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4년 영화이야기

[호빗 : 다섯 군대 전투] - 나의 중간계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쭈니-1 2014. 12. 23. 12:49

 

 

감독 : 피터 잭슨

주연 : 마틴 프리먼, 이안 맥켈런, 리처드 아미티지, 루크 에반스, 리 페이스

개봉 : 2014년 12월 17일

관람 : 2014년 12월 21일

등급 : 12세 관람가

 

 

이번 주말은 '호빗'에게 바치다.

 

12월 19일 금요일에는 저희 회사의 송년회가 있었습니다. 회사 동료들이 모두 모여 맘껏 술을 마시며 2014년 한해의 회포를 푸는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분위기에 취해서 과한 음주를 일삼았던 저는 그날만큼은 술을 마시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주위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다음날인 토요일에 구피, 웅이와 함께 <지상최대의 아트서커스 카발리아>를 보러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말의 일정은 <지상최대의 아트서커스 카발리아>가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일요일에는 저희 가족이 꼬박 1년을 손꼽아 기다렸던 영화 [호빗 : 다섯 군대 전투]를 보러 가기로 예약이 되어 있었습니다. 문제는 [호빗 : 다섯 군대 전투]를 보기 위해서는 [호빗 : 뜻밖의 여정]과 [호빗 : 스마우그의 폐허]까지 복습을 해야한다는 점입니다.

회식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술을 피했지만 회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얼큰하게 취한 상황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늦은 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구피와 웅이는 케이블 TV에서 방영해주는 [호빗 : 뜻밖의 여정]을 보고 있더군요. 하지만 저는 [호빗 : 뜻밖의 여정]의 복습에 동참할 수가 없었습니다. 잠이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아침, <지상최대의 아트서커스 카발리아>를 보기 위해 아침부터 서둘렀습니다. 그런데 웅이가 투덜거리는 것입니다. 알고보니 전날 [호빗 : 뜻밖의 여정]을 끝까지 보지 못했다고 하네요. 하긴 [호빗 : 뜻밖의 여정]의 러닝타임은 무려 2시간 50분입니다. 여기에 케이블 TV의 중간 광고 시간까지 합친다면 3시간을 훌쩍 넘어 거의 4시간이나 잠을 안자고 버텨야 했을테니 구피와 웅이에겐 무리였을 것입니다.

결국 <지상최대의 아트서커스 카발리아>를 관람한 후 토요일 저녁부터 저희 가족은 본격적인 [호빗 : 다섯 군대 전투]를 보기 위한 복습 시간에 돌입했습니다. 그리고 기왕 복습을 할 것이라면 극장판이 아닌 확장판을 봐야 겠다고 결심을 한 것입니다. 우선 토요일 밤에는 [호빗 : 스마우그의 폐허]의 확장판부터 봤습니다. 러닝타임은 극장판과 비교해서 25분의 추가 영상이 삽입된 3시간 6분입니다. [호빗 : 스마우그의 폐허] 확장판에서는 극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소린(리처드 아미티지)의 아버지 스라인의 놀라운 행방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일요일에는 극장에서 [호빗 : 다섯 군대 전투]를 본 후, 곧장 집으로 돌아와 [호빗 : 뜻밖의 여정]의 확장판을 감상했습니다. 극장판보다 12분 정도 추가된만큼 볼거리가 풍부하더군요. 특히 고블린왕의 우스꽝스러운 노래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렇게 저희 가족은 지난 주말을 <지상최대의 아트서커스 카발리아>를 관람한 것을 제외하고는 '호빗'을 위해 모든 시간을 투자하였습니다.

 

 

이번 영화에서 스마우그는 주인공이 아니다.

 

저는 아직도 1년전 [호빗 : 스마우그의 폐허]가 끝나자마자 자연스럽게 터져나왔던 웅이의 외침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호빗 : 스마우그의 폐허]는 스마우그(베네딕트 컴버배치)가 금빛 날개를 휘저으며 호수 마을로 향하고 "우리가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거지?"라는 빌보(마틴 프리먼)의 짧은 탄식과 함께 영화가 끝이 났습니다. 그 순간 웅이는 "뭐야! 이렇게 끝나는거야? 1년을 어떻게 기다리라고..."라며 절규했었습니다. 그런데 웅이의 우려와는 달리 1년은 이렇게 금방 우리의 곁으로 다가왔네요.

[호빗 : 다섯 군대 전투]는 호수 마을의 인간들이 난쟁이들과 손을 잡고 자신의 황금을 노린다고 생각한 스마우그가 호수 마을을 불바다로 만들면서 시작합니다. 호수 마을을 불태우는 뜨거운 불길, 사람들의 비명 소리, 이대로 호수 마을은 끝장이 아는 것일까요? 설마 그럴리가 없습니다. 호수 마을에는 아직 용감한 인간 전사 바드(루크 에반스)가 버티고 있었고, 킬리(에이단 터너)의 부상으로 인하여 호수 마을에 남은 난쟁이들, 그리고 킬리가 걱정되어 한달음에 달려온 요정 여전사 타우리엘(에반젤린 릴리)과 레골라스(올랜도 블룸)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호빗 : 다섯 군대 전투]의 주인공은 스마우그가 아닙니다. 스마우그는 이미 [호빗 : 스마우그의 폐허]에서 그 당당한 위용을 드러내며 영화를 압도했지만, [호빗 : 다섯 군대 전투]에서는 예정대로 바드의 검은 화살에 어이없는 죽음을 당합니다. [호빗 : 다섯 군대 전투]에서 스마우그의 맹활약을 기대한 분이라면 실망하실 듯... 

 

그러나 너무 이른 실망은 금물입니다. [호빗 : 다섯 군대 전투]는 시리즈 동안 차근 차근 쌓아왔던 이야기들을 모두 모아 하나씩 끝을 맺습니다. 아르켄스톤에 마음을 빼앗겨 미쳐버린 할아버지처럼, 스마우그로부터 꿈에도 그리던 에레보르를 되찾지만, 소린은 점차 황금에 눈이 멀어 광인이 되어 갑니다. 엘론드(휴고 위빙)의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죠.

절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킬리와 타우리엘의 사랑도 더욱 무르익습니다. 이미 [호빗 : 스마우그의 폐허]에서 첫만남부터 불꽃이 튀겼던 두 사람의 눈빛은 [호빗 : 다섯 군대 전투]에서는 더욱 노골적으로 불타오릅니다. 왕자의 신분으로 타우리엘에게 마음이 있었던 레골라스가 불쌍하게 느껴질만큼... 이미 여러 모험을 통해 누구보다 강인한 전사로 성장한 빌보는 황금에 눈이 먼 소린을 깨우기 위해 모종의 계획을 세우고, 난쟁이들의 여정에서 잠시 벗어나 돌 굴두르에서 감춰진 음모를 알아내기 위해 홀로 잠입했던 간달프(이안 맥켈런)는 갈라드리엘(케이트 블란쳇), 사루만(크리스토퍼 리), 엘론드와 함께 사우론의 부활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전투적 요충지인 에레보르를 점령해서 다가올 거대한 전쟁의 거점으로 삼으려 했던 사우론은 에레보르를 차지하기 위해 아조그(마누 베넷)를 앞세워 오크 군대를 출격시키고, 에레보르에서 바드가 이끄는 호수 마을의 인간들, 스란두일(리 페이스)이 이끄는 어둠숲의 요정들, 그리고 뒤늦게 합류한 철산 난쟁이 다인(빌리 코놀리)의 군대와 소린의 난쟁이 원정대가 오크 군단과 맞서 싸우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호빗 : 다섯 군대 전투]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일상적인 작은 것의 위대함

 

무엇하나 버릴 장면이 없었습니다. 단 한장면조차도 잠시 숨돌릴 틈이 없었습니다. 하긴 되돌아보면 항상 그랬습니다.  2001년 12월 31일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를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중간계의 모험은 항상 저를 압도했었습니다. 저는 요정, 마법사, 난쟁이들과 비교해서 미약한 존재에 불과한 '호빗'이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하는 위대한 일을 해내는 그 순간이 언제나 짜릿했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이번 [호빗 : 다섯 군대 전투]도 그러했습니다. 에레보르의 난쟁이 왕자이며, 그 누구보다도 강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는 소린. 하지만 그 조차도 황금에 눈이 멀어 진실을 보려하지 않을 때, 그에게 목숨을 걸고 진실을 보도록 일깨우고,  난쟁이와 요정, 인간의 전쟁을 막기 위해 애썼던 인물은 빌보였습니다. 빌보가 이번 여정에서 짐만 된다고 투덜거렸던 소린은 이미 [호빗 : 뜻밖의 여정]의 마지막 장면에서 빌보를 인정했고, [호빗 : 다섯 군대 전투]에서는 동료 난쟁이보다 오히려 빌보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왜 '호빗'이냐는 엘론드의 질문에 간달프는 이런 대답을 합니다. "사루만은 위대한 존재가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하지만 내 생각은 다릅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아주 작은 일상에서 시작하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제가 유난히 중간계에 환호하는 이유는 작고 미약한 존재이지만, 중간계의 그 어떤 종족보다 위대한 '호빗'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일라이저 우드)와 샘(숀 애스틴), '호빗'의 빌보는 바로 우리 소시민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거대한 재력이나 권력은 없지만 자신이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며 최선을 다해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소시민들. 어쩌면 간달프의 말대로 세상을 바꾸는 것은 그러한 소시민의 일상적인 움직임일지도 모릅니다. 

[호빗 : 다섯 군대 전투]는 그러한 소시민의 위대함을 담은 영화입니다. 난쟁이족의 위대한 왕자인 소린은 황금에 눈이 멀고, 마법사중에서 가장 위대하다는 사루만은 사우론에게 넘어가 권력욕을 불태웁니다. (갈리드리엘에게 사우론은 자신이 맡겠다고 이야기하는 사루만. [반지의 제왕 3부작]을 보신 분이라면 그 장면에서 짧은 탄식이 터져나올 듯.) 분명 소린과 사루만은 빌보에 비해 위대한 존재이지만, 그들은 재력과 권력에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호수마을의 영주와 검은숲의 요정 왕 스란두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각자의 욕심으로 인하여 진실을 보려하지 않습니다. 황금에 대한 욕심으로 소린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결국 스마우그에 의해 호수 마을이 불타자 혼자 도망치는 호수마을 영주. 요정의 보석에 대한 욕심 때문에 오크 군대가 몰려 온다는 간달프의 말을 믿지 않고 에레보르를 공격할 생각에만 빠져있는 스란두일.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그러한 욕심에 눈이 먼 지도자가 아닌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한 호빗과도 같은 소시민인 것입니다. 그러한 깨달음이 [반지의 제왕 3부작]을 제 인생의 영화로 만들었고, [호빗 3부작] 역시 [반지의 제왕 3부작]과 더불어 제 인생의 영화가 될 것입니다.

 

 

나의 중간계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호빗 : 다섯 군대 전투]가 끝나고 웅이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빠, 지금까지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어요." 그렇습니다. [호빗 : 다섯 군대 전투]는 웅이의 인생에서 영화를 보며 처음으로 감동의 눈물을 흘린 첫 영화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만큼 [호빗 : 다섯 군대 전투]는 감정을 뒤흔들만한 장면이 많이 있습니다.

[호빗 : 뜻밖의 여정]에서부터 수 많은 팬을 거닐었던 킬리와 타우리엘의 슬픈 사랑, 그리고 황금에 대한 광기는 가까스로 벗어났지만 결국 비극적 운명을 거스르지는 못한 소린의 최후까지... [반지의 제왕 3부작]이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에서 보로미르(숀 빈)의 죽음을 제외하고는 슬픈 장면이 거의 없었음을 감안한다면 [호빗 : 다섯 군대 전투]는 제게도 가슴 찡한 감동을 안겨줬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저와 웅이는 한동안 극장 밖을 나서지 못했습니다. 비록 엔딩 크레딧이 끝난 후 히든 영상은 없었지만, 끝까지 자리에 남아 중간계를 떠나보내는 여운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도 [호빗 : 뜻밖의 여정] 확장판을 감상했고, [반지의 제왕 3부작] 확장판도 다시한번 감상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비록 [호빗 : 다섯 군대 전투]로 인하여 이른바 중간계 6부작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지만, 아직 저희 가족은 그들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중간계 6부작이 끝난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제게 웅이는 말했습니다. "아직 <실마릴리온>이 남아 있잖아요." <실마릴리온>은 <호빗> 이전의 중간계 역사를 기술한 톨킨의 판타지 소설입니다. <호빗>이 <반지의 제왕>의 프리퀼이라면 <실마릴리온>은 <호빗>의 프리퀼인 셈입니다.

물론 <실마릴리온>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으로 [반지의 제왕 3부작]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을 당시에도 <호빗>이 영화로 만들어질줄 몰랐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실마릴리온>이 영화로 만들어질지도 모른다는 가느다란 희망을 안고 있습니다.

이러한 작은 기대는 여전히 저를 설래게합니다. 물론 그 기대가 현실이 될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작은 기대는 삶의 활력이 됩니다. 그것이 저와 같은 소시민의 삶이 아닐까요? 편안한 삶 속에서 '뜻밖의 여정'을 떠난 빌보처럼... 조용한 삶 속에서 중간계라는 판타지 세계로의 여정은 언제나 제게 특별합니다. 언젠가 다시 "중간계가 돌아왔다"라며 환호할 날을 저는 기다려봅니다.

 

피터 잭슨 감독이여!!!

중간계의 모든 여정이 끝났다는 말은 제발 하지 말아주시오.

나의 중간계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단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