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유지니오 미라
주연 : 일라이저 우드, 존 쿠삭, 케리 비쉬
나의 '프로도'는 어디에?
제게는 인생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반지의 제왕 3부작]에서 주인공 프로도를 연기했던 일라이저 우드. 하지만 2003년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으로 [반지의 제왕 3부작]이 막을 내린 이후 저는 일라이저 우드의 그 선한 눈빛을 볼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이후 국내에 개봉된 일라이저 우드의 영화는 [해피 피트 1, 2], [9 : 나인] 등 애니메이션의 더빙이 많았고, [씬 시티]의 잔인한 살인마 케빈, [매니악 : 슬픈 살인의 기록]의 과거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연쇄 살인마 등, 강한 역할을 주로 연기했기 때문입니다.
[그랜드 피아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스페인의 스릴러 영화인 [그랜드 피아노]에서 일라이저 우드는 과거의 치명적인 연주 실수로 은퇴를 선언했다가 5년만에 복귀한 천재적인 피아니스트 톰 셀즈닉을 연기했습니다. 그는 연주 도중 '라 신케트'를 완벽하게 연주하지 않으면 아내를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게 됩니다. '라 신케트'는 5년전 톰 셀즈닉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줬던 곡입니다. 과연 그는 '라 신케트'를 완벽하게 연주하고 자신과 아내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까요?
프로도의 추억을 해치기 싫어서 [매니악 : 슬픈 살인의 기록]을 안봤던 저는 [그랜드 피아노]에서 일라이저 우드가 맡은 캐릭터가 그나마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고 고민 끝에 [그랜드 피아노]를 선택했습니다.
톰 셀즈닉의 트라우마 극복기
사실 [그랜드 피아노]에서 2대8 가르마를 하고 등장하는 일라이저 우드의 모습이 제겐 여전히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일라이저 우드에게 프로도를 기대할 수는 없겠죠? 암튼 제게 [그랜드 피아노]는 [반지의 제왕]이후 그나마 일라이저 우드의 선한 눈빛을 볼 수 있었던 영화라서 반가웠습니다.
일라이저 우드가 연기한 톰 셀즈닉은 첫 등장부터 불안한 내면을 보여줍니다. 5년만에 무대로 복귀하는 톰 셀즈닉. 그의 사랑하는 아내이자 배우인 엠마(케리 비쉬)는 톰을 응원하지만, 매스컴은 그가 5년 전의 트라우마를 깨고 제대로 무대에 복귀할 수 있을지 수근거립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톰 셀즈닉은 마치 프로도가 절대반지를 들고 운명의 산에 가는 것처럼 불안불안한 발걸음을 무대로 옮깁니다.
[그랜드 피아노]는 1시간 30분 동안 무대에 오른 톰 셀즈닉의 불안함 심정을 잡아냅니다. 5년만의 무대 복귀도 떨리는 일인데, 정체불명의 사나이의 협박과 그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준 '라 신케트'를 완벽하게 연주해야하는 상황까지... 프로도에겐 샘이라는 충직한 동료가 있었지만 톰 셀즈닉은 혼자입니다. 톰 셀즈닉을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영화 초반부터 범인에 의해 어이없이 죽음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밝혀지는 범인, 억지섞인 범행 이유
분명 [그랜드 피아노]는 일라이저 우드만을 놓고본다면 꽤 반가운 영화입니다. 비록 그의 2대8 가르마는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그의 불안해보이지만 선한 눈빛은 [반지의 제왕 3부작]의 프로도를 다시 만난 것만 같은 반가움을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랜드 피아노]는 스릴러 영화 측면에서는 실망스러웠던 영화이기도 합니다. 톰 셀즈닉과 협박범의 대결이라는 구도에서 협박범의 정체를 너무 쉽게 드러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포스터에서도 존 쿠삭의 모습을 정면에 노출시키며 그가 범인임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랜드 피아노]가 추구하는 스릴러 영화의 재미는 클렘(존 쿠삭)의 범행 동기입니다. 왜 그는 굳이 톰 셀즈닉에게 '라 신케트'를 완벽하게 연주하라고 협박한 것일까요? 문제는 바로 이 부분에서 발생됩니다. 클렘의 범행 동기가 너무 억지라는 점입니다.
가족보다도 자신의 '그랜드 피아노'와 자신이 작곡한 음악을 더 사랑했던 패드릭 구드로. 패드릭 구드로의 수제자이자 패드릭 구드로와 더불어 '라 신케트'를 연주할 수 있는 유이한 피아니스트 톰 셀즈닉. 패드릭 구드로의 죽음으로 이제 톰 셀즈닉은 '라 신케트'를 연주할 수있는 유일한 피아니스트가 됩니다. 하지만 그에겐 '라 신케트'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이렇게 꼬인 상황에서 클렘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톰 셀즈닉에게 '라 신케트'를 연주하게 하는 조금은 어려운 방법을 선택한 것입니다.
스릴러와 음악이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사실 클렘의 공범자가 "왜 이렇게 어려운 방법으로 일을 해야하는지 모르겠어?"라고 투덜거립니다. 그건 저 역시 공감합니다. 공범자의 말 그대로 톰 셀즈닉에게 '라 신케트'를 연주하게 하는 것보다 더 쉬운 방법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클렘의 캐릭터가 좀 더 구축되었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클렘이 톰 셀즈닉의 광팬이라던가, 아니면 패드릭 구즈로 음악에 심취한 미친 놈이던가... 그런데 [그랜드 피아노]는 그러한 수고를 하지 않습니다.
[그랜드 피아노]의 또 다른 문제는 음악과 스릴러가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영화 자체가 연주회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결국 연주회의 음악과 톰 셀즈닉과 클렘의 대결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톰 셀즈닉이 클렘과 통화를 하며 피아노를 연주하다보니 관객 입장에서도 혼돈스러웠습니다. 영화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톰 셀즈닉과 클렘의 대결에서도 음악과의 조화를 포기하고 갑작스로운 육탄전으로 진행되니 뜬금없었습니다.
이렇듯 [그랜드 피아노]는 분명 성공적인 스릴러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프로도의 선한 눈빛이 그리운 분이라면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을 투자할 충분한 가치가 있는 영화이긴 했습니다. 물론 일라이저 우드의 2대8 가르마는 좀 더 적응이 필요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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