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제임스 마쉬
주연 : 에디 레드메인, 펠리시티 존스, 찰리 콕스
개봉 : 2014년 12월 10일
관람 : 2014년 12월 13일
등급 : 12세 관람가
나홀로 사랑 영화에 도전하다.
지난 주에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단 하루도 술을 안마신 적이 없습니다. 세건의 송년회를 비롯하여 중간중간 술약속이 연속적으로 잡혀 있었으니까요. 주말이라고 쉴 틈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어머니께서 과메기를 준비하신다는 말씀에 누나 부부, 여동생 부부가 토요일에 어머니의 집으로 모이자고 약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웅이는 스카우트 행사로 인하여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집을 떠나 있었고, 구피는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밀린 일을 위해 출근을 했습니다. 어머니 집에서 모이기로 한 시간은 오후 6시. 토요일에 느즈막히 일어났지만, 약속시간까지 5시간 가량 시간이 남았습니다. 이렇게 짜투리 시간이 남으면 그것은 영화를 보러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됩니다.
토요일 오후의 짜투리 시간을 위한 영화로 처음부터 저는 사랑 영화를 보기로 마음 먹었었습니다. 요즘 극장가는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사랑 영화들이 자리를 차지했지만, 저는 혼자 사랑 영화를 보러갈 수는 없다며 이들 영화를 안보고 버텼거든요. 하지만 전날 마신 술 기운이 아직 남아 있어서인지 왠지 그날만큼은 닭살 커플들 사이에서 사랑 영화도 당당하게 볼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후보작들은 많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모든 것을 함께해온 남녀가 서로가 서로의 사랑인줄 모르고 자꾸만 엇갈린다는 내용의 [러브, 로지], 스티븐 호킹 박사의 사랑을 다룬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이 유력한 후보였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박스오피스의 강자로 떠오른 76년을 함께 산 노부부의 사랑을 그린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도 제 레이다망에 잡히며 저를 고민에 빠뜨렸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후보에서 탈락한 영화는 [러브, 로지]입니다. 아무리 제가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고 하지만 누가봐도 데이트 무비인 [러브, 로지]를 혼자 보러간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랑 영화이긴 하지만 데이트 무비의 분위기가 덜 풍기는 [사랑에 대한 모든 것]과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로 후보작이 좁혀졌습니다.
구피한테 이 두 영화중 어느 영화를 볼까? 라고 물으며, 고민에 빠졌던 저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의외의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보다는 루게릭병에 걸린 세계적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의 사랑이 더 궁금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는 술 기운이 조금 남아 있던 토요일 오후, 저는 수 많은 연인 관객들 틈에서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봤답니다.
그들의 사랑은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앞서 설명했듯이 세계적인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의 사랑을 다룬 영화입니다. 스티븐 호킹의 사랑이 영화로 만들어질만큼 특별한 이유는 그가 루게릭병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루게릭병은 운동신경이 차례로 파괴되어 전신이 뒤틀리고, 결국은 혼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서서히 죽어가는 불치병입니다.
스티븐 호킹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준비하던 중 루게릭병에 걸렸습니다. 의사는 그에게 2년 정도 밖에 살 수 없다는 시한부 판정을 내렸습니다. 촉망받는 물락학도에서 2년이라는 짧은 시간만 허락된 시한부 환자로 전락한 스티븐 호킹. 그런데 절망에 빠진 그에게 희망을 주고, 지금의 세계적인 물리학자가 되도록 이끌어준 이가 있었으니 바로 제인 와일드라는 여성입니다.
제인 와일드는 스티븐 호킹이 루게릭 병에 걸려 2년 밖에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와의 결혼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스티븐 호킹이 병마와 싸워 이겨내고, 세계적인 물리학자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도와줍니다. 이러한 사랑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스티븐 호킹과 제인 와일드의 사랑은 제인 와일드가 쓴 자서전 <스티븐 호킹 : 천재와 보낸 25년>에 고스란히 담겨졌고,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재탄생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에서 한가지 반전이 있습니다. 루게릭병을 이겨낸 그들의 위대한 사랑은 이혼으로 막을 내렸다는 점입니다. 실제 스티븐 호킹과 제인 와일드는 제인 와일드의 책 제목 그대로 25년의 결혼 생활 끝에 이혼을 했습니다. 그들의 영원불멸할 것만 같았던 사랑은 결국 해피엔딩이 아니었습니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스티븐 호킹과 제인 와일드의 사랑과 이별을 세밀하게 그려낸 영화입니다.
어쩌면 스티븐 호킹의 위대하고, 달콤한 사랑 이야기를 기대하며 극장을 찾으신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굉장히 당혹스러운 영화가 아니었을까요? 만약 이 영화가 스티븐 호킹이 제인 와일드의 사랑에 힘입어 세계적인 물리학자가 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면 "실화라니 대단히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야!"라는 감탄과 함께 극장을 나올 수 있었을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들의 사랑이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짙은 여운이 남았습니다. 스티븐 호킹과 제인 와일드의 사랑은 루게릭병도 이겨낸 위대한 사랑이지만, 스티븐 호킹에게도, 그리고 제인 와일드에게도 세상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보던 위대한 사랑을 끝내야만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들의 사랑이 이혼으로 끝을 냈다고해서 사랑이었던 것이 사랑이 아닌 것으로 바뀌는 것일까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의 이러한 질문은 이 영화를 평범한 사랑 영화가 아닌, 심오한 사랑 영화로 만들어놓습니다.
사랑은 환상이지만 결혼은 현실이다.
어쩌면 제인(펠리시티 존스)이 스티븐(에디 레드메인)과의 결혼을 결정한 것은 현실적이기보다는 이상적인 선택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실제 스티븐은 냉철한 이성을 통해 무엇이든 증명해야하는 물리학도이며,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러나 제인은 1920년대 문학을 사랑하는 낭만적인 문학도이며, 진실한 신자였습니다. 처음부터 이 두사람은 달라도 너무 달랐던 셈입니다.
이렇게 너무나도 다른 두 사람이지만, 스티븐이 루게릭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을때 제인은 스티븐과의 결혼을 결정합니다. 만약 제인이 스티븐과 같은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라면 2년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사람과의 결혼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스티븐과의 결혼을 통해 루게릭병에 걸린 사랑하는 사람과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 함께 하겠다는 사랑에 대한 낭만적 환상과 루게릭병에 걸린 천재를 지켜주하는 신이 내려준 신성한 의무 같은 것을 기대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결혼은 현실입니다. 제인은 스티븐과의 결혼을 위해 자신의 학업을 포기했고, 운동신경이 굳어져만가는 남편을 위해 자신의 모든 생활을 희생했습니다. 그러다 세 아이가 태어났고, 그제서야 제인은 스티븐에게 울부짖습니다. "난 도움이 필요해!"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스티븐의 뒤에서 모든 것을 희생해야했던 제인. 하지만 그녀는 스티븐의 그림자가 아닌 엄연한 사람입니다. 그녀에게도 스티븐을 위한 세상이 아닌 그녀만의 세상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영화의 초반에는 스티븐과 제인의 낭만적인 사랑을 잡아 나갑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환상이 그러하듯이 그것은 일시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스티븐의 몸이 점점 굳어갈수록 제인의 의무감은 점점 무거워집니다. 그러면서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점점 힘든 현실에 무너지는 제인의 모습을 그려나갑니다.
그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애초에 스티븐이 루게릭병에 걸리고 싶어서 걸린 것은 아니니까요. 제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 아이의 엄마로써, 루게릭병에 걸린 남편을 둔 아내로써, 그녀의 어깨 위에 걸쳐진 의무감은 상상을 초월하였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조나단(찰리 콕스)이 나타난 것입니다. 스티븐과 제인 부부에게 언제든지 도움의 주겠다는 조나단. 어쩌면 스티븐 입장에서 조나단의 제안은 자존심이 상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제인을 위해 그 제안을 수락합니다. "당신은 도움이 필요하고, 그는 도와주겠다고 하니, 나는 상관하지 말고 그 도움을 받읍시다."
누군가는 제인과 조나단의 관계를 불륜이라고 할 것입니다. 실제 제인이 셋째 아이를 낳았을 때 주위 사람들은 그 아이의 아버지가 스티븐이 아닌 조나단일 것이라고 수근거렸으니까요. 하지만 우린 모릅니다. 제인의 어깨위에 걸쳐진 상상초월의 의무감을... 제인과 같은 일을 겪어보지 않았다면 함부로 그녀를 비난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모든 사랑이 해피엔딩인 것은 아니다.
어쩌면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스티븐과 제인의 사랑과 이별을 미화시켰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가십 잡지식으로 두 사람의 이별을 그린다면 제인은 루게릭병에 걸린 남편을 놔두고 조나단과 남몰래 바람을 피운 파렴치한 불륜녀로 그려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수근대는 것처럼 셋째 아이의 출생 또한 의심스러울 것입니다.
사정은 스티븐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 스티븐 호킹과 제인 와일드의 이혼은 스티븐 호킹이 자신의 간호사인 일레인 메이슨과 동거를 하기 위해 집을 나가면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일레인 메이슨은 스티븐 호킹의 휠체어에 소형 컴퓨터를 달아 준 컴퓨터 기술자 데이비드 메이슨의 아내였지만, 결국 스티븐 호킹의 두번째 아내가 됩니다. 하지만 이후 일레인 메이슨이 스티븐 호킹을 육체적으로 학대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결국 두 사람도 이혼하게 됩니다.
이렇듯 스티븐 호킹과 제인 와일드의 이혼은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추잡한 가십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그들의 이혼이 추잡한 가십이 된다고해도 그들의 사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분명 사랑했고, 비록 해피엔딩은 아니었지만, 그 사랑은 충분히 위대했습니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아름다운 사랑에서부터 결혼 생활의 분열, 그리고 이별까지 담아내며 '이것도 모두 사랑이다.'라고 말합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 이제는 남남이 되어버린 스티븐과 제인의 시간을 되돌립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에서 시간을 멈춥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러한 아름다운 사랑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그러한 사랑마저 점점 현실 속에 매몰시킵니다. 스티븐과 제인도 비록 해피엔딩을 함께 맞이하지는 않았지만,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의 가장 찬란했던 추억을 공유하고 있을 것입니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보러 극장에 가며 저는 스티븐 호킹의 위대한 사랑을 담은 전기 영화를 보게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저와 마주한 것은 위대한 사랑마저도 비껴갈 수 없는 사랑의 민낯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이러한 그들의 사랑에 실망할 수도 있지만, 저는 그들의 사랑에 공감하며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내 사랑은 저런 가슴아픈 결말이 아닌 해피엔딩이 되도록 노력해야 겠다는 결심을 하며 극장을 나섰습니다.
스티븐 호킹을 연기한 에디 레드메인의 연기는 놀라웠고, (그는 배두나와 워쇼스키 남매가 조우한 [쥬피터 어센딩]에도 출연한다고 합니다. 정말 기대되는 배우입니다.) 제인 와일드를 연기한 펠리시티 존스의 연기가 너무나도 빛났던 [사랑에 대한 모든 것]. 이 영화는 사랑에 대한 아름다움은 물론, 현실에 매몰된 안타까운 이별까지 담아낸 정말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아낸 영화였습니다.
내 사랑이 해피엔딩이 되도록 만드는 것은 우리 각자의 노력이다.
하지만 해피엔딩이 아니라고해서 사랑을 부정하지는 말자.
지금은 비록 아파도 그것 역시 사랑이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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