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임필성
주연 : 정우성, 이솜, 박소영
개봉 : 2014년 10월 2일
관람 : 2014년 10월 5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춘향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다?
2010년 6월 개봉해서 제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던 [방자전]은 우리에겐 익숙한 고전 소설 <춘향전>을 색다른 시선으로 풀어놓은 과감한 영화였습니다. [방자전]의 묘미는 <춘향전>에서 이몽룡(류승범)의 몸종에 불과했던 방자(김주혁)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방자가 춘향(조여정)에게 마음을 뿜었다면... 이라는 가정을 완벽한 상상력으로 만들어냈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 [방자전]을 보고나서 '어쩌면 정말 그랬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춘향은 신분 상승을 위해 의도적으로 이몽룡에게 접근한 것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이몽룡은 출세를 위해 의도적으로 춘향과의 사랑을 연출한 것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조선 시대의 엄격한 신분 제도가 있었기에 [방자전]은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아닌,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방자전]은 엄청난 쾌거를 이루어 놓은 영화인 셈입니다.
[방자전]의 흥행 성공 덕분일까요? 이번엔 <심청전>을 색다른 시선으로 해석한 영화 [마담뺑덕]이 새롭게 관객 앞에 선보였습니다. <심청전>은 앞을 보지 못하는 아버지인 심학규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300석에 팔려 인당수로 뛰어든 심청이의 효심을 그린 조선 시대의 고전 소설입니다. 그렇다면 [마담뺑덕]은 효녀 심청의 이야기인 <심청전>을 어떤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했을까요?
정답은 바로 제목에 있습니다. [방자전]이 방자의 사랑으로 <춘향전>을 새롭게 해석했듯이 [마담뺑덕]은 뺑덕 어미를 중심으로 <심청전>을 새롭게 해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심청전>에서 뺑덕 어미는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뺑덕 어미는 심청이 공양미 300석에 팔려가자 심학규의 재물을 노리고 심학규에게 접근하여 살림을 차린 악녀입니다. 그녀는 심학규의 재물을 야금야금 써서 결국 거덜냈습니다. 그로인하여 심학규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심학규의 이사로 인하여 용궁에서 돌아와 황후가 된 심청과의 재회는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뺑덕 어미의 악행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는데 황후가 된 심청은 심학규를 찾기 위해 궁궐에서 맹인들을 위한 잔치가 엽니다. 심학규는 마을 사또가 마련해준 여비로 뺑덕 어미와 함께 잔치에 참가하기 위해 길을 나서지만, 뺑덕 어미가 다른 봉사와 눈이 맞아 심학규가 잠든 틈을 타서 여비까지 챙겨 도망을 가버립니다. 그로인하여 심학규는 우여곡절 끝에 맹인 잔치의 마지막날 궁궐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담뺑덕]은 이렇게 철저한 악녀인 뺑덕 어미에게 관심을 가집니다. 그리고는 그녀가 악녀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을 현대적으로 창조해냅니다. 그렇다면 과연 [마담뺑덕]의 새로운 해석은 [방자전]처럼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요? 그럼 지금부터 욕망에 눈이 먼 심학규(정우성)와 집착에 눈을 뜬 덕이(이솜)의 비틀린 사랑 이야기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춘향전>보다 <심청전>이 어려운 이유
사실 <심청전>을 재해석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운 작업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심청전>은 <방자전>과는 달리 판타지적인 요소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우선 심청이가 인당수에 몸을 던진 이후 용왕을 만나는 것부터가 판타지입니다. 용궁에서 편안하게 생활을 하다가 연꽃을 타고 지상으로 올라와 황후가 되고, 봉사인 심학규는 심청이를 만나자 기적적으로 두 눈을 번쩍 뜨기도 합니다.
[방자전]의 경우는 <춘향전>의 기본적인 내용은 훼손하지 않은채 우리들이 몰랐을 원작의 뒷이야기를 통해 영화의 재미를 완성합니다. 하지만 [마담뺑덕]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심청전>의 기본적인 내용을 훼손하지 않으려면 이 영화는 [전우치]와 같은 판타지 영화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임필성 감독은 <심청전>의 캐릭터만 가져오고 원작의 모든 설정을 바꾸어버립니다. [마담뺑덕]의 배경이 현대인 것도 그러한 이유입니다.
<심청전>의 캐릭터는 고스란히 살리면서 원작의 판타지적 부분을 현대적으로 바꾸는 작업은 굉장히 어려웠을 것입니다. [마담뺑덕]의 각색을 직접 한 임필성 감독의 그러한 고충은 영화에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애초에 영화의 비중을 덕이에게 맞춘 이상 원작의 주인공인 청이(박소영)의 비중이 낮아진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하지만 원작의 청이와 영화의 청이 캐릭터가 전혀 다른 인물처럼 느껴지는 것은 원작을 재해석하면서 벌어진 치명적인 실수입니다.
[마담뺑덕]의 한계는 심청이의 캐릭터가 원작과 비교해서 너무 많이 바뀌었다는 것 외에도 수도 없이 많습니다. <심청이>의 판타지적 요소를 현대에 맞게 해석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은 분명 보였지만, 그러한 새로운 해석이 전혀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은 이 영화의 단점입니다.
[마담뺑덕]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대학 교수인 심학규와 놀이공원 매표소의 직원인 덕이의 사랑이 바로 그러합니다. 그들의 사랑은 3류 불륜 드라마에서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잘생긴 바람둥이 유부남 교수와 순진한 처녀의 만남, 섹스와 임신, 그리고 덕이는 버려지고, 결국 복수를 다짐하며 악녀가 되는 과정은 분명 <심청전>에서는 볼 수 없는 심학규와 뺑덕 어미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해석이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러한 전개가 드라마와 영화에 의해 수도 없이 반복되어 재생산되어온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마담뺑덕]의 문제는 바로 이러한 점에서 비롯됩니다. 원작을 새롭게 해석했음에도 불구하고, 새롭다는 느낌보다는 뻔하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은 [마담뺑덕]이 영화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기에 벌어진 한계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 심청이의 캐릭터가 180도로 바뀌면서 이 영화는 <심청전>과의 거리도 점점 멀어집니다. 이럴바엔 차라리 <심청전>에 집착하지 말고,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와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악녀 덕이... 그녀의 사랑을 말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마담뺑덕]을 꽤 재미있게 봤습니다. 물론 이 영화의 단점을 이야기하라면 제 영화 이야기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단점이 많은 만큼 [마담뺑덕]은 장점 또한 명확합니다. 그것은 바로 덕이의 사랑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심학규와 덕이의 불륜 드라마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서울의 유명 대학교수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려 지방 소도시의 문화센터 강사로 좌천된 심학규가 친구의 말대로 취미삼아 순진한 처녀 덕이와 잠시 불장난을 한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심학규에겐 취미삼아 벌인 불장난이었지만, 덕이에겐 가슴 떨리는 첫사랑이었고, 그로 인하여 그녀는 너무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그녀의 유일한 피붙이인 어머니를 잃고, 심학규와 사랑의 결실인 뱃속의 아기를 잃었습니다. 물론 그녀에게도 잘못은 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은 그녀의 실수였고, 뱃속의 아기는 그녀 또한 동의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내 탓이오.'보다는 '네 탓이오'를 더 많이 외치기 마련입니다. 덕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모든 것을 '내 탓이오'라고 생각한다면 그녀는 죄책감에 살아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결국 그녀는 살기 위해서라도 이 모든 책임을 심학규의 책임으로 돌리고 복수에 집착합니다.
물론 덕이의 복수 또한 치밀하지 못한 헛점이 많이 보입니다. 아무리 심학규가 병에 걸려 눈이 멀고 있었다고 하지만 덕이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이건 마치 2008년에 SBS에서 방영되었던 <아내의 유혹>에서 구은재(장서희)가 입술 위에 점하나 찍고 민소희도 완벽(?) 변신해서 복수를 하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게다가 덕이가 심학규를 몰락시키는 것도 전혀 새로울 것도 없고 공감되지도 않았습니다. 도박이라는 손쉬운 방법으로 심학규를 빈털털이로 만들고, 그의 하나밖에 없는 딸인 청이를 일본에 팔아넘기게 하는 것은 그저 <심청이>의 전개에 맞취기 위한 억지 설정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덕이의 복수가 아닌, 덕이라는 캐릭터의 심정에 초점을 맞춘다면 [마담뺑덕]의 새로운 재미를 발견할 것입니다. 분명 덕이는 심학규에게 잔인한 복수를 합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녀는 결코 심학규의 곁을 떠나지도 않습니다. 그녀가 완벽하게 복수를 하려면 혼자 남겨진 눈이 보이지 않는 심학규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봤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심학규의 곁에 머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사랑이었습니다. 집착이라는 이름의, 복수라는 이름의 잔인한 미친 사랑.
욕망, 집착, 복수... 이것도 사랑이라 하네!
[마담뺑덕]은 스토리 전개로만 본다면 뻔하면서 허술하기까지한 영화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어서 심학규와 덕이가 텅빈 놀이공원의 관람차에서 섹스를 나누는 장면은 도대체 임필성 감독이 무슨 생각으로 이따위 장면을 삽입했는지 그 의도가 궁금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심학규가 아예 대놓고 자신과 덕이의 관계를 마을 사람들에게 떠벌이려 하지 않는 이상 그런 미친 짓은 관객의 공감을 얻기 힘듭니다. (어쩌면 임필성 감독은 그저 톱스타인 정우성을 벗길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과한 오버를 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마담 뺑덕]은 그런 식입니다. 사채업자에게 딸 청이가 일본으로 팔려가도 심학규는 경찰에 신고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세정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에게 접근한 덕이에게 기댈 뿐입니다. 도대체 이 영화의 스토리 전개에서는 고개를 끄덕일만한 그 어떤 건덕지를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캐릭터만 놓고 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심학규에게 잔인한 복수를 하면서도 결코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덕이. 세정이 덕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덕이에게 기대려하는 심학규. 이들의 이상한 관계가 사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마담뺑덕]은 색다른 재미를 선사합니다. 심학규의 욕망, 덕이의 집착, 그리고 잔인한 복수까지 사랑이라 말하는 [마담뺑덕]. 과연 그것은 사랑일까요?
어쩌면 <심청전>에서 뺑덕 어미는 항변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돌봐줄 사람 하나 없는 심학규를 돌봐준 것은 바로 자신이라고... 다시 생각해보면 뺑덕 어미는 심학규가 심청이를 팔어 얻은 공양미 300석을 탕진한 후에도 심학규의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녀가 심학규의 재산만을 노린 것이라면 그의 재산이 거덜난 후에 곧바로 나몰라라하며 심학규를 버리고 도망갔어야 했습니다. 어쩌면 뺑덕 어미는 욕심많은 세속적인 인물이지만 그래도 마음 속 한구석에는 심학규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심학규는 또 어떠한가요? 뺑덕 어미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탕진한 후에도 심학규와 그녀를 내치지 못합니다. 오히려 이사를 해서 그녀와 같이 사는 것을 유지했고, 맹인 잔치가 열리는 곳에도 그녀와 동행을 했습니다. 어쩌면 심학규는 뺑덕 어미의 속셈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기대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물론 그것은 각자 해석하기 따라 다릅니다. 게다가 뺑덕 어미는 결국 심학규를 버리고 다른 맹인과 눈이 맞아 도망갔으니 심학규에 대한 뺑덕 어미의 사랑이라는 해석은 억지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마담뺑덕]은 다릅니다. 덕이와 심학규가 서로를 상처주는 미친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영화의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허술하고 공감되지 않는 스토리 전개에 기대어 [마담뺑덕]을 감상하는 것보다, [마담뺑덕]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저는 믿습니다. 욕망, 집착, 복수... 이것도 그들만의 사랑이라고...
영화의 무엇에 초점을 맞춰 감상하느냐에 따라 영화의 재미 유무가 결정된다.
[마담뺑덕]은 스토리 라인보다는 심학규와 덕이가 미친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캐릭터 위주로 영화를 본다면 마지막 덕이의 눈물에 감동을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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