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4년 영화이야기

[퓨리] - 마지막에 가서 워대디는 영웅이 되기 위해 실패한 지휘관이 된다.

쭈니-1 2014. 12. 1. 16:50

 

 

감독 : 데이비드 에이어

주연 : 브래드 피트, 로건 레먼, 샤이아 라보프, 마이클 페나, 존 번탈

개봉 : 2014년 11월 20일

관람 : 2014년 11월 27일

등급 : 15세 관람가

 

 

내가 전쟁영화를 싫어하는 이유

 

한때 제 꿈은 세상 모든 영화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애초에 이뤄질 수가 없는 꿈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평생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영화만 본다고해도 세상의 모든 영화들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유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공포 영화와 전쟁 영화를 싫어하기 때문에 세상 모든 영화를 보려고 도전한다는 것은 괴로움이 될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괴로움이 되는 꿈이라면 차라리 이루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제가 공포 영화를 싫어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 일입니다. 결혼 전만해도 공포 영화를 잘 봤었으니까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영화 속의 주인공에 감정을 이입하며 영화를 보기 시작했고, 영화 속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자 공포 영화는 제게 끔찍한 악몽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제 정신건강을 위해 공포 영화는 끊었습니다.

전쟁 영화를 싫어하기 시작한 것은 굉장히 오래 전의 일입니다. 제가 영화를 좋아하기 시작했던 25년전, 극장에서 전쟁 영화를 보다가 그만 졸았었습니다. (영화의 제목은 기억이 안납니다. 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했으며, 영화 중간에 포로 수용소 내의 권투 장면이 나왔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날 뿐.) 그것은 지금까지 제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졸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그 후 전쟁 영화는 제게 지루한 영화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전쟁 영화를 싫어하는 이유는 지루함 때문만은 아닙니다. 전쟁은 인류가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범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몇몇 반전 영화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전쟁 영화들이 전쟁을 소재로 주인공의 영웅주의적 활약을 뻔뻔스럽게 그려냅니다. 적군도 엄연한 사람인데, 무슨 게임하듯이 적군을 대량 학살하고는 영웅이라며 추켜세우는 모습은 제게 역겨움을 안겨줬습니다. 제가 전쟁 영화를 의도적으로 피하는 진짜 이유입니다.

그러한 제가 [퓨리]를 봤습니다. 사실 저는 [퓨리]가 전쟁 영화라기 보다는 탱크 액션 영화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남자라면 탱크에 대한 묘한 로망이 있기 마련입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탱크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을 즐겼는데, 탱크가 가지고 있는 단단함의 이미지는 어린 시절 유난히도 허약했던 제겐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퓨리]는 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한 영화이지만, '퓨리'라는 이름의 탱크와 '퓨리'를 이끄는 워대디(브래드 피트)를 비롯한 다섯 명의 부대원의 활약을 그린 영화입니다.  비록 제가 전쟁 영화를 싫어하긴 하지만, 탱크를 전면에 내세운 [퓨리]마저 외면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렇게해서 보게된 [퓨리]는 탱크에 대한 제 로망을 채워줌과 동시에 마지막에 가서는 전쟁 영화에 대한 제 불편함을 건드리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추악한 전쟁의 이면을 보여주다.

 

일단 [퓨리]의 시작은 주인공의 영웅적 활약을 내세운 전쟁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탱크 '퓨리'와 네명의 부대원들을 이끄는 워대디는 우리가 흔히 보는 일반적인 전쟁 영웅은 아니었습니다. 시작부터 그는 부대원을 잃었고, 그에 대한 부대원들의 원망과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그의 목표는 처음부터 이 지긋지긋한 전쟁에서 살아남는 것이며, 자신을 믿고 따라준 부대원들을 무사히 집으로 귀환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그는 더욱 치열하게, 그리고 냉혹하게 전투를 치룹니다.

그런 그에게 신병 노먼(로건 레먼)이 배치됩니다. 전투 경험이 전무한 행정병 출신인 노먼의 배치에 워대디는 불만을 터트립니다. 그건 워대디 입장에서 당연합니다. 전투 경험이 많은 노련한 병사가 배치되어도 부대원 모두 살아서 돌아가겠다는 워대디의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장담을 못하는데, 전투 경험이 전혀 없는 신병이라니... 하지만 워대디는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퓨리]의 초반은 노먼을 강하게 몰아부치는 워대디의 모습으로 진행됩니다. 나치의 장교를 사로 잡은 워대디는 노먼에게 총을 쥐어주며 쏘라고 명령합니다. 노먼이 못하겠다고 거부하자 그를 폭행하고, 억지로 그가 총을 쏘게끔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한 워대디의 모습은 전쟁 영웅이라기 보다는, 전쟁이라는 참혹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억지로라도 독해져야 하는 인간의 추악함을 보여줍니다.

 

그러한 장면은 중반에도 이어집니다. 치열한 전투 끝에 독일의 한 마을을 점령한 연합군. 그런데 그곳에서 연합군은 독일 여자를 희롱하는 등, 행패를 부립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패는 워대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워대디가 노먼과 함께 독일인 여성 두명이 사는 집에 들어가 행패를 부리는 장면은 영화에서 최고의 긴장감을 선보입니다.

독일인 여성의 긴장한 모습과 그러한 그녀들에게 식사 준비를 시키는 워대디. 특히 워대디가 독일인 여성과 노먼을 침실로 들여보내는 장면은 비록 독일인 여성이 노먼의 순수함에 호감을 보였다고는 하지만, 워대디의 무언의 압박을 생각한다면 승자인 연합군의 행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퓨리'의 부대원들인 바이블(샤이아 라보프), 고르도(마이클 페나), 쿤 애스(존 번탈)까지 들어와 더욱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듭니다.

독일인 여성과 정을 나눈 노먼. 하지만 독일군의 폭격으로 그녀는 죽고 맙니다. 이러한 장면만 보더라도 [퓨리]는 전쟁 영웅의 활약을 그린 영화가 아니라는 점이 명확해집니다. 만약 워대디를 중심으로한 '퓨리' 부대원의 영웅적 활약을 그린 영화라면 그들을 좀 더 멋지게 포장했을 것입니다. 결국 [퓨리]는 적군도, 아군도, 그리고 민간인도 살기 위해 발버둥칠 수 밖에 없는 냉혹한 전쟁의 실상에 초점을 맞춘 영화인 것입니다.

 

 

'퓨리'의 활약은 기대 이상이다.

 

일단 [퓨리]는 영화의 초반부터 제가 싫어하는 류인 영웅주의적 전쟁 영화가 아니라는 점을 어필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어필은 제가 애초에 이 영화에 기대했던 '퓨리'의 활약에 집중해서 영화를 볼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줬습니다. 실제 [퓨리]는 탱크 액션 영화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상당히 만족스러운 영화입니다.

지금까지 전쟁 영화에서 탱크는 조연에 불과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탱크를 자세히 묘사하기엔 영화의 제작비가 천정부지로 뛰어 오를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에서 탱크는 굉장히 큰 역할을 했습니다. 현재도 독일의 국가대표 축구단을 '전차군단'이라고 부를 정도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전차군단은 연합군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퓨리]는 바로 그러한 두려움의 대상인 독일의 전차 군단과 맞짱뜬 연합군의 탱크 '퓨리'의 활약을 담은 것입니다. 그런 만큼 보병의 전투와는 스케일이 다른 탱크의 전투가 실감나게 그려집니다. 영화 중반 독일의 티거 탱크 1대의 매복에 연합군의 셔먼 탱크 네대가 박살이 나는 장면은 [퓨리]의 영화적 재미를 가장 잘 나타내는 최고의 명장면입니다. 저는 그 장면 만으로도 [퓨리]를 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입니다.

 

[퓨리]가 뛰어난 점은 또 있습니다. 좁은 탱크의 내부에서 동거동락하는 다섯명의 부대원들의 캐릭터를 제대로 잡아냈다는 점입니다. 워대디를 비롯하여, 바이블, 고르도, 쿤 애스는 각각 개성이 다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사사건건 티격태격하지만 중요한 전투의 순간에서는 최고의 팀웍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독일인 여성의 집에서 신병 노먼을 편애하는 워대디 때문에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부대원들. 처음엔 저도 그들의 행동에 눈쌀을 찌푸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워대디와 함께 겪었던 잔인했던 전쟁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해가 되었습니다. 지나치게 성경에 집착하는 바이블, 지나치게 망나니처럼 행동하는 쿤 애스, 그것은 그들이 전쟁이라는 끔찍한 현실을 이겨내는 하나의 방법이었으며, 그로인해 그들은 전쟁의 한 가운데에서 점차 가족이 되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엔 "나는 이곳과 맞지 않아요."라며 전투를 거부하던 노먼. "그들을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죽어."라며 노먼을 닥달하는 워대디. [퓨리]는 노먼의 시선을 통해 순수했던 그가 '퓨리' 부대원과 함께 하며 점점 그들의 가족이 되고, 전쟁의 참상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퓨리'는 적을 무찌를 수 있는 무기였고, 적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방패였으며, 편히 쉴 수 있는 집이었고,  마지막을 보낼 무덤이었습니다. [퓨리]는 탱크의 액션에서부터 탱크 부대원들의 모든 것을 실감나게 담고 있는 영화인 셈입니다.

 

 

마지막의 아쉬움 (스포 포함)

 

하지만 아쉽게도 [퓨리]는 제게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던 전쟁 영화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후반부에 가서 갑자기 영웅주의적 전쟁 영화로 돌변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영화의 흥행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의 의도였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퓨리]의 후반부에는 분명 이 영화가 전반과 중반에 걸쳐 완성해낸 영화적 재미와 메시지를 포기하고 있습니다.

행군 중인 독일군 부대를 막으라는 명령을 받은 연합군의 전차 부대. 하지만 독일군의 티거 탱크의 매복 공격으로 다른 연합군 탱크는 전멸당하고 남은 것은 '퓨리' 뿐입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지뢰로 인하여 '퓨리'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행군 중인 독일군 부대는 수백명으로 이뤄진 최정예 부대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퓨리'의 지휘관이라면 어떤 선택을 내릴까요?

임무를 위해서라면 죽기를 각오하고 독일군을 막아 임무를 완수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은 자신과 부대원의 죽음을 담보로 해야합니다. 부대원을 집으로 무사히 돌려보내는 것이 목표였던 워대디라면 바이블이 주장하는 것처럼 숲에 숨어서 독일군이 지나가길 기다렸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워대디는 정면 대결을 선택했고, 다른 부대원들도 워대디를 믿고 따릅니다.

그 결과는 참혹한 패배입니다. 물론 '퓨리' 부대원의 죽기를 각오한 공격으로 인하여 행군 중인 독일군 상당수를 죽였고, 그로 인하여 연합군의 승리에 기여했다고 하지만 노먼을 제외한 모든 부대원들은 죽음을 맞이합니다. 뒤늦게 도착한 연합군인 노먼에게 "자넨 영웅이네."라고 추켜세워줍니다. 

 

[퓨리]의 후반부에서 아쉬운 점은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첫째, '퓨리'가 지뢰로 인하여 고장나면서 탱크 액션을 펼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영화의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하이라이트에서 영화가 내세운 가장 큰 재미인 탱크 액션을 볼 수 없다는 것은 [퓨리]의 가장 큰 아쉬움이 됩니다.

둘째, 워대디는 실패한 지휘관이 되어 버렸습니다. [퓨리]가 처음부터 워대디의 영웅적 활약을 그렸다면 모를까, 그는 참혹한 전쟁 가운데에서 부대원들을 집으로 무사히 돌려 보내기 위해 노력했었습니다. 그러한 그는 자신의 약속을 스스로 무리한 계획으로 인하여 깨버립니다. 그럼으로써 워대디는 연합군의 영웅이 되었을지언정, 성공한 지휘관은 되지 못합니다. 

셋째, 노먼은 억지 영웅이 됩니다. 처음부터 영웅과는 거리가 멀었던 노먼. 그는 치열한 전투 사이에 '퓨리'의 밑에 숨지만, 독일군 병사에게 들킵니다. 그런데 독일군 병사는 그를 못본척 해줍니다. 이 장면은 [퓨리]에서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억지 장면입니다. 이 억지장면은 워대디를 비롯한 '퓨리' 부대원의 영웅담을 전달하기 위해 노먼이 선택됨으로써 어쩔 수 없이 생겨난 장면입니다.

결국 제게 있어서 [퓨리]의 아쉬움은 영화 후반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중반까지 비록 영웅은 아니지만, 성공적인 지휘관이었던 워대디가 성공적인 지휘관 대신 영웅을 선택하는 그 순간, 저 역시 [퓨리]에 실망하고 만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반까지 탱크 액션의 진면목과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줬으니 오랜만에 관람한 전쟁 영화인 [퓨리]에 대해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워대디가 굳이 영웅이 되지 않았더라도...

어차피 2차 세계대전은 연합군의 승리로 막을 내렸을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워대디의 선택이 아쉽다.

그는 영웅 대신 성공적인 지휘관을 선택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