매말라버린 중년이 되어서도 이렇게 눈물을 흘릴 수 있다니... 이것이 바로 [국제시장]의 힘입니다.

 

 

웃음과 눈물이 조화를 이룬다.

 

윤제균 감독은 2009년 [해운대]를 통해 천만 감독이 된 이후 오랫동안 감독이 아닌 제작자로 활동했습니다. 그가 제작했던 영화들은 [내 깡패 같은 애인], [퀵], [7광구], [댄싱퀸], [스파이] 등인데, 제법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이 많습니다. 그랬던 그가 5년만에 다시 메가폰을 잡은 영화가 바로 [국제시장]입니다. 그런만큼 [국제시장]은 윤제균 감독이 심혈을 기울인 티가 영화에서 묻어납니다. 

사실 윤제균 감독은 코미디 영화를 주로 연출했던 감독입니다. 그의 감독 데뷔작은 조폭 코미디인 [두사부일체]이고, 이후 [색즉시공], [낭만자객], [1번가의 기적] 등 꾸준히 코미디 영화에 그 연출력을 발휘했었습니다. 천만 영화 [해운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해운대]는 블록버스터 재난 영화이지만, 영화에서 코미디가 차지하는 부분은 꽤 큽니다. 그것이 윤제균 감독의 최대 장점입니다. 어떤 장르의 영화도 휴먼 코미디로 완성하는 능력. 그것이 윤제균표 영화인 것입니다.

[국제시장]은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격동의 우리나라 역사를 관통하는 영화입니다. 만약 이 영화가 시종일관 격동의 시절을 살아야했던 캐릭터들의 슬픔과 고통을 담고 있었다면 [국제시장]의 분위기는 한없이 무거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윤제균 감독은 [국제시장]을 무겁기만한 영화로 만드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서 황정민이 연기한 덕수를 제외하고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는 바로 오달수가 연기한 달구입니다. 부산으로 피난온 이후 덕수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준 달구. 그는 덕수를 파독 광부로 이끌기도 하고, 반대로 덕수에 의해 베트남에 파병되기도 합니다. [해운대]에서 김인권이 연기한 오동춘의 역할을 오달수가 하고 있는 셈입니다.

달구가 무거울 수 밖에 없는 [국제시장]에 가벼운 코미디를 선사한 인물이라면 김윤진이 연기한 영자는 덕수와의 로맨스를 통해 영화의 분위기를 말랑말랑하게 만듭니다. 덕수가 독일에서 광부라는 힘든 일을 참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영자와의 사랑 덕분입니다. 여기에서 한가지 윤제균 감독의 연출력이 빛나는 부분은 덕수와 영자의 사랑으로 [국제시장]은 웃음과 감동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획득했다는 점입니다.

무뚝뚝한 덕수가 영자가 순수한 사랑을 하는 장면에서는 70년대식 복고풍 청춘 로맨스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탄광이 무너지고, 탄광에 갇힌 덕수를 위해 영자가 독일인 간부에게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는 장면에서는 멜로 영화의 감동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국제시장]은 윤제균 감독에 의해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관객에게 선사하는 것입니다.

 

 

한번도 당신의 인생을 살아보지 못한 우리들의 아버지

 

[국제시장]에는 그 외에도 소소한 재미가 많이 숨어 있습니다. 마치 [포레스트 검프]처럼 덕수는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인물들을 스치듯이 지나갑니다. 구두닦이를 하는 덕수에게 한국에서 커다란 배를 만들겠다는 당찬 포부를 드러내는 젊은 정주영. 덕수내 고모(라미란) 가게인 '꽃분이네'에서 엘레강스한 패션을 찾는 디자이너 앙드레 김, 그리고 어린 씨름 꿈나무 이만기와 베트남전에서 덕수를 살려주는 당대 최고의 가수 남진까지... 영화 중간 중간에 깜짝 등장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국제시장]만의 또다른 재미입니다.

[국제시장]에서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영자의 역할이 너무 미미하다는 점입니다.  격동의 세월을 살며 버틴 것은 우리들의 아버지 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을테지만, [국제시장]은 덕수의 이야기에만 집중합니다. 영자 역에 김윤진이라는 묵직한 배우가 캐스팅되었기에 그 아쉬움은 더욱 컸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이야기에 집중하려 했다는 윤제균 감독의 연출변을 떠올린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듯 합니다.

영화가 끝나고 저는 극장 밖을 나서면서 저는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한번도 당신의 인생을 살아보지 못했던 아버지. 하지만 어린 시절 저는 술만 드시면 입버릇처럼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는데..."라고 한탄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렇게 싫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아빠보고 고생하랬어요?"라며 대들기도 했었습니다. 그땐 내가 왜 그랬는지...

 

[국제시장]에서도 늙은 덕수는 고집불통이라며 가족들 사이에서 외톨이였습니다. 그저 덕수와 함께 고난의 세월을 함께 했던 영자만이 덕수를 조용히 어루만지고 있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사진 속 아버지에게 그동안 힘들었던 것을 울먹이며 고백하는 덕수의 모습은 그렇기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제 덕수는 힘든 짐을 내려 놓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격동의 세월을 버티며 살아야했던 세월의 짐입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결국 격동의 세월을 버티며 살아야 했던 짐을 내려 놓지 못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평생 재봉틀 앞에서 일을 하셨던 아버지는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파킨슨병 때문에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직도 살아계신다면 아버지의 등을 쓰다듬으며 아버지도 이제 힘든 짐을 내려 놓으라고 말할 수 있었을텐데...

영화를 보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에 감기 몸살에 걸리셨다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지난 주말에는 저희 누나가 [국제시장]을 본 후 어머니를 찾아가 "우리 엄마가 나를 키우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셨는데... 고마워요."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하네요. 여러분도 [국제시장]을 그저 먼 옛날 이야기로 보시지 마시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 혹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로 보신다면 저처럼, 그리고 저희 누나처럼 더욱 큰 감흥을 느끼실 것 같습니다.

 

덕수가 이렇게 힘든 세월을 우리 자식이 아닌 내가 겪는 것이 참 다행이라고

고백하는 장면에서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아마 우리들의 아버지, 어머니도 같은 생각이 아니었을까?

그 장면만으로도 나에게 [국제시장]은 가장 슬펐던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