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4년 영화이야기

[툼스톤] - 분위기만 만들어 놓고 활용은 하지 못하다.

쭈니-1 2014. 9. 23. 17:19

 

 

감독 : 스콧 프랭크

주연 : 리암 니슨, 댄 스티븐스, 보이드 홀브룩

개봉 : 2014년 9월 18일

관람 : 2014년 9월 22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최악의 기분으로 이 영화를 본 이유

 

주말에 쉬지 못하고 바쁘게 보냈더니 월요일은 특히나 더욱 힘이 들었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 중 하루만큼은 푹 쉬었어야 했는데, 지난 주말은 그럴 수가 없었죠. 하지만 그렇다고 월요일을 집에서 푹 쉴 계획을 세울 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지난 주에 개봉한 기대작 [메이즈 러너]와 [툼스톤]을 아직 못봤기 때문입니다. 월요일에는 둘 중 한편을 무조건 봐야겠다고 굳게 다짐한 상태였기 때문에 집에서 쉬겠다는 생각보다는 [메이즈 러너]와 [툼스톤] 중 어느 영화를 봐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먼저 구피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만약 구피가 '오늘 피곤해서 영화 못봐.'라고 한다면 [툼스톤]을 혼자 보러갈 생각이었으며, '같이 영화보러 가자.'라고 한다면 [메이즈 러너]를 보러갈 생각이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구피가 '오늘 피곤해서 영화 못봐.'라고 답장을 보낼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지난 주말에 저만큼이나 구피도 힘든 이틀을 보냈었으니까요. 하지만 의외로 구피의 답장은 '같이 영화보러 가자.'였습니다.

갑자기 힘이 났습니다. 혼자 영화를 보러 갈 생각을 하다가 구피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요즘 당분이 땡긴다는 구피를 위해 CGV 콤보 무료권까지 꼼꼼하게 챙겨 뒀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모든 것은 계획대로 되지는 않더군요.

문제의 발단은 누굴 닮아서인지 유난히 행동이 느린 웅이였습니다. 영화를 보러 나가려면 최소한 밤 9시까지는 웅이가 학교 숙제를 마쳐야 하지만 나무늘보보다 더 느린 웅이는 태권도장에 갔다온 이후 느릿 느릿 움직이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결국 9시가 거의 되어갔지만 학교 숙제인 일기를 단 한줄도 쓰지 못한 웅이. 구피는 "예매한거 취소해야 겠는데?"라며 저를 쳐다봅니다.

 

하지만 진정 저를 화나게 한 것은 웅이가 아니었습니다. 예매한 것을 취소하라고 권하는 구피의 태도였습니다. 제가 예매한 [메이즈 러너]의 영화 시작 시간은 밤 9시 35분. 10분간 광고를 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9시 45분까지 극장에 도착하면 됩니다. 저희 집에서 극장까지 차로 10분 정도면 갈 수 있으니 9시 30분 이전에만 웅이가 학교 숙제를 끝낸다면 조금 시간이 빡빡하긴 하지만 [메이즈 러너]를 보러 가는데엔 별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구피는 9시부터 예매를 취소하라고 하더니 오히려 웅이보다 더 느긋하게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웅이가 숙제를 아직까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잖아."라고 제게 항변합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그것은 비겁한 변명에 불과합니다. 아마도 구피는 영화보러 가기 싫었을 것입니다. 제가 문자를 보냈을 때만해도 [메이즈 러너]가 보고 싶었을테지만, 막상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 저녁 식사까지 마치고나니 온 몸이 나른해져서 집에서 쉬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핑계는 웅이의 느릿한 행동이 된 것이죠.

웅이가 숙제를 마친 시간은 9시 20분. 서두른다면 영화를 보러 갈 수 있었지만 구피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화를 버럭내며 "나 혼자 영화보러 갈거야."를 외치고 집을 나섰습니다. 극장에 도착한 시간은 9시 35분. 분명 [메이즈 러너]를 볼 수도 있는 시간이었지만 저는 [메이즈 러너]의 예매를 취소하고 9시 40분에 시작하는 [툼스톤]으로 변경했습니다.    

애초에 오늘은 혼자 [툼스톤]을 볼 계획이었는데, 구피 때문에 설레이는 마음으로 [메이즈 러너]로 계획이 변경되었다가, 결국 이렇게 최악의 기분으로 [툼스톤]으로 되돌아온 것입니다. "줬다 뺏는건 나쁜거잖아요."라던 [하녀]의 전도연 대사가 문득 떠오른...  이런 최악의 기분 탓인지 솔직히 [툼스톤]은 제게 기대이하였습니다. (이후 스릴러 영화에 대한 제 글의 특성상 스포가 포함될 수도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1991년 그날의 사건은 왜 그를 변하게 했는가?

 

[툼스톤]은 1991년 맷 스커터(리암 니슨)의 모습으로 영화를 시작합니다. 알코올 중독에 쩔어 있는 경찰 맷. 그런 맷에게 그의 파트너조차 상담을 받아보라며 권유를 합니다. 파트너의 말을 무시하고 식당에 들어온 맷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구석진 자리에서 술과 커피, 그리고 신문을 집어 들고 앉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괴한들이 식당을 들어와 바텐더를 총으로 쏴 죽인 것입니다. 맷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괴한들을 향해 총을 쏩니다. 도망가는 괴한들을 끝까지 쫓아가 처단하는 맷. 그리고 영화는 곧바로 1999년으로 시간을 옮겨갑니다.

경찰을 그만두고 무허가 사립탐정이 되어 있는 맷은 1991년 그날 이후 알코올을 손에도 대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1991년 그날,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영화의 오프닝에서는 괴한을 처단하는 맷의 활약상만 보여줬을 뿐인데, 경찰에게 있어서 단순한(?) 일상에 불과한 그 사건이 과연 맷을 변화시킨 것일까요?

영화에서 초반 오프닝 장면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특히 스릴러 영화의 경우라면 그 중요성은 몇 배로 높아집니다. 영화의 반전에 대한 단서가 영화의 오프닝에 살짝 숨겨졌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툼스톤]도 그러합니다. 이 영화는 아예 영화의 오프닝을 관객에게 살짝만 보여주고 곧바로 8년이라는 시간을 흘러 보냄으로써 노골적으로 영화 오프닝에 중요한 단서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1991년 괴한과의 총격전 이후 맷은 경찰을 그만두고 무허가 사립탐정이 되었으며, 술을 끊음으로써 알코올 중독자의 삶도 깨끗하게 청산합니다. 맷에게 이렇게 커다란 변화가 있었던 만큼 1991년의 사건은 괴한과의 총격씬이 전부가 아닐 것이라는 점은 아무리 스릴러 영화를 싫어하는 분이라도 금방 눈치챌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툼스톤]을 보는 내내 1991년의 그날의 사건과 1999년 맷이 의뢰받은 사건의 상관관계를 알아내기 위해 계속해서 머리를 굴렸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1991년의 사건은 1999년의 납치 사건을 다룬 [툼스톤]의 스토리 전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단지 맷이라는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한가지 의문점이 듭니다. 스콧 프랭크 감독은 무슨 이유로 1991년의 사건을 그토록 감추려한 것일까요?

영화의 오프닝에서는 맷이 괴한 3명을 처단하는 장면만 나옵니다. 그러다가 영화가 시작한지 1시간 가량 지나고 나서야 맷은 중독자 모임에서 그날의 사건으로 술을 끊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거의 마지막 후반부에 가서야 그날의 사건으로 괴한 3명 뿐만 아니라 어린 소녀가 맷이 쏜 빗나간 총알에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스콧 프랭크 감독은 마치 엄청난 비밀을 이야기하듯이 1991년의 사건을 하나씩 그리고 천천히 관객 앞에 풀어넣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맷이 알코올 중독자였고, 그로 인한 실수로 어린 소녀를 죽였다는 과거는 1999년의 맷을 이해하는데 가장 큰 힌트가 됩니다.

맷이 왜 피터(보이드 홀브룩)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을까요? 그건 그가 마약 중독자였기 때문입니다. 같은 중독자였기에 맷은 피터의 청을 쉽게 거부하지 못한 것입니다. 맷은 왜 피터의 동생인 케니(댄 스티븐스)의 사건 의뢰를 처음엔 거부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그가 마약 밀매업자이기 때문입니다. 중독자의 사정을 잘 아는 맷이 케니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맷은 러시아 마약밀매업자의 딸 납치 사건이 적극적으로 매달리는 것일까요? 그것은 1991년 자신에 의해 희생된 어린 소녀에 대한 죄책감 때문입니다.

이렇게 1991년의 사건은 1999년의 맷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그렇기에 스콧 프랭크 감독은 관객에게 맷을 이해시키려면 1991년의 사건을 감추려 하지 말고 오히려 처음부터 활짝 오픈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스콧 프랭크 감독은 1991년의 사건을 무슨 엄청난 반전이 있는 것처럼 감춤으로써 맷의 캐릭터 완성을 늦췄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저는 아직도 스콧 프랭크 감독의 의도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1999년 세기말적 분위기는 이 영화에서 어떻게 활용되었을까?

 

1991년의 총격씬으로 시작한 이 영화는 곧바로 1999년으로 시간을 옮기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진행시킵니다. 1991년의 사건으로 경찰을 그만 두고 사립 탐정이 된 맷. 8년후 그는 마약 밀매업자인 케니의 아내를 납치해서 돈만 받고 잔혹하게 살인한 납치범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사건을 조사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에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1999년이라는 영화의 시대적 배경입니다. 1999년은 20세기의 끝자락입니다. 세기말의 불안한 분위기를 잔뜩 담고 있는 시기인 셈입니다. 저는 1999년에 27살이었습니다. 1998년 대학을 졸업했지만 IMF 위기로 인하여 2년 동안이나 제대로된 직장을 잡지 못했던 백수였습니다. 그러한 제게 1999년 12월 31일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 떠들던 어느 종교 단체의 외침이 오히려 반가웠습니다. 

청년 실업자라는 불안한 현실, 평생 실업자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앞이 보이지 않는 불안한 미래에 대한 제 절망감이 1999년 12월 31일에 모든 것이 끝나버렸으면 좋겠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게 한 것입니다. 1999년 12월 31일 저는 종각에서 수 많은 사람들과 함께 서 있었습니다. 정말 세상이 멸망한다면 집에서 가만히 죽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하지만 결코 세상은 멸망하지 않았고, 세기말의 제 불안함은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거짓말처럼 사라졌습니다.

Y2K로 인하여 인류가 다시 원시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는 소문도 당시에는 떠돌았었습니다. Y2K란 컴퓨터의 밀레니엄 버그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컴퓨터가 2000년 이후의 연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결함이 발생되고 그로인하여 컴퓨터를 사용하는 모든 일이 마비되어 커다란 재난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 바로 Y2K입니다. Y2K는 당시 컴맹이었던 제겐 굉장히 그럴듯하게 들렸던 세기말의 공포였습니다.

 

[툼스톤]의 배경이 바로 1999년이라는 것은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많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음을 뜻합니다. 실제 컴맹인 맷은 도서관에서 만난 고아 소년 TJ가 컴퓨터 사용법을 배우라고 충고하자 어차피 Y2K가 오면 사용도 하지 못할 것을 왜 배우냐며 반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툼스톤]의 세기말적 분위기는 영화 속의 등장 인물들이 Y2K에 대해서 몇번 언급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활용되지 못합니다. 이럴바엔 굳이 영화의 배경을 1999년으로 잡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 영화의 원작 또한 1999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는 않다고 하니 더욱 스콧 프랭크의 의도가 궁금해집니다. ([툼스톤]의 원작은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의 거장이라 불리는 미국 소설가 로렌스 블록의 소설인 <무덤으로 향하다>입니다.)

물론 [툼스톤]을 세기말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노력을 하기는 합니다. 영화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차분하고 어둡습니다. 컴퓨터, 핸드폰 등 다가올 밀레니엄을 대표하는 최첨단(?) 전자기기를 혐오하는 맷은 새로운 밀레니엄을 거부하는 세기말적 캐릭터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마약밀매업자의 가족만을 납치해서 토막 살인을 하는 범인들의 잔인한 범죄 행각은 세기말의 불안함과 매치시키려는 시도 또한 보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기억하는 1999년의 분위기는 [툼스톤]의 그것보다 훨씬 암울했고, 훨씬 불안정했습니다. 젊음으로 무장한 저를 무겁게 짓누를 정도의 암울한 분위기의 무게를 떠올린다면 [툼스톤]이 그러한 세기말의 분위기를 제대로 잡아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결국 [툼스톤]은 세기말의 분위기를 만들어만 놓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테이큰]을 기대한다면 십중팔구 실망할 것

 

[툼스톤]을 액션 영화라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영화의 액션은 오프닝에서 맷과 괴한의 총격씬,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맷과 범인이 지하실에서 벌이는 격투씬 정도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툼스톤]의 영화 포스터에는 마치 이 영화가 [테이큰]과 [논스톱]을 잇는 리암 니슨표 액션 영화처럼 포장되어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툼스톤]은 아주 진중한 스릴러 영화입니다. 맷이 진실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과정이 세기말적 암울한 분위기 속에 차분하게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굳이 이 영화와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를 찾으라면 데이빗 핀처 감독의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서 미카엘(다니엘 크레이그)을 돕는 리스베르(루니 마라)의 모습은 [툼스톤]에서 빈혈증에 걸린 소년 TJ를 연상하게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데이빗 핀처 감독의 특기이기도 한 스릴러의 스산한 분위기가 돋보였던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과는 달리 [툼스톤]은 영화의 후반이 되면 될수록 점점 세기말의 스산한 분위기를 벗어버리고 리암 니슨표 액션 영화에 가까이 가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제가 [툼스톤]에 결정적으로 실망한 것은 바로 그 순간부터입니다.

 

사실 [툼스톤]은 스릴러 영화이지만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처럼 범인을 찾기기 위한 진실 게임과는 거리가 멉니다. 영화의 중반 무덤 관리인인 루건을 만나며 범인의 윤곽은 곧바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범인의 정체까지 일사천리로 드러난 상황. 그저 저 혼자만 '범인의 정체와 1991년의 사건이 무슨 연관성이 있을거야.'라며 헛다리를 짚고 있었을 뿐입니다. (저는 진정 그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결국 이 영화가 선택한 영화의 후반은 중독으로 인하여 과거의 잘못을 속죄하려는 맷의 강력한 한방입니다. 세기말의 분위기로 어두운 스릴러 영화를 만들겠다는 스콧 프랭크 감독의 야망은 결국 마지막에 가서 [테이큰], [논스톱]으로 쌓아 올린 리암 니슨의 액션 영웅으로서의 이미지에 무너지고 만 것입니다.

'내가 원한 것은...'이라며 무언가 말을 하려는 범인에게 맷이 얼굴에 총을 쏘아 버리는 장면은 그렇기에 잔인한 범죄자를 처단하는 액션 영웅의 활약에 의한 속시원함은 없었습니다. 그 대신 결국 세기말적 스릴러를 포기하고 리암 니슨의 액션으로 영화를 끝내버리는 것 같아 스콧 프랭크 감독의 부족한 뚝심이 아쉬울 따름이었습니다.

어쩌면 최악의 기분으로 [툼스톤]을 봤기 때문에 제가 이 영화를 만족하지 못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툼스톤]만으로 제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오늘은 [메이즈 러너]를 봐야 겠습니다. 부디 [메이즈 러너]를 보며 영화가 너무 재미있어서 기분이 좋아지길... 어쩌면 전 지금 가을을 타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 

 

[툼스톤]은 [테이큰]보다 느리고, [논스톱]보다 느슨하다.

차라리 마지막까지 세기말 스릴러의 분위기를 유지했다면 나았을텐데...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영화가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