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4년 영화이야기

[베리 굿 걸] - 우정이 더 소중한 그녀들의 사랑

쭈니-1 2014. 9. 30. 18:58

 

 

감독 : 나오미 포너

주연 : 다코타 패닝, 엘리자베스 올슨, 보이드 홀브룩

개봉 : 2014년 9월 25일

관람 : 2014년 9월 28일

등급 : 15세 관람가

 

 

중년의 사랑 이후 맞이한 십대의 사랑

 

[지골로 인 뉴욕]은 비록 문화의 차이로 인하여 휘오라반테(존 터투로)와 아비갈(바네사 파라디)의 사랑이야기에 쉽게 공감하지 못했지만, 외로움에 길들여졌기에 사랑에 목말라하는 중년의 모습만큼은 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가슴 떨리는 휘오라반테와의 사랑보다는 가족을 위한 안정을 선택하는 아비갈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사랑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기엔 그 동안 이룬 것이 너무 많은 중년의 선택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지골로 인 뉴욕]을 본 후 곧바로 극장을 옮겨 [베리 굿 걸]을 봤습니다. [베리 굿 걸]은 우리에게 [아이 엠 샘]의 귀여운 꼬마 아이로 기억되던 다코타 패닝이 본격적으로 사랑에 빠진 성숙한 여인의 향기를 물씬 풍기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릴리(다코타 패닝)가 자신의 오랜 친구 제리(엘리자베스 올슨)와의 우정과 해변가에서 우연히 만난 데이빗(보이드 홀브룩)과의 첫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내용입니다.

어찌보면 [지골로 인 뉴욕]과 [베리 굿 걸]은 같은 듯하면서도 많이 다른 영화입니다. 이 두 영화 모두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지골로 인 뉴욕]은 외로움에 찌든 중년의 슬픈 사랑을 담고 있으며, [베리 굿 걸]은 아직 사랑에 대해서 잘 모르는 십대의 첫사랑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리 굿 걸]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극장을 나서면서 [지골로 인 뉴욕]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지금부터 남자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여자들의 사랑 이야기를 파헤쳐보도록 하겠습니다.

 

[베리 굿 걸]에는 두 명의 십대 여성이 등장합니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절친한 친구 사이인 릴리와 제리가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입니다. [베리 굿 걸]은 릴리와 제리가 해변가에서 옷을 모두 벗어던지고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므훗(^^)한 장면으로 영화를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대낮의 해변가. 릴리와 제리는 서로 머뭇거리다가 결국 모든 옷을 벗어던지고 바다로 뛰어듭니다. 이 첫 장면이 중요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베리 굿 걸]이 담고 싶어하는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 소녀의 옷을 벗어 던지고 성숙한 여인임을 선언하는 릴리와 제리의 도발적인 몸짓은 아역 배우의 옷을 벗어던져야 하는 다코타 패닝을 위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이 장면은 이후 벌어질 [베리 굿 걸]의 스토리 전개도 예상하게끔 만듭니다. [베리 굿 걸]의 오프닝 장면을 보면 옷을 벗는 것에 대해서 적극적인 제리와는 달리 릴리는 "정말 이걸 할거야?"라며 끝까지 주저합니다. 하지만 결국 먼저 옷을 벗고 바다 속으로 뛰어든 것은 릴리입니다. 이후 릴리와 제리가 데이빗과 우연히 만나고 나서도 상황은 같습니다. 데이빗에게 적극적으로 대쉬하는 것은 제리이지만, 데이빗과 사랑을 나누는 것은 릴리입니다. 이러한 제리와 릴리의 성격과 상반된 상황은 [베리 굿 걸]의 스토리 전개를 완성시킵니다.

 

 

섬세하게 완성된 캐릭터들

 

제가 [지골로 인 뉴욕]보다 [베리 굿 걸]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은 캐릭터 완성도가 [베리 굿 걸]이 훨씬 높기 때문입니다. [베리 굿 걸]은 절친한 친구 사이이지만 성격이 달라도 너무 다른 릴리와 제리의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두 소녀의 집안 분위기를 관객에게 먼저 보여줍니다.

릴리의 집안은 웃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엄숙한 분위기입니다. 릴리의 어머니인 노마(엘렌 바킨)는 세 딸에게 관심을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릴리는 아버지인 에드워드(클락 그레그)를 따르지만, 에드워드는 진료실에서 바람을 피우다가 릴리에게 들키고 맙니다. 믿었던 아버지의 배신. 이제 릴리가 기댈 곳이라고는 제리 밖에 없는 셈입니다.

릴리의 집안 분위기 이후 이어진 제리의 집안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제리의 아버지 대니(리차드 드레이퓨즈)는  짓궂은 장난끼로 집안 분위기를 웃음으로 넘쳐나게 만듭니다. 제리는 그런 짓궂은 아버지를 부끄러워하지만 릴리는 오히려 부러워합니다. "우리 집은 웃음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어."라며 제리를 부러워하는 릴리.  하지만 제리의 대답은 "우리 집은 웃음이 너무 넘쳐나서 문제인데..."입니다. 이렇게 상반된 릴리와 제리의 집안 분위기는 그녀들의 캐릭터를 완성시킵니다.

 

릴리가 자신의 문을 굳게 닫아 버린 것은 집안 분위기 탓입니다. 겉으로는 화목한 가정처럼 보이지만, 에드워드와 노마의 결혼 생활은 이미 끝난 것과도 같습니다. 단지 어린 세 딸을 위해서 겨우 겨우 유지되고 있는 것 뿐이죠. 언제 부숴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릴리 부모님의 관계. 그러한 가운데 릴리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굳게 닫아버린 것입니다.

릴리가 일하는 아르바이트의 사장이 그녀에게 노골적으로 찝쩍대도 릴리는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합니다. 해변가에서 처음 데이빗을 보았을 때도 멀찌감치에서 떨어져 데이빗을 바라보기만 합니다. 어쩌면 릴리가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을 선택한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릴리와는 달리 제리는 자신의 모든 감정에 솔직합니다. 아버지인 대니와 어머니인 케이트(데미 무어)의 화목한 분위기가 그녀의 적극적인 성격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직접 노래를 만들어 라이브 카페에서 연주를 하는 케이트는 데이빗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기지 않아도 그를 끊임없이 유혹하려합니다. 

캐릭터를 완성하는 방법은 많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캐릭터의 과거를 보여줌으로써 현재의 캐릭터를 완성하곤 합니다. 그러나 [베리 굿 걸]은 아직은 너무 어리기에 부모에게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릴리와 제리의 캐릭터를 두 집안 분위기를 통해 완벽하게 완성해냅니다. 나오미 포너 감독이 매우 영리한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부재가 두 소녀에게 끼친 영향

 

[베리 굿 걸]은 힘들이지 않고 릴리와 제리의 캐릭터를 완성해냅니다.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두 소녀 사이에 뛰어든 데이빗이라는 청년을 통한 서투른 첫사랑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그런데 두 소녀와 데이빗의 사랑을 표현하는데 있어서도 [베리 굿 걸]은 "그래서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습니다."라는 식의 얼렁뚱땅 대충 설명을 하는 것이 아닌, 릴리가, 그리고 제리가 데이빗에게 사랑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냅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릴리의 에드워드에 대한 의존도는 컸습니다. 에드워드가 바람을 피우다가 릴리에게 들통이 나도 릴리는 에드워드를 원망하기 보다는 그가 집을 떠날까봐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드워드는 집을 나갑니다. 믿었던 아버지의 부재. 바로 그러한 상황에서 릴리의 마음 속으로 뛰어든 것이 데이빗인 것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고, 그가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현실에 직면한 릴리는 데이빗에게 의존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굳게 닫혀 있었던 릴리의 마음은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빈틈이 생겨 버렸고, 그러한 빈틈을 데이빗이 들어온 것이죠.

 

아버지의 부재에 의한 변화는 제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릴리와 데이빗의 사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즈음, 제리는 갑작스로운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한 대니의 죽음은 데이빗에 대한 제리의 마음을 알고 있는 릴리가 다시금 데이빗에 대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계기가 됩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부재는 릴리에게도, 제리에게도 큰 영향을 끼칩니다. 굳게 닫혔던 릴리의 마음을 활짝 열게 만들기도 했고, 다시 굳게 닫아버리기도 합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런 종잡을 수 없는 릴리와 제리 사이에 낀 데이빗의 혼란입니다. 저 역시 남자이다보니 제리가 벙찐 표정으로 릴리를 쳐다볼 때의 심정이 이해가 되더군요.

결국 푹풍같은 여름을 보낸 이후 릴리와 제리, 그리고 데이빗은 제 자리로 돌아갑니다. 데이빗을 사이에 두고 오랜 우정을 깨질 뻔했던 릴리와 제리. 그녀들의 우정은 여전했고, 데이빗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먼 곳으로 떠납니다. 하지만 [베리 굿 걸]의 마지막 분위기는 오히려 밝습니다. 이 영화가 사랑 이야기라면 새드 엔딩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오히려 릴리와 제리는 옷을 벗어던지고 춤을 추며 행복하게 웃음을 짓습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저는 [베리 굿 걸]과 [지골로 인 뉴욕]의 공통점을 발견한 것입니다. 사랑보다 더 소중한 것들에 대한 그녀들의 선택이라는...

 

 

그녀들에겐 사랑보다는 우정이 소중하다.

 

고등학교 시절 저는 친구들과 미팅을 나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굉장히 마음에 드는 여자 아이를 만났고, 우린 곧바로 교제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처음 데이트를 하는 날, 그녀는 제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난 아직 남자 친구보다 여자 친구들이 더 소중해. 그러니 내게 우선 순위는 네가 아닌 내 친구들이야."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저는 굉장히 자존심이 상했고, 결국 우리의 첫 데이트는 마지막 데이트가 되어 버렸습니다.

[베리 굿 걸]을 보니 제게 '난 아직 사랑보다 우정이 더 소중해.'라고 선언하던 25년전의 그녀 모습이 어렴풋이 떠올랐습니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십대의 사랑이 아닐까요? 처음 하는 사랑이기에 많이 서투르고, 어색하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기엔 아직은 호기심이 너무 많은 나이. 릴리가 그러했고, 제리 또한 그러했습니다.

그렇기에 데이빗을 떠나보낸 후에도 "널 잃고 싶지 않아."라며 제리와 화해를 하는 릴리의 모습은 새드 엔딩이 아닌 유쾌한 해피 엔딩처럼 느꼈습니다. 어찌되었건 그녀들은 사랑보다 소중한 우정을 지켜냈으니까요.

사랑보다는 가정이 소중했던 [지골로 인 뉴욕]의 아비갈, 사랑보다는 우정이 소중했던 [베리 굿 걸]의 릴리와 제리. 그 사이에서 남자들은 이유도 모르는채 상처를 받지만, 어쩌겠습니까? 그것이 단순한 남자들과는 다른 여자들의 사랑인 것을... 사랑을 잃고 쓸쓸하게 뒤돌아서는 [지골로 인 뉴욕]의  휘오라반테와 [베리 굿 걸]의 데이빗의 뒷 모습이 그래서 저는 더욱 쓸쓸해보였습니다.

 

이렇게 [베리 굿 걸]은 10대 소녀들의 순수한 첫사랑에 촛점이 맞춰져 있기에 남성 관객보다는 여성 관객에게 더 많은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영화입니다. 혹시라도 다코타 패닝의 노출이 있다는 잘못된 언론 기사에 속아서 그것만을 기대하면서 영화를 보시는 남성 관객은 부디 없기를...

영화에 삽입된 음악도 좋았는데, 특히 영화 속에서 엘리자베스 올슨이 직접 부른 곡 'Go Ahead'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입에서 흥얼거려 지더군요. '너 자신이 원하는대로 하라'라는 노래의 가사는 유난히 가을을 타고 있는 제 마음을 조용히 적셔주었습니다. (제가 이 노래가 좋다고 하자 구피는 "요즘 가을 타는 구나?"라며 제 등을 토닥여주던...)

[베리 굿 걸]에는 다코타 패닝과 엘리자베스 올슨, 그리고 보이드 홀브룩이라는 젊은 배우들이 주연에 나섰지만, 릴리와 제리의 부모를 연기한 배우들도 화려합니다. 릴리의 어머니로 출연한 엘렌 바킨은 90년대 초반 [쟈니 핸섬], [스위치]등의 영화를 통해 제가 좋아했던 배우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스위치]에서는 엘렌 바킨의 보이쉬한 매력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릴리의 아버지로 나온 클락 그레그는 [에번져스]의 콜슨 요원으로 익숙한 배우이고, 제리의 아버지로 나온 리차드 드레이퓨즈는 70년대 [죠스], [미지와의 조우]를 통해 이름을 알린 연기파 배우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화려한 이력을 가진 배우는 제리의 어머니로 등장한 데미 무어일 것입니다. 한때 할리우드 여배우중 최고의 몸값을 기록하기도 했던 데미 무어. 그러나 [베리 굿 걸]에서는 거의 존재감이 미미해서 충격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자! 여기까지입니다. 여성 관객이라면 아련했던 첫사랑을 기억을 다시금 회상하기 위해, 남성 관객이라면 불가사의한 여성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 스산한 가을, 이 영화를 감상하는 것은 어떨까요?

 

4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았고,

10년이 넘는 세월을 한 여자와 한 집에서 사랑하며 살고 있어도

아직도 나는 복잡하기만한 여자의 사랑을 이해못한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그러한 점이 내가 빠져들 수 밖에 없는 매력인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