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4년 영화이야기

[울브스] - 야생의 본능에 충실한 늑대인간의 여정

쭈니-1 2014. 11. 17. 17:17

 

 

감독 : 데이비드 헤이터

주연 : 루카스 틸, 메릿 패터슨, 제이슨 모모아, 스티븐 맥허티

개봉 : 2014년 11월 13일

관람 : 2014년 11월 16일

등급 : 15세 관람가

 

 

제2의 [트와일라잇]을 꿈꾸며...

 

우리나라의 11월 극장가는 [인터스텔라]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개봉하자마자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 자리에 오르며 누적관객 483만을 동원한 [인터스텔라]. 한동안 이 영화의 독주를 막아낼 영화는 없을 듯이 보입니다. 이렇게 [인터스텔라]가 극장가를 휩쓸고 있는 요즘, 제 눈에 띈 영화가 한편있습니다. 제목은 [울브스]입니다.

사실 [울브스]는 [인터스텔라]의 경쟁작이 되기엔 한 없이 부족한 영화입니다. 거대한 제작비가 들어간 블록버스터도 아니고, 짜임새있는 스토리 라인을 자랑하는 영화도 아니며, 유명 감독, 유명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는 더더욱 아닙니다. [울브스]를 연출한 데이비드 헤이터 감독은 [엑스맨], [엑스맨 2], [왓치맨]의 각본으로 유명하지만, 연출은 [울브스]가 처음인 신인감독에 불과합니다.

주연을 맡은 루카스 틸은 박찬욱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 [스토커]에서 인디아(미아 와시코브스카)를 괴롭히던 소년으로 잠시 등장했으며,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서 하복으로 출연했지만, 아직은 스타급 배우로 성장하는 과정에 있는 젊은 배우일 뿐입니다. 메릿 패터슨은 루카스 틸과 비교해서 더더욱 무명 배우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브스]가 제 눈에 확 띄 이유는 이 영화의 소재와 장르 때문입니다. [울브스]는 늑대인간을 소재로한 영화입니다. 늑대인간은 유럽의 전설에 등장하는 공포의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당연히 지금까지 늑대인간을 소재로한 영화는 공포 영화가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만약 [울브스]가 늑대인간을 소재로한 공포 영화라면 제 관심을 끌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것입니다. 이미 잭 니콜슨 주연의 [울프]를 비롯하여,  베니치오 델 토로가 늑대인간으로 분한 [울프맨] 등 늑대인간 소재의 공포 영화들은 제게 실망감을 안겨줬으니까요. 오히려 늑대에게 키워진 소년 모글리가 주인공인 [정글북]에 기원을 두고 있는 송중기 주연의 [늑대소년],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일본 애니메이션 [늑대아이]가 제겐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울브스]는 이들 영화와 한가지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늑대인간이라는 소재에 청춘 로맨스가 결합되었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트와일라잇]을 떠오르실 것입니다. 맞습니다. 네편의 시리즈를 통해 전 세계적인 흥행 돌풍을 일으켰던 [트와일라잇]은 뱀파이어와 청춘 로맨스를 교묘하게 섞음으로써 흥행신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제가 [울브스]에 기대한 것은 바로 제2의 [트와일라잇]이라고 부를만한 매끈한 판타지 로맨스였던 것입니다.

 

 

뱀파이어는 되고, 늑대인간은 안되는 이유

 

회사의 재고조사를 위해 주말도 없이 토, 일요일에 출근했던 저는 일요일 밤, 구피와 함께 [울브스]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피곤하다던 구피도 "제2의 [트와일라잇]이래."라는 저의 짧은 영화 소개에 "그럼 보러 갈래."라며 기꺼이 동행했습니다. 사실 [트와일라잇]은 저보다 구피가 더 열광했던 영화거든요. 구피 또한 저와 마찬가지로 [울브스]에 매끈한 판타지 로맨스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자 구피는 한층 더 피곤해진 얼굴로 극장을 나섰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재미없는줄 알았으면 그냥 집에서 쉬는건데..."라며 투덜거리더군요. 그렇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울브스]는 제2의 [트와일라잇]이 되기엔 턱 없이 부족한 판타지 로맨스 영화였습니다. 그렇다면 [울브스]가 제2의 [트와일라잇]이 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배우들의 매력은 [트와일라잇] 못지 않았습니다. [울브스]의 루카스 틸과 메릿 패터슨 커플은 개인적으로 [트와일라잇]의 로버트 패틴슨과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비교해서 뒤떨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악역 캐릭터인 코너를 연기한 제이슨 모모아의 카리스마가 좋았습니다. [트와일라잇]의 제임스와 비교한다면 코너는 악역다운 악역이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영화의 분위기입니다. 영화에서 분위기는 가끔 영화의 전부가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트와일라잇]의 경우 청춘 로맨스의 달달한 분위기를 이어나가다가 제임스의 등장과 함께 공포 분위기를 영화 속에 살짝 떨어뜨리는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그 덕분에 [트와일라잇]은 공포 영화보다는 청춘 로맨스 영화에 더 어울리는 영화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울브스]는? [울브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일단 투박합니다. 영화는 초반부터 난도질당한 케이든(루카스 틸)의 부모님을 보여주며 공포 영화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더니, 도망자 신세가 된 케이든이 여성을 괴롭히는 남자 둘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케이든과 안젤리나(메릿 패터슨)의 달달한 로맨스는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왜 [울브스]는 제2의 [트와일라잇]을 겨냥하면서도 달달한 청춘 로맨스보다는 공포 분위기로 영화를 포장했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늑대인간이라는 소재의 한계 때문일 것입니다. 뱀파이어는 귀족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늑대인간은 야생인간의 이미지가 더 강합니다. [트와일라잇]만 봐도 그렇습니다. 뱀파이어인 에드워드(로버트 패틴슨)은 꽃미남 스타일이지만, 제이콥(테일러 로트너)은 짐승남 스타일입니다.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의 전쟁을 다룬 [언더월드]에서도 뱀파이어는 지배층, 늑대인간은 피지배층이었죠. 결국 [울브스]는 그러한 늑대인간이라는 소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야생의 본능에 충실하다.

 

[트와일라잇]은 에드워드와 벨라의 로맨스 위주로 영화를 전개시킵니다. 그러다가 [뉴 문], [이클립스], [브레이킹 던]으로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점차 액션을 늘려나가는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그 덕분에 뱀파이어인 에드워드와 인간인 벨라의 사랑과 그로인한 외부의 위협이 시리즈 전체를 통해 잘 표현되었습니다. [트와일라잇]이 판타지 로맨스의 새 장을 열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하지만 [울브스]는 케이든이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아가는 과정을 주 내용으로 담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케이든과 안젤리나의 사랑은 그저 곁가지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울브스]는 케이든과 안젤리나의 사랑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습니다. 단지 케이든이 첫 눈에 안젤리나에게 반한 것으로 짧게 처리할 뿐입니다. [울브스]에서 케이든과 안젤리나의 사랑 이야기가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그렇다고해서 [울브스]가 늑대인간 소재의 대중적 장르인 공포에 충실한 것도 아닙니다. 분명 영화의 분위기는 로맨스보다는 공포 쪽에 가깝지만, 2010년 개봉한 조 존스톤 감독의 영화 [울프맨]과 비교해서 [울브스]의 공포는 어린아이 장난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울브스]의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제2의 [트와일라잇]을 기대한 관객에게 만족스러운 청춘 로맨스의 달달함을 안겨주지 못할 것이라면, 차라리 늑대인간 특유의 공포라도 제대로 표현했어야 했습니다. 이도 저도 아닌 [울브스]는 그 어떤 분위기도 만들어내지 못한 어정쩡한 영화가 되고 만 것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울브스]에서 한가지 흥미로운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야생의 본능에 충실한 코너의 야망입니다. [트와일라잇]이 뱀파이어가 가지고 있는 피의 본능을 억누르며 청춘 로맨스를 완성했다면, [울브스]는 아예 늑대인간이 가지고 있는 야생의 본능을 맘껏 펼쳐 보이며 영화를 진행시켜 나갑니다.

[울브스]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찾아 나선 케이든의 이야기이지만, 정작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자손번식이라는 본능에 충실하려는 코너의 야망입니다. 그는 지구상에 얼마 남지 않은 순수 혈통 늑대인간입니다. 젊은 시절 순수 혈통 늑대인간인 헤일리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지만 헤일리 아버지의 반대로 사랑을 잃게 됩니다. 힘이 없어서 사랑하는 여성을 빼앗긴 코너는 이후 그는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난폭한 폭군에 되어 버립니다.

늑대는 무리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무리를 지으며 살아가는 대부분의 동물들이 그러하듯이 늑대 역시 우두머리가 있습니다.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면 암컷에 대한 선택권이 주어지고, 암컷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자손을 번식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코너가 루핀리지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는 것은 그러한 본능에 의한 것입니다. 그리고 루핀리지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우두머리가된 코너는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수 혈통의 늑대인간 안젤리나를 차지함으로써 자신의 자손을 번식시키려 하는 것입니다. [울브스]는 코너를 악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제가 보기에 그는 악이 아닌 본능에 충실한 늑대인간일 뿐이었습니다.

 

 

시작점은 [트와일라잇]과 같지만, 결국은 반대의 지점으로 향한다.

 

[울브스]의 후반은 안젤리나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케이든과 코너의 싸움으로 진행됩니다. 루핀리지의 마을 사람들조차 외면한 싸움, 이는 마치 암컷을 사이에 둔 늙은 수컷 늑대와 젊은 수컷 늑대의 싸움처럼 보입니다. [울브스]가 가진 유일한 영화적 재미는 바로 이렇게 늑대인간의 본능을 맘껏 표출하는 캐릭터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비록 케이든이 가지고 있는 출생의 비밀은 식상하고, 코너의 최후는 허무했으며, 후반부에 갑자기 등장해서 주저리 주저리 떠드는 와일드 조가 짜증이 나긴 했지만, 안젤리나라는 매력적인 암컷을 사이에 둔 두 수컷의 전쟁은 [트와일라잇]과는 또 다른 영화적 재미를 안겨줬습니다.

그렇습니다. [울브스]는 [트와일라잇]과 같은 지점에서 출발하는 영화처럼 보였습니다. 서양 공포 영화의 주요 소재였던 늑대인간을 청춘 멜로 장르와 접목시키려 했던 시도만으로도 그런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으니까요. 하지만 늑대인간이라는 투박한 소재는 [울브스]를 [트와일라잇]과 같은 매끈한 판타지 멜로 영화가 되지 못하는 벽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울브스]는 [트와일라잇]관느 다른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본능에 충실함으로써 [트와일라잇]과는 정반대 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울브스]는 케이든이 자신의 족보를 전해 받고 안젤리나와 루핀리지를 떠나 여행길에 오르며 끝을 맺습니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케이든에게 족보가 주어졌다는 것은 비록 루핀리지에서 부모님의 존재는 찾았지만 자신의 뿌리를 찾는 케이든의 여정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음을 알리는 것이니까요. 데이비드 헤이터 감독은 분명 속편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마무리하였습니다.

하지만 [울브스]의 속편이 만들어질 수 있을런지는 미지수입니다. [울브스]는 북미에서 11월 14일 개봉 예정이었지만 결국 상영관을 잡지 못하면서 개봉이 무산되었습니다. 국내 흥행도 예상대로 [인터스텔라]의 흥행 광풍에 묻혀 버렸습니다. 이대로라면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한 케이든의 여정은 [울브스] 한편으로 미완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작 [울브스]를 보면서는 실망감에 몸부림쳤지만, [트와일라잇]과는 전혀 다른 본능에 충실한 늑대인간들의 한바탕 작은 전쟁을 보고나니 또 그 나름대로 이 영화도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비록 객관적인 영화의 완성도는 여전히 최하위권 수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든의 여정이 계속 궁금해지는 것은 그러한 색다른 재미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를 볼 때만해도 나는 [울브스]가 실망스러웠다.

그런데 영화 이야기를 쓰다보니 본능에 충실한 이 영화가 나름 매력적이더라.

비록 투박하고, 달달한 로맨스 분위기는 부족하지만, 가끔은 이런 영화도 나는 좋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