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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 앤 더머 투] - 바보들의 활약이 필요한 시대

쭈니-1 2014. 11. 28. 18:46

 

 

감독 : 바비 패럴리, 피터 패럴리

주연 : 짐 캐리, 제프 다니엘스, 캐서린 터너, 레이첼 멜빈

개봉 : 2014년 11월 27일

관람 : 2014년 11월 27일

등급 : 15세 관람가

 

 

20년이라는 시간의 의미

 

여러분에게 20년이라는 시간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어떤 분들은 20년이라는 시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라고 말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굉장히 긴 까마득한 시간이라고 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마다 20년이라는 시간에 대한 생각은 다를 것입니다. 젊은 분들에게 20년은 미래의 시간일 수도 있으며, 나이가 드신 분들에겐 과거가 될 수도 있겠죠. 

제게 20년이라는 시간은 지나간 청춘임과 동시에 다가올 노후입니다. 20년 전, 그러니까 1994년의 저는 상반기에는 대학 새내기였으며, 하반기에는 갓 입대한 이등병이었습니다. 20년 후, 그러니까 2034년의 저는 60살이 갓 넘긴 할아버지(웅이가 결혼해서 아기를 낳았다면)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는 정년 퇴직을 했겠지만, 일을 그만 두기엔 젊고, 그렇다고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엔 늙은 어정쩡한 나이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제가 뜬금없이 20년이라는 시간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덤 앤 더머 투]를 봤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전편인 [덤 앤 더머]는 1994년 만들어졌습니다. 다시말해 [덤 앤 더머 투]는 무려 20년 만의 속편인 셈입니다. 게다가 영화가 끝난 후 20년 후인 2034년에 3편을 공개한다는 농담도 서슴치 않습니다. 그렇다면 [덤 앤 더머]에게 있어서 20년이라는 시간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덤 앤 더머]의 주연을 맡은 짐 캐리는 1994년 한 해동안 [덤 앤 더머], [에이스 벤츄라], [마스크]에 출연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이후 그는 [배트맨 포에버], [케이블 가이], [라이어 라이어], [트루먼 쇼], [그린치], [브루스 올마이티],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 등의 영화에 출연하며 할리우드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배우가 되었습니다.

메가폰을 잡은  패럴리 형제 감독은 [덤 앤 더머]로 데뷔한 이후 그들만의 화장실 코미디 장르를 할리우드에 정착시켰습니다. 그들은 [덤 앤 더머]이후 [킹핀],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붙어야 산다]로 꾸준히 개성있는 연출력을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20년이라는 시간은 그들에게도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2014년 현재 짐 캐리는 전성기가 지난 한물간 배우 취급을 받고 있으며, 패럴리 형제 감독 역시 [홀 패스], [바보 삼총사]의 흥행 부진으로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짐 캐리와 패럴리 형제에게 20년이라는 시간은 최고의 인기와 최악의 부진을 동시에 겪은 시간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덤 앤 더머 투]는 그들의 인기를 다시금 회복시킬 수 있는 최고의 기회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20년 만의 속편이 전성기의 인기를 다시 회복하고 싶은 짐 캐리와 패럴리 형제 감독의 무리수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들이기에 가능했던 무리수

 

20년이라는 시간은 영화의 속편을 만들기 위한 시간이라기보다는 영화를 리메이크할 시간에 더 적합해 보입니다. 다시말해 만약 [덤 앤 더머]를 짐 캐리, 제프 다니엘스가 아닌 다른 젊은 배우를 기용해서 리메이크하겠다고 선언했다면 더욱 자연스러웠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덤 앤 더머 투]를 보러 가면서 20년 전의 전성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짐 캐리의 과욕이 영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궁금해하며 극장에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막상 [덤 앤 더머 투]가 시작하니 영화에 대한 그러한 부정적인 생각이 싹 가시더군요.  오로지 절친 해리(제프 다니엘스)를 속이기 위해 20년 동안 환자 행세를 했던 로이드(짐 캐리)가 "속았지?"라며 벌떡 일어서는 그 순간 저는 느꼈습니다. 로이드에게 있어서 20년이라는 시간의 의미를... 로이드에게 20년이라는 시간은 그저 해리를 좀 더 완벽하게 속이기 위한 시간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참 어이없죠? 하지만 레전드급 바보인 로이드와 해리이기에 가능한 20년의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덤 앤 더머 투]를 상식적인 생각으로 바라봐서는 안되는 영화입니다. [덤 앤 더머]는 애초에 일반인의 시선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두 바보의 어이없는 모험담을 그린 영화이며, 그렇기에 20년만의 속편이라는 어이없는 기획과 20년 후의 3편이라는 농담이 그들에게 더 잘 어울려보이기까지 합니다.

 

로이드가 20년 동안 해리를 속이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는 그 순간 [덤 앤 더머 투]의 시계추는 시간을 거슬러 20년으로 되돌아갑니다. 일반 사람들에게 20년이라는 시간은 성장과 변화를 위한 충분한 시간입니다. 하지만 로이드와 해리에겐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바보스러움이 있을 뿐입니다.

바뀐 것은 없습니다. 20년 전과는 달리 이젠 늙어보이는 로이드와 해리의 외모만 약간 달라졌을 뿐, 아무런 악의없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바보같은 행동들과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악당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어이없는 활약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했습니다.

이렇게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로이드와 해리의 모습을 보며 20년 전의 제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상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년간 작은 출판사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1년간 입시학원을 다닌 끝에 겨우 입학한 대학에서의 즐기웠던 추억, 그리고 장염에 걸려 신교대에서 고생했던 무더웠던 여름의 악몽까지... 비록 저는 20년 전, [덤 앤 더머]를 그다지 재미있게 보지는 못했지만, [덤 앤 더머 투]를 보다보니 그냥 로이드와 해리의 모습이 반갑기만 했습니다. 그것 역시 20년이라는 시간의 힘이겠죠.

 

 

의외로 짜임새있는 스토리 전개 

 

솔직히 [덤 앤 더머 투]를 보러 가면서 영화에 대한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제 시간대와 맞는 영화가 [덤 앤 더머 투] 뿐이었고, 그냥 부담없이 볼 수 있는 영화라는 점에서 아무 생각없이 [덤 앤 더머 투]의 티켓을 끊었을 뿐이니까요. 하지만 영화 시작부터 20년 전의 추억이 저를 행복하게 만들더니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이 바보들의 활약에 유쾌하게 웃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저는 [덤 앤 더머 투]의 스토리 전개가 꽤 짜임새있다고 생각합니다. [덤 앤 더머 투]는 신장 이식을 받지 않으면 곧 죽을 운명인 해리의 사연으로부터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가족의 신장을 이식받아야 신장 이식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만 안타깝게도 해리는 입양아였기에 부모의 신장을 이식받을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때 20년 전에 낳은 딸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것이죠. 로이드는 딸을 찾아 신장을 이식받자고 해리를 꼬드깁니다.

[덤 앤 더머 투]는 신장 이식을 위해 딸을 찾아나선 해리와 그의 친구 로이드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이 영화에 20년 만에 만난 어버지와 딸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대신 한번도 얼굴을 본 적없는 딸을 찾아나서면서도 온갖 말도 안되는 해프닝을 일으키는 두 바보 친구의 좌충우돌 모험이 부담없이 펼쳐집니다.

 

제가 [덤 앤 더머 투]의 스토리 전개가 꽤 짜임새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렇게 해리와 로이드의 여정에 그에 합당한 이유가 부여되었다는 점 때문입니다. 전편인 [덤 앤 더머]에서는 매리(로렌 홀리)에게 가방을 전해주기 위해서라는 약간은 억지스러운 설정이 보였지만, [덤 앤 더머 투]에서는 그들의 모험에 해리의 신장을 이식받기 위해서라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해리와 로이드의 바보같은 행동에 조금 익숙해질 때쯤 선보이는 로이드의 딸인 페니(레이첼 멜빈)의 등장은 새로운 바보 캐릭터의 진면목을 보여줍니다. [덤 앤 더머]가 해리와 로이드라는 바보를 내세웠다면, [덤 앤 더머 투]는 해리와 로이드 외에도 페니라는 섹시한 바보를 내세워 전편보다 업그레이드된 재미를 선보인 것입니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에 펼쳐지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장면은 박수를 쳐주고 싶을 만큼 기발했습니다. 만약 [덤 앤 더머 투]가 정상인의 상식이 통하는 영화라면 이들 반전은 억지스럽게 느껴졌을테지만,  애초에 이 영화는 바보들의 이야기이기에 억지스러운 반전 또한 '덤 앤 더머'스러운 재미로 승화시킨 것입니다. 이 정도면 별 기대없이 본 영화치고는 굉장히 만족스러운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바보들의 활약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덤 앤 더머]에서 로이드와 해리는 납치범을 상대로 활약합니다. [덤 앤 더머 투]에서 로이드와 해리는 세계적인 과학자 핀칠로 박사의 유산을 노리는 악녀 아델과 그의 정부 트래비스의 음모를 막습니다. 그런데 [덤 앤 더머]의 납치범과는 달리 [덤 앤 더머 투]의 아델과 트래비스는 영악한 우리 현대인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수십억 달러의 가치가 있는 발명품을 사람들에게 무료로 배포하겠다는 핀칠로 박사의 선언에 욕심에 눈이 먼 아델과 트래비스는 해리와 로이드를 죽이고 발명품을 가로채려 합니다. 과연 우리가 아델과 트래비스라면 내것이 될 수도 있는 수십억 달러의 가치가 있는 발명품이 사람들에게 무료로 배포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아델과 트래비스처럼 살인을 계획하지는 않더라도, 욕심에 눈이 멀어 무료로 배포되는 것을 어떻게든 막으려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로이드와 해리는 그러한 욕심을 전혀 부리지 않습니다. [덤 앤 더머]에서는 매리의 가방에 들어있는 돈을 물쓰듯이 써버린 그들이지만, [덤 앤 더머 투]에서는 발명품을 페니에게 전해줘야 한다는 것에 집착할 뿐입니다. 그들이 바보이기에 가능했을 순수일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해리와 로이드같은 순진한 바보가 아닐까요? 욕심이 가득한 요즘,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도태될 수 밖에 없는 요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덤 앤 더머 투]처럼 욕심없는 바보들이 행복하게 종횡무진 활약할 수 있는 시대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덤 앤 더머 투]는 생각없이 즐길 수 있는 20년전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복고적 코미디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바보들도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P.S. 1. 페니의 친엄마인 프라이다 펠처로 출연하는 배우는 캐서린 터너입니다. 사실 저는 제가 아는 캐서린 터너와 이 영화의 캐서린 터너가 동명이인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아는 캐서린 터너라면  [보디 히트], [로맨싱 스톤] 그리고 [장미의 전쟁]의 육감적인 여배우이니까요. 그런데 [덤 앤 더머 투]의 캐서린 터너는 뚱뚱한 중년의 아줌마였습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같은 배우였습니다. 도대체 캐서린 터너에게 20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참 20년이라는 시간은 많은 것이 바뀌는 굉장한 시간이었나봅니다. 참고로 프라이다 펠처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배우는 제니퍼 로렌스라고 합니다.

 

P.S. 2.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에 나오는 영상을 유심히 보시길... 20년이라는 시간을 사이에 둔 [덤 앤 더머]와 [덤 앤 더머 투]의 장면이 얼마나 비슷한지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린 지금 영악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 영화에서처럼 바보들도 행복하게 살며 악당을 무찌를 수 있는 세상.

어쩌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유토피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