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임찬상
주연 : 조정석, 신민아, 윤정희, 라미란, 전무송
개봉 : 2014년 10월 8일
관람 : 2014년 10월 29일
등급 : 15세 관람가
10월 29일의 폭풍 관람은 이 영화가 마지막이다.
휴~ 정말 숨가쁘게 달려온 느낌입니다. 10월 29일 네편의 영화를 한꺼번에 본 것도 숨 가빴지만, 이렇게 본 네편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한꺼번에 쓰는 것도 제겐 큰 곤욕이었습니다.
특히 네편의 영화 중에서 무려 세편의 영화가 엇비슷한 로맨틱 코미디였다는 것은 영화 이야기를 쓰는데 있어서 혼란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레드카펫], [타임 투 러브],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뒤죽박죽 섞인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만족스럽게 [나의 사랑 나의 신부]까지 왔네요.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10월 8일 개봉하자마자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비수기 극장가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켰던 영화입니다. 이런 흥행작을 개봉 3주가 지나서야 보다니, 10월 한달동안 제가 영화 볼 시간조차 없을만큼 얼마나 바빴는지 알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이렇게 늦게 본 것이 그저 바빴기 때문이라고 할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와 같은 날 개봉한 [드라큘라 : 전설의 시작]과 [에코]는 개봉하자마자 챙겨 보았고, [나의 사랑 나의 신부]보다 1주 늦게 개봉한 [노벰버 맨]도 극장 상영이 끝나기 전에 보기 위해 서둘러 봤으니까요. 그러는 동안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계속해서 우선 순위가 뒤로 밀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제가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본다 본다하면서도 계속해서 뒤로 미뤄둘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어쩌면 이 영화의 원작인 이명세 감독의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 대한 추억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1990년 12월 29일 종로의 피카디리 극장에서 개봉했습니다. 1990년이면 제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당연히 결혼에 대한 달콤새콤한 로맨틱 코미디인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대신 12월 12일 단성사에서 [다이하드 2]를, 12월 19일 씨네하우스에서 [토탈리콜]을 관람했었습니다. 그 나이 때 청소년으로써 당연한 선택이었죠.
제가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본 것은 1992년 1월 20일이었습니다. 아마도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이후 [있잖아요 비밀이예요 2],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등으로 스타덤에 오른 최진실을 보기 위해서 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비디오로 보게된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1년 후 보게된 [결혼 이야기]와 더불어 성인의 길목에 들어선 제게 결혼에 대한 환상을 안겨준 영화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기억합니다. 커다란 안경을 쓴 뽀글이 머리의 최진실을... 그땐 최진실이 어떤 모습을 하고 나와도 예뻤었습니다. 영화의 후반부에 맹장 수술을 한후 '뽕'하고 방귀를 뀌는 최진실의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게 보이던지...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 대한 이런 소중한 추억이 망쳐질까봐 새롭게 리메이크된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보는 것이 저는 두려웠던 것입니다.
신민아도 매력있더라.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서 최진실에 대한 소중한 추억은 리메이크 영화에서 미영역을 연기한 신민아에 대한 거부감이 되어 버렸습니다. 솔직히 지금까지 신민아에 대한 호불호가 제겐 전혀 없었습니다.
그녀는 2001년 [화산고]로 데뷔한 이후, [달콤한 인생], [새드 무비]를 거쳐 [키친], [10억], [경주] 등의 영화로 13년이 넘도록 활발하게 연기 활동을 하고 있는 나름 베테랑 배우입니다. 하지만 제게 신민아의 대표작은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가 돋보였던 [야수와 미녀]입니다. 이렇듯 제게 있어서 신민아는 배우보다는 그냥 예쁜 스타에 불과했습니다.
그렇기에 신민아가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저는 속으로 '안 어울려.'라고 단정지어 버렸습니다. 제 생각에 미영은 예쁜 캐릭터가 아닌, 평범하지만 사랑스러운 누군가의 아내였기 때문입니다. 신민아처럼 만인의 연인이라 할 수 있는 예쁜 얼굴을 가진 배우가 해낼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뽀글이 파머를 한 최진실과는 달리 예고편에서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신민아의 모습은 그러한 제 선입견을 더욱 부채질했습니다. 원작의 명장면이라 할 수 있는 짜장면 그릇에 얼굴 처박기 장면에서도 신민아에겐 최진실의 망가짐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러한 선입견이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의 관람을 뒤로 미루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임찬상 감독의 리메이크작인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보고나니 신민아표 미영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90년 당시만 하더라도 여성의 사회 참여가 거의 없었고, 그렇기에 당연히 미영은 평범하지만 사랑스러운 누군가의 아내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렀고, 여성의 사회 참여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맞벌이 부부 또한 흔한 일이고요. 그러한 상황에서 미영은 더이상 뽀글이 파머를 한 귀여운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은 당당한 사회인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미영이 미술가로써의 자신의 길을 포기하고 미술 학원 선생으로 만족하며 살다가 문득 자신을 되돌아 보는 장면 등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서는 당당한 사회인으로써 미영의 모습이 많이 반영되었고, 신민아의 도시적 얼굴은 그러한 새로운 미영과 잘 어울렸습니다. 앞으로 제게 신민아의 대표작은 더이상 [야수와 미녀]가 아닌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될 것입니다.
이렇듯 막상 신민아가 연기한 미영에게 매력을 느끼기 시작하자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원작과는 다른 또 다른 영화적 재미를 제게 안겨주었습니다. 1992년 이명세 감독의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보았을 당시에는 결혼에 대한 환상으로 영화를 감상했지만, 2014년 임찬상 감독의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보면서는 결혼에 대한 공감을 느끼며 영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영화와 함께 나이를 먹었기에 가능한 [나의 사랑 나의 신부]만의 독특한 매력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앗! 영민의 이야기는 딱 내 이야기이다.
이명세 감독의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박중훈과 최진실의 풋풋한 매력이 돋보이는 영화였습니다. 고등학교 졸업반이었던 저는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보며 "나도 저런 행복하고 풋풋한 결혼 생활을 해야지."라고 다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22년이 흘렀고, 저는 이제 결혼 12년차 중년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24년만에 리메이크된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보니 느낌이 새로웠습니다. 더이상 영화를 보며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가질 나이는 지난 것입니다. 그 대신 영민(조정석)과 미영의 결혼 생활을 보면서 "앗! 저건 내 이야기인데?"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그만큼 임찬상 감독은 24년이라는 세월은 건너 뛰어 현재에 맞게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제대로 리메이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영화는 원작이 그랬듯이 '집들이', '잔소리', '음란마귀', '첫사랑', '사랑해 미영'으로 챕터를 나누어 진행됩니다. 그 중에서 '집들이'는 이제 막 결혼한 남자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만한 이야기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제 방을 처음 가졌습니다. 그렇기에 친구들을 제 방에 초대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그 버릇은 결혼한 후에도 이어졌는데, 영화 속의 영민처럼 별 생각없이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다가 구피에게 혼쭐이 났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며 영화를 보니 '집들이' 에피소드가 굉장히 유쾌하게 느껴지더군요.
'집들이' 뿐만이 아닙니다. '잔소리', '음란마귀'도 고개를 끄덕이며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 특히 '음란마귀'에서 영민이 어릴 적 친구인 승희(윤정희)와 넘어서는 안될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길뻔한 장면도 꽤 공감이 되었습니다.
저 역시 중학교 시절부터 만났던 여자 친구가 있습니다. 그녀와는 결혼 후 연락이 뜸해졌었는데, 몇년전 오랜만에 그녀에게 연락이 왔었습니다. 오랜만에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그런데 그녀와 약속을 한 이후 이상하게 해서는 안될 생각이 자꾸 들더군요.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 사이이기에 불륜을 저지를만한 관계가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저 역시 '음란마귀'한테 빠져 바린 것입니다.
결국 저는 그녀에게 전화해서 "아무래도 우리 만나면 안될 것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후 그녀에겐 더이상 연락이 없습니다. 제 '음란마귀'로 인하여 오랜 여자 친구를 잃었지만, 자칫 위태로워질 뻔한 결혼 생활을 구해냈다고 생각하면 후회는 없습니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22년전 봤던 원작에 대한 기억은 이미 희미합니다. 그저 박중훈과 최진실의 매력과 짜장면에 미영의 얼굴을 처박는 장면, 맹장 수술을 한 미영이 방귀뀌는 장면 등 몇몇 명장면이 단편적으로 기억날 뿐입니다. 하지만 리메이크된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보니 22년전 원작에 대한 기억도 되살아났고, 원작을 볼 당시에는 느낄 수 없었던 결혼에 대한 공감도 느낄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대화가 필요해.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보고나니 너무나도 당연한 행복한 결혼 생활의 진리를 다시한번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서로 간의 대화입니다. 대화의 부족으로 인한 결혼의 생활의 위기는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서 '사랑해 미영' 챕터에 나옵니다.
존경하는 판목원(전무송) 시인의 죽음으로 인하여 힘들어 하는 영민. 그는 자신의 아픔 때문에 자궁근종으로 괴로워하는 미영의 아픔을 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미영은 원작과 마찬가지로 심한 통증으로 병원에 실려가 수술을 받게 되고, 그제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영민은 미영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바로 이 장면에서 영민이 처음부터 미영에게 판목원 시인과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해줬다면 어땠을까요? 그랬다면 영민의 아픔도 미영과 함께 나눌 수 있었을 것이며, 미영의 아픔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구피에게 주저리 주저리 말이 많습니다. 부부 간에 비밀이 없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비밀이 생기는 그 순간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없게 될 것이며, 그러한 불신의 벽은 행복한 결혼을 막는 벽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룻동안 겼었던 일들을 저녁에 구피에게 털어놓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보면 오해로 인한 다툼이 줄어들게 됩니다. 이러한 대화가 바로 결혼 12년차 유부남의 노하우입니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여러모로 꽤 성공적인 리메이크입니다. 원작의 영화적 재미를 그대로 따라하지 않고 시대에 따라 변화시킨 영리한 전략은 원작과의 차별화를 이루어 냈습니다. 그러면서 원작의 명장면들을 재현함으로써 24년전 원작의 추억을 느끼고 싶어하는 올드팬들의 욕망도 충족시켰습니다.
집들이에서 미영의 노래와 짜장면 그릇에 얼굴을 처박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짜장면 그릇에 얼굴을 처박는 장면은 약간의 변화를 줌으로써 원작의 차별화와 원작에 대한 추억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짜장면을 잔뜩 묻힌 망가진 신민아의 얼굴을 보고 싶긴 했지만 말입니다.
영화의 감초 역할을 하는 집주인 아주머니(라미란)와 눈치없는 친구 달수(배성우)의 적절한 배치도 영화를 유쾌하게 관람할 수 있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특히 엔딩 크레딧에서 공개되는 집주인 아주머니와 달수의 로맨스는 결코 원작에서는 느낄 수 없는 또 하나의 보너스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보기 전에는 원작의 추억을 망칠까봐 걱정이 되었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나니 원작의 추억을 다시 만끽할 수 있으면서도 원작과는 차별화된 재미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러고보니 김의석 감독의 [결혼 이야기]도 리메이크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박중훈, 최진실과는 다른 최민수와 심혜진의 풋풋함이 2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떻게 재해석될지 궁금해집니다.
박중훈, 최진실의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내게 결혼에 대한 환상이라면
조정석, 신민아의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내게 결혼에 대한 공감이다.
영화와 함께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이런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영화이야기 > 2014년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패션왕] - 간지도, 병맛도 모두 부족했다. (0) | 2014.11.07 |
---|---|
[나의 독재자] - 아버지라는 이름의 이 세상 모든 독재자를 위해서... (0) | 2014.11.05 |
[우리는 형제입니다] - 장진식 착한 영화의 진수 (0) | 2014.11.03 |
[타임 투 러브] - 그의 발칙한 상상은 로맨스를 망친다. (0) | 2014.11.03 |
[레드카펫] - 알고보면 진솔한 러브스토리 (0) | 2014.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