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4년 영화이야기

[패션왕] - 간지도, 병맛도 모두 부족했다.

쭈니-1 2014. 11. 7. 14:37

 

 

감독 : 오기환

주연 : 주원, 설리, 김성오, 안재현, 박세영, 신주환, 민진웅

개봉 : 2014년 11월 6일

관람 : 2014년 11월 6일

등급 : 15세 관람가

 

 

나홀로 영화 보기 예찬론!!!

 

한때 저는 혼자 극장에 가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소심남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극장에서 하루종일 살다시피하면서 여러편의 영화를 혼자 몰아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나홀로 영화 관람족'이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가끔 구피와 웅이가 함께 영화를 봐주긴 하지만 혼자 영화를 보는 횟수가 가족과 함께 영화를 보는 횟수보다 훨씬 많습니다.

이렇게 '나홀로 영화 관람족'이 되고나니 불편함보다는 편리함이 더 많습니다. 일단 시간적으로 자유롭습니다. 웅이와 영화를 보려면 웅이가 학교에 가지 않는 주말, 공휴일이나 가능하고, 구피와 영화를 보려면 구피의 일정과 컨디션을 세심하게 따져야 하지만, 저 혼자 영화를 보려면 그냥 제 시간만 만들면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그리고 가장 큰 편리함은 영화 선택이 자유롭다는 점입니다. 열두살인 웅이와 영화를 보려면 관람등급을 따져야 합니다. 구피의 경우는 SF, 판타지 등 구피가 좋아하는 영화 취향에 맞춰줘야 합니다. 저는 SF, 판타지는 물론 애니메이션, 멜로, 코미디, 액션, 가끔은 사회적성 짙은 드라마도 극장에서 보는 것을 선호하지만, 구피는 스케일이 큰 영화가 아니라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돈 낭비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실 제게 이번주의 기대작은 [인터스텔라]와 [박스트롤]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기대작들이 개봉한 목요일에 제가 본 영화는 [패션왕]이었습니다. [인터스텔라]는 스케일이 큰 SF영화라서 구피도 찜해둔 영화입니다. 그런데 구피는 이번주 일요일 밤이 되어서야 영화를 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고 선언해 버렸습니다. [인터스텔라]가 너무나도 보고 싶지만 일요일 밤까지 참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박스트롤]의 경우는 웅이와 함께 봐야할 영화입니다. 그렇기에 웅이가 학교에 가지 않는 토요일이 되어야만 영화를 보러 갈 수 있습니다. (웅이는 [인터스텔라]도 보고 싶어했지만, 이미 구피가 일요일 밤에 찜해둔 영화라서 아쉽게도 웅이를 데려갈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목요일 밤, 저는 이미 영화를 볼 시간을 충분히 만들어 놓았지만, 정작 기대작인 [인터스텔라]와 [박스트롤]은 볼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 대신 제가 선택한 영화는 [패션왕]입니다. [패션왕]은 15세 관람가 등급의 영화이기 때문에 당연히 웅이와 함께 볼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패션왕]에 대한 구피의 반응은 "이런 영화를 왜 극장에서 봐?"였으니 [패션왕]이야말로 제가 혼자 보기에 딱 알맞은 영화였던 셈입니다.   

 

 

내가 [패션왕]에 기대했던 것들

 

목요일 밤, 혼자 영화를 보러 가겠다고 선언했더니 구피도, 웅이도 "무슨 영화를 보려고?"라며 관심을 보입니다. 제가 장난으로 "[인터스텔라]를 볼거야."라고 대답했더니 둘 다 "어떻게 그 영화를 혼자 보러갈 수가 있어?"라며 원망을 쏟아내더군요. 그래서 "거짓말이고... 사실 [패션왕]을 보러 갈거야."라고 대답했더니 그제서야 "그래? 잘 보고와."라며 웃으며 저를 극장에 보내줬답니다.

이렇게 구피와 웅이에게 철저하게 무시를 당한 [패션왕]. 하지만 저는 어쩌면 이 영화에서 의외의 재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기대한 의외의 재미라는 것은 바로 '병맛 코미디'입니다. 주원, 설리를 사정없이 망가뜨리고, 김성오가 의외의 카리스마를 터트렸던 [패션왕]의 예고편에서부터 저는 '병맛 코미디'의 재미를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패션왕]의 원작인 네이버 웹툰 <패션왕>을 보기도 했습니다. 비록 방대한 량과 유료 전환으로 인하여 7회까지 밖에 볼 수 없었지만, 7회만으로도 충분히 '병맛 코미디'의 진수를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웹툰의 '병맛 코미디'와 영화의 '병맛 코미디'는 엄연히 다릅니다. 웹툰에서는 통했던 '병맛 코미디'라고 할지라도 막상 영화화되고 나면 '유치하다.'라는 반응을 받을 수 있기에 [패션왕]이 웹툰과 영화의 경계를 얼마나 잘 살려낼지가 관건이었습니다.

 

오기환 감독 역시 그러한 점을 잘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제가 웹툰 <패션왕>을 고작 7회까지 보지 못해서 웹툰과 영화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웹툰이 가지고 있었던 '병맛 코미디'의 재미가 영화화되면서 많이 희석되었다는 점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캐릭터 설정입니다.

웹툰에서 8회 이후 우기명이 어떤 캐릭터로 발전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7회까지의 우기명은 그저 공부 잘하는 존재감없는 우등생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우기명(주원)은 요즘 사회적 문제로까지 제기되고 있는 '빵셔틀'이라는 버거운 과거를 떠안고 있습니다. 우기명의 그러한 과거는 영화 후반부 감동의 주요 코드가 되기도 합니다.

웹툰에서 김원호는 분명 간지나는 고등학생이었지만, 첫 등장에서부터 박세영과 묵찌빠를 하며 시끄럽게 웃고 떠드는 보통의 고등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김원호(안재현)은 재벌의 숨겨진 아들로 과도하게 시크한 캐릭터가 되어 있었습니다. 웹툰에서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선배에 불과했던 김남정이 영화에서는 인터넷 짝퉁 패션몰 CEO로 변경되는 등, 오기환 감독은 캐릭터 설정의 강화를 통해 원작의 '병맛 코미디'를 영화에 맞게 각색했습니다.

하지만 원작의 '병맛 코미디'를 희석시켰다고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원작의 '병맛 코미디'는 희석시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맞는 '병맛 코미디'를 이어나가야 하고, '병맛 코미디'가 희석된 만큼 원작과는 다른 영화만의 재미도 제시해야만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패션왕]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희석된 '병맛 코미디'가 아쉬운 이유

 

먼저 [패션왕]이 영화에 맞는 '병맛 코미디'를 이어나갔느냐에 대한 문제부터 이야기하자면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1회부터 7회까지의 웹툰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병맛 코미디'의 진수는 당연 3화에서부터 진행되는 교직원 휴게실에서의 쇼핑몰 알바 면접 장면이었습니다.

이 장면에서 우기명은 분격적으로 '패션왕'으로 등극하는데, 그가 등장할 때 '인류 최초의 아름다움을 위한 시각의 포기?!'라며 눈을 가린 그의 헤어 스타일을 극찬하는 장면은 <패션왕>의 '병맛 코미디'를 제대로 보여주는 명장면입니다. 그렇다면 이 장면은 어떻게 영화로 변주되었을까요?

영화에서는 김남정(김성오)이 고등학생이 아닌 짝퉁 쇼핑몰 CEO로 나오는 만큼 김남정의 쇼핑몰 알바 면접 장면은 변경이 불가피합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뜬끔없는 실내 체육관 조회 장면입니다. 이 장면에서 우기명은 웹툰의 '아름다움을 위한 시각의 포기' 헤어스타일과 웹툰에서 김창주가 입고 나왔던 3기통 바지를 입고 등장합니다. 이러한 영화 속의 장면은 웹툰과 조금 다르지만, 그래도 웹툰의 '병맛 코미디'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특히 오기환 감독은 이 장면과 연결해서 체육대회 장면으로까지 발전시키는데 (웹툰에서 체육대회 장면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어달리기에서의 우기명과 김원호의 패션 대결과 과장된 특수 효과 등은 제가 기대했던 영화에 맞는 '병맛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이후 [패션왕]의 스토리는 김원호와 그의 행동대장인 김두치(민진웅)의 만행에 집중됩니다. 그로인하여 '빵셔틀'이었던 우기명의 과거가 들통나고, 못가진 자인 김남정, 우기명, 김창주(신주환)등은 가진 자인 김원호와 김두치의 횡포에 무너지고 맙니다.

물론 오기환 감독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영화적 재미를 위한 선과 악의 대립은 뻔하다고는 하지만 결코 없어서는 안될 양념과도 같습니다. 오기환 감독은 '병맛 코미디'로는 영화를 이끌어나갈 수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고, 그렇기에 우기명, 김남정, 김창주로 구성된 선과 김원호, 김두치로 구성된 악의 대결을 영화 중반부터 이끌어 냅니다.

그러한 영화의 전개는 자연스럽게 '병맛 코미디'의 실종으로 이어집니다. 선과 악의 대결에서 '병맛 코미디'가 끼어들면 영화적 긴장감이 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김원호의 경우는 애초부터 '병맛 코미디'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진지한 캐릭터로 설정되었기 때문에 영화 후반에 '병맛 코미디'가 끼어들 그 어떤 여지도 남아있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패션왕]의 '병맛 코미디'는 영화 초중반에 잠시 선보이며, 원작 웹툰에 열광했던 관객들을 살짝 보듬어주고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어쩌면 오기환 감독은 이 정도면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을런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병맛 코미디'를 기대하며 영화를 본 저로써는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습니다.

 

 

패션왕이 되기 위한 간지도 부족하다.

 

'병맛 코미디'를 잠시 선보인 후 곧바로 포기한 [패션왕]. 그렇다면 '병맛 코미디'를 포기한 [패션왕]에는 웹툰과는 차별화된 그 어떤 재미가 숨어 있는 것일까요? 아마도 오기환 감독의 승부수는 바로 '간지'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애초에 웹툰의 그림체는 '병맛 코미디'에 맞게 허술합니다. 그렇기에 '패션왕'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웹툰 속의 패션은 '병맛 코미디'를 위한 장치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다릅니다. 주원, 설리는 물론 비주얼이 강한 신인 배우 안재현, 박혜진을 캐스팅한 것부터 오기환 감독은 웹툰에는 없었던 패션의 '간지'를 보여주겠다는 굳은 의지를 선보인 것입니다. 영화 초반 김원호와 박혜진(박세영)의 모습은 오기환 감독이 작정하고 보여주는 '간지'를 잘 드러냅니다.

그렇기에 영화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패션왕' 선발대회 장면은 영화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간지'의 매력을 한껏 뽐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돈으로 처바른 김원호의 귀공자풍 '간지'에 맞서 우기명이 없는자의 '간지'를 뽐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던 것입니다. 이는 '간지란, 없는 자가 있는 자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다.'라고 외치던 김남정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쉽게도 '패션왕' 선발 대회에서 '간지'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패션왕' 선발대회는 MC로 특별출연한 한혜진, 김나영, 홍석천만 기억에 남을 뿐이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우기명과 김원호의 대결은 '간지' 대결이 아닌, 선과 악의 무난한 대결로 변질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패션왕' 선발대회에서 제가 '간지'를 제대로 느끼려면 김남정의 철학처럼 가진 것이 없는 우기명의 패션이 가진 자인 김원호의 패션보다 멋있다고 느껴야 합니다. 하지만 오기환 감독은 이들의 마지막 승부를 패션이 아닌, 승리에 집착한 김원호의 비겁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히 무대에 선 우기명의 용감함으로 뜬금없는 마무리를 해버립니다.

결국 영화가 끝난 후 느낀 것은 '참 성의없이 만들었다.'라는 것입니다. 우기명의 어머니(이일화)가 김원호가 보낸 동영상을 보자마자 갑자기 울면서 '네가 다치는 것을 볼 수 없으니 대회에 나가지 말아라'라고 애원하는 장면만 봐도 그렇습니다. '빵셔틀'이었던 우기명의 과거를 통해 감동을 이끌어내고 싶은 오기환 감독의 욕심은 알겠지만, 영화 속의 캐릭터가 운다고 해서 감동이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영화를 보며 갑작스러운 우기명 어머니의 울음에 감동보다는 짜증이 났었습니다.

곽은진(설리)의 변신은 너무 뻔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쉬운 것은 박혜진이라는 캐릭터가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고 단순 소모된 점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패션왕' 결승전 장면도 감동보다는 억지가 느껴져서 실망스럽기만 했습니다.

[패션왕]을 보고 나오면서 '나 혼자 보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이 영화를 구피와 봤다면 '거봐! 내가 이런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것은 낭비라고 했잖아.'라는 잔소리를 들었을테니까요. 그래도 이렇게 혼자 보고나니 영화 자체는 아쉬웠지만, 영화 초중반에 나온 몇몇 기발한 '병맛 코미디' 장면과 안재현, 박세영이라는 기대되는 신인의 발견 등 나름 만족하며 늦은 밤, 집으로 향할 수가 있었습니다.   

 

김남정은 말했다.

없는 자가 있는 자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간지라고...

하지만 영화에서 우기명이 김원호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간지가 아닌

자신의 과거에 도망지지 않겠다는 불굴의 의지였다.

간지가 없는 '패션왕'이라니... 영화도 딱 거기까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