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4년 영화이야기

[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 - 신의 충직한 종이 아닌, 인간 모세를 그리다.

쭈니-1 2014. 12. 8. 17:52

 

 

감독 : 리들리 스콧

주연 : 크리스찬 베일, 조엘 에저튼

개봉 : 2014년 12월 3일

관람 : 2014년 12월 7일

등급 : 12세 관람가

 

 

나의 나이트클럽 탈출기

 

지난 토요일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송년회를 했습니다. 사실 송년회라고 해봤자 만나서 삼겹살에 술 마시고, 당구치며 쓸데없는 농담만을 늘어놓는 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그날 송년회에는 며칠 전에 누나를 잃은 친구가 주도한 것이라서 조금은 엄숙한 분위기로 펼쳐졌습니다. 술을 마시며 이젠 고인이 된 친구의 누나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숙연해졌습니다.

술이 얼큰하게 취하자 친구 녀석이 오랜만에 나이트클럽에 가서 신나게 놀자고 제안합니다. 사실 저도 그렇고, 제 친구들도 젊었을 때조차 나이트클럽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춤을 잘 추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끄러운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도 아닙니다. 게다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부킹도 잘 안됩니다. 그렇기에 젊었을 때에도 나이트클럽에는 잘 안갔습니다. 그런데 나이 마흔이 넘어서 갑자기 나이트클럽이라니...

하지만 며칠 전 누나를 잃고 슬픔에 빠져 있었던 친구의 제안이라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그 친구는 나이 마흔이 넘도록 모태솔로이기에 잘만하면 나이트클럽에서 부킹에 성공해서 친구에게 여자친구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순진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키지는 않았지만 결국 우리들은 얼큰하게 취한 상태로 나이트클럽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하지만 막상 나이트클럽에 들어가서 테이블에 앉고나니 역시 적응이 안됐습니다. 하긴 결혼 전, 젊었을 때에도 적응하지 못했던 나이트클럽이 나이 마흔이 넘어서 갑자기 적응될리가 없습니다. 음악은 너무 시끄러웠고, 북적이는 사람들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나이트클럽의 사람들은 시끄러운 음악에 맞춰 정신없이 춤을 췄지만, 저와 제 친구들은 그냥 테이블에 앉아 과일 안주에 맥주를 마시며 멀뚱히 그들을 구경하기만 했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상황입니다. 춤을 좋아하기라도 한다면 춤을 추며 이 분위기를 적응할테지만, 사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못하는 것이 춤 추는 것입니다. 남들은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면 된다고들 하지만 몸치인 제겐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제 친구들 모두 마찬가지라는 사실입니다.(유유상종입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친구의 꿀꿀한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저는 웨이터에게 팁을 건네주며 부킹을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최악의 굴욕을 불러왔습니다.

웨이터가 부킹녀를 저희 테이블로 데려와도 부킹녀들이 저희 자리에는 앉지도 않고 도망치듯이 다른 테이블로 가버리더군요. 그러기를 두, 세번 당했고, 웨이터도 민망한 표정으로 "왜 부킹이 안되는지 모르겠네요."라며 미안해했습니다. 결국 저희는 두시간동안 맥주만 실컷 마시고 굴욕감만 잔뜩 안은채 나이트클럽을 탈출했습니다. 다시는 나이트클럽에는 가지 말자고 다짐을 하면서... 

 

 

히브리인의 이집트 탈출기

 

다음날, 숙취를 가득 안고 구피, 웅이와 함께 [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을 보러 갔습니다. 나이트클럽 탈출 사건으로 인하여 잠이 부족했기에 일요일에는 낮잠이라도 실컷 자고 싶었지만, 이미 며칠 전부터 웅이와 [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을 보러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 상태라서 취소가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나이트클럽에서의 굴욕을 맛보고나니 도망치지 않고 제 곁에 있어주는 구피가 고맙게 느껴지더라고요.

[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가 시작하기전 저는 극장 좌석에서 꾸벅 꾸벅 졸았습니다. 도저히 감기는 눈꺼풀을 막을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상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거짓말처럼 잠이 싹 도망가 버렸습니다. [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은 무려 2시간 35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였지만,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답게 영화에 대한 몰입도가 좋아서 2시간 35분이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은 영화였습니다.

[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출애굽기'를 원작으로한 영화입니다. '출애굽기'는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히브리인들이 신의 계시를 받은 모세를 리더로 하여 이집트를 탈출하는 내용입니다. '출애굽기'에서 출(出)은 한자어로 '나갈 출'자이며 애굽은 한자어로 이집트를 뜻한다고 합니다. 쉽게 이집트 탈출기라고 하면 될 것을, 왜 '출애굽기'라는 어려운 한자어를 써서 "출애를 굽는 내용인가?"라는 오해를 사는지 잘 모르겠네요. 

 

'출애굽기'는 제목 자체가 좀 애매하긴 하지만 저처럼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조차 '출애굽기'의 내용을 대강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출애굽기'는 영화로도 몇 차례 만들어졌습니다. 고전 영화 중에서는 아직도 성서를 영화화한 작품 중에서 최고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세실 B. 데밀 감독, 찰톤 헤스톤, 율 브린너 주연의 [십계]가 있으며,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 [이집트 왕자]도 '출애굽기'를 소재로한 영화입니다.

사실 저는 [십계]는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1998년 극장에서 경이에 찬 눈으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기술력을 확인했던 [이집트 왕자]는 기억이 생생합니다. 특히 영화 후반의 홍해가 갈라지는 '모세의 기적' 장면은 압도적이었습니다. 갈라진 홍해에서 거대한 고래가 지나가는 장면은 당시에도 굉장한 화제였는데, 저와 함께 [이집트 왕자]를 봤던 후배는 이 장면을 보기 위해 [이집트 왕자]를 여러번 재관람하기도 했습니다.

[이집트 왕자]에 대한 추억이 있기에 저는 [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을 보면서도 '모세의 기적' 장면을 내내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 자체가 기본적인 설정을 제외하고는 [이집트 왕자]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모세의 기적' 장면 역시 '아름다운 기적'보다는 '압도적인 신의 힘'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집트 왕자]와의 차이점들이 [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을 더욱 재미있게 만들었습니다.

 

 

모세... 그는 어떻게 히브리인들의 구세주가 되었나?

 

[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이 [이집트 왕자]와 가장 크게 다른 것은 바로 주인공 모세의 캐릭터와 람세스와의 관계입니다. 제가 성서를 읽지 않아서 [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과 [이집트 왕자] 중에서 어느 모세가 원작에 가까운 캐릭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의 모세와 람세스가 [이집트 왕자]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다는 점입니다.

[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에서의 모세(크리스찬 베일)와 람세스(조엘 에저튼)의 관계는 굉장히 복잡합니다. 모세는 비록 이집트 왕인 세티(존 터투로)의 누이인 비디아의 아들이기에 왕위 계승자는 아니지만, 세티의 신뢰를 얻고 있습니다. 그가 세티의 아들이자 왕위 계승자인 람세스와 형제와도 같은 사이라고는 하지만 미묘한 대립 관계인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영화 초반 히타이트와의 카데시 전투에서 위기의 순간 람세스를 구하는 모세. 하지만 람세스는 그 사실을 치욕스럽게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람세스에게 모세는 왕위 계승의 걸림돌이자 질투의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세티의 아내이자, 람세스의 어머니인 투야(시고니 위버)가 끊임없이 모세를 죽이려한 이유이고, 히브리인들을 핍박한 비둠 총독의 이간질에 람세스가 넘어간 이유이기도 합니다. 비록 람세스는 모세를 죽이지 않고 유배를 보내는 것으로 끝내려하지만, 모세를 축출함으로써 자신의 왕권을 더욱 강화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모세가 이집트 왕궁에서 람세스의 형제로 장군의 직책을 계속 맡았다면 그는 히브리인을 위한 구세주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실제 히브리인의 장로인 눈(벤 킹슬리)에게 자신의 출생 비밀을 듣게 된 모세는 그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합니다. 수십년동안 이집트의 왕족으로 살아온 그에게 어느날 갑자기 "당신은 사실 노예입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 어느 누구도 쉽게 수긍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람세스에 의해 축출을 당하고 투야가 보낸 암살자의 공격에서 겨우 살아남은 모세.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가 곧바로 히브리인의 구세주가 된 것입니다. 대신 그는 십보라(마리아 발베르드)를 만나 행복한 일상에 빠져듭니다. 그가 신의 계시를 받드는 것은 그러부터 9년이 지난 후의 일입니다. 죽을 고비에서 만난 아이의 형상을 한 신. 모세는 신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이 해야할 일을 깨닫고, 행복한 일상과 사랑하는 가족을 버려두고 자신의 동족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히브리인의 구세주가 되어 힘겨운 고행을 선택합니다.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고, 사랑하는 가족의 곁을 떠나야했던 모세는 그렇기에 끊임없이 신에게 의문을 제시합니다. "이것이 진정 옳은 일입니까?"라며 묻고, 신이 이집트에 열가지 재앙을 내리려하자 이집트인들의 고통에 안타까워하기도 합니다. 세티가 예언이 두려워 히브리인의 신생남아를 죽였던 것처럼, 신이 이집트의 장자를 모두 죽이려하자 "이것은 비열한 복수일 뿐입니다."라며 신의 행동에 반대하고 람세스에게 미리 경고를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은 신의 충직한 종인 모세가 아닌 신의 계시에 의문을 품은 인간 모세를 그립니다. 이것이 [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과 [이집트 왕자]의 결정적인 차이점입니다.

 

 

신과 왕의 대결

 

[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은 2시간 35분이라는 긴 러닝타임동안 모세와 람세스의 캐릭터와 그들의 관계를 완벽하게 구축해 놓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성서의 이야기와 다를지도 모릅니다. 실제 성서의 이야기에 충실했다는 [이집트 왕자]에서 모세와 람세스의 캐릭터와 그들의 관계는 상당히 간소화되었습니다. [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이 긴 러닝타임이 필요했던 이유입니다.

[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에서 더욱 흥미로운 것은 영화 자체가 히브리인의 구세주 모세와 이집트의 왕 람세스의 대결이 아닌, 히브리인들의 신과 이집트 왕 람세스의 대결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입니다. 영화에서 히브리인의 신은 어린 아이의 형상을 하고 나옵니다. 그리고 신은 진짜 어린 아이인 것처럼 행동하고 말합니다. 모세가 히브리인들을 취합하여 몇십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이집트 군대와의 전투를 준비하자, "난 그렇게 인내심이 많지 않아."라며 이집트에 10가지 재앙을 후다닥 내려버립니다.

특히 10번째 재앙에서는 신에 대항하여 뜻을 굽히지 않는 람세스에 대한 형벌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람세스가 자신이 아버지인 세티에게 받지 못했던 아버지의 사랑을 자신의 아들에게 베풀자 10번째 재앙을 핑계로 람세스에게 죽음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형벌을 내린 것입니다. 람세스가 히브리인들을 모두 죽이겠다며 뒤늦게 추격을 나선 것은 당연합니다. 복수는 복수를 부를 뿐이니까요.

 

"람세스는 신이 아니야."라며 모세에게 고함을 지르는 어린 아이의 형상을 한 신. 그러한 신의 모습은 [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의 중요한 키포인트입니다. 이 영화의 부제가 '모세와 람세스'가 아닌 '신들과 왕들'인 이유는 스스로 신이 되고자 했던 이집트의 왕 람세스와 그러한 람세스에게 형벌을 내리는 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설정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모세의 기적'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이집트 왕자]에서 '아름다운 기적'으로 표현되었던 '모세의 기적' 장면은 [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에서는 아름답다기 보다는 압도적으로 그려집니다. 마치 신이 자신의 힘을 맘껏 과시라도 하듯이 바닷물이 빠져 나간 황량한 홍해와, 저 멀리서 격렬하게 밀려오는 홍해의 파도로 압도적인 신의 힘을 그린 것입니다. '모세의 기적' 장면이 펼쳐지면서 저는 "어때, 내가 이 정도야."라는 신의 과시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영화를 보며 '그렇게 전지전능한 힘이 있다면 그냥 람세스만 죽이면 될텐데...'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주저앉은 람세스의 모습을 보니 영화 속의 신이 원했던 것은 바로 신의 권위를 넘어서려했던 람세스에게 압도적인 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모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부터 신의 계시에 끊임없이 의문을 품었던 모세는 이후 신의 율법을 담은 '십계'를 작성하며 신의 전지전능한 힘을 인정합니다. [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은 그런 영화입니다. 리들리 스콧이 '출애굽기'는 히브리의 영웅 모세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신의 전지전능함을 인정하는 인간의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은 '출애굽기'를 통해 

결코 완벽하지 않은 인간의 모습을 담아 냈다.

그것이 비록 거대 왕국 이집트의 전성기를 연 위대한 왕 람세스라도,

히브리인의 민족적 영웅 모세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