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임순례
주연 : 박해일, 유연석, 이경영, 류현경, 송하윤
개봉 : 2014년 10월 2일
관람 : 2014년 10월 14일
등급 : 12세 관람가
당신은 기억하는가? 줄기세포 조작 스캔들!!!
2004년, 우리나라에 느닷없이 줄기세포 신드롬이 벌어졌습니다. 황우석 박사가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지에 베아 줄기세포 성공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줄기세포를 이용해서 난치병을 고칠 수 있다는 황우석 박사의 설명은 온 국민을 열광시켰고, 이제 우리나라가 전 세계의 생명공학 부분을 선도하게 되었다는 뿌듯한 자부심도 느끼게 했습니다.
연이어 황우석 박사가 세계 최초로 개 복제에 성공했다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복제 개의 이름은 스너피였습니다. 이에 우리 국민들은 줄기세포를 이용한 난치병 치료가 조만간 실현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2004년 4월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황우석 박사를 포함시켰고, 같은 해 11월에 황우석 박사는 한국언론인연합회에서 주관하는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과학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은 언론의 보도와 황우석 박사의 인자한 웃음에 이미 그를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2005년 11월, MBC <PD 수첩>에서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에 불법적인 매매난자와 강압적으로 채취된 연구원 난자 등이 비윤리적으로 사용되었다는 내용의 방송에 내보냅니다. 황우석 박사는 잘못을 시인하면서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 백의종군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러자 여론은 황우석 박사의 편으로 돌아섰고, <PD수첩>의 모든 광고가 취소되는 등 엄청난 후폭풍을 겪게 됩니다. 특히 YTN에서 <PD 수첩>이 강압취재를 했다는 연구원의 인터뷰가 방영되면서 MBC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PD 수첩>은 그러한 외압에 굴하지 않고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에 대한 검증과 취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서울대 진상조사위원회에서 2005년 12월 '줄기세포는 없다'라는 잠정 결론을 내리면서 황우석 박사와 줄기세포에 열광하던 온 국민을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렇듯 대한민국 국민을 열광하게 했던 줄기세포 신드롬은 2006년 3월 황우석 박사가 줄기세포 시료 조작을 지시했음을 시인하면서 전 세계를 상대로한 거대한 사기극임이 밝혀 졌습니다. 이상이 위키백과에서 소개한 '황우석 사건'에 대한 요약입니다.
이러한 줄기세포 조작 스캔들을 영화화한 [제보자]가 지난 10월 2일 개봉했습니다. [제보자]는 개봉 첫째주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등 기대 이상의 흥행을 올리고 있지만 사실 저는 이 영화가 그다지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줄기세포 신드롬이 불어 닥칠 때에도 저는 심드렁했고, <PD 수첩>에서 줄기세포 조작 스캔들을 터트렸을 때에도 '그럴줄 알았어.'라며 시큰둥했던 저는 너무 뻔해보이는 [제보자]를 굳이 극장까지 찾아가 내 소중한 시간을 투자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제보자]에 대한 관객의 평가가 좋더군요. 그래서 [제보자]가 개봉한지 2주만에 [제보자]를 보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막상 제 눈으로 확인한 [제보자]는 사회성 짙은 드라마로써의 영화적 완성도와 상업 영화로써의 재미까지 두루 갖춘 멋진 영화였습니다. 특히 영화를 본 후 '황우석 사건'에 대해서 알아보며 픽션과 논픽션을 능수능란하게 오고가는 임순례 감독의 능력에 대해서 다시한번 놀랬습니다.
영웅이 필요했던 시절, 그는 국민의 영웅이었다.
[제보자]는 영화 초반, 강당에서 학생들에게 멋진 강의하는 이장환(이경영) 박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신이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 난치병 환자들에게 희망이 되기 위해서라고 강연하는 그의 모습은 이장환 박사의 정체를 알고 있는 제게도 감동적으로 들렸습니다. 정말 줄기세포가 난치병 환자들에게 희망이 된다면 그를 믿고 기다려주고 싶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사람들은 이장환 박사에게 환호했고, 언론도 그에게 호의적이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PD 추적'의 윤민철(박해일) PD는 불법적으로 매매된 난자가 이장환 박사의 연구팀에 흘러 들어간 정황을 포착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이장환 박사를 건드릴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후폭풍을 맞을 것이 분명했으니까요. 사람들은 가끔 국익을 위해서 윤리 따위는 조금 짓밟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 스캔들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논리로 <PD 수첩>을 공격했으니까요.
그런데 바로 그때 이장환 박사와 함께 줄기세포를 연구했던 심민호(유연석) 팀장이 윤민철을 찾아와 '줄기세포는 없다'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제보합니다. 문제는 그에겐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저 윤민철에게 자신의 말을 믿어달라고 할 뿐입니다. 자! 여러분이 윤민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무런 증거도 없는 심민호의 말을 믿겠습니까? 아니면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이장환 박사를 믿겠습니까?
분명 심민호의 말을 믿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그가 믿기 어려운 사람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가 말하는 진실이 너무나도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진실과 마주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냥 눈과 귀를 닫아버립니다. 그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반응이죠. 그런데 윤민철은 아무런 망설임없이 진실을 파헤치기로 결심합니다. 왜? 그것이 그의 직업이기 때문입니다.
[제보자]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윤민철의 모습입니다. 그는 심민호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줄기세포의 진실을 파헤치기로 결심합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큰 위험한 모험입니다. 하지만 윤민철은 말합니다. "이장환 박사가 신도 아니고, 의혹이 있다면 밝히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요?" 맞습니다. 의혹이 있다면 그것을 밝히면 그만입니다. 그 대상이 누구일지라도...
줄기세포 조작 스캔들의 진실을 알고 있는 저는 영화를 보며 윤민철에게 항의하는 사람들이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국민적 영웅 이장환 박사에게 의혹을 제기하고 그의 연구를 방해하는 행동은 오히려 거대 언론의 횡포처럼 느껴졌을 테니까요. 그렇게 느끼는 순간, 수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방송국 앞에서 'PD 추적'에 항의하는 것은 권력을 가진 언론의 횡포에 맞서 힘없는 이장환 박사를 구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10년 전 그때처럼... 하지만 이제 우린 압니다. 오히려 무지했던 우리들이 진실을 파헤치는 언론의 본분을 횡포를 부리며 먹으려 한 것임을...
모든 것을 걸고 진실을 파헤치는 남자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진실을 말한 남자
저는 영화 속의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하며 영화를 보는 타입입니다. 하지만 [제보자]를 보면서는 윤민철에게도, 심민호에게도 감정을 이입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영화 속에서 처한 상황이 제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났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두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제가 윤민철과 심민호가 되는 대신 그들의 용기있는 행동을 마음 속으로 응원할 뿐이었습니다.
여론과 언론이 이장환 박사의 편에 서서 자신을 공격하는 상황에서도 윤민철은 말합니다. 나는 모든 것을 걸고 여기까지 왔다라고... 방송국 PD라는 안정된 직장에서 편안하게 생활할 수도 있었던 그는 자신의 경력, 직장까지 모두 내걸고 이장환 박사의 줄기세포 진실을 파헤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윤민철의 투철한 직업 의식 때문이라고 하기엔 그가 처한 상황이 너무 잔인합니다. 그저 그는 진실을 알고 싶었을 뿐이지만,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그에게 돌을 던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방송국 앞에서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윤민철은 말합니다. "처음으로 저 사람들이 무섭게 느껴집니다. 나는 진실을 말하면 저들이 내게 박수를 처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진실을 원하지 않는 무지한 사람들을 바라보면서도 윤민철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실제 <PD 수첩>의 최승호 CP와 한학수 PD는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진실을 파헤친 댓가로 인사위원회에 회부되어 대기발령을 받았다고 합니다.
잔인한 상황은 심민호가 더 가혹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내부 고발자는 설 자리를 잃습니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내부 고발자는 배신자가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심민호가 바로 그러합니다. 하지만 그에게 진정 가혹했던 것은 배신자로 낙인 찍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희망을 잃어버렸다는 점입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이 이장환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에 난치병 치료에 대한 희망을 가졌습니다. 윤민철이 진실을 파헤치려고하자 이장환 박사를 보호하고 윤민철에게 돌을 던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희망에 눈이 멀어 진실을 보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진실을 알고 있는 심민호는 희망을 잃었습니다. 그것이 그가 진정한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이장환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가 성공하면 난치병에 걸린 딸을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 심민호는 그러한 희망이 무너진 것이죠.
심민호의 아내인 김미현(류현경)이 심민호가 아닌 이장환 박사를 더 믿었던 것도 그러한 희망 때문입니다. 이장환 박사는 심민호와 김미현의 딸을 보살펴주는 등 그들이 희망을 놓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심민호를 압박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는 윤민철, 하지만 심민호는 말합니다. 나는 내 모든 것을 포기했다고... 딸을 살릴 수 있다는 희망도, 그리고 아내와의 사랑도. 그의 표정이 그렇기에 더욱 절절하게 느껴졌습니다.
멈추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던 그의 거짓
[제보자]는 영화가 시작되기 전,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지만 영화적 상황을 가미한 논픽션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하지만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 스캔들과 [제보자]에서 이장환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 스캔들은 너무나도 닮아 있습니다. 세세한 부분까지 말입니다. 그러나 영화적 상황을 가미한 논픽션임을 밝힌 이상 저는 [제보자]가 조금 더 상황을 꼬아 놓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윤민철과 김이슬(송하윤)이 주차장에 있는 장면에서 이장환 박사가 사주한 괴한이 그들을 덮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느껴야 했고, 내부 고발자인 심민호의 어린 딸이 괴한에 의해서 납치되고 심민호는 협박당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할리우드 스릴러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봅니다.) 하지만 그러한 자극적인 장면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실화의 힘일 것입니다.
영화 후반부에 저는 이장환 박사에게 동정심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장환 박사가 방송국으로 윤민철을 찾아와 앞으로 잘 할테니 몇 달간만 기한을 달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절박함이 느껴졌습니다. 비록 윤민철은 "지금 저를 협박하시는 겁니까?"라고 물었고, 이장환 박사는 "아니, 자네에게 기회를 주는 거네."라고 대답을 했지만, 사실 이장환은 윤민철에게 내게 기회를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이장환 박사는 처음부터 거짓말을 할 생각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순수한 의도로 줄기세포를 연구했지만, 그의 연구성과에 사람들이 열광하자 그러한 열광에 취해 점점 자신을 거짓으로 포장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영화에서 이장환 박사는 자신이 복제했지만 줄기세포 복제의 부작용으로 암세포에 의해 죽어가는 복제 개, 몰리를 쓰다듬으며 이러한 고백을 합니다. "사람들에게 하나를 보여주면 둘을 원하고, 둘을 보여주면 셋을 원하고...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니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가 없었어."
[제보자]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모두가 결말을 아는 뻔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윤민철, 심민호의 캐릭터 구축이 너무나도 완벽했고, 이장환 박사의 캐릭터 역시 거짓말을 일삼는 사기꾼으로만 그리지 않았던 것이 거의 2시간 동안 영화에 집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영화는 진실을 밝혀졌지만, 진실이 밝혀진 것에 대한 쾌감 대신 씁쓸함만 남았습니다. 아직 우린 희망이 필요하기에...
실제 뇌성마비로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형을 둔 제 친구는 줄기세포가 신드롬을 일으키던 당시 황우석 박사에게 열광했었습니다. <PD 수첩>이 황우석 박사의 진실을 밝혔을 때에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진실이 아닌 희망이었으니까요. 그들이 믿었던 희망이 거짓이라는 진실이 밝혀졌을 때, 그들 역시 심민호가 느꼈던 좌절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마지막은 쾌감이 아닌 씁쓸함입니다.
최근 황우석 박사는 중국 줄기세포 연구업체의 투자를 받아
중국에서 동물복제 및 줄기세포연구를 위한 벤처 설립에 나섰다고 발표했다.
과연 이번엔 그가 난치병 환자들과 가족들에게 진정한 희망이 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그들에겐 희망도 필요하지만, 진실 또한 외면해선 안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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