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저스틴 리어든
주연 : 크리스 에반스, 미셸 모나한
개봉 : 2014년 10월 23일
관람 : 2014년 10월 29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최근에 본 로맨틱 코미디 중에서 최악
10월 29일, 회사에 연차 휴가를 낸후 오전 8시 35분부터 오후 5시 50분까지 극장에서 무려 네편의 영화를 봤습니다. 큰 맘을 먹고 그동안 미뤄두었던 기대작들을 한꺼번에 본 것이니만큼 왠만하면 재미있게 영화를 보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철저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재미있게 볼 수 없었던 영화가 딱 한편이 있었습니다. 그 영화가 바로 [타임 투 러브]입니다. [타임 투 러브]는 10월 29일에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재미없었던 영화임과 동시에 2014년 제가 극장에서 본 영화 중에서도 가장 기대이하였던 영화였으며, 요 몇년간 본 로맨틱 코미디 중에서도 가장 로맨틱하지 못했던 영화입니다.
제가 이처럼 [타임 투 러브]를 최악에 가까운 평가를 내리는 이유는 이 영화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재미없는 영화라고 할지라도 매력 한두가지는 찾을 수 있고, 그 매력을 위주로 영화를 본다면 어느 정도 영화적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법입니다. 그것이 이 세상 모든 영화를 재미있게 보기 위한 제 방법입니다. 하지만 [타임 투 러브]는 어렵사리 매력을 찾아도, 금새 그 매력이 사라져 버리는 이상한 로맨틱 코미디였습니다.
[레드카펫]의 영화 이야기에서도 언급했듯이 로맨틱 코미디의 재미는 선남선녀들이 티격태격하다가 사랑에 빠지고, 오해로 인하여 잠시 사랑의 위기를 맞이하기도 하지만 결국 극복하고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장르의 영화입니다. 이렇듯 로맨틱 코미디는 다른 장르의 영화보다 더 견고하게 틀을 구축해 놓았고 대부분의 로맨틱 코미디들은 그러한 틀 안에서 약간의 설정만 바뀌가며 영화적 재미를 완성합니다. [타임 투 러브]도 사실 다르지 않습니다.
[타임 투 러브]가 크리스 에반스와 미셸 모나한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크리스 에반스는 [판타스틱 4]의 쟈니 스톰으로 이름을 알린 이후 [퍼스트 어벤져]의 스티브 로저스, 즉 '캡틴 아메리카'를 통해 세계적 스타의 자리에 오른 배우입니다. 그런 그에게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을 맡김으로써 크리스 에반스가 가지고 있는 색다른 매력을 뽑아내려는 시도 자체는 좋았습니다.
그리고 [미션 임파서블 3], [소스 코드] 등에서 영웅의 가녀린 연인으로 인상깊은 활약을 했던 미셸 모나한을 캐스팅함으로써 크리스 에반스의 의외성 짙은 캐스팅을 상쇄시킨 것 또한 좋았습니다. 크리스 에반스가 가지고 있는 '판타스틱 4', '캡틴 아메리카'라는 마블 슈퍼 히어로의 이미지가 [타임 투 러브]의 로맨틱한 매력을 방해한다면 미셸 모나한의 무난한 매력이 앞으로 나서주면 될테니까요.
캐릭터는 매력적이었지만...
[타임 투 러브]의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면... 어린 시절 자신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기억 때문에 사랑을 하지 못하는 ME(크리스 에반스)가 어느날 우연히 자선 파티장에서 매력적인 HER(미셸 모나한)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생전 처음 사랑이라는 것을 느낀 ME. 하지만 HER에겐 이미 돈 많고 매력적인 약혼자 스터피(이안 그루퍼드)가 있습니다. ME는 어떻게든 HER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연인이 아닌 친구로 만나 보자며 접근하고, ME가 싫지 않았던 HER 역시 그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만남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두 사람은 우정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여기에서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은 주인공인 ME와 HER 모두 어린 시절 부모님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다는 점입니다. ME는 어린시절 어머니가 시리얼 상자에 작별 인사가 담긴 메모를 붙이고 떠나자 어른이 되어서도 시리얼을 먹지 못합니다. HER는 어린시절 그녀의 생일을 앞두고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자살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 때문에 자신의 생일이면 아버지가 보냈을만한 카드를 골라 아버지 이름으로 자신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냅니다.
이렇듯 ME와 HER는 각각 어머니와 아버지에 의한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그들의 대처를 상반됩니다. ME는 어머니의 작별 메모가 담겼던 시리얼을 피함으로써 상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도망다닙니다. 그러한 어머니에 대한 상처는 어른이 된 후에도 시리얼을 먹지 못하고, 여자의 사랑을 믿지 못하는 후유증을 남겨 줍니다.
하지만 HER는 오히려 아버지의 이름으로 자신에게 생일 축하 카드를 보내며 상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렇게 겉보기에는 자신의 상처에 대한 대처가 적극적인 그녀이지만, 사랑하지는 않지만 안정된 삶을 추구하는 스터피와 약혼을 하면서 그녀 역시 자살한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채 가시지 않음을 드러냅니다.
[타임 투 러브]는 ME와 HER의 이러한 상처를 깊이 있게 다루고, 그들이 서로간의 사랑을 통해서 어린 시절의 상처를 극복하고 진정한 어른이 되는 과정을 담았다면 어쩌면 꽤 감동적인 로맨틱 코미디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스틴 리어드 감독은 그들의 상처를 굉장히 가볍게 다룹니다. 그러한 가벼움은 [타임 투 러브]의 캐릭터에 의한 영화적 재미를 멀리 걷어 차버리는 결과를 안겨줍니다.
그의 친구들이 문제이다.
[타임 투 러브]의 가장 큰 문제는 로맨틱 코미디이면서 영화 자체가 전혀 로맨틱하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크리스 에반스와 미셸 모나한을 캐스팅하여 선남선녀의 사랑을 완성했고, 그들에게 어린시절의 상처를 안겨 줌으로써 캐릭터 설정도 꽤 좋았지만, 그러한 매력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채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와 섹스 코미디의 경계에서 갈팡질팡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 원흉은 ME의 친구들에게 있습니다. 대부분의 로맨틱 코미디에서 주인공의 친구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로맨스를 만들어갈 주인공 대신 망가져서 관객에게 웃음을 안겨 주고, 주인공의 사랑을 연결시켜 주는 큐피터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물론 가끔은 주인공을 서로 오해하게 만드는 민폐 캐릭터도 존재하지만, 그러한 조연이 있기에 로맨틱 코미디의 재미가 더욱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타임 투 러브]의 친구들은 도대체 왜 나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ME의 친구인 스콧(토퍼 그레이스)은 누군가 가져가 읽게끔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공공 장소에 일부러 두고 가는 로맨티스트이지만, 그가 주인공의 사랑을 위해서 하는 역할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비단 스콧만이 아닙니다. 다른 친구들 역시 도대체 왜 나와서 러닝타임을 잡아 먹는지 알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안전은 보장할 수 없음]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오브리 플라자가 연기한 말로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ME의 친구 중에서 유일한 홍일점이지만, 남자들 못지 않게 괴팍하고, 과격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한때 ME를 사랑했고,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ME의 곁에 남아 있기 위해서 친구라는 이름으로 ME의 주변에 잇을 수 있엇던 것입니다.
[타임 투 러브]는 그러한 말로리의 캐릭터를 잘만 살린다면 꽤 유용했을 것입니다. 말로리와 ME의 관계는 얼핏 ME와 HER의 관계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우정이라 우겨야만 하는 말로리와 ME. 뭔가 괜찮은 에피소드가 나올만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ME의 친구들의 역할은 그저 '사랑은 있다.' '사랑은 없다'라는 갑론일박에 그칩니다. ME가 그러힌 친구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캐릭터도 아니니 그들의 갑론을박은 그저 공허한 농담에 불과합니다. 차라리 ME의 친구들로 인한 러닝타임을 줄이고, ME와 HER의 이야기에 좀 더 집중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는 발칙한 상상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타임 투 러브]의 근본적인 문제는 다름아닌 주인공인 ME에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로맨틱 코미디는 고정된 틀이 확실한 장르입니다. 이렇듯 고정된 틀이 있다는 것은 자칫 영화가 너무 뻔해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로맨틱 코미디는 자신만의 뚜렷한 개성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타임 투 러브]를 보기 전에 봤던 [레드카펫]은 남자 주인공의 직업을 성인영화 감독으로 설정함으로써 그러한 개성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렇다면 [타임 투 러브]는?
[타임 투 러브] 역시 ME의 직업이 시나리오 작가를 점을 이용해서 다른 로맨틱 코미디와는 다른 개성을 만들어 내려 노력합니다. ME는 다른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들으면 그들의 이야기에 자기 자신을 대입시키는 상상을 합니다. 이러한 상상 속에서 ME는 제2차 세계대전의 해군, 백발도사, 우주인, 한국 유생이 됩니다.
특히 [타임 투 러브]의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한국 유생 장면은 분명 독특했습니다. 사랑 애찬론자인 스콧이 '배꽃이 피면 눈물도 흐른다'라는 한국 드라마를 본 후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주장하는 장면에서 ME는 조선시대 유생을, HER는 기생이 됩니다. 띄엄띄엄 한국말로 대사를 하는 크리스 에반스와 미셸 모나한의 연기와 조선시대의 성전환이라는 막장급 반전까지... 분명 색다르긴 했습니다.
하지만 색다름은 로맨틱 코미디의 미덕이 아닙니다. 색다름 속에서 로맨틱한 매력을 잊지 않아야 진정한 매력이 됩니다. 문제는 ME의 상상이 로맨틱하기는 커녕, 오히려 로맨틱한 분위기를 확 깨버린다는 점입니다. 어색한 한국말 대사를 구사하는 크리스 에반스와 미셸 모나한의 연기는 분명 색달랐지만, 로맨틱하지는 못했습니다.
한국 유생 장면 뿐만이 아닙니다. ME의 상상 중에서 수염을 덕지 덕지 붙이고 여장을 한 크리스 에반스의 엽기적인 모습은 이 영화의 발칙한 상상이 얼마나 로맨틱 코미디의 장르와 어울리지 않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렇듯 다른 로맨틱 코미디와는 다른 개성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던 이 영화는 후반부 HER의 결혼을 막기 위한 ME의 노력 장면에서 로맨틱 코미디의 뻔한 공식을 다시금 뒤쫓아 갑니다. 결국 이럴 것이면서 괜히 다른 로맨틱 코미디와는 다른 개성이라며 엽기적인 장면이나 늘어 놓고... 도대체 저스틴 리어든 감독은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캡틴 아메리카'를 그저 망가뜨리고 싶었던 것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로맨틱하지 못한 로맨틱 코미디는 절대 재미있을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로맨틱 코미디를 만드는 분들은 제발 그것을 명심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영화의 원제는 'Playing It Cool'이다.
하지만 국내 개봉하면서 '타임 투 러브'라는 로맨틱한 제목으로 바뀌었다.
문제는 영화가 국내 개봉 제목만큼 로맨틱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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