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팜 반 호브
주연 : 바리 아츠마, 예로엔 크라베
개봉 : 2014년 10월 30일
관람 : 2014년 10월 28일
등급 : 12세 관람가
<반 고흐 : 10년의 기록전>이 더 탐났다.
10월의 마지막주, 저의 한꺼번에 영화보기 계획은 월요일 밤에 혼자 본 [나를 찾아줘]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화요일 밤에는 [반 고흐 : 위대한 유산]의 시사회에 참가하면서 본격적으로 미친듯이 영화 보기의 서막을 올렸습니다.
제 글을 자주 읽으시는 분들은 아실테지만, 사실 저는 영화 시사회에 초대를 받더라도 참가할 수 없다고 정중하게 거절하는 편입니다. 시사회에 초대가 된다는 것은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미리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로 영화를 보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는 단점 또한 있습니다. 주어진 여유 시간이 한정된 직장인인 제겐 그러한 시사회의 단점은 큰 타격이었습니다.
실제 [반 고흐 : 위대한 유산]의 시사회에 참가하기 위해 저는 회사에서 무리수를 둬야 했습니다. 오후 8시까지 시사회장에 도착하려면 6시 정시 퇴근을 해야 했지만, 퇴근을 앞둔 시간에 직장 상사가 일을 시켰던 것입니다. 아무리 빨리 해도 그 일을 처리하고나면 6시 칼퇴근은 무리였던 상황. 하지만 이미 구피가 시사회장으로 출발했고, 시사회 불참 통보를 하기에도 너무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제 부하 직원들에게 제가 해야할 일을 떠맡기고, "미안하다."라는 한마디만 남긴채 쏜살처럼 회사를 빠져 나와야 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영화 블로그를 운영하다보니 일주일에도 많게는 몇 건씩 시사회 초대 메일을 받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부분의 시사회를 정중하게 거절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시사회가 있는 날마다 무리하게 칼퇴근을 감행하다가는 직장 상사에게도, 그리고 부하직원에게도 요주의 인물로 찍힐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반 고흐 : 위대한 유산]의 시사회에 참가했습니다. 제가 회사에서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반 고흐 : 위대한 유산]의 시사회에 참가한 첫번째 이유는 영화가 기대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단지 그 이유 때문이라면 나중에 영화가 개봉하면 주말에 여유있게 원하는 극장과 시간을 잡아 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두번째 이유가 중요한데... [반 고흐 : 위대한 유산]은 특이하게도 영화와 전시의 콜라보레이션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반 고흐 : 위대한 유산]의 개봉에 맞춰 10월 18일부터 용산 전쟁기념관에서는 <반 고흐 : 10년의 기록전>이라는 대형 전시회가 열렸고, [반 고흐 : 위대한 유산]의 시사회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반 고흐 : 10년의 기록전>의 초대권을 나눠준다는 점이 저와 구피를 머나먼 시사회장으로 이끌었습니다. 결국 저는 영화도 보고, 전시회도 갈 수 있는 꿩 먹고 알도 먹는 1석2조 효과에 넘어간 셈이죠.
반 고흐, 그의 매력에 대해서...
제가 이토록 <반 고흐 : 10년의 기록전>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웅이가 반 고흐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그림에 대해서 잘 모르고, 반 고흐의 명성에 대해서만 알 뿐, 그가 무슨 그림을 그렸는지조차 관심이 없는 문외한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웅이는 영화 밖에 모르는 아빠와는 달리 그림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웅이가 좋아하는 화가는 국내에서는 이중섭 화가입니다. 그 중에서 웅이는 황소 그림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제가 제주도 야유회에서 이중섭 화가의 생가에 방문해 웅이를 위한 선물로 황소 그림 퍼즐을 산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웅이가 좋아하는 국외 화가는 바로 반 고흐입니다. 특히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그림을 좋아하는데, 몇 달전 교보문고에서 '별이 빛나는 밤'의 1000피스 퍼즐을 샀지만, 아직까지 맞추지 못하고 헤매는 중입니다. (제 욕심이 과했습니다. 그냥 500피스 퍼즐을 살걸...)
가만히 보면 웅이의 취향은 참 고전적입니다. 영화도 고전 영화를 좋아하고, 그림 취향도 요즘 아이들답지 않고 거장의 작품에 열광합니다. 그런데 취향이 전혀 고전적이지 않은 저 역시도 웅이를 따라 반 고흐의 그림 전시회를 몇번 쫓아다녔더니, 반 고흐의 불행한 일생과 그의 그림에 담긴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그의 그림에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번 주말에는 [반 고흐 : 위대한 유산]의 시사회 참가 덕분에 득템한 초대권으로 웅이와 함께 <반 고흐 : 10년의 기록전>에 갈 것 같습니다. <반 고흐 : 10년의 기록전>은 기존의 전시회와는 달리 그냥 단순한 그림 전시가 아닌 감각적인 조명과 영상, IT 테크놀로지와 HD 프로젝터를 사용한 미디어 전시회라고 합니다. 고전적인 취향의 웅이가 이러한 미디어 전시회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해지네요.
그럼 영화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반 고흐 : 위대한 유산]은 반 고흐의 출생지인 네덜란드 영화답게 반 고흐의 일생에 대해서 최대한 사실에 입각하여 영화 속에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다른 전기 영화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반 고흐의 일생 뿐만 아니라 그의 조카를 내세워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며 천재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의 고통도 함께 그려 넣었다는 점입니다.
[반 고흐 : 위대한 유산]은 천재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의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서 빈센트 반 고흐(바리 아츠마)의 일생은 사실에 입각하되, 그의 조카인 빈센트 빌렘 반 고흐(예로엔 크라베)의 이야기는 극화해서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반 고흐 : 위대한 유산]이 빈센트 빌럼 반 고흐의 이야기를 극화하면서까지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천재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의 고통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천재는 불행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생전에 결코 인정받지 못했던 불행한 천재였습니다. 그의 생전에는 단 한 작품만이 팔렸고, 그의 유일한 전시회는 술집이었다고 합니다. 가족들조차 그의 그림을 인정하지 않았고, 유일한 예술의 동반자라고 여겼던 고갱에게 버림을 받자 빈센트는 자신의 귀를 스스로 자르는 기행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는 스스로 정신병원행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1890년 37세의 나이로 스스로 자살하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물론 영화에서는 그의 타살설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아무도 모릅니다. 단지 지독하게도 외로웠고, 지독하게도 불행했던 빈센트 반 고흐의 일생과 그의 걸작만이 후세에 남겨진 것입니다. 그는 죽기 전 '고통은 영원하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을 정도로 고통이 그의 일생을 지배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빈센트는 무엇때문에 그렇게 고통스럽고 괴로웠을까요? [반 고흐 : 위대한 유산]에 따르면 빈센트를 평생 괴롭혔던 것은 남에게 인정받지 못하면서 느낀 자괴감이었습니다. 빈센트가 열정을 다해 그린 그림에 다해서 모두들 고개를 가로 저으며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그의 초기 걸작인 '감자먹는 사람들'을 절친했던 화가 친구는 물론 가족들마저 괴상하다며 외면하자 빈센트는 분노에 휩싸입니다.
실제 빈센트의 유일한 전시회였던 술집 여주인을 그린 '카페에서, 르탱부랭의 아고스티나 세가토리'라는 그림이 공개되는 순간 영화를 보는 관객들조차도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의 그림은 일반인의 비웃음을 사고 있는데, 무명 화가였던 당시에는 더욱 심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빈센트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자신의 열정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자신이 가족들에게 짐이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 것입니다. 영화에서도 빈센트는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아버지에게 분노를 터트리고, 예술 인생의 동반자라 여겼던 고갱에게 배신을 당하자 스스로 자신의 귀를 자르는 극단적인 행동까지 합니다.
하지만 결혼을 앞둔 동생 테오의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파리를 떠나고, 고갱에게 버림을 받은 이후에는 정신병원 행을 결심하기도 합니다. 그는 테오에게 끊임없이 '이 그림만 팔리면 너에게 빚진 것을 갚을 수 있어.'라며 희망을 말합니다. 자신의 능력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상황에서 끝까지 자신을 믿어주고 돌봐준 동생 테오에 대한 고마움은 빈센트에겐 평생의 갚을 수 없는 빚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빈센트가 죽음을 당한 오베르에서 테오의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사는 그림을 그리는 빈센트의 모습은 너무나도 불쌍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천재의 가족도 불행하다.
[반 고흐 : 위대한 유산]이 빈센트가 화가로써의 인생을 이제 막 시작한 1879년부터 그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1890년까지의 불행한 여정을 그리는 동안 1959년 파리에서는 빈센트가 남겼던 그림들의 유일한 상속인으로 살았던 테오의 아들 빌렘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진행됩니다.
빌렘은 빈센트의 그림을 모두 넘기려합니다. 그는 삼촌의 유산이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의 삶을 망쳤다고 생각합니다. 빌렘은 과거에 불과한 빈센트의 그림을 팔아넘긴 돈으로 미래인 고속열차 사업에 투자를 하려합니다. 그렇다면 빌렘은 왜 그또록 삼촌인 빈센트와 그의 그림을 미워했던 것일까요? 그 해답 또한 빈센트의 인생이 있습니다. [반 고흐 : 위대한 유산]을 빈센트의 시점에서 본다면 빈센트는 가족들에게마저 인정받지 못한 불행한 천재입니다. 하지만 시점을 가족에게 옮긴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빈센트는 가족들에겐 무능한 장남이었으며, 동생 테오에게는 버거운 짐이었습니다.
"예술은 아름다워야 한다."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는 빈센트의 아버지에게 빈센트의 그림은 흉물에 불과합니다. 그는 어떻게든 장남인 빈센트를 감싸려하지만 그가 재능도 없는 그림에 매달려 인생을 허비하는 것을 바라볼 수만은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빈센트의 반항은 나날이 심해지고, 결국 그는 "내 아들이 미쳤어."라며 그 충격에 숨을 거둡니다. "오빠 때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라는 여동생의 비난에 빈센트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빈센트가 평생 의지했던 동생 테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와 함께 안정된 삶을 살고 싶었던 테오에게 빈센트는 커다란 짐이었습니다. 테오는 평생 빈센트에게 돈을 부쳐주며 생활비를 대줬고, 팔리지 않은 빈센트의 그림을 팔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허사였습니다. 결국 빈센트는 37세의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고, 테오 역시 형이 죽은지 6개월만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물론 영화적 설정이지만 빈센트를 향한 빌렘의 원망은 바로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부재 때문이었습니다. 테오의 죽음 이후 테오의 부인이자 빌렘의 어머니는 세상 사람들에게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알리기 위해 평생을 바쳤으니 빌렘에게 빈센트는 아버지를 빼앗아갔고, 빈센트의 그림은 어머니마저 빼앗아간 원흉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처음엔 위대한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알아보지 못하는 빈센트 빌렘 반 고흐의 어리석음이 아쉬웠지만, 영화가 진행되고 빈센트의 불행과 그로 인한 가족들의 고통을 보면서 빌렘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그들의 고통이 있었기에 우리는 가장 위대한 화가의 가장 위대한 예술을 이렇게 감상할 수 있는 것이겠죠. [반 고흐 : 위대한 유산]은 빈센트 반 고흐의 일생과 더불어 그의 가족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함께 보여준, 의미있는 전기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나니 이번 주말에 관람할 <반 고흐 : 10년의 기록전>이 더욱 기대됩니다.
웅이가 가장 좋아하는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빈센트 반 고흐의 가족과 친구를 경악하게 했던 '감자먹는 사람들'
극장안 관객들마저 웃음을 터트린 '카페에서, 르탱부랭의 아고스티나 세가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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