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프란시스 로렌스
주연 : 제니퍼 로렌스, 조쉬 허처슨, 리암 헴스워스,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줄리안 무어, 도날드 서덜랜드, 우디 해럴슨, 엘리자베스 뱅크스
개봉 : 2014년 11월 20일
관람 : 2014년 11월 25일
등급 : 15세 관람가
미국에서는 '영 어덜트 북'의 전설을 뛰어넘다.
북미 박스오피스 사이트인 모조에서 '영 어덜트 북'을 소재로한 영화의 박스오피스 순위를 보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선 '영 어덜트 북'이란 말 그대로 '어린 어른'을 위한 소설을 말하는데, <해리 포터 시리즈>의 성공 이후 보편적인 도서 장르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영 어덜트 북'이 베스트샐러로 인기를 끌면서 할리우드 역시 이들 소설을 영화화하는데 박차를 가했습니다. 전 세계적인 흥행 신화를 쏘아올린 [해리 포터 시리즈]는 물론, [트와일라잇 시리즈]와 최근 새롭게 시리즈를 시작한 [다이버전트], [메이즈 러너]등이 '영 어덜트 북'을 소재로한 영화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쟁쟁한 영화들 사이에서 북미 박스오피스 최고 성적을 올린 '영 어덜트 북' 영화는 다름아닌 [헝거게임 : 캣칭 파이어]입니다. [헝거게임 : 캣칭 파이어]는 4억2천4백만 달러의 북미 흥행 성적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2위는 4억8백만 달러의 북미 흥행성적을 올린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입니다. 3위가 '영 어덜트 북' 영화의 전설인 [해리 포터 시리즈]의 마지막 영화,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임을 감안한다면 의외의 순위입니다. 참고로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가 북미에서 기록한 박스오피스 성적은 3억8천1백만 달러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흥행 성적만 놓고본다면 [헝거게임 시리즈]는 [해리 포터 시리즈]와는 비교가 되지 못할 정도로 초라합니다.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가 우리나라에서 440만 관객을 동원한데 반에,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은 60만, [헝거게임 : 캣칭 파이어]는 112만의 관객을 동원했을 뿐입니다.
이러한 [헝거게임 시리즈]의 국내 흥행 성적은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물론, 미국에서는 흥행 실패로 시리즈가 중단된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의 누적관객에도 못미치는 부진한 성적입니다. 참고로 공식통계 기준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의 누적관객수는 187만명입니다. 미국에서는 [해리 포터 시리즈]를 넘어선 흥행 대작 [헝거게임 시리즈]가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한 징크스는 [헝거게임 : 모킹제이]에서도 이어졌는데, 지난 주말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헝거게임 : 모킹제이]는 1억2천1백만 달러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개봉 첫주 1위에 올랐습니다. 이는 전작의 오프닝 성적에는 못미치지만, 2014년 오프닝 성적 중에서는 [트랜스포머 : 사라진 시대]가 기록한 1억 달러의 오프닝을 넘어선 최고 기록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개봉 첫주 38만명으로 [인터스텔라], [퓨리]에 이은 3위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나는 캣니스의 성장이 좋다.
[헝거게임 시리즈]는 비록 우리나라에서 흥행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해리 포터 시리즈]와 더불어 최고의 '영 어덜트 북'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경우는 시리즈 초반에는 그다지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가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점차 빠져 들었었습니다. 이렇게 제가 [해리 포터 시리즈]에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캐릭터의 성장을 지켜보는 재미 덕분입니다.
실제 [해리 포터 시리즈]는 10년 동안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영화의 주역들이 육체적으로 무럭무럭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를 끝으로 [해리 포터 시리즈]가 막을 내릴 때에는 가슴이 찡해지기도 했습니다. 이는 마치 어린 자녀가 성장해서 결혼을 한다며 내 폼을 떠나겠다고 선언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아버지의 뿌듯하면서도 섭섭한 심정과도 비슷할 것입니다.
제가 [헝거게임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 또한 [해리 포터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성장의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해리 포터 시리즈]가 귀여운 어린 꼬마 마법사에서 절대악 볼드모트(랄프 파인즈)에 대항하는 어엿한 성인 마법사로 성장한 해리(다니엘 래드클리프), 헤르미온느(엠마 왓슨), 론(루퍼트 그린트)의 육체적 성장을 지켜볼 수 있다면, [헝거게임 시리즈]는 캣니스 에버딘(제니퍼 로렌스)의 내적 성장을 볼 수가 있습니다.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에서 캣니스는 그저 어린 여동생 대신 죽음의 게임인 '헝거게임'에 출전하는 반항심 가득한 소녀에 불과했습니다. 그녀의 목표는 오로지 살아남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은 캣니스가 같은 12구역에서 온 피타(조쉬 허처슨)와 '헝거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한 혈투를 주로 잡아냈습니다.
하지만 캣니스는 어린 여동생 대신 자발적으로 '헝거게임'에 참여했고, '헝거게임'중에서도 11구역에서온 어린 소녀 루의 죽음에 진심어린 눈물을 흘렸으며, 단 한명만 살아 남을 수 있다는 '헝거게임'의 원칙을 깨고 피타와 함께 살아남으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캐피톨의 독재에 힘겨워하던 12개구역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됩니다. 그러한 사실을 눈치챈 캐피톨의 스노우(도날드 서덜랜드) 대통령은 게임 설계자인 플루타르크(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을 앞세워 캣니스를 죽이기 위한 새로운 음모를 꾸밉니다.
[헝거게임 : 캣칭파이어]에서 캣니스는 스노우 대통령의 꼭두각시가 되어 피타와의 거짓 사랑을 억지로 연출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75회 스페셜 헝거게임'이라는 스노우 대통령의 음모에 휘말려 피타와 함께 또다시 '헝거게임'에 출전하게 되자 두려움에 떨며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한 캣니스에게 동료들은 끊임없이 말해줍니다. 너의 진짜 적이 누군지 잊지 말라고...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서는 '헝거게임'의 참가자들이 캣니스의 적이지만, 캐피톨의 체제를 무너뜨리려면 그들은 동료가 됩니다. 과연 캣니스는 진짜 적이 누구인지 깨닫게 될까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혁명의 상징이 된 캣니스.
[헝거게임 : 모킹제이]는 바로 이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75회 스페셜 헝거게임'을 하는 동안 캣니스는 자신과 동맹을 맺은 피닉, 조한나 등을 끊임없이 의심합니다. '헝거게임'은 오직 단 한사람만 살아남을 수 있기에 비록 지금은 동맹이라 할지라도 언젠가는 서로 죽여야할 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피닉은 '너의 진짜 적이 누군지 잊지말아!'라고 충고합니다.
과연 캣니스는 자신의 진짜 적이 캐피톨과 스노우 대통령임을 깨닫고 12개 구역의 사람들이 원하는 혁명의 상징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것이 결코 호락호락한 일은 아닙니다. 어느새 피타와 진짜 사랑하는 사이가 된 캣니스는 13구역의 혁명군에 합류한 후에도 캐피톨에 잡힌 피타 걱정에 여념이 없습니다.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에서 단지 살아남는 것만이 목표였던 캣니스. 이제 그녀는 사랑하는 피타를 구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은 사랑에 빠진 평범한 여자에 불과했습니다.
스노우 대통령에게 캣니스를 구한 플루타르크와 13구역의 알마(줄리안 무어) 대통령은 캣니스가 12개 구역의 사람들을 한데 뭉치는 구심점 역할을 해주길 원합니다. 하지만 캣니스는 "그럴려면 피타를 구했어야지!"라며 오히려 분노를 터트립니다.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혁명의 상징인 '모킹제이'가 된 캣니스. 그녀가 그러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헝거게임 시리즈]를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것입니다. 이 영화는 캣니스의 내적 성장을 아주 천천히, 그리고 세밀하게 잡아냅니다. 그저 살아남고 싶었던 12구역의 가난한 소녀 캣니스에서 점차 혁명의 상징이 되는 캣니스. [헝거게임 시리즈]는 그러한 캣니스의 내적 성장을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 [헝거게임 : 캣칭 파이어], [헝거게임 : 모킹제이]를 통해 결코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잡아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그러한 것이 우리나라에서 [헝거게임 시리즈]의 흥행을 어렵게 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린 너무나 쉽게 영웅이 될 운명을 받아들이는 주인공에 익숙해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활약에 환호하며 현실에 대한 대리만족을 느끼곤 했습니다. 하지만 캣니스는 그러한 이전의 영웅들과는 다릅니다. 그녀는 끊임없이 혁명의 상징이 된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려합니다. 그녀는 혁명에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사는 것을 원할 뿐입니다.
그렇기에 플루타르크는 캐피톨에 의해 폐허가된 캣니스의 고향 12구역을 눈으로 확인하게 하는 등 캣니스가 캐피톨과 스노우 대통령에 대한 분노로 진정한 혁명의 상징이 되도록 끊임없이 자극합니다. 어쩌면 게일(리암 헴스워스)을 중심으로한 혁명군이 피타를 구하기 위해 캐피톨에 잠입하는 위험한 작전을 수행하는 것도 캣니스가 혁명의 상징이 되게 하기 위한 혁명군의 노력의 일부입니다. [헝거게임 : 모킹제이]는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캣니스가 혁명의 상징이라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한 혁명군의 노력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혁명의 상징에서 혁명의 주역으로...
[헝거게임 : 모킹제이]에서 혁명군과 스노우 대통령의 전쟁은 미디어 전쟁으로 이뤄집니다. 피타를 내세워 12개 구역의 혁명을 저지하려는 스노우 대통령의 음모와 캣니스를 내세워 12개 구역의 혁명을 결집시키려는 혁명군의 노력이 영화 내내 펼쳐집니다. 그렇기에 예고편에서 보여준 거대한 전투씬은 이 영화에서 기대하지 않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캣니스 또한 홍보 영상을 찍는 것에 주력합니다. 이는 마치 [퍼스트 어벤져]에서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가 '캡틴 아메리카'가 된 후에도 전투보다는 군 홍보단에서 활동하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캡틴 아메리카'가 그러했듯이 캣니스 또한 진짜 전투가 아닌, 그저 남에게 보여주는 모습이 중요할 뿐입니다. 그것은 상징의 운명입니다. 진짜 전투에 나갔다가 덜컥 죽어버리면 오히려 아군의 사기를 떨어뜨릴 위험이 있기 때문에 상징의 임무는 후방에서 안전하게 아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배우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일까요? 아닙니다. 마치 '캡틴 아메리카'가 친구인 벅키(세바스찬 스탠)을 구하기 위해 군 홍보단을 나와 위험천만한 전쟁의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것처럼, 캣니스의 역할은 혁명의 상징에서 멈추지 않고 혁명의 주체로까지 이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이 제가 내년에 개봉될 [헝거게임 : 모킹제이 파트 2]를 기대하는 이유입니다.
[헝거게임 : 모킹제이]를 보고 나오는 길... 많은 분들이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나버리는 이 영화에 '이게 뭐야?'라며 실망감을 나타냈습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영화의 국내 포스터에서 '마침내, 혁명의 불꽃이 타오른다!'라고 선언했지만, 사실 영화는 혁명의 불꽃이 채 타오르기 전에 끝나버리기 때문입니다. 혁명의 불꽃이 타오르는 것을 보여면 1년을 더 기다려야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굉장히 만족했습니다. 그저 죽음의 게임에서 살아남고 싶었던 소녀에서 혁명의 상징이 된 캣니스. 그녀의 성장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혁명의 상징에서 혁명의 주역으로 또다시 성장이 이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피타를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보는 캣니스의 표정을 그렇기에 의미심장합니다.
아마도 캣니스 또한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그녀의 당연한 바람은 캐피톨의 독재가 있는 한 결코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이제 자신의 작은 바람을 이루기 위해 거대한 혁명의 한가운데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헝거게임 : 모킹제이 파트 2]는 2012년부터 이어진 [헝거게임 시리즈]의 대단원의 막으로 적합해 보입니다. 아마도 저는 또다시 훌쩍 성장한 캣니스를 떠나보내며 뿌듯하면서도 섭섭한 감정을 느낄 것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것이 영화광의 운명인 것을...
인간은 모두가 행복을 추구한다.
하지만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 귀를 닫고, 눈을 감아버린다면
그 행복은 언젠가는 깨질 유리병에 불과한 것이다.
진정한 행복을 위해 불합리한 사회 체제에 맞서 싸우는 것
그것이 혁명이고, 캣니스의 마지막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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