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이해준
주연 : 설경구, 박해일, 윤제문, 이병준, 류혜영
개봉 : 2014년 10월 30일
관람 : 2014년 10월 31일
등급 : 15세 관람가
편안히 쉬세요, 내 사춘기 시절 첫사랑이여!
지난 목요일, 업무시간이 지나고 회사에 남아 밀린 영화 이야기를 쓰던 저는 갑작스러운 비보를 전해 들었습니다. 중학교때부터 친구였던 녀석의 큰 누나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울먹이며 비보를 전해주던 친구를 위로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제 마음도 착잡해서 더이상 영화 이야기를 쓸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비보를 알리고 금요일 밤에 모두 함께 장례식장에 가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온 저는 거실에서 홀로 맥주를 마시며 슬픔을 달랬습니다. 돌아가신 친구의 큰 누나는 제 사춘기 시절의 첫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제 사춘기 시절, 누나는 참 멋졌습니다. 성격은 낙천적이었고, 항상 밝은 표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당당했습니다. 저는 커서 결혼을 한다면 누나처럼 멋진 여자와 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누나가 결혼한다며 매형을 저희에게 소개시켜줬을 때, 솔직히 너무나도 질투가 났었습니다. 그래서 곤란한 질문들로 매형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매형은 든든하고 남자다웠기에 결국 두 사람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줬습니다.
결혼하고 몇년 후 매형은 회사를 그만두고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때가 IMF시절이었습니다. 수 많은 자영업자, 중소기업들이 망했던 그때, 매형 역시 쓰디쓴 실패를 경험했고, 빈털털이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몇년 후 다시만난 누나는 예전의 당당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생활고로 인하여 많이 초췌해져 있었습니다.
금요일, 회사일로 잠실에 갔다가 일이 일찍 끝났습니다. 회사로 복귀하면 퇴근 시간이 거의 되어서야 도착할 것이 분명했기에 곧바로 퇴근하겠다는 보고를 했습니다. 회사일을 끝내고 남은 시간동안 [나의 독재자]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장례식장에 곧장 가기엔 시간이 너무 일렀기 때문입니다.
오후 7시, 같이 장례식장에 가기로 약속한 친구의 늦는다는 연락을 받고 저는 혼자 장례식장에 들어갔습니다. 강남성모병원에 마련된 누나의 장례식장에는 환하게 웃는 누나의 영정사진이 저를 반겼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매형과 아직은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누나의 세 딸들이 상복을 입고 슬픔 속에 서있었습니다.
사실 매형이 미웠습니다. 누나가 젊은 나이에 암에 걸린 것도, 그래서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것도 모두 매형이 고생을 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장례식장에서 매형을 보니 결코 미워할 수가 없겠더군요. 제 손을 꼬옥 잡으며 "누나를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라고 눈물을 흘리는 매형은 남자답던 예전의 모습 대신 어깨는 오그라들고, 등이 굽은 초라한 중년의 모습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날 저는 장례식장에서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토요일엔 누나의 관을 운구했고, 장례 버스를 타고 누나가 가는 마지막 길을 동행했습니다. 그렇게 사춘기 시절 제 첫사사랑이었던 누나를 보내고 나니 토요일 밤이 저물어가고 있었습니다. 몸은 피곤했고, 마음도 착잡했지만, 이 슬픔을 집에까지 끌고 갈 수 없었기에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는 기운을 차려야 했습니다.
초라한 아빠 성근
사춘기 시절 첫사랑을 갑작스럽게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슬픔을 안고 영화를 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나의 독재자]를 보며 시종일관 아련한 슬픔을 느껴야 했습니다. 영화 속 성근(설경구)의 모습에서 몇년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도 났고,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는 장례식장에서 몸을 낮추며 "내가 죄인입니다. 죄송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였던 매형이 떠올랐습니다.
[나의 독재자]의 전반은 1972년, 후반은 1994년을 배경으로 진행됩니다. 그런데 22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주인공인 성근의 모습은 언제나 초라했습니다. 1972년에 성근의 모습은 무명 연극배우입니다. 그는 무대 밖에서는 주인공의 대사를 줄줄이 외우지만, 막상 그가 무대에서의 역할은 지나가는 행인과 같은 작은 역할 뿐입니다. 그런 그에게 드디어 기회가 옵니다. 처음으로 주인공이 되어 무대에 선 성근. 하지만 그는 실수만 연발하고 맙니다.
아들 앞에서 멋진 배우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오히려 초라한 모습만 들켜버린 성근은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회담 리허설을 위한 김일성 대역 오디션에 합격합니다. 어쩌면 성근은 그것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들 앞에서 초라한 아빠가 아닌, 국가를 위해 위대한 일을 해낸 멋진 아빠가 될 수 있는...
하지만 남북정상회담은 무산되고 맙니다. 중앙정보부의 고문을 참아냈고, 햇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지하 고문실에서 김일성이 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쳐야 했던 성근은 김일성 대역 프로젝트가 취소되자 좌절감에 그만 정신을 놓고 맙니다.
1994년의 성근은 22년전보다 더 초라한 모습입니다. 자신이 김일성이라 믿는 아버지 때문에 온갖 고초를 당한 태식(박해일)은 성근의 존재를 애써 무시합니다. 이렇게 태식에게 버려진 성근은 요양원에서 남은 인생을 보낼 처지에 처합니다. 하지만 1994년 재개발 붐이 일어나고, 성근의 집이 재개발 구역에 포함되자 태식은 다시 성근을 집으로 데려옵니다. 인감 도장을 찾기 위해...
집에 돌아온 성근의 모습은 초라하다못해 우스꽝스럽습니다. 자신을 여전히 김일성이라 믿었고, 그로인하여 사사건건 태식을 곤경에 빠뜨립니다. 그리고 그럴때마다 성근을 바라보는 태식의 눈빛은 원망이었습니다. 태식에게 멋진 아빠가 되고 싶다던 성근의 욕망은 오히려 태식에게 나쁜, 그리고 초라한 아빠가 되게끔 이끈 것입니다.
제가 성근의 모습을 보면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린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어린시절 6.25 사변을 겪은 아버지는 일곱 명이나 되는 동생들을 챙기기 위해 초등학교조차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돈을 벌어야 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식들 앞에서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똑똑한 아빠가 되고 싶으셨나봅니다. 그렇기에 학교에서 배운 것과 다른 것을 주장하시던 아버지에게 "선생님이 아빠 말이 틀렸대."라고 대들면 화를 내시고 매를 들으셨었습니다. 그럴때마다 저는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우기는 아버지를 원망의 눈빛으로 바라보곤 했습니다.
영화 속 성근의 모습은 독재자 김일성의 당당함보다는 실패한 아버지의 초라함이 보였습니다. 누나의 장례식장에서 그 누구보다도 초라하게 슬픔을 맞이해야 했던 매형의 모습은 그렇기에 성근과 오버랩되었습니다.
성근은 왜 김일성이 되어야 했나?
솔직히 저는 아버지가 못 배운 것이 그다지 창피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항상 못 배운 것을 창피해하셨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가정 조사를 하면 아버지는 학력을 고졸이라고 거짓으로 기재하곤 하셨습니다. 저는 오히려 아버지가 못 배운 것보다 거짓으로 학력을 기재하는 것이 더 창피했습니다. 선생님이 "아버지는 어느 학교 나오셨니?"라고 물으면 대답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가정 조사를 하고나면 선생님이 질문할까봐 걱정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나니 이젠 아버지의 심정이 이해가 됩니다. 분명 성근 또한 그랬을 것입니다. 엄마 없이 태식을 키운 성근. 연극 배우라는 자신의 꿈 때문에 아들에겐 언제나 부족한 아버지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단역 배우에 불과한 성근이지만, 아들 앞에서는 멋진 아버지가 되고 싶었기에 성근은 태식에게 연극 배우로써의 자신의 위치를 과장해서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뻔히 드러날 거짓말입니다. 성근의 연극을 보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극장을 찾은 태식은 실수만 연발하는 성근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장면에서의 태식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고졸이 아닌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다는 것을 선생님과 반 아이들에게 들켰을 때의 제 심정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한 태식의 마음을 알기에 성근은 더욱 김일성 대역에 집착합니다.
비록 김일성은 독재자이지만, 그 누구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독재자의 당당함이 성근을 부러웠을 것닙니다. 아들에게만큼은 당당하고 싶었던 성근은 그렇게 스스로 김일성이 되어 버립니다. 중앙정보부의 오계장(윤제문)은 김일성을 연기할 성근에게 최악의 악당을 연기하는 것이라도 설명합니다. 하지만 성근에게 김일성은 아들에게 보여주고 당당한 모습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당당함... 그것은 세상 모든 아버지들이 자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아닐까요? 비록 세상 모든 사람들이 독재자라고 욕을 해도 성근이 김일성 대역에 빠져든 것은 김일성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자신은 가지지 못했던 당당함을 가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몇 달전 웅이는 제게 "아빠는 회사에서 몇 번째로 높아?"라고 물었었습니다. 저는 "사장, 이사, 부장 다음으로 높아!"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웅이는 "그러면 아빠도 회사에서 굉장히 높은거지?"라고 다시 묻더군요. 저는 어쩔 수 없이 "당연하지."라고 대답해줬습니다.
사실 제 직급이 차장이라고 하지만, 중소기업에서 차장은 그렇게 높은 직급이라 할 수 없습니다. (저희 회사 남자 직원의 직급은 거의 부장과 차장입니다. 대리 및 일반 사원은 단 세명뿐입니다.) 그러나 저 역시 웅이 앞에서 당당하고 싶었던 평범한 아버지에 불과하기에 회사에서의 제 위치를 과장해서 설명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기에 학력을 과장해서 적으셨던 아버지도, 그리고 스스로 김일성이 되어 버린 성근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물론 성근이 김일성이 되어 버린 것에는 당당함에 대한 부러움 외에도 여러가지 이유가 복합되어 있습니다. 1972년 군사 독재 시절이었기에 가능했을 고문도 성근의 정신을 무너뜨렸을 것이며, 성근이 김일성을 연기하기 위해 극중 인물과 동일시를 통한 극사실주의적 연기인 메소드 연기를 펼쳤다는 점도 성근을 김일성으로 만든 이유가 되었을 것입니다. [나의 독재자]의 놀라운 점은 성근이 짝퉁 김일성이 되는 과정을 짧은 시간 안에 세세히, 그리고 공감되게 표현했다는 점입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아빠가 된다.
성근과 시종일관 대립각을 세우는 태식. 사실 저는 태식이 아버지를 미워하는 것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다른 나라도 아닌 반공정신이 투철한 우리나라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민족의 원수라는 김일성이 되어 버린 아버지라니... 영화가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태식이 성근으로 인해서 당해야 했던 고난의 세월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가 성근에게 다시 손을 뻗은 것은 오로지 인감 도장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상황이 달랐다면 저는 태식에게 "저런 나쁜 놈!!!"이라며 욕을 하면서 영화를 봤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제가 태식이었다고해도 크게 다르지 않은 행동을 보여줬을 것입니다.
[나의 독재자]는 영화 초반은 짝퉁 김일성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성근의 사연을 소개하고, 영화 후반부에는 성근과 태식의 화해에 중점을 둡니다. 솔직히 성근과 태식의 화해를 위한 장치들은 조금 어색했습니다. 짝퉁 김일성을 내세운 회담 리허설이라니... 군사 독재 시절이었던 1972년이라면 그런 어처구니없는 계획이 있을 수도 있지만, 1994년이면 문민정부를 내세운 김영삼 정권 시절입니다. 성근과 태식의 화해를 위해서 조금 무리수를 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러한 무리수에도 불구하고 영화 후반부가 감동적일 수 있었던 것은 설경구의 연기 덕분입니다. 성근이 김일성을 연기하는 장면과 22년전 아들 앞에서 제대로 하지 못했던 '리어왕' 연기를 하는 장면은 설경구의 혼신의 연기 덕분에 영화의 클리이막스로써의 그능을 충분히 수행해냅니다.
그리고 성근의 연기를 본 태식은 그제서야 22년 동안 멈추었던 성장을 시작합니다. 그는 성근으로 인하여 아버지가 된다는 것을 두려워 했고, 그렇기에 여정(류혜영)을 애써 밀어냈지만, 성근과 화해하고 나서는 아버지가 되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됩니다.
[나의 독재자]는 첫 남북정상회담 당시 리허설을 위해 김일성의 대역이 존재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한 영화입니다. 이해준 감독은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서울 한복판에 나타난 짝퉁 김일성이라는 기발한 소재를 생각해 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시대에 뒤떨어지는 이념이라는 소재에 매몰되지는 않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내세워 결코 불편하지 않은 감동적인 영화로 완성해낸 것입니다.
지금은 가정에서 아버지의 존재가 많이 약해졌지만, 기억해보면 우리들의 아버지는 집에서 만큼은 독재자였던 것 같습니다. 감히 권위에 도전할 수 있었던 아버지라는 이름의 독재자. 하지만 아버지도 나이를 먹고, 아들이 아버지만큼 크면 독재자의 권위는 무뎌지기 마련입니다. 학교 선생님의 말이 틀리고, 자신의 말이 맞다며 억지를 부리시며 제게 매를 들으셨던 제 아버지도 돌아가시기 전에는 파킨슨 병에 걸린 힘없는 노인에 불과했으니까요.
그러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있기에, 그리고 저 역시 이제 12살이 된 웅이라는 아들을 가진 아버지이기에 [나의 독재자]를 보면서 참 많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초라하게 서있던 아내를 먼저 보낸 죄인이 된 또 다른 아버지에게도 동정심이 느껴졌습니다. [나의 독재자]는 그런 영화입니다.
당신에게 독재자 같았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있다면...
지금 자신이 자식 앞에서 누구보다도 당당하고 싶은 아버지라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영화이야기 > 2014년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터스텔라] - 당신을 어두운 밤과 맞서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0) | 2014.11.12 |
---|---|
[패션왕] - 간지도, 병맛도 모두 부족했다. (0) | 2014.11.07 |
[나의 사랑 나의 신부] - 결혼에 대한 환상을, 결혼에 대한 공감으로 바꾸다. (0) | 2014.11.04 |
[우리는 형제입니다] - 장진식 착한 영화의 진수 (0) | 2014.11.03 |
[타임 투 러브] - 그의 발칙한 상상은 로맨스를 망친다. (0) | 2014.1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