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4년 영화이야기

[빅매치] - 액션은 특급, 쾌감은 부족

쭈니-1 2014. 12. 5. 16:08

 

 

감독 : 최호

주연 : 이정재, 신하균, 이성민, 보아

개봉 : 2014년 11월 26일

관람 : 2014년 12월 4일

등급 : 15세 관람가

 

 

스트레스를 날려줄 특급 액션을 원했다.

 

저는 11월의 마지막 주말에 덜컥 얻어버린 감기몸살 때문에 12월이 시작되자마자 코 훌쩍, 기침 콜록, 머리 지끈 모드로 비실거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다고 회사에 휴가를 낼 수도 없는 상황. 몸이 아프니 만사가 귀찮고, 일에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다 결국 회사의 송년회 장소 예약을 깜박잊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뒤늦게 예약을 하려했지만, 예정된 장소에서는 이미 예약이 꽉 찬 상태. 저는 패닉에 빠져 버렸습니다.

다행히 부랴 부랴 발로 뛰어 다른 송년회 장소를 예약했지만, 제 직속상관한테 "나이가 드니 기억력이 감퇴되나봐?"라는 뼈있는 한마디를 듣고 말았습니다. 비록 농담같은 한마디였지만, 제 입장에서는 뜨끔했습니다. 사실 올해들어서 이렇게 깜박 잊어버리는 실수를 자주 저질렀거든요. 2015년에는 좀 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일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감기몸살로 몸은 안좋고, 회사일도 실수 연발이다보니 요즘 저는 스트레스에 휩싸여 있습니다. 12월 들어서 컨디션이 안좋아 영화 관람을 차일피일 미뤘지만, 스트레스도 풀겸 12월의 첫 영화로 [빅매치]를 선택했습니다. [빅매치]는 이정재 주연의 코믹 액션 영화입니다. 제가 보기엔 스트레스 해소용 영화로 딱 알맞아 보였던 것입니다.

 

우선 결론부터 이야지하자면 [빅매치]의 액션은 제가 기대했던대로 스트레스를 풀기에 딱 좋았습니다. [도둑들]을 통해 천만 배우로 등극했고, [신세계], [관상]의 연속적인 흥행 성공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이정재의 액션 연기도 참 좋았습니다. 생각보다는 행동이 먼저나가는 최익호의 코믹 액션은 [빅매치]를 더욱 시원시원하게 만들었습니다.

[런닝맨]에서 한국형 도심 질주 액션의 주인공을 맡아 종횡무진 활약했던 신하균은 [빅매치]에서 에이스라는 이름의 악역을 맡아 이정재와 연기 대결을 펼칩니다. 우직한 최익호와는 달리 능글맞은 천재 악당 에이스. 이 두 캐릭터의 대결은 영화의 제목 그대로 '빅매치'의 진수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이성민, 보아, 김의성, 배성우, 손호준, 최우식 등 조연 배우들을 알맞게 활용한 것도 [빅매치]의 장점입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마지막 액션의 쾌감은 기대에 못미쳤던 영화입니다. 이유를 알지 못한채 형인 최영호(이성민)가 납치되자 형을 구하기 위해 에이스에 의해 놀아나는 최익호. 그가 마지막에 자신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던 에이스에게 시원한 마지막 반격을 선사할 것이라 기대했지만, [빅매치]는 거기까지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빅매치]에 대해 좀 더 상세하게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컴퓨터 게임 세대를 위한 액션의 디테일이 좋았다.

 

[빅매치]는 액션만큼은 특급이라는 칭찬이 결코 아깝지 않은 영화입니다. 특히 제가 이 영화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은 게임처럼 설정된 영화 속 상황과 액션의 디테일입니다. 사실 컴퓨터 게임이 보편화되면서 이미 할리우드에서는 인기 게임을 영화화하는 등 게임과 영화의 결합을 활발하게 진행중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게임과 영화의 결합은 장선우 감독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실패 이후 시도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과 [빅매치]가 게임을 영화화한 작품은 아닙니다. 하지만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도 그렇고, [빅매치] 또한 영화 자체가 게임의 한 장면처럼 설정되어 있습니다. 최익호가 경찰서에서 탈출하는 장면이 그러합니다. 마치 게임을 하는 듯이 최익호에게는 미션이 부여되고, 미션의 난이도는 점점 높아집니다. 최익호가 그러한 미션을 수행하고나면 그를 기다리는 것은 또다른 게임 속의 상황일 뿐입니다.

경찰서에서의 탈출, 불법 사설 도박장에서 꼭대기층에 감금된 형을 구출하기, 인파가 가득한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형을 찾기, 그리고 마지막엔 서울역에서  보스 스테이지인 UFC 챔피온 안드레이와의 1대1 대결 등, 최익호는 에이스에 의해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형을 구출하기 위해 게임 속의 캐릭터처럼 끊임없이 미션을 수행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미션 수행 와중에 펼치는 최익호의 똘기충만 액션은 영화에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합니다.

 

사실 이러한 영화의 전개는 영화가 유치해질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할리우드의 경우는 오랜 시행착오 끝에 거대한 제작비와 정교한 특수효과로 게임의 영화화를 성공적으로 진행시키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직 시기상조입니다. 그렇기에 [빅매치]의 게임과도 같은 스토리 전개는 이 영화가 게임을 원작으로 하지 않았다고 해도 충분히 위험부담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호 감독은 에이스의 정체를 통해 유치해질 수도 있는 게임과도 같은 스토리 전개의 단점을 피합니다. 에이스의 정체는 불법 인터넷 도박의 천재 설계자로, 그는 일반인을 자신의 게임 속으로 끌여들여 극소수의 사회지도층 멤버들에게 생중계하며 커미션을 받아 챙겼던 것입니다. 이는 곧 최익호가 처한 상황 자체가 에이스가 만들어놓은 게임이라는 설정입니다. 그렇기에 [빅매치]의 게임과도 같은 스토리 전개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설정에는 최익호의 캐릭터가 한 몫을 합니다. 그는 촉망받는 축구 선수였지만, 상대팀 선수 모두를 때려눕혀 제명을 당하고, 타고난 맷집으로 UFC의 촉망받는 스타가 됩니다. 그러한 최익호의 맷집은 일당백으로 싸워야 하는 게임 캐릭터에겐 필수조건입니다. 실제 최익호는 그러한 맷집을 토대로 어려운 미션들을 하나씩 해결해나갑니다.

 

 

조연 캐릭터를 허투루 쓰지 않았다.

 

[빅매치]에서 제가 또한가지 만족스러웠던 것은 조연 캐릭터의 적절한 배치입니다. 최익호에겐 아버지와도 같은 형 최영호과 형수(라미란)는 과하지도,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적절한 분량으로 영화를 가득 채웁니다. 그 외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의문의 빨간천사 수경(보아)입니다.

사실 수경은 아직 연기력이 검증되지 않은 가수 출신 보아가 캐스팅되었다는 점과 남성 중심의 영화에 으레 등장하는 눈요기를 위한 여성 캐릭터가 아닐까라는 의심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러한 의심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최익호와 에이스의 대결에서 수경이 위치가 애매했습니다. 그녀는 에이스의 지시을 받는 최익호의 안내자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영화 초반만해도 그녀의 존재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서를 탈출한 최익호를 위해서라면 자동차와 네비게이션만 준비하면 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수경은 자신의 역할을 점차 찾아나갑니다. 그녀가 촉망받는 권투 선수였다가 경기 조작 스캔들에 휘말려 제명을 당했다는 과거는 최익호에게 유대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최익호가 수경에게 "여자는 남자가 지킨다."라고 큰소리치는 장면에서 흔들리는 수경의 눈빛은 영화 후반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런닝맨]에서 차종우(신하균)를 괴롭히는 김부장을 연기한 김의성은 뒷북 경찰 도형사를 연기했습니다. 사실 이러한 캐스팅이 제겐 신의 한수였는데, [런닝맨]에서 김의성의 악역 연기가 워낙 인상 깊었기에 [빅매치]에서도 그가 갑자기 악당으로 변하지 않을런지 긴장하며 지켜봤습니다. 그것이 최호 감독의 의도였는지, 아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저는 김의성 덕분에 [빅매치]를 더욱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었던 셈입니다.

사설 불법 도박장에서 최익호에게 박살이 난 후 복수를 위해 최익호를 쫓아다니는 어리버리 조폭 도끼(배성우), 최익호의 팬클럽 회장 재열(손호준) 등 [빅매치]에는 꽤 많은 조연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최호 감독은 그들을 결코 허투루 쓰지 않고 적재적소에 배치한 후, 영화의 재미를 위해 잘 활용합니다. 

그렇게 조연 캐릭터들이 하나씩 모이며 영화의 클라이막스가 완성됩니다. 최익호가 안드레이와 1대1 대결을 펼치는 동안 이들 조연 캐릭터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해냅니다. 단, 에이스의 조력자인 천재 해커 구루(최우식)만큼은 제대로된 역할이 없어 아쉬웠지만, 조연 캐릭터를 이정도 활용했다는 점만으로도 [빅매치]는 캐릭터 영화로써는 꽤 성공적이라 평가하고 싶습니다. 

 

 

마지막 액션의 쾌감을 느끼고 싶었지만...

 

하지만 여기까지입니다. [빅매치]가 진정한 오락 액션 영화가 되려면 액션 영화의 쾌감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빅매치]는 그것이 부족합니다. 분명 최익호라는 주인공 캐릭터가 유쾌하고, 액션도 시원시원했으며, 조연 캐릭터의 역할도 좋았지만, [빅매치]를 보며 액션 영화의 쾌감을 느끼기엔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입니다.

다시 [빅매치]의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최익호는 일반인입니다. 물론 그는 엽기적인 맷집을 가진 UFC의 스타이지만, 가진 것도 별로 없고, 빽도 없는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합니다. 그러한 그가 사회지도층의 장난감으로 전락합니다. 에이스를 앞세운 그들은 최익호의 형을 인질로 잡아놓고, 최익호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없는지 내기를 하며 '낄낄'거립니다. 만약 내 자신이 최익호의 입장이라면 굉장히 열받는 상황일 것입니다.

하지만 [빅매치]는 낙천적인 최익호라는 캐릭터를 통해 그가 처한 상황을 코믹하게 그려냅니다. 결코 코믹한 상황이 아닌데 관객들은 웃으며 최익호의 활약을 즐깁니다. 영화 자체가 현실과 동떨어진 게임 속 상황으로 전개되기는 하지만, 솔직히 저는 다른 분들처럼 [빅매치]를 보며 '낄낄'거릴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저는 '낄낄'거리며 [빅매치]를 즐기는 제 주변의 관객들이 최익호를 게임 캐릭터로 전락시킨 영화 속 사회지도층 게이머처럼 느껴졌습니다.

 

최익호에 감정이입을 하며 영화를 본 저는 '낄낄'거리며 [빅매치]를 즐기기보다는, 최익호에게 부당한 상황을 만들어 놓은 에이스를 비롯한 사회지도층 게이머들이  최익호의 주먹에 혼쭐이 나기를 기대하며 영화의 라스트를 기다렸습니다. 그것이 제겐 [빅매치]에 기대한 액션 영화의 쾌감입니다.

하지만 [빅매치]는 그러한 쾌감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최익호와 에이스의 한판 대결이 펼쳐지지만, 저는 그 장면이 억지라고 생각합니다. 최익호가 몸을 쓰는 캐릭터라면 에이스는 머리를 쓰는 캐릭터입니다. 그렇기에 최익호가 에이스를 한방 시원하게 훈쭐내려면 몸이 아닌 머리를 써야 했습니다. 그런데 [빅매치]는 그 반대로 에이스가 머리가 아닌 몸을 쓰게끔 만들어서 최익호와 에이스의 대결을 성사시킵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맞대결 자체가 승부가 결정된 무리수였습니다.

물론 [빅매치]는 해피엔딩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는 저는 그다지 개운하지가 않았습니다. 힘없는 소시민이라는 이유로 가진 자들의 게임 캐릭터가 되어 죽도록 고생한 최익호. 하지만 그러한 부당한 짓을 저지른 자들은 제가 쾌감을 느낄만큼 혼쭐이 나지 않았습니다. 특급 액션만큼이나, 마지막 특급 쾌감도 준비해줬다면 [빅매치]는 제게 스트레스를 확실하게 날릴만한 오락 영화가 될 수 있었을텐데... 마지막이 아쉽기만 했습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은 우리가 현실에서 흔히 보는 꼬리자르기식 결말이다.

서민을 게임 캐릭터처럼 만들어놓고 '낄낄'거리며 즐겼던 그들.

영화에서조차 그들을 처벌할 방법이 없다니...

그렇기에 나는 영화가 끝나도 쾌감대신 찝찝함만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