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게리 쇼어
주연 : 루크 에반스, 도미닉 쿠퍼, 찰스 댄스, 사라 가돈
개봉 : 2014년 10월 8일
관람 : 2014년 10월 12일
등급 : 15세 관람가
아듀, CGV 김포공항
지난 9월 28일 토요일 아침, 저는 롯데시네마 김포공항에서 [지골로 인 뉴욕]을, 그리고 건너편 CGV 김포공항에서 [베리 굿 걸]을 봤습니다. 그런데 [베리 굿 걸]을 보기 위해 CGV 김포공항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도중 충격적인 현수막을 보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CGV 김포공항이 2014년 10월 12일까지만 운영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었습니다. CGV 김포공항이 사라진다니... 전혀 뜻밖의 사건이라 저는 한동안 '멍'했습니다.
제가 자주 이용하는 극장은 목동에 위치한 CGV 목동과 메가박스 목동, 그리고 김포공항의 CGV 김포공항과 롯데시네마 김포공항입니다. 그 중에서 아무래도 집에서 가까운 목동의 극장들을 자주 가긴하지만 김포공항의 극장들도 심심치 않게 이용합니다. 그렇기에 CGV 김포공항이 없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제게 극장 선택권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영화를 볼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어서 보고 싶은 영화를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 갈 수 있는 극장마저 줄어들으니 제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CGV 김포공항이 사라지는 것은 제가 갈 수 있는 극장이 줄어드는 것 외에도 제 추억의 한페이지가 사라진다는 또 다른 의미도 있습니다. 제가 CGV 김포공항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3년 1월 25일 [캐치 미 이프 유 캔]을 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에는 CGV 김포공항이 아닌 엠파크9이었죠. 결혼 전, 저는 종로의 극장들을 주로 이용했지만 당시 사귀고 있었던 구피의 집이 김포공항과 가까워서 처음으로 영화를 보기 위해 김포공항에 가게 된 것입니다.
제가 [캐치 미 이프 유 캔]을 보기 위해 굳이 엠파크9에 간 것은 구피의 집과 가까워서이기도 했지만 사실 엠파트9에서 개관기념으로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무료 영화 초대권을 나눠줬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당시 취업 준비생이었던 저는 [캐치 미 이프 유 캔]과 [클래식]을 엠파크9에서 본 후 무료 초대권 4장을 얻었었습니다. 그렇게해서 얻은 무료 초대권으로 구피와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보기로 마음 먹었지만, 개봉 첫주에는 무료 초대권을 사용할 수 없다는 어이없는 규정 탓에 결국 현장에서 영화 티켓을 끊고 맨 앞자리에서 영화를 보며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엠파크9에서 영화를 보면서 좋았던 기억은 없습니다. [캐치 미 이프 유 캔]을 볼 당시에는 영화가 끝나자마자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도 전에 영화를 꺼버리고 실내등은 켜지 않아서 깜깜한 상태에서 의자에 손을 짚고 겨우 극장 밖으로 빠져나와야 했고, [클래식]을 볼때는 6시에 시작하는 영화를 청소가 덜 되었다는 이유로 5시 58분에 입장을 시켜줘서 영화가 시작하고 한참동안이나 관객들이 입장하는 어이없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그러한 기억도 추억이 되네요.
10월 12일 CGV 김포공항의 마지막 영업일, 저는 구피와 함께 [드라큘라 : 전설의 시작]을 봤습니다. 엠파크9에서 추억의 시작도 구피와 함께였는데, CGV 김포공항을 떠나보내는 추억의 끝도 구피와 함께한 셈입니다. 하지만 'CGV 김포공항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은 어떻게 될까? CGV만 믿고 입점한 극장 근처 상인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할까?'라는 생각을 하니 [드라큘라 : 전설의 시작]을 보기 위해 CGV 김포공항에 들어선 발걸음이 가볍지는 않았습니다.
드라큘라, 그 유구한 역사에 대해서...
[드라큘라 : 전설의 시작]은 제목 그대로 '드라큘라'라는 클래식 호러 캐릭터를 새로운 전설로 등극시키는 영화입니다. 사실 일반 관객에게 '드라큘라'는 흡혈귀의 대명사로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무시무시한 몬스터로만 인식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드라큘라'의 역사를 살펴 보면 '드라큘라'를 단순한 몬스터로 치부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드라큘라'는 1897년 출판된 영국의 소설가 브람 스토커의 괴기 소설 <드라큘라>를 통해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후 <드라큘라>는 영화, 연극, 뮤지컬로 각색되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는데, 특히 1931년 벨라 루고시 주연의 영화 [드라큐라]는 괴물 '드라큘라'의 이미지를 대중에게 깊이 각인시켜줬습니다.
이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1992년 '드라큘라'의 캐릭터를 재조명했습니다. 게리 올드만이 주연을 맡은 [드라큐라]에서 사랑했던 아내 엘리자벳(위노라 라이더)의 자살과 자살한 자의 영혼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교회의 계율에 분노한 '드라큘라'는 신을 향한 복수를 다짐합니다. 400년후 '드라큘라'는 미나(위노라 라이더)로 환생한 아내를 되찾기 위해 그녀의 약혼자 조나단(키아누 리브스)를 감금하지만 반 헬싱(안소니 홉킨스)으로 인하여 계획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결국 '드라큘라'는 미나를 향한 사랑의 힘으로 신에 대한 저주를 끝내고 편하게 숨을 거두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드라큘라'를 무조건적인 괴물이 아닌, 그가 괴물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을 공개하며 '드라큘라'를 동정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드라큘라' 캐릭터의 재조명은 [드라큘라 : 전설의 시작]의 모티브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드라큘라 : 전설의 시작]이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이 영화는 흡혈귀 괴물인 '드라큘라'의 섬뜩함과 브람 스토커의 원작 소설 <드라큐라>, 그리고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드라큐라]까지 그동안 '드라큘라'에 담겨진 이미지들을 폭넓게 이용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그치지 않고 브람 스토커 소설의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인 15세기 왈라키아 공국의 영주 블라드 체페슈의 실제 삶도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해놓았습니다.
사실 블라드 체페슈는 루마니아 역사에서는 오스만 제국의 군대를 물리친 용장으로 유명합니다. 당시 왈라키아는 이슬람교과 그리스도교 두 세력이 충돌한 지역으로, 그도 어린 시절 인질로 터키에 보내졌다고 합니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1461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에 대한 공납을 거부하였고, 이듬해 메흐메트 2세가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게릴라 전법으로 저항했다고 합니다.
실제 흡혈귀의 대명사가 된 '드라큘라'라는 이름도 블라드 체페슈의 아버지가 받은 용(Dracul)이라는 작위와 누구의 아들이라는 뜻의 '(e)a'를 붙여 '드라큘라'가 되었다고 합니다. 블라드 체페슈는 아버지가 받은 작위를 영광스럽게 여겨 자신의 이름을 블라드 드라큘이라고 했다고도 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그가 전쟁중 사용했던 문장에 용 그림이 있었다는 점에서 기인했다고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블라드 체페슈는 '드라큘라'라는 이름을 명예스럽게 생각했다는 점입니다.
흡혈귀와 전쟁영웅 사이.
[드라큘라 : 전설의 시작]은 흡혈귀인 '드라큘라'의 이미지와 실존 인물인 블라드 체페슈의 이야기를 교묘하게 섞습니다. 영화 속의 블라드(루크 에반스)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술탄에게 끌려가 살인 병기로 키워집니다. 이후 전쟁에 염증을 느끼고 고향으로 돌아와 트란실바니아에 평화의 시대를 선사합니다. (블라드 체페슈의 고향이 왈라키아가 아닌 트란실바니아로 설정된 것은 브람 스토커의 원작 소설에 더 충실한 결과입니다.)
영화 초반과 후반에 블라드가 적에게 공포심을 안겨주기 위해 적군을 꼬챙이에 끼워 매달아 놓은 장면이 나옵니다. 실제 블라드 체페슈가 전쟁 포로나 국내 범법자를 긴 꼬챙이를 이용한 잔인한 방법으로 처형했었다고 합니다. 체페슈는 루마니아어로 '꼬챙이'를 뜻한다고 하네요. 이렇듯 실존 인물인 블라드 체페슈와 [드라큘라 : 전설의 시작]의 주인공인 블라드는 상당 부분 닮아 있습니다. 블라드가 사내아이 1천명을 요구하는 술탄(도미닉 쿠퍼)의 공납을 거부하는 것과 적은 인원으로 수만명의 트루크 제국의 막강한 군대와 싸워 이기는 것 등, [드라큘라 : 전설의 시작]은 기본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하는 영화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역사극이 아닌 판타지 영화입니다. 특히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몬스터 캐릭터인 '드라큘라'를 소재로 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드라큘라 : 전설의 시작]은 어떻게 블라드가 투르크 제국의 막강한 군대를 이길 수 있었을까? 라는 부분에서 역사적 사실이 아닌 최대한의 상상력을 동원합니다.
역사에서 블라드 체페슈가 압도적인 전력의 투르크 대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게릴라 전법 덕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드라큘라 : 전설의 시작]에서는 전설 속의 악마를 찾아가 절대적인 힘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영화 속의 블라드는 사랑하는 가족과 고향인 트란실바니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계약을 하게 됩니다. 3일 동안 어둠의 막강한 힘을 얻는 대신 그 기간동안 피의 갈증을 참지 못하면 평생 죽지도 못하고 뱀파이어로 살아야 하는 잔인한 운명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블라드는 마스터 뱀파이어(찰스 댄스)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역사에 충실하게 실존 인물을 그려나갔던 [드라큘라 : 전설의 시작]은 바로 이때부터 판타지 영화의 길에 본격적으로 들어섭니다. 블라드가 혼자 천명에 달하는 술탄의 병사들을 물리치고, 어둠의 힘을 이용해서 수만명에 달하는 술탄의 군대를 와해시키는 장면 등은 조금 심하다 싶을 만큼 과장되어 있지만, 어차피 이 영화가 판타지 영화임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만합니다.
단지 블라드가 악마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그와 계약을 하는 과정이 조금 세심하게 묘사되었으면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어찌보면 그러한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블라드 체페슈라는 실존 인물이 전설의 존재 '드라큘라'로 전환되는 장면인 만큼 러닝 타임을 늘려서라도 그 장면의 중요성을 좀 더 잡아냈다면 영화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1시간 3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은 그러한 세심함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제겐 [드라큘라 : 전설의 시작]의 유일한 아쉬움입니다.
게임은 시작되었다.
분명 [드라큘라 : 전설의 시작]은 블라드 체페슈라는 실존 인물과 '드라큘라'라는 몬스터를 완벽하게 합쳐놓았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 [드라큐라]를 연상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드라큘라 : 전설의 시작]이 [드라큐라]를 연상시킨 요소는 바로 블라드의 아내 미레나(사라 가돈)에 대한 무한한 사랑입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드라큐라]에서 드라큘라가 신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고, 몬스터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400년을 어둠 속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자살한 아내 엘리자벳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엘리자벳의 환생인 미나를 되찾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위험한 모험을 하고 맙니다.
그러한 점은 [드라큘라 : 전설의 시작]도 마찬가지입니다. 3일 동안 피의 갈증을 참아내면 다시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블라드. 하지만 그를 결국 인간이기를 포기한 어둠의 존재로 만든 것은 미레나에 대한 사랑과 술탄에 대한 복수심이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마치 [드라큐라]에 대한 오마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드라큐라]도, 게리 쇼어 감독의 [드라큘라 : 전설의 시작]도, 아내의 환생과 더불어 서막을 끝내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부제는 '전설의 시작'입니다. 그것은 '드라큘라'를 새롭게 재조명하는 작업이 이 영화 한편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임을 만천하에 공개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블라드의 진정한 적은 인간에 불과한 투르크 제국의 술탄이 아닌, 좀 더 초인적인 존재임을 기대하게 됩니다. 영화의 미자막 장면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마스터 뱀파이어의 한마디는 그렇기에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할리우드의 메이저 영화 제작, 배급사인 유니버셜에서 판권을 소유중에 있는 고전 몬스터의 세계관을 통합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몇 년전에 발표했는데 [드라큘라 : 전설의 시작]이 그러한 프로젝트의 첫걸음임을 선언한 것입니다. 이 놀라운 프로젝트에는 '드라큘라'를 비롯하여 프랑켄슈타인, 늑대인간, 미이라 등 우리들에게 익숙한 몬스터 캐릭터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프랑켄슈타인, 늑대인간, 미이라 등도 [드라큘라 : 전설의 시작]처럼 새롭게 재조명하는 작업이 이뤄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몬스터의 '어벤져스'라 불릴만한 이 프로젝트에서 '드라큘라'는 루크 에반스로 확정된 셈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구피와 저의 공통된 의견은 '속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영화'라는 것입니다. 400년을 기다린 블라드와 환생한 미레나의 만남, 그리고 마스터 뱀파이어의 의미심장한 한마디... 이는 앞으로 제작될 [드라큘라 2]뿐만 아니라 유니버셜의 고전 몬스터 영화들마저 기대하게 만드는 강력한 한방이었습니다.
지키고 싶은 것을 위해서 자신을 포기한 남자 드라큘라
이 매력적인 캐릭터가 지금까지 흡혈귀 몬스터로만 그려졌다니...
이번 클래식 몬스터의 재조명 계획에 나는 열렬한 환호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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