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존 터투로
주연 : 존 터투로, 우디 앨런, 바네사 파라디, 리브 슈라이버, 샤론 스톤, 소피아 베르가라
개봉 : 2014년 9월 25일
관람 : 2014년 9월 27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내가 먼저 만난 것은 중년의 사랑이다.
지난주 월요일, 저희 가족에게 휘말아친 [메이즈 러너] 사태로 인하여([메이즈 러너] 사태가 무엇인지 궁금하시다면 [툼 스톤] 영화 이야기를 읽어보시길...) 제 별명은 '초딩'이 되어 버렸습니다. 뭐 제가 나이에 맞지 않게 유치하다는 사실은 스스로 인정하기에 '초딩'이라는 별명이 그다지 기분나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깟 영화 때문에 가족간에 서로 미워하는 일이 다시는 발생하면 안되겠다는 반성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보고 싶은 영화를 못보게 되면 우울해지고, 결국 구피, 웅이에게 짜증을 내게 되는 것은 쉽게 고쳐지지가 않죠. 이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은 제가 조금 더 부지런해지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지난 토요일 아침, 영화를 보겠다고 집을 나섰습니다. 등산, 바다 낚시 등의 일정 때문에 그 동안 토요일만 되면 새벽같이 일어나야 했기에 오랜만에 아무런 스케줄이 없었던 지난 토요일은 집에서 푹 쉬고 싶었지만, 가족간의 화합(?)을 위해 토요일의 달콤한 늦잠을 포기한 것이죠.
사실 보고 싶었던 영화는 지난주 개봉한 영화 중의 기대작이었던 [플러스 원]과 [더블 : 달콤한 악몽]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들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을 쉽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제게 주어진 시간은 토요일 오전 뿐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플러스 원]과 [더블 : 달콤한 악몽]을 포기하고 집 근처 극장에서 쉽게 볼 수있는 영화를 골라야 했습니다. 그렇게해서 고른 영화가 바로 [지골로 인 뉴욕]과 [베리 굿 걸]입니다.
[지골로 인 뉴욕]과 [베리 굿 걸]을 예매하고나니 제 영화 선택이 참 절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두 영화 모두 사랑에 관한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랑을 소재로한 영화라고는 하지만 [지골로 인 뉴욕]과 [베리 굿 걸]이 표현하고 있는 사랑은 서로 너무나도 다릅니다. [지골로 인 뉴욕]은 중년의 외로운 사랑을, [베리 굿 걸]은 10대의 순수한 사랑을 담고 있기 때문이죠.
그 중에서 토요일 아침 8시 30분이라는 이른 시간에 보게된 [지골로 인 뉴욕]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골로 인 뉴욕]은 우리에겐 개성강한 배우로 더 익숙한 존 터투로가 주연과 감독을 맡은 영화입니다. 존 터투로는 [트랜스포머] 시리즈에서 괴짜인 시몬스 요원으로 등장해서 영화의 재미를 더해줬던 배우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더 흥미로운 것은 [지골로 인 뉴욕]에는 우리에겐 감독으로 더 익숙한 우디 앨런이 주연 배우로 출연한다는 사실입니다. 어느덧 여든의 나이를 바라보고 있는 이 노장은 최근 국내 개봉한 [매직 인 더 문라이트]를 연출하는 등 아직도 나이를 잊고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디 앨런이 자신이 연출한 영화가 아닌 영화에서 주연으로 출연한 것 또한 굉장히 오랜만인 듯...
이렇듯 우리에겐 배우로 익숙한 존 터투로의 연출과 감독으로 익숙한 우디 앨런의 연기를 볼 수 있는 [지골로 인 뉴욕]은 제게 어떤 중년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줬을까요? 오랜만에 외쳐봅니다. "쭈니의 영화 이야기...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지골로'란 무엇일까?
[지골로 인 뉴욕]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지골로'가 무엇인지부터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골로'란 매춘을 하는 남성, 쉽게 말해서 제비족을 뜻합니다. 리차드 기어가 주연을 맡았던 폴 슈레이더 감독의 1980년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를 보시면 '지골로'가 무엇인지 더 잘 이해되실 듯...
[지골로 인 뉴욕]은 뉴욕에서 가업으로 물려받은 오래된 책방을 운영하던 머레이(우디 앨런)가 "요즘은 귀한 책보다 그것을 구하려는 사람이 더 귀하다"라고 투덜거리며 책방을 폐업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머레이의 책방에서 책을 훔치다가 걸린 이후 오랫동안 머레이와 인연을 맺어온 휘오라반테(존 터투로). 머레이는 책방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온 휘오라반테에게 뜻밖의 제안을 합니다. 휘오라반테에게 '지골로'의 길을 제안한 것입니다.
사정은 이러합니다. 관능적인 피부과 전문의 파커(샤론 스톤)가 머레이에게 친구 셀리마(소피아 베르가라)와 함께 섹스를 즐길 남자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셀리마가 제안한 짭짤한 화대에 마음이 혹한 머레이는 휘오라반테에게 '지골로'가 되라고 충고한 것이죠. 머레이는 자신의 제안을 거부하는 휘오라반테에게 말합니다. '지골로'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직업이며, 여인들의 고독한 영혼을 마법으로 치유하는 것이라고...
머레이가 파커의 제안을 승낙한 것도, 휘오라반테가 머레이의 제안을 거부하지 못한 것도 전부 돈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머레이가 오랫동안 알고 지낸 휘오라반테에게 매춘의 길을 제안하고, 번듯한 직업까지 있는 휘오라반테가 매춘의 길에 들어서는 것을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문제는 바로 그러한 점에서 시작됩니다. 사실 저는 [지골로 인 뉴욕]의 초반 설정이 조금 당혹스러웠습니다. 미국의 성문화에 대해서는 직접 경험하지 못해서 잘 모르지만, 그렇다고해도 미국 사호히에서도 매춘이라는 행위는 결코 떳떳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머레이와 휘오라반테에겐 매춘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절박함이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골로 인 뉴욕]에서는 책방을 폐업할 수 밖에 없는 머레이와 꽃집에서 일주일에 이틀만 일한다는 휘오라반테의 사정을 간단하게 언급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지골로 인 뉴욕]은 이런 식입니다. 머레이와 휘오라반테는 물론이고, 엄격한 유대인 규율에서 살아가는 젊은 미망인 아비갈(바네사 파라디)에 대한 캐릭터 설명은 거의 생략하다시피합니다. [지골로 인 뉴욕]이 매춘과 중년의 사랑을 결부시킨 영화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캐릭터에 대한 완성도가 중요한데, 존 터투로 감독은 가장 중요한 부분을 그냥 넘어가버립니다. 이 영화의 러닝타임이 1시간 30분에 불과한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셈입니다.
문화적 차이를 실감한 그들의 사랑
[지골로 인 뉴욕]은 제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저 역시 중년에 접어든 나이이기에 이 영화 속 중년의 사랑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지골로 인 뉴욕]은 그러한 공감대를 이끌어내지는 못했습니다.
첫번째 이유는 앞서 설명한대로 캐릭터의 완성도 부족 때문입니다. 포주가 될 수 밖에 없었던 머레이와 매춘을 할 수 밖에 없었던 휘오라반테의 사정이 마음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저 궤변을 늘어뜨리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할 뿐입니다. 휘오라반테는 처음엔 '어떻게 내게 그런 것을 제안할 수 있냐?'며 머레이에게 따지지만 나중엔 아주 능수능란하게 '지골로'로써의 명성을 쌓아갑니다. 여성의 매춘보다는 남성의 매춘을 변태성행위로 규정하고 강력하게 단속하는 우리나라의 성문화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인 셈입니다.
엄격한 유대인 규율 속에 살아가는 아비갈이 머레이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휘오라반테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는 과정 또한 너무 성의없이 표현되었습니다. 아비갈의 캐릭터가 제대로 완성되지도 않은 상태에서의 너무 섣부른 전개는 [지골로 인 뉴욕]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휘오라반테와 아비갈의 사랑에 대한 공감을 방해했습니다.
그 중에서 영화의 후반부에 진행되는 유대인 문화가 저는 가장 충격적이었습니다. 엄격한 이슬람 문화에서 여성들이 옴 몸을 차도르로 가리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결혼한 유대인 여성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외간 남성에게 보여주면 안된다는 규정은 처음 들어서 낯설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그러한 문화가 서양 문화권에서도 존재하다니... 놀라웠습니다.
그런데 진정 저를 충격에 빠뜨린 것은 아비갈을 짝사랑하는 도비(리브 슈라이버)가 머레이를 납치해서 랍비로 구성된 유대인 법정에 세우는 장면이었습니다. 아무리 유대인만의 문화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엄연히 미국 국민이고, 그렇다면 미국의 법을 따르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골로 인 뉴욕]에서 유대인들은 마치 치외 지역에 서는 사람들처럼 유대인의 문화를 어겼다는 이유로 머레이를 납치하고, 머레이의 변호사는 그러한 일이 당연하다는 듯이 랍비 앞에서 머레이를 변호합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국경을 초월하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보편적인 감정입니다. 하지만 [지골로 인 뉴욕]에 그려진 사랑은 이렇듯 제겐 낯선 문화 속에서 벌어지다보니 제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적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지골로 인 뉴욕]에서 제가 가장 아쉬웠던 부분입니다.
외로움에 익숙해진 중년의 사랑
분명 [지골로 인 뉴욕]은 쉽게 공감할 수 없는 사랑을 담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 영화 속의 사랑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휘오라반테에게 빠져드는 중년의 여성 캐릭터를 보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작은 관심이라는 점만큼은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영화에서 '지골로'는 얼굴이 잘 생긴 섹시남이 연기했었습니다. [아메리칸 지골로]가 당대 최고의 섹시가이인 리차드 기어를 캐스팅한 것은 괜한 짓이 아닌 것이죠. 하지만 [지골로 인 뉴욕]은 존 터투로라는 잘 생겼다고 하기엔 애매한 배우를 '지골로'로 선택했습니다. 물론 이유는 있습니다. 이 영화의 '지골로'는 그저 잘생긴 얼굴과 능숙한 섹스로 여성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이 아닌, 외로운 여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섬세한 감성을 지닌 남성이기 때문입니다. 꽃집에서 일하는 휘오라반테는 다른 마초적인 남성과는 다른 섬세한 감성의 남성이라는 것이 [지골로 인 뉴욕]의 설정인 것입니다.
실제 사회적으로 성공한 피부과 전문의 파커는 산악인 남편을 두었지만 항상 외로워합니다. 휘오라반테와 파커의 섹스 도중 파커가 남편에게 욕설을 퍼붓는 것은 그녀의 외로움에 대한 간접적인 표현인 셈입니다. 지금까지 파커는 남편으로인한 외로움을 동성 친구인 셀리마에게 풀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던 것이죠. 파커가 마초적인 남편과는 전혀 다른 꽃집 청년 휘오라반테에게 빠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사정은 아비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영화에서는 잘 표현되지 않았지만) 긴 고민 끝에 휘오라반테를 찾아갔고, 오랜만에 느껴보는 낯선이의 손길에 눈물을 흘립니다. 유대인 사회의 엄격한 규율 속에 스스로를 옭아맸던 아비갈에게는 휘오라반테의 부드러운 손길 자체만으로도 살아있음을 느끼는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휘오라반테에게 빠져드는 파커와 아비갈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중년의 외로움입니다. 사회적 성공, 안정적인 삶을 이루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녀들은 누구의 아내, 누구의 어머니로 불리울 뿐,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멀어졌던 것입니다. 그녀들은 자신의 외로움을 잊게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 뿐입니다. 그것이 '지골로'라고 할지라도...
휘오라반테와의 만남을 통해서 유대인 사회의 엄격한 규율을 깨고 스스로의 행복을 찾은 아비갈, 비록 '지골로'이지만 아비갈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낀 휘오라반테. [지골로 인 뉴욕]은 이 두 사람의 사랑을 연결시켜주며 훈훈하게 끝을 맺는 듯 보이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아비갈은 새로운 사랑보다는 안정된 사랑을 선택했고, 휘오라반테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새로운 사랑을 찾아나설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중년의 사랑입니다.
[지골로 인 뉴욕]은 비록 제게 공감대를 형성시킬만한 영화는 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외로움에 익숙해져 있고, 가슴 떨리는 사랑의 감정보다는 안정을 선택하는 아비갈의 선택만큼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듭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니까요. 가족에 둘러싸여 있지만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보다는 가족을 먼저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그것이 [지골로 인 뉴욕]이 그려낸 중년의 사랑입니다.
젊은 사랑은 사랑을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년의 사랑은 모든 것을 포기하기엔 그동안 이룬 것이 너무 많다.
사회적 성공,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안정된 삶까지...
[지골로 인 뉴욕]이 인상깊은 것은 사랑보다는 안정된 삶을 선택하는 그들의 모습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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