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4년 영화이야기

[우리는 형제입니다] - 장진식 착한 영화의 진수

쭈니-1 2014. 11. 3. 15:10

 

 

감독 : 장진

주연 : 조진웅, 김성균, 김영애, 윤진이

개봉 : 2014년 10월 23일

관람 : 2014년 10월 29일

등급 : 12세 관람가

 

 

뻔해 보인다고? 이건 장진 감독의 영화란 말이다.

 

10월 29일에 본 네편의 영화 중에서 로맨틱 코미디의 극과 극을 경험했던 [레드카펫]과 [타임 투 러브]에 이은 세번째 관람작은 바로 [우리는 형제입니다]입니다. 사실 이 영화는 10월 29일에 개봉한 기대작 중에서 가장 순위가 낮은 영화였습니다. 만약 10월 29일에 연차 휴가를 내지 못했다면 극장에서 보는 것을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우리는 형제입니다]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이유는 내용만 봐도 이 영화가 어떻게 진행될지 뻔히 눈에 보였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생이별을 한 후 30년 만에 사람을 찾아주는 TV 프로그램 덕분에 극적 상봉한 상연(조진웅)과 하연(김성균) 형제. 그런데 문제는 이 두 형제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형제입니다]는 미국으로 입양된 후 한인교회 목사가 된 상연과 박수무당인 된 하연이 서로 다른 종교로 인하여 티격태격하는 것으로 관객의 웃음보를 건드리며 영화의 초중반을 진행할 것입니다. 중후반에는 사라진 어머니 승자(김영애)를 찾기 위해 상연과 하연이 함께 여행을 떠나며 점차 형제애를 회복하고 승자와 재회하며 영화의 감동을 완성해 나갈 것입니다. 이렇게 뻔히 눈에 보이는 영화이니 굳이 극장이 아닌 다운로드로 봐도 무방할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우리는 형제입니다]를 기대작 리스트에 올려 놓고, 10월 29일 빠듯한 영화 보기 일정 가운데에도 이 영화를 빼놓지 않고 본 이유 또한 명확합니다. 그것은 바로 장진 감독의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1998년 [기막힌 사내들]로 영화 감독에 데뷔한 장진 감독은 이후 [간첩 리철진],  [킬러들의 수다], [아는 여자], [박수칠 때 떠나라], [아들], [굿모닝 프레지던트] 등 꾸준히 장르를 비틀어버리는 독특한 영화들로 제 마음을 사로 잡았었습니다. 물론 [거룩한 계보]와 [퀴즈왕]은 개인적으로 실망스러웠고, 최근작인 [로맨틱 헤븐], [하이힐]은 흥행에 실패하면서 장진 감독에게 한물 갔다는 평가를 안겨주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진 감독의 영화는 제게 묘한 기대감을 안겨줍니다.

[우리는 형제입니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이 영화를 다른 감독이 연출했다면 제가 굳이 이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장진 감독이 연출했기에 뻔해 보이는 영화의 스토리 라인을 장진 식으로 뭔가 비틀어 버릴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 [우리는 형제입니다]는 제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영화적 재미를 갖추고 있습니다. 역시 장진 감독입니다.

 

 

예상 가능한 설정은 초반에만 살짝...

 

[우리는 형제입니다]는 예상대로 뻔한 설정으로 시작됩니다. 30년 만에 방송 프로를 통해 상봉한 상연과 하연. 두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감동적인 만남을 연출하지만 상연과 하연의 직업이 드러나며 갑자기 썰렁한 분위기로 반전됩니다. 이제 [우리는 형제입니다]는 목사가 된 상연과 박수무당이 된 하연이 상반된 종교와 직업으로 인한 충돌로 초반을 코믹하게 이끌어가면 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서 승자의 행방불명이라는 새로운 사건이 터져 나옵니다. 이미 영화 초반부터 기면증에 걸린 방송국 작가 여일(윤진이)의 모습을 살짝 보여줬던 [우리는 형제입니다]는 여일의 기면증과 승자의 행방불명을 한데 묶습니다. 목사가 된 상연과 박수무당이 된 하연의 충돌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들은 승자의 행방불명이라는 더 큰 사건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이러한 전개가 예상 외였습니다. [우리는 형제입니다]는 영화 홍보에서부터 목사가 된 형과 박수무당이 된 동생의 에피소드를 강조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설정은 관객의 웃음보를 터트릴만한 소재로 충분했고요. 그런데 장진 감독은 그러한 소재로 웃음을 터트리기 이전에 승자의 행방불명이라는 더 큰 사건을 꺼내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상반된 형제라는 영화의 코믹 코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물론 영화 중간 중간 상연과 하연의 미묘한 대립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 대표적인 장면이 박수무당이 된 하연에게 "어쩌다가 이런 일을 하게 됐니?"라고 상연이 묻자, 하연이 "그런 질문은 무슨 잘못을 한 사람에게나 하는 질문아닙니까?"라며 반발하는 장면입니다. 목사가 된 형과 박수무당이 된 동생의 대립을 잘 압축해서 보여주는 명 장면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코믹 코드는 상연과 하연의 종교에 의한 대립이 아닌, 치매에 걸린 승자에 의해 이뤄집니다. 단체 관광을 온 노인 부대에 섞여 방송국을 빠져 나간 승자는 한민당 김만재 의원의 장례식차에 올라섰다가 그의 숨겨진 내연의 여인으로 오인을 받기도 하고, 견인차의 운전수(김민교), 노숙자(김병옥) 등을 만나며 전혀 예상 밖의 에피소드를 만들어 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장진 감독에게 기대했던 뻔함 속에서 발휘되는 기발함입니다. 영화의 홍보도 그렇고, 영화의 제목도 그렇고, 모두가 목사가 된 상연과 박수무당이 된 하연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기대하며 [우리는 형제입니다]를 봤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장진 감독이 펼쳐 놓은 코믹함은 상연과 하연에 의한 에피소드가 아닌, 승자에 의한 에피소드입니다. 승자가 김만재 의원의 자식들에게 받은 부의금 봉투를 고아원에 전달하며 벌어지는 소동극은 장진식 비틀기의 진정한 재미였습니다.

 

 

상연과 하연의 아픔

 

승자가 예상 외의 웃음을 전파하면서 전국 방방곡곡을 신출귀몰하며 상연과 하연의 속을 새까맣게 태우는 동안, 정작 웃길 것이라 기대했던 상연과 하연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30년 만에 재회한 형제가 그깟 종교 문제로 대립한다는 것은 억지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형제입니다]는 바로 그러한 억지를 과감하게 버리고 어린 나이에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은 두 형제의 고난의 인생사를 관객 앞에 펼쳐 놓습니다.

어린 나이에 해외로 입양된 상연은 그곳에서 갖은 학대를 받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상연이 자신이 겪은 일들을 담담하게 털어 놓으면서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네가 아닌 내가 이곳에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라고 말할 때,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상연이 해외 입양으로 떠나버리자 하연은 형에게 간다며 고아원을 뛰쳐 나옵니다. 하지만 어린 그를 받아주는 곳은 앵벌이 조직뿐이었습니다. 그는 앵벌이를 하며 힘겹게 살아남았습니다. 그렇기에 상연이 앵벌이를 하는 어린 아이들에 돈을 주자, "그 돈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냐?"며 버럭 화를 냅니다. 비록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하연의 표정에서 그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상연과 하연에게는 코믹 코드보다는 감동 코드가 더 잘 어울립니다. 비록 영화는 두 형제를 내세운 코믹으로 홍보되었고, 조진웅과 김성균 역시 코믹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배우들이긴 하지만,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고 혼자의 힘으로 살아남아야 했던 형제의 사연은 결코 종교 문제 따위로 웃어 넘길 수가 없는 소재였던 것입니다.

영화의 후반에 상연과 하연이 앵벌이 조직과 싸우는 장면은 그러한 그들의 슬픔이 한꺼번에 분출되는 명장면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앵벌이를 해야 했던 하연의 분노와 낯선 미국 땅에서 폭력 조직에 몸을 담아야 했던 상연이 함께 싸우는 장면은 그들의 30년 묶은 슬픔이 영화를 보는 제게 처절하게 전달되었던 것입니다.

상처 투성이가 된 상연과 하연을 보며 "너희들 또 싸웠니?"라고 천연덕스럽게 묻는 승자. 아마 그녀의 치매는 스스로 자식을 버렸다는 죄책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랜 방황 끝에 다시 돌아온 승자는 자식을 버리기 이전의 기억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버렸다는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갑자기 행방불명된 어머니를 찾아 다니며 겪은 고생은 승자의 그 따뜻한 손길 하나만으로도 모두 치유되었습니다. 그렇게 상연과 하연의 슬픔은 말끔히 씻어 내려갑니다. 

 

 

이 영화는 코미디가 아니다.

 

[우리는 형제입니다]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영화는 장진 감독의 [아들]입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강식(차승원)이 하루 동안의 휴가를 받고 15년 만에 아들 준석(류덕환)과 재회한다는 이 영화는 장진 감독의 영화 중에서 가장 착한 영화로 기록될 영화입니다. 

[우리는 형제입니다]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장진식 코미디를 기대하며 이 영화를 본다면 어쩌면 실망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분명 이 영화엔 코믹한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승자의 행적과 새로운 씬스틸러로 기대가 되는 소매치기 형제(조복래, 최태원)의 에피소드 등은 소소한 웃음을 안겨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웃음보다 이 영화를 감싸는 것은 가족이라는 이름의 감동입니다. 어머니와 아들, 그리고 형제간의 사랑이 주는 눈물이 [우리는 형제입니다]를 감싸고 있습니다.

[우리는 형제입니다]에서 코미디에 대한 아쉬움은 감동으로 메꿀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일의 캐릭터에 대한 아쉬움은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가 없었습니다. 여일은 승자의 행방불명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는 인물입니다. 그렇기에 승자의 행방불명에 책임을 지기 위해 승자를 찾아나선 상연, 하연과 함께 길을 나섭니다. 하연에게 온갖 구박을 당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여일의 역할은 점점 줄어듭니다. 영화를 보면서 여일의 기면증이 또 어떤 기발한 사건을 일으킬 것이라 기대했는데, 여일의 기면증은 승자의 행방불명과 함께 마치 병이 낫기라도 한 것처럼 사라져 버립니다.  

여일에게 온갖 구박을 하던 하연과의 로맨스도 살짝 기대했는지, 아무래도 그것은 조금 무리였는 듯... 그래도 여일이라는 캐릭터를 좀 더 살렸다면 영화의 재미가 좀 더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은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부분들은 아주 작은 단점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형제입니다]는 그러한 단점들이 작게 보일 만큼 장점이 충분한 영화입니다.

2007년 5월 4일 [아들]을 보며 '장진 감독에게 이런 면이 있었다니...'라고 놀랬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형제입니다]를 보면서는 이젠 착해진 장진 영화가 익숙하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착한 영화를 만들면서도 결코 뻔하지 않은 영화적 구성을 선보이는 장진 감독, 역시 제가 항상 기대할만한 감독임이 분명합니다.

 

이런 영화를 볼 때마다 나는 다짐한다.

나는 부모 노릇을 잘 해서 웅에게 저런 아픔만큼은 안겨주지 않겠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