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4년 영화이야기

[나를 찾아줘] - 그들은 절대 '나'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쭈니-1 2014. 10. 28. 15:22

 

 

감독 : 데이빗 핀처

주연 : 벤 애플렉, 로자먼드 파이크, 닐 패트릭 해리스, 킴 딕켄스

개봉 : 2014년 10월 23일

관람 : 2014년 10월 27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유부남에겐 경악스러운 스릴러

 

이번주 제 계획은 무려 여섯편의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것입니다. 월요일 밤에는 [나를 찾아줘]를, 화요일 밤에는 [반 고흐 : 위대한 유산] 시사회를, 수요일에는 하루 연차 휴가를 내고 [레드카펫], [타임 투 러브], [우리는 형제입니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볼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월요일 밤 [나를 찾아줘]를 봄으로써 제 계획은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나를 찾아줘]를 수요일이 아닌 월요일에 배치한 이유는 이 영화의 러닝타임이 너무 길어서 네편의 영화를 한꺼번에 봐야하는 수요일에는 다른 영화들과 시간대가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집근처 극장 시간표를 펼쳐 놓고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춰도 러닝타임이 2시간 30분인 [나를 찾아줘]를 끼워 놓고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더군요. 그렇다고 [나를 찾아줘]를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 [나를 찾아줘]는 월요일 밤에 따로 보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한 것이죠.

그렇게 이번주 영화 계획 중 특별 대우(?)를 받게된 [나를 찾아줘].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니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영화였습니다. 애초에 [나를 찾아줘]는 [에이리언 3]로 데뷔 이후, [세븐], [더 게임], [파이트 클럽], [패닉 룸], [조디악],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통해 스릴러 영화에서 천재적 재능을 발휘했던 데이빗 핀처가 메가폰을 잡았다는 점에서부터 스릴러 영화를 좋아하는 제 기대를 한몸에 받은 영화입니다. 게다가 지난 10월 3일 북미 개봉 이후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면서 평단과 관객의 호평이 줄을 잇고 있다는 점도 제 기대감을 부추겼습니다.

비록 [나를 찾아줘]를 보기전 어떤 분의 한줄 영화평으로 인하여 반전을 알게 되었지만, 그러한 스포일러조차도 영화적 재미와 충격을 방해할 수 없을만큼 [나를 찾아줘]는 완벽한 영화였습니다. 자! 이제 이 영화에 대한 흥분을 잠시 가라앉히고, 유부남이기에 더욱 경악스러웠던 스릴러 [나를 찾아줘]에 대한 영화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제 글을 읽기 전에 주의할 점은 이후 글은 스포 덩어리가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가급적 읽지 않으시길 추천합니다.

 

[나를 찾아줘]의 시작은 매우 평범한 스릴러였습니다. 결혼 5주년을 맞이한 닉(벤 애플렉)과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 그런데 집에 도착한 닉은 거실에 싸운 흔적이 남아 있고, 에이미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곧바로 닉은 경찰에 에이미의 실종을 신고합니다. 하지만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 될수록 에이미 실종의 모든 단서들이 닉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내의 실종(혹은 죽음), 누명을 쓴 남편의 이야기는 스릴러 영화에서 흔히 써먹는 스토리입니다. 해리슨 포드가 누명을 쓴 남편으로 나오고 토미 리 존스가 경찰로 출연하는 앤드류 데이비스 감독의 걸작 스릴러 [도망자]가 대표적입니다. 이러한 기본 설정을 가진 영화의 경우 주인공은 자신이 직접 범인을 잡고 누명을 벗으며 영화를 끝맺음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나를 찾아줘]는 그런 평범함을 거부합니다.

담당 형사인 보니(킴 딕켄스)는 결코 서두르지 않습니다. 그녀는 닉을 의심하면서도 결정적인 증거를 잡기 전에는 닉을 범인으로 단정짓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급한 것은 언론과 그러한 언론에 좌지우지되는 여론입니다. 언론과 여론은 에이미의 실종에 대해서 처음부터 닉을 의심하면서 닉을 궁지에 몰아넣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닉은 무기력하기만합니다. 스릴러 영화의 주인공처럼 극한 상황에서 멋진 활약을 보이는 영웅적인 면모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나를 찾아줘]가 2시간 30분이라는 긴 러닝 타임을 가진 이유는 이렇듯 이 영화가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처음부터 경찰이 닉을 범인으로 단정지으며 체포하려하고, 닉은 그러한 경찰의 추적을 벗어나 종횡무진 활약하면서 자신의 누명을 벗겨낸다면 굳이 2시간 3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필요없습니다. 하지만 [나를 찾아줘]가 지향하는 것은 그런 평범한 스릴러 영화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당신은 닉의 편에 설 수 있겠는가?

 

[나를 찾아줘]는 아주 천천히 닉을 궁지에 몰아 넣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주인공이 궁지에 몰리면 몰릴수록 관객의 응원을 받는 것이 일반적인데, 닉은 반대로 궁지에 몰리면 몰릴수록 관객의 외면을 받습니다. 저 역시 닉의 뻔뻔함에 그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이러한 스토리 전개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관객이 닉을 의심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이 영화가 닉의 누명 벗기를 영화적 재미로 삼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닉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닉에게 어린 연인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부터입니다. 그러한 사실이 밝혀지자 닉에겐 절대적인 아군인 쌍둥이 동생 마고(캐리 쿤)마저도 닉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마고는 닉에게 "나에게만은 진실을 말해줘."라며 다그칩니다. 그러한 마고의 외침은 닉을 더욱 궁지에 몰아놓았습니다. 그는 점점 외톨이가 되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닉의 불륜은 닉이게 에이미를 죽을 충분한 동기를 만들어줍니다. 게다가 영화 중간 중간에 삽입된 에이미의 일기장에 의한 과거 회상씬은 더욱  에이미를 불쌍한 피해자로 느끼게끔 만듭니다. 처음엔 누명을 쓴 닉의 이야기로 시작한 [나를 찾아줘]는 이렇듯 행복한 결혼 생활을 믿었지만 남편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에이미의 이야기로 반전하게 됩니다.

그에 맞춰 언론과 여론도 닉을 더욱더 몰아세웁니다. 이제 닉은 단순히 아내를 살인하고 시체를 숨긴 범인으로 의심하는 수준을 넘어 언론과 여론에 의해 불쌍한 에이미의 살인자로 낙인찍어 버립니다. 과연 이러한 급박한 순간을 닉은 어떻게 극복하게 될까요?

 

사실 영화가 끝나고 집에 돌아온 저는 구피에게 [나를 찾아줘]의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그랬더니 구피는 대뜸 "나쁜놈"이라며 닉을 욕하더군요. 그러면서 "그 나쁜 놈은 당해도 싸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솔직히 할 말이 없었습니다. 닉은 누가 뭐래도 나쁜놈이라는 욕을 먹어도 싼 캐릭터이니까요.

하지만 자신의 불륜이 드러난 상황에서부터 닉은 반격을 합니다. 그는 어느 방송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나쁜놈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해서 아내의 살인범이라는 뜻은 아닙니다."라고 항변합니다. 그것은 아주 정확한 지적입니다. 닉의 불륜행각은 닉의 범행 동기가 될 수는 있지만, 그가 에이미를 살인했다는 절대적인 증거는 될 수가 없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닉의 도덕성이 논란의 중심이 되면서 에이미의 실종 사건이라는 본질이 흐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영화 속의 상황은 굉장히 현실적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습니다. 닉의 불륜, 실종된 에이미... 그러한 눈에 보이는 사실이 닉을 범인으로 보이게끔 만드는 것이죠. 만약 제가 영화 속의 군중이라고 할지라도 그렇게 믿었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사실만으로 '불쌍한 에이미, 못된 닉'이라는 인식이 깊게 박혀 진실을 보려하지 않고 그냥 쉽게 단정지어 버렸을 것입니다.

[나를 찾아줘]가 놀라운 것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이 영화는 스릴러 영화임과 동시에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언론과 여론의 행태를 따끔하게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를 보는 저 마저도 닉의 편에 서지 못하게끔 만든 것은 그러한 데이빗 핀처 감독의 메시지를 더 잘 전달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어메이징 에이미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나를 찾아줘]는 평범해 보이는 스릴러 영화로 시작해서 결코 평범하지 않은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놀랍게도 본격적으로 영화를 시작한 것은 그 이후부터입니다. 앞서 밝혔듯이 사실 저는 [나를 찾아줘]를 보기 전에 이미 이 영화의 스포를 읽고 말았습니다. 누군가 이 영화의 한줄평에 "아내는 돌아온다."라고 써 놓았던 것입니다.

그러한 스포를 읽었기에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이 자신에게 무심하고 불륜까지 저지른 닉에 대한 에이미의 복수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닉이 불쌍하다는 생각보다는 나쁜놈이라고 생각하며 영화를 봤지만, 닉의 항변 그대로 그는 나쁜놈이지만, 살인자는 아니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영화는 중반부터 불쌍한 피해자처럼 보였던 에이미의 실체를 드러냅니다. 그녀가 얼마나 치밀하게 닉을 궁지에 몰아넣었는지, [나를 찾아줘]는 차분하게 에이미의 나래이션으로 그녀의 민낯을 드러냅니다. 그녀는 닉이 사형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에이미는 남편에게 상처입은 가엽은 주부에 불과한 것일까요?

닉의 시점에서 갑자기 에이미의 시점으로 옮긴 영화의 중반부는 마치 영화의 초반부에 제가 닉에게 등을 돌리게끔 설정된 것처럼, 저를 에이미에게 등을 돌리도록 만듭니다. 닉에게 상처를 입고 치밀하게 닉에게 누명을 씌운 것까지는 어찌되었건 그녀에게 일말의 동정심을 느낄 수 있지만, 그녀가 자신의 옛 연인인 데시 콜린스(닐 패트릭 해리스)를 찾아가고, 그를 처참하게 실인을 하는 장면에 이르르면 그녀에 대한 동정심은 공포심으로 바뀝니다.

 

무서운 집착남인 데시 콜린스를 이용해서 또다시 여론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에이미의 모습은 제가 지끔까지 봤던 그 어떤 악녀 중에서도 으뜸이었습니다. 에이미는 [위험한 정사]의 알렉스(글렌 클로즈), [미져리]의 애니 윌킨스(케시 베이츠)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영화 사상 으뜸의 악녀로 자리매김해도 모자라지 않은 캐릭터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에이미는 어느날 갑자기 무시무시한 악녀가 되었던 것일까요? 바로 이 부분에서 이 영화의 진가가 발휘됩니다. 에이미의 어머니는 동화 작가로 에이미의 어린 시절을 극화한 '어메이징 에이미'라는 동화 시리즈를 통해 베스트샐러 작가가 되었습니다. 평범한 아이에 불과했던 에이미는 동화 속의 완벽한 에이미와 항상 비교를 당해야 했고, 결국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을 동화 속의 '어메이징 에이미'처럼 꾸미는 것에 익숙해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에이미는 닉의 불륜으로 어느날 갑자기 악녀가 되어 버린 것이 아닌 어린 시절부터 가식적인 삶을 살아왔고, 언론과 여론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데 너무나도 능수능란했던 여성이었던 것입니다. 그녀가 데시 콜린스를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성폭행의 피해자로 둔갑시켜 여론의 동점심을 유발시키는 장면은 그렇기에 너무나도 섬뜩했습니다.

진정 에이미는 '어메이징'하게 섬뜩했고, 에이미를 연기한 로자먼드 파이크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어메이징'한 악녀 연기를 완벽하게 해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감독으로, 배우로, 종횡무진 활약하는 벤 애플렉의 연기를 기대했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나니 기억에 남는 것은 '어메이징'한 에미이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절대 '나'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나를 찾아줘]는 2시간 3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동안 여러차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영화입니다. 아내의 실종 사건에 대한 누명을 쓴 남편의 스릴러로 시작해서 불륜을 저지른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수극으로 진행되더니, 역대급 악녀의 탄생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나를 찾아줘]의 마무리입니다. 권선징악을 좋아하는 할리우드 영화의 특성상 어떻게든 에이미의 악행이 밝혀지며 끝이 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데이빗 핀처 감독은 그러한 평범한 결말 자체를 거부합니다.

음산한 음악 소리와 함께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저는 '나를 찾아줘'라는 영화의 제목이 너무나도 의미심장하게 느껴졌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영화의 제목이 차라리 '에이미를 찾아줘', 혹은 '그녀를 찾아줘'가 맞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나를 찾아줘]가 에이미의 실종 미스터리를 푸는 영화라면 그러한 제목이 더 잘 어울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나를 찾아줘'가 어쩌면 결혼 5년이 지나고 자신에게 무관심한 닉을 향한 에이미의 간절한 소망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스스로 몸을 감춘 에이미를 찾는 동안 에이미에게 무관심했던 닉은 자신이 진정 사랑했던 사람이 에이미였음을 깨닫게 되고 되돌아온 에이미와 사랑을 확인하는 해피엔딩을 머릿속에 그려 넣은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후반으로 흐르면 흐를 수록 제가 생각했던 장밋빛 해피엔딩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나를 찾아줘'라는 제목이 섬뜩하게 느껴졌습니다.

 

에이미는 닉의 폼으로 돌아왔고, 사람들은 닉과 에이미의 행복을 빌겠지만 그로인해 닉과 에이미는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숨기며 살게 될 것입니다. 에이미는 그것이 익숙합니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어메이징 에이미'로 살아가는 것에 익숙했으니까요. 하지만 닉은 자기 자신을 숨기며 사는 것이 익숙하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그는 에이미에게 염증을 느끼며 외도를 했고, 에이미에게 이혼을 줄기차게 요구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닉 또한 에이미와 같은 처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여론에 의해 죽을 놈이 되어본 경험을 한 닉은 결코 쉽게 에이미를 버리지 못할 것입니다. 어쩌면 '나를 찾아줘'라고 외치는 것은 에이미가 아닌 닉이 아니었을까요? 에이미의 완벽한 음모에 갇혀 스스로를 감추고 사람들에게 화목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닉. 그는 몇번이고 '내 아내는 살인마입니다.'라고 밝히고 싶지만 에이미의 뱃속의 아기 때문에 그러지도 못합니다.

에이미와의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로 결심한 닉. 그런 닉을 향해 "어떻게 저런 무서운 여자하고 함께 살아."라고 눈물을 짓던 닉의 여동생 마고. 분명 닉은 세상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었을 것입니다. '제발 나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닉을 보며 미소짓는 에이미의 표정은 너무나도 섬뜩했습니다. 월요일 밤에 영화를 봤기에 극장 안에 관객이 별로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에서 에이미의 미소에 나즈막한 비명소리가 들렸을 정도입니다.  이것이 바로 [나를 찾아줘]의 진정한 재미입니다.

 

영화를 본 후 늦은 밤 집에 돌아왔는데...

침대에서 홀로 자고 있는 구피의 모습이 순간 섬뜩하게 느껴졌다.

[나를 찾아줘]는 진정 유부남에게 최고로 무서운 스릴러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