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4년 영화이야기

[슬로우 비디오] - 눈물을 행복으로 변환시키다.

쭈니-1 2014. 10. 8. 16:11

 

 

감독 : 김영탁

주연 : 차태현, 남상미, 오달수, 고창석

개봉 : 2014년 10월 2일

관람 : 2014년 10월 6일

등급 : 12세 관람가

 

 

김영탁, 차태현 콤비의 해피 무비 2탄

 

2010년 12월 구피의 생일날, 저희는 [헬로우 고스트]라는 영화를 구피와 함께 봤습니다. [헬로우 고스트]는 제가 구피에게 주는 생일 선물이었지만, 사실 [헬로우 고스트]를 더 보고 싶었던 것은 구피가 아닌 저였습니다. [헬로우 고스트]가 개봉하기 전, 저는 쇼케이스에 참가했었고, 난생처음 참가한 영화 쇼케이스였기에 쇼케이스가 끝나고 [헬로우 고스트]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헬로우 고스트]를 보면서 처음엔 지루함을 느껴야 했습니다. [헬로우 고스트]는 죽는 것이 소원인 외로운 상만(차태현)의 눈에 어느날 귀신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로인하여 나이대도, 성별도 다른 네명의 귀신에게 시달린다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외형적으로는 전형적인 코미디 영화처럼 보였지만, 막상 이 영화는 그다지 웃기지 않았습니다. 웃기지 않는 코미디 영화처럼 최악인 것은 없죠.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저는 코끝이 찡한 감동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헬로우 고스트]는 2010년에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슬픈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슬펐습니다. 코미디 영화라고 생각하고 본 영화에서 슬픔을 느끼다니... 그래서 [헬로우 고스트]의 제 영화 이야기 제목은 '웃음을 압도하는 눈물'이었습니다. 

하지만 [헬로우 고스트]의 진정한 재미는 후반부 반전에서부터 펼쳐지는 예상하지 못한 슬픔이 아닙니다. 실컷 울고 나면 그제서야 느끼게 되는 행복, 그것이 바로 [헬로우 고스트]의 진정한 가치입니다. 죽고 싶을만큼 외로웠던 상만은 귀신들과 소동을 벌이고 난 후에서야 진정한 행복을 깨닫습니다. 그러한 상만의 행복은 영화를 보는 제게도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제가 [헬로우 고스트]를 '해피 무비'라고 인정하는 이유입니다.

 

2010년 [헬로우 고스트]는 300만명 이상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리고 4년후 [헬로우 고스트]의 김영탁 감독은 [슬로우 비디오]라는 신작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여러모로보나 [슬로우 비디오]는 [헬로우 고스트]와 판박이처럼 닮아 있다는 점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공통점은 차태현이 주연을 맡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차태현은 [헬로우 고스트] 이전만 하더라도 코미디 전문배우라는 틀에 갇혀 있던 배우입니다. [엽기적인 그녀], [복면달호], [과속 스캔들] 등 그의 흥행 성공작은 한결같이 코미디 영화였으니까요. 그가 코미디라는 장르를 벗어나 멜로 연기를 펼쳤던 영화들은 [연애소설]을 제외하고는 거의 쓰디쓴 흥행 실패를 맛봐야 했습니다. 정우성, 임수정, 손태영, 염정아, 신민아 등 초호화 캐스팅이 돋보였던 [새드무비], 일본 영화인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리메이이크한 영화로 송혜교와 주연을 맡았던 [파랑주의보] 등 절대 흥행에 실패할 것 같지 않은 영화들이 차태현의 흥행 실패작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 차태현이 캐스팅되었으니 [헬로우 고스트]의 코미디에 대한 기대감은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헬로우 고스트]는 코미디 영화라기 보다는 슬픈 드라마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립니다. 차태현은 [헬로우 고스트]의 초반 지루함을 자신의 코미디적인 이미지를 이용해서 적당히 이끌어가고, 마지막 한방으로 자신에게 덮어 씌워진 코미디 배우의 굴레를 벗음과 동시에 영화의 감동을 동시에 획득한 것입니다. 

그러한 김영탁 감독과 차태현의 전략은 [슬로우 비디오]에서는 더욱 구체화되었습니다. 게다가 [슬로우 비디오]는 [헬로우 고스트]처럼 후반부에 관객의 눈물을 쏘욱 빼놓고는 그 속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렇기에 [슬로우 비디오]는 [헬로우 고스트]와 이어지는 김영탁, 차태현 콤비의 해피 무비 2탄이라 할만합니다.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능력

 

[슬로우 비디오]는 차태현을 주연으로 캐스팅했다는 점 외에도 [헬로우 고스트]와 비슷한 점이 굉장히 많습니다. 우선 남들과는 다른 주인공의 능력입니다. [헬로우 고스트]의 강상만은 귀신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슬로우 비디오]의 여장부(차태현)는 동체시력이라해서 남들이 못 보는 찰나의 순간까지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결국 상만과 장부가 가지고 있는 능력의 공통점은 남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처음에 그것은 그들에게 저주였습니다. 상만은 자신을 괴롭히는 귀신들을 떼어놓기 위해 귀신들의 어이없는 소원을 들어줘야 합니다. [헬로우 고스트]는 중반까지 귀신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한 상만의 해프닝으로 영화를 이끌어 나갑니다. 장부는 동체시력 때문에 남들처럼 뛰지 못합니다. 게다가 선글라스를 쓰고 다녀야 해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합니다. 방구석에서 TV 드라마로 세상을 배운 장부. [슬로우 비디오]는 그러한 장부의 엉뚱함으로 영화의 웃음을 만들어냅니다.

상만과 장부의 또다른 공통점은 그들 모두 외롭다는 점입니다. 외톨이인 상만은 언제나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고,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한 이후 방 구석이 세상의 전부였던 장부는 CCTV 관제센터에서 일을 하며 CCTV 속 세상으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 뿐입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능력과 외로움. 그런데 이 두가지 요소가 합쳐지면서 놀라운 기적이 생기는 것입니다. 외로웠던 상만은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귀신들로 인하여 오히려 외로움을 이겨냅니다.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있던 장부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찰나의 순간들을 CCTV로 보면서 점차 동네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 나갑니다.

김영탁 감독은 관객에게 묻습니다. 남들과 다른 것은 과연 저주일까요? 아니면 축복일까요? 어쩌면 저주일지도 모릅니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 무리 속에서 어울리지 못하는 외로움이라는 댓가가 따라다는 저주. 하지만 그것은 축복일지도 모릅니다. 남들과 다르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는 것은 남들에게는 없는 장점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헬로우 고스트]는 상만이 귀신을 보는 능력이 저주가 아는 축복임을 깨닫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슬로우 비디오]는 여기에서 한발자국 더 나아갑니다. 장부는 모두가 병이라고 말하는 동체시력이라는 능력을 통해 스스로 행복을 가꾸어 나갑니다. 그러므로써 자기의 주변 사람들에게 이건 저주가 아닌 축복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헬로우 고스트]가 상만의 깨달음에 대한 영화라면 [슬로우 비디오]는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해 주는 영화입니다. 그렇기에 [슬로우 비디오]는 [헬로우 고스트]와 닮았으면서 한단계 더 앞으로 내딛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행복의 조건은 사랑, 사랑의 조건은 행복

 

남들과 달라서 외롭고 불행할 수 밖에 없는 상만과 장부. 그들은 점차 행복을 찾아나갑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매개체는 바로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어쩌면 사랑은 너무나도 보편적이고, 그렇기에 더욱더 관객의 공감을 살 수 있는 안전한 장치입니다. 남들과 다른 능력을 가졌기에 보편적이지 못한 주인공을 내세운 영화로서는 최선의 선택인 듯...

[헬로우 고스트]에는 연수(강예원)가 상만과 짝을 이룹니다. 연수는 어머니의 죽음과 그때 자신의 곁에 있어주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에 사무친 캐릭터로 언제나 죽음과 함께 해야 하는 중환자 병실의 간호원입니다. 결국 [헬로우 고스트]는 가족이 없는 것에 대한 외로움에 자살을 선택한 남자와, 가족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우울함을 간직한 여자의 로맨스를 만들어냅니다. 

그에 반에 [슬로우 비디오]에서 장부와 짝을 이루는 것은 수미(남상미)입니다. 분명 수미라는 캐릭터는 연수 못지 않게 암울한 캐릭터입니다. 아버지는 빚을 남겨놓고 돌아가셨고, 그로인해 수미는 매일같이 사채없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합니다. 연수와는 달리 수미에겐 제대로된 직장도 없습니다. 편의점과 택배 회사에서의 알바를 통해 근근히 생활을 이어나갈 뿐입니다. 하지만 수미는 연수와는 달리 굉장히 쾌활합니다.

 

수미가 연수와 비교해서 더 비참한 현실을 살고 있지만 오히려 연수보다 쾌활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는 꿈이 수미를 지탱하고 있는 것입니다. 뮤지컬 배우 오디션장에 가는 길, 횡당보도에서 수미가 핸드폰으로 뮤지컬 관계자에게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슬로우 비디오]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장면입니다. 이러한 [슬로우 비디오]의 설정은 이 영화가 [헬로우 고스트]와 비교해서 한단계 더 성장한 영화임을 또다시 관객 앞에서 증명해 보입니다.

[헬로우 고스트]에서 상만과 연수는 그저 외롭고, 불행합니다. 그렇기에 영화의 모든 초점도 그들의 행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상만과 연수는 외로움을 이겨내고 행복을 느끼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슬로우 비디오]는 사랑이 아닌 꿈을 위해 스토리를 진행시킵니다. 뮤지컬 배우가 꿈인 수미, 그리고 CCTV를 통해 바라본 세상을 하나도 빠짐없이 그림으로 기록하는 장부. 그들에게 사랑이라는 것은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순간 따라오는 또 하나의 행복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느껴지는 눈물의 강도는 [헬로우 고스트]가 더 강했지만, 그 눈물을 흘린 이후 느껴지는 행복의 강도는 [슬로우 비디오]가 훨씬 더 강력합니다. 장부의 꿈이 이루어진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하는 그 순간 수미도 자신의 꿈을 잃지 않을 수 있는 희망을 붙잡을 것입니다. 그들의 사랑이 이후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지만, 꿈을 위한 희망을 잃지 않은 장부와 수미는 분명 상만과 연수보다 행복했을 것입니다.  

 

 

눈물을 행복으로 변환시키다.

 

솔직히 영화 속의 에피소드만 놓고 본다면 [슬로우 비디오]는 [헬로우 고스트]보다 더 밋밋합니다. 하지만 이미 [헬로우 고스트]를 경험하면서 김영탁, 차태현 콤비의 영화는 코미디 영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저는 [슬로우 비디오]의 이러한 밋밋함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영화를 봤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헬로우 고스트]보다 [슬로우 비디오]가 더 재미있었습니다.

TV 드라마로 세상을 배운 장부. 그의 독특한 말투와 사람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방법 등은 '빵'하고 터지지는 않았지만 소소한 웃음을 안겨줍니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는 그동안 느꼈을 장부의 외로움이 느껴져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러한 장부와 친구 사이가 되는 CCTV 관제센터 선임 병수(오달수), 안과의사(고창석), 그리고 마을버스 기사 상만 등의 캐릭터들은 그래서 더욱더 든든했고,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특히 마을 버스를 타고 수미가 원하는 바다로 가는 장면은 이 영화의 따뜻함을 잘 보여줍니다.

영화의 후반부 장부의 감춰진 비밀이 벗겨지면서 [슬로우 비디오]는 [헬로우 고스트]처럼 관객에게 눈물 한바가지를 선사합니다. 물론 개봉 후 '반전이 정말 끝내준다.'라는 소문이 자자했던 [헬로우 고스트]와 비교해서 [슬로우 비디오]의 장부의 비밀은 밋밋했지만, 오히려 현실적이어서 더욱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렇게 [헬로우 고스트]와 [슬로우 비디오]는 비슷한 점이 많은 영화입니다. 감독과 주연 배우가 같고, 주인공의 능력과 외로움이 비슷했고, 사랑을 통해 행복을 느껴가는 과정도 서로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헬로우 고스트]와 [슬로우 비디오]의 상대적 장단점을 굳이 비교하자면, [헬로우 고스트]는 [슬로우 비디오]보다 조금은 극적이라는 장점이 있고, [슬로우 비디오]는 [헬로우 고스트]보다 주제의 깊이가 좀 더 깊어졌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헬로우 고스트]도, [슬로우 비디오]도 제겐 '해피 무비'로써 충분한 자격이 있는 영화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두 영화엔 눈물을 행복으로 변환시키는 놀라운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슬로우 비디오]에서 수미를 향한 장부의 눈물, 마지막에 장부를 향한 수미의 눈물은 어느 순간 가슴 따뜻한 감동과 행복으로 변합니다. 김영탁 감독은 정말 굉장한 능력을 가진 듯. 

"다들 너무 빠르고 바쁘게 산다. 내가 보듯이 가끔은 느리게 흐르면 좋을 텐데..." 영화가 끝나고 장부의 한마디가 가슴 속 깊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바쁘게 삽니다. TV에서는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나와서 시청자들에게 "시간을 헛되이 쓰지 말라."고 가르치고,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성공을 위해 앞으로 달려가기만 합니다. 가끔은 느리게 살아도 좋을 텐데. 하지만 출근을 하면 쌓여 있는 일거리들, 극장엔 보고 싶은 영화들이 수두룩하고, 해야될 일,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24시간이 모자랄 때... 저는 느리게 살 수 있는 장부를 부러워해봅니다. 제가 장부를 부러할 수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슬로우 비디오]가 해피 무비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닐까요?

 

 느리게 살 수 있는 행복을 거머쥔 여장.

과연 우리는 여장부보다 더 행복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몸도, 마음도 바쁘기만한 나는 여장부보다 행복하다고 자신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